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전선'의 개발사, 선본 네트워크 테크놀로지는 국내 유저들에게 '미카팀'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있다. 그 이름은 현재는 사내 개발 스튜디오의 이름으로 남았지만, 원래는 그들이 동인으로 활동할 때 동아리명이었다.

소녀전선이 국내에 들어올 초창기에는 선본 네트워크 테크놀로지라는 법인명이 국내 유저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법인명이 공개된 이후에도 유저들은 '미카팀'이라고 부르는 일이 더 많다. 선본 네트워크 테크놀로지보다 간단한 것도 있지만, '소녀전선' 이전부터 그들이 그 이름으로 유니버스의 기반을 닦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중 PD를 중심으로 결성된 동인팀, '미카팀'이 2013년 내놓은 첫 작품 '빵집소녀'는 먼 미래에 남극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그려낸 PC SRPG다. 작전을 수행하다가 적의 기습을 받고 낙오된 특수 요원 '멘도'가 수수께끼의 소녀 '제퓨티'와 만나게 된 이후, 전장을 누비면서 여러 세력이 얽힌 비밀스러운 프로젝트 '삼여신 계획'의 진상을 파헤쳐가는 과정을 고전적인 SRPG로 담아냈다. 당시에 등장했던 붕괴액이나 E.L.I.D 등은 소녀전선에서 스쳐지나가듯 언급됐기 때문에 얼핏 들으면 소녀전선과 연관이 없어보인 작품이었다. 그러나 점차 그리폰 대 철혈 구도를 넘어가 세계관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루크사트주의와 신소련 등이 얽힌 정치극으로 넘어간 현재의 '소녀전선'에서는 그 이후에 어떻게 될지 확인할 수 있는 참고 자료이기도 했다.

▲ 총기모에화라는 인식이 있던 초기와 달리, '소녀전선'은 가면 갈수록 정치극이자 군상극의 면모를 보인다

▲ '빵집소녀'는 그 시작이자 가장 나중 이야기고, 세계관의 완성을 위해 '역붕괴'로 리메이크된다

그렇지만 소녀전선에서 세계관의 설정과 역사가 일부 바뀐 만큼, 유니버스를 완성도 있게 구축하기 위해서는 근간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선본 네트워크 테크놀로지는 지난 2019년에 '역붕괴'로 리메이크를 발표하고, 2021년 9월 출시를 예고했다. 소녀전선 특별 방송 때마다 종종 게임플레이를 공개하면서 순항하는 듯 했으나, 스토리 및 콘텐츠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출시를 앞둔 9월 14일에 출시를 연기한다는 공지가 나오면서 유저들의 반응이 다소 엇갈리기도 했다.

그 뒤 6개월도 더 지난 5월 13일, 미카팀은 소녀전선 6주년을 맞은 특별방송에서 그간 개선한 내용을 담은 게임플레이 PV와 '역붕괴'의 테마를 담은 애니메이션 PV를 깜짝 공개했다. 심지어 애니메이션 PV는 우중 PD가 다른 개발진도 모르게 따로 준비한 것이었다는 비화가 전해지면서 당일 커뮤니티에서 회자되기도 했다.

▲ (6주년 방송 중) 우중: "이거 애니메이션 PV 만드느라 경비 많이 들었다"
소년: "개발진한테 아무 말도 없다가 몇 주 전에 갑자기 들고 왔더라. 그런데 너무 괜찮아서 할 말이 없었다"



답은 이것밖에 없었어, 최선의 미래를 향한 루프


우중 PD가 "소녀전선의 이전과 이후, 그리고 우리의 시작점"이라고 밝힐 만큼, '역붕괴'는 미카팀에 있어 의미 있는 타이틀이다. 미카팀의 시작을 알린 작품의 리메이크이자, 현재까지 공개된 '소녀전선' IP 중 가장 나중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기 때문이다. 소녀전선 초창기에는 잘 언급되지 않았지만 전역이 추가되고 몇 차례 대형 이벤트를 거치면서 세계관의 전반적인 모습이 드러났고, 각 세력들이 얽히고 섥킨 대서사시는 소녀전선로부터 꽤 시일이 지난 뒤 지휘관의 이야기를 그린 '소녀전선2'와 더 이후의 이야기를 그린 '역붕괴'에서 풀어나가게 될 예정이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역붕괴'는 2013년에 출시했던 '빵집소녀'의 리메이크다. 따라서 이야기의 기본 골조는 '빵집소녀'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루크사트주의 연맹(루련)과 남극 연방이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루련을 저지하기 위한 작전에 투입된 특수 요원 '멘도'가 '제퓨티'를 만나는 것이나, 그 뒤로 루련군의 포위를 뚫고 '삼여신 계획'의 진상을 파헤치는 고된 여정 자체는 바뀌지 않았다. 2019년 공개된 트레일러나, 애니메이션 PV 그리고 게임플레이 PV에서도 그 테마 자체는 그대로 유지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 작중 주요 소재인 '삼여신 계획', 리메이크 전 원작과 완전히 동일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그간 기존 '빵집소녀'에 등장했었던 인물들 위주로 조명했던 것과 달리, 이번 PV부터 '역붕괴'에서 새로 등장하는 오리지널 캐릭터가 나오기 시작했다.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 '슈가'는 루련군 특수부대 '빔펠'의 특별 작전 소대 '라이칸'의 부소대장으로, 서브머신건을 아킴보로 사용하면서 긴 꼬리를 활용, 근-중거리의 적에게 트윈 건과 긴 꼬리를 활용해 근-중거리에 적에게 위협적인 공격을 퍼붓는 캐릭터다. 실제로 애니메이션 PV에서도 제퓨티와의 근접전에서 양팔의 무기뿐만 아니라 꼬리를 활용해 공격하는 패턴을 보이기도 했다.


▲ 빵집소녀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오리지널 캐릭터 '슈가'가 애니메이션을 통해 처음 공개됐다

'빵집소녀'와 달라지기 시작한 지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예전까지는 멘도와 제퓨티가 서로 우연히 만나 역경을 함께 이겨내는 과정에서 내막을 알게됐다는 방식으로 표현했다면, '역붕괴'의 이번 애니메이션 PV에서는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암시가 주어지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제퓨티나 멘도가 서로 함께 하는 구도보다는 등장인물 각각의 소개와 작전을 함께 하는 건조한 인간 관계 위주였지만, 이번 PV는 제퓨티가 달려나가서 멈춘 장면과 그 뒤에 어린 제퓨티가 달리는 모습 그리고 멘도의 모습을 크로스오버해서 제퓨티가 멘도를 향해 달려가는 구도를 연출, 게임 내에서 그 둘의 관계가 어떤지를 짐작할 수 있게끔 했다.

그 이후에 제퓨티가 쓰러지는 광경을 여러 차례 변주해서 보여주는 가운데, 연령대나 입고 있는 복장이 매번 달라지는 모습을 통해 제각각 다른 상황에서 그런 배드엔딩을 맞았다는 점을 표현했다. PV에서는 다섯 번의 죽음 뒤에 여섯 번째에서 제퓨티가 본격적으로 루련군과 싸우는 모습이 나오지만, 실제 게임에서도 그렇게 다섯 번의 죽음을 무조건 거쳐야 하는 것인지 혹은 분기점이 그렇게 다섯 가지만 나오는 것인지는 아직까지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6주년 특별방송에서 '소년' 기획팀장이 '소녀전선'의 대형 이벤트를 참조했다고 말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유저가 하나의 진정한 엔딩을 향해서 여러 분기를 지나쳐가는 구조임은 분명하다. 소녀전선은 난류연속부터 유저의 선택지에 따라 다른 스테이지로 가게 되지만, 결국 최종 스테이지로 가는 선택지는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트루 엔딩은 바로 열리지 않고, 다른 분기들을 지나치고 나서야 비로소 열리곤 한다. 타 게임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슈타인즈 게이트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선행 조건들이 다소 비극적이어도 한 차례 이루어져야만 하듯이 말이다.

지난 '빵집소녀'는 12개의 스테이지로 구성된 선형적인 구조였고, '역붕괴' 또한 21년 9월까지만 하더라도 유사한 방식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번 PV에 이어 공식 방송에서도 '루프'라는 말이 언급되면서, 이야기의 흐름이나 스테이지 구성도 조금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전작 '소녀전선'의 여러 루프식 이벤트를 참고해보면, 역붕괴처럼 턴제도 아니고 지형지물을 활용하는 요소도 없지만 각 분기마다 적의 구성이나 클리어하기 위한 조건, 맵의 진로가 제각각 달랐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각 분기마다 다른 인물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를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보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이 순서가 뒤바뀌어서 제시되는 등 거짓인지 참인지 알 수 없게 하는 서술 트릭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 게임플레이 영상에서 공개된 스토리 분기점. 뭔가 낯이 익다

▲ 이런 내러티브는 미카팀이 난류연속부터 접목하기 시작한 스타일인데, 설마 이런 식으로 전개되진 않겠지?

애니메이션 PV 후반부에는 제퓨티가 어떤 실험을 당했다는 걸 묘사하면서, '삼여신 계획'이라는 것과 연관이 있다는 것도 드러났다. 거기다가 개인화기 위주에 기껏해야 대전차 무기에 폭발물 정도만 들고 있는 제퓨티와 멘도가 루련군의 강화 수트를 입고 있는 정예 병사들과 각종 기갑 병기와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소녀전선'에서 지휘관과 그리폰의 인형들처럼 제퓨티와 멘도가 난관을 극복하고 최선의 결과를 맞이할 수 있을지는 게임 속에서 직접 확인해보자.

▲ 과연 그 고난을 뚫고, 최선의 미래를 향한 단 하나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소녀전선2와는 다른, 전술 행동과 기믹을 적극 활용한 SRPG


소녀전선의 또다른 테마를 다룬 '뉴럴 클라우드'가 로그라이크 덱빌딩과 오토배틀러라는 색다른 장르를 선택하긴 했지만, 이전부터 미카팀은 SRPG, 그것도 고난이도의 고전적인 SRPG에 대한 애착을 여러 차례 보여왔다. 첫 작품인 '빵집소녀'는 구성 자체가 전통적으로 타일식 칸을 채택한 SRPG였고, 플레이한 일부 매니아들은 그 옛날 다소 불합리한 난이도의 고전 RPG가 떠오른다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 소녀전선도 전투 자체는 실시간이지만, 스테이지 진행 방식은 인카운터 방식을 가미해서 아군 유닛을 한 칸씩 움직이며 목표 지역을 차근차근 점령해나가는 SRPG의 구성을 취했다. 아직 개발 중이긴 하지만, '미소녀 엑스컴'이라는 말을 듣고 있는 소녀전선2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원작부터가 고전적인 SRPG인 만큼, 이를 리메이크한 '역붕괴'도 그 근간 자체가 확 바뀌진 않았다. 낮은 해상도에 동인 게임 느낌이 팍 느껴지던 그래픽을 새롭게 일신했지만, 타일식 맵 위에서 극도로 제한된 자원만 갖춘 소수의 아군 유닛을 이끌고 곳곳에 매복한 다수의 적들을 상대하는 구도 자체는 첫 공개 트레일러 때부터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됐기 때문이다.

▲ 소수의 인원으로 어떻게든 포위망을 뚫고 탈출해야 한다

그러나 이전에는 각 캐릭터마다 갖고 있는 장비와 이를 활용한 '스킬'이 강조된 반면, 후반으로 갈수록 캐릭터의 스킬을 직접 적에게 활용해서 저지하는 것보다는 곳곳에 있는 오브젝트와의 상호작용으로 전략적으로 풀어가는 모습이 강조됐다. 2020년에 공개된 트레일러에서는 수류탄을 활용, 수풀에 엄폐해서 공격을 전부 회피하고 있는 보스 캐릭터에게 화상 대미지를 누적시키고 엄폐물을 없애는 장면이 공개됐다.

이번 게임플레이 PV에서는 엄폐물을 없애는 기믹을 넘어 전황 자체를 바꿀 수 있는 다양한 전술전략 요소가 소개됐다. 바주카를 절벽에 쏴서 눈사태를 발생, 아래에 있는 적을 매장해버리거나 충격탄 스킬을 발동해 적 근처에 있는 E.L.I.D를 자극, 서로 싸우게 해서 전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그 사례다. 뿐만 아니라 적에게 들키지 않고 잠입하기 위해 마취총으로 재운 뒤, 잽싸게 적 뒤에 있는 컨테이너로 숨어서 서치라이트를 피하는 등 전술적으로 한층 더 발전한 요소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지형지물을 불태울 수도 있다는 건 2021년에 이미 언급된 사항이었지만

▲ 눈사태를 일으켜서 적을 매장해버리는 것도 가능해졌다

이렇듯 다양한 도구를 활용하거나, 여러 오브젝트와 상호작용하고 기믹을 이용하면서 필드를 누비는 과정에서는 AP가 소모된다. 아이템을 사용하거나 한 칸씩 이동할 때마다 3AP씩 소모되며, 음식 등 아이템을 사용하면 AP를 추가로 보충할 수 있다. 그러나 예제로 나온 화면에 다른 아이템은 여러 개 소지하고 있는 와중에도 아예 없거나 하나밖에 안 들고 있으며, 작중 소개에서도 극한의 상황이라 묘사한 만큼 극히 제한된 수량만 획득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재우고 아이템으로 AP 보충한 뒤 컨테이너로 이동까지, 코스트를 빡빡하게 써야만 한다

또한 아이템이 극히 제한되어있는 만큼, 주간에는 시야가 넓지만 야간에는 적의 시야가 비교적 좁다는 점에 착안해서 야간 작전에서는 전투를 최소화하고 포위망을 돌파하는 식으로 카운팅하는 플레이가 주가 될 전망이다. 적군 외에도 종종 야간에는 강력한 E.L.I.D도 모습을 드러내는 만큼, E.L.I.D를 피하거나 혹은 적과 조우하도록 역이용하거나 이용하는 전략도 이미 소개된 만큼 고려할 법하다. 일부 개체는 강화복을 입은 적들을 순식간에 죽이고 기갑병도 내구도를 거의 80% 가까이 깎은 만큼, 이러한 개체와 혹여라도 아군이 대치하거나 휘말리지 않도록 동선을 체크할 필요도 있다.

▲ 저런 걸 보면 자극하지 말고 도주하거나 적 쪽으로 유인하는 것이 상책이다

다만 지난 트레일러에서 '보스전'이 공개된 것과 달리, 이번에는 보스전의 양상은 드러나지 않았다. 2020년 공개한 트레일러에 따르면 분기에 따라 적이 될 수도, 혹은 같이 싸우게 될 수도 있는 캐릭터 '노엘'은 최초에 보스로 등장한다. 노엘은 다른 캐릭터와 달리 한 턴에 세 번 이상 움직일 수 있어 높은 기동력을 자랑하며, 마지막에 특수기로 인근에 있는 아군에게 강력한 피해를 주기 때문에 예상 접근 지역에 불길을 일으키는 등 대응책을 강구해야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보스전에 대한 소개가 없다보니,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소녀전선'에서 쌓인 SD 노하우가 반영된 인게임 연출


전작 소녀전선은 2017년 국내에 출시한 이후, 여러 가지로 센세이션한 게임으로 남아있다. 그 이유로는 착한 과금과 겉보기와 달리 심도 있는 게임플레이, 경쟁작의 부재, 처음 보았을 때는 단순한 SD라고 넘어갔는데 정교하게 다듬은 연출 등 다양한 요소들이 꼽혔다. 특히나 SD 캐릭터는 단순하면서도 캐릭터의 특징을 잘 살린 데다가 당시 기준으로 그만큼 여러 액션 및 상호작용도 소화해내는 SD가 없었던 터라 유저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SD 캐릭터 관련 노하우는 소녀전선을 6년 동안 업데이트, 서비스하면서 쌓인 만큼 가면 갈수록 그 퀄리티도 높아졌다. SD 캐릭터 자체의 퀄리티가 비약적으로 높아지지 않았지만, 각종 가구의 상호작용이나 스킨의 기믹이 다양해지면서 이를 찾아보거나 지켜보는 소소한 재미도 꾸준히 제공하고 있었다.

▲ 소녀전선에서 호평 받는 SD가 많은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것이 아닐까. PTSD 걸릴 것 같은 디테일이다

그럼에도 그간 '역붕괴'는 오래도록 축적된 SD 노하우를 선보이기보다는, 티저 이미지를 공개하거나 이전보다 좀 더 발전한 스킬 이펙트 정도만 보여주는 것에 그쳤다. 그러나 이번 6주년 방송 기념 게임플레이 트레일러에서는 본격적으로 이 노하우를 역붕괴에도 접목시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열차포가 포화를 맞고 멈춰서는 장면이나 제퓨티 일행이 적의 추격과 화포 세례를 피하면서 도주하는 장면은 이런 말을 하기에는 상당히 부족하기는 했다. 스킬 이펙트는 한층 더 화려해지고 셰이킹 캠 기법처럼 카메라를 흔들어서 긴박함을 표현하는 등 연출력을 높였지만, SD 자체의 연출력이 높아진 모습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전에는 게임플레이에서 벌어지는 장면만 인게임 연출로 표현하고, 나머지 파트는 CG나 대사로 처리한 것과 달리 상황을 묘사할 때 인게임 연출을 좀 더 폭넓게 쓰면서 몰입감을 높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뒤로 이어지는 노엘로 추정되는 개체와 제퓨티의 전투씬, 그리고 슈가와의 전투씬에서 비로소 미카팀은 그간 쌓아온 자연스러운 SD 액션을 선보였다. SD 캐릭터는 그 기법 특성상 머리 크기에 비해 팔다리와 몸통이 짜리몽땅하다. 그런 데포르메가 귀여운 매력을 보여주는 포인트긴 하지만, 액션의 중심이 되는 팔다리와 몸통이 짧아 구동범위도 좁고 표현력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소녀전선에서도 엑스큐셔너를 비롯해 근접공격이 특징인 일부 개체가 있지만, 그 모션을 슥슥 지나가는 잔상으로 표현하는 등 약간의 변칙적인 수를 뒀다.

반면 '역붕괴'에서는 소녀전선 SD 캐릭터들이 승리 모션이나 가구 상호작용에서는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넘어서 매스게임 같은 것도 소화하는 그 기술력이 전투씬을 묘사하는 곳에도 쓰인 것으로 보인다. 백덤블링으로 공격을 한 번 회피한 이후 서너 차례 이어지는 합에서 제퓨티가 적의 발톱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면서 반격하는 공방이 정밀하게 표현된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제퓨티의 소총 사격 후 나이프로 찔러서 마무리하는 장면과 적의 표정 변화는 약간 느리게 재생되면서 여운을 남기기엔 충분했다.

그에 비해 슈가와의 전투는 다소 빠르게 끝난 감은 있다. 슬로우 모션 등 연출을 살리긴 했지만, 제퓨티의 표정도 이전에 적이 보여준 표정만큼 일그러진 느낌이 들지 않아서 비교가 되기도 한다. 이는 완성도의 문제일 수도 있으나, 춥디 추운 남극에서 긴 하의를 입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등 일반적인 상식과는 다소 동떨어진 모습을 보여준 제퓨티인 만큼 어찌보면 다소 다르게 연출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초 역붕괴는 21년 9월 출시 예정이었으나, 갑자기 컨텐츠 업데이트를 이유로 출시일을 연기했던 터라 유저들 사이에서는 여러 루머가 돌곤 했다. 코로나19 여파로 개발 일정이 어긋났다던가, 소녀전선 다른 작품에 인력이 우선 배정됐다던가 등등. 실제로 소녀전선의 또다른 신작 '뉴럴 클라우드'가 그해 9월에 출시됐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뉴럴 클라우드 서비스로 코스트가 많이 배분됐다는 소문이 유력하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6개월도 넘는 긴 침묵 속에서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역붕괴'는, 그간 미카팀이 쌓아온 2D 관련 기술 및 루프식 내러티브, SRPG의 노하우를 담아서 유저들에게 새롭게 보여주고자 하고 있다. 우중 PD의 말마따나 소녀전선의 시작이자 가장 나중 이야기고, '미카팀'이라는 이 세 글자를 널리 알린 첫 작품을 오랜 세월이 흘러서 다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니만큼 더 완성도를 높이고자 달려드는 것도 이해가 간다고 할까.

그래서 개발팀도 모르게 우중 PD가 혼자 주도해서 애니메이션 PV를 제작해버리는 해프닝도 벌어지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경비가 상당히 많이 들었는데도 팀 내에서도 "그럴 수 있지"라고 넘어갔을 것일지라. 아직 출시일이 공개되지 않고 영상, 그리고 여러 에피소드들만 유저들에게 전해진 '역붕괴'가 과연 올해 출시 예정인 신작 '뉴럴 클라우드'와 함께 국내에서 소녀전선 IP의 부활을 선언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