소녀전선 애니메이션이 지난 1월 7일부터 순차적으로 글로벌 방영을 시작했다. 소녀전선 애니메이션은 워너브라더스 재팬과 아사히 프로덕션이 공동 제작했으며, 국내에서는 1월 9일 오전 1시, 애니플러스를 통해서 1화가 공개됐다. 그리고 국내 애니플러스 채널에서 매주 일요일 오전 1시로 정규 편성됐다.

원작 게임 자체가 국내에서 센세이션한 반응을 일으켰던 작품인 만큼, 국내에서도 기대감이 높은 작품이었다. 2017년 당시만 해도 서브컬쳐 게임이 말 그대로 서브, 마이너한 자리에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를 메이저로 끌어올리는데 공헌한 작품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단순히 미소녀, 총기 모에화라는 틀을 벗어나 붕괴액과 ELID, 기계의 반란이라는 아포칼립스적인 테마에 비장한 스토리를 녹여내면서 서비스 5주년이 가까워지는 지금도 여러 유저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지 않던가.

여기에 고퀄리티 SD 캐릭터의 귀여운 느낌과 각종 밈까지 캐치하면서 낸 애니메이션 '소녀전선 미니극장 치유편'과 '소녀전선 미니극장 광란편'이 상당히 호응을 얻었으니, 과연 본편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만들었을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앞서 언급한 소녀전선 미니극장 치유편과 광란편은 비록 개그물에 미니시리즈, 그리고 첫 공개 당시에는 중국어 더빙밖에 지원하지 않았지만 유저들 사이에서 '떼야떼야', '에무포 소프모드 츠, 쥬니어', '에무쓰' 같은 밈이 돌 정도였다.

물론 미니극장의 밝고 유쾌하고 엉뚱한 분위기는 '소녀전선' 원작과는 다르다. 지금까지 쭉 하고 있는 유저들 스스로가 생존자, 베테랑, 고인물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가혹한 전장을 헤쳐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처음 시작할 때부터 소녀전선에서 지휘관 그리고 AR 소대는 꽤나 힘겨운 전장을 헤치고 나와야했다. 배경부터가 제 3차 세계대전 이후 피폐해진 세계에, 나비 사건 이후 철혈공조의 전술인형들이 인간에게 반기를 든 상황에서 철혈이 대거 포진한 곳에서 데이터를 빼온 뒤 철혈의 추격을 피해 탈출하는 임무가 프롤로그의 개요였으니 말이다.





애니메이션을 이야기하기에 앞서서 소녀전선의 그간의 흐름을 짤막하게 소개한 이유는 간단하다. 소녀전선 원작을 플레이하지 않고 신작 나왔으니 본다는 느낌으로 시청했던 친구에게 소감을 물으니 "뭔지 모르겠는데 일단 좀 더 봐야 할 거 같아"라는 소리가 먼저 나왔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2년 4개월의 복무 후 지휘관의 '지' 자만 들어도 PTSD가 오다가 얼떨결에 소녀전선 출시 후 그리폰 지휘관으로 꽤 오래 비상근 복무(?)를 했던 입장이니,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그냥 너무 압축해서 담았다는 느낌만 있었다. 그러다 원작을 안 본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지 않나 싶었다.

실제로 유저평을 들어봐도 소녀전선 원작을 보지 않은 유저에겐 다소 불친절하다는 인상이 있었다. 1화에 소녀전선 원작의 프롤로그에, 지휘관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까지 오프닝과 엔딩을 제외하면 22분 가량의 분량으로 다 담아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소녀전선 원작을 하지 않았던 유저에겐 생경하다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압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전투씬 퀄리티는 다소 기복이 있는 편이다

물론 원작 자체가 설정이 꽤나 복잡하고, 프롤로그도 인물 소개보다는 게임의 특성상 플레이 방식 소개가 곁들이다보니 극초반 찍먹하고 이탈했다가 애니메이션 나온 김에 본 유저들도 비슷한 느낌을 받지 않을까 싶다. 이야기를 우겨넣으면서도, 전투씬은 다소 루즈하기 때문에 일견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특히 에이전트의 트레이드마크인 치마를 들추고 총을 쏘는 장면은 너무 자주, 길게 나오고 전신샷 위주로 잡히다보니 원작 초반에 느껴졌던 에이전트의 위엄이 다소 죽어버린 감이 있었다. 그래도 에이전트가 M4A1의 목을 틀어쥐는 장면부터 뜬금없이 나온 뒤 탈출 과정을 인게임 플레이 소개 형태로 풀어냈던 원작을, 애니메이션이라는 틀에 맞춰 풀어나간 그 목적 자체는 달성했다.

그런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소녀전선 애니메이션이 정확히 말해서 원작을 바로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게 아니라, 공식 코믹스 '소녀전선-인형의 노래'를 거쳐서 이를 토대로 작업을 진행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코믹스를 보고 애니메이션을 보면, 성우의 이슈 때문에 StG44 대신 같은 소대의 G43이 나온 걸 제외하고 코믹스의 2화까지의 장면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것에 충실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만화에서 봤을 때 박력있던 장면을 애니메이션에 맞춰 재풀이하고 그려내는 것에 다소 소홀하지 않았나 싶었다.

▲ 원작보다는 원작을 바탕으로 한 공식 코믹스, '인형의 노래'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다소 아쉬운 점이 느껴졌지만, '소녀전선'이라는 작품을 정식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녹여내는 첫 발자국으로서는 나쁘지 않았다. 에이전트가 등장한 전투 장면은 제외하고 소대 전투 부분은 그럭저럭 그려냈으니, 앞으로 지휘관 및 다양한 전술인형과 함께 하는 본격적인 전투는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 가지 우려되는 건 코믹스의 전개를 그대로 따라갈 경우 스케어크로우와의 전투 장면 묘사가 생략될 텐데, 코믹스는 안 보고 원작만 플레이했던 유저라면 아마 붕 뜬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다. 더군다나 감독인 우에다 시게루가 그간 작업한 애니메이션을 보면 이펙트나 촬영 효과에는 뛰어나지만 스토리 전개가 미진하다는 평을 듣고 있으니, 불안감을 떨쳐버리긴 어려울 수 있다. 그래도 원작 코믹스의 지휘관인 장시안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변화가 생겼으니, 원작 코믹스에선 다루지 않았던 부분이 나올지 또 소녀전선 애니메이션이 원작의 시즌 1 어느 부분까지 다루게 될지 관심있게 지켜볼 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