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이라는 말은 특별하다. 더 이상 기회가 없기에 모든 것을 쏟아야 한다는 절박함과 동시에 이제 드디어 긴 여정이 끝났다는 안도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올림픽 출전이라고 말한 배구 국가대표 김연경 선수의 행보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마지막 시즌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과정을 다룬 다큐 멘터리가 '더 라스트 댄스'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스포츠 선수에게 마지막 순간의 의미는 달라 보였다.

LoL 프로게이머 중에서도 마지막 순간을 향해 달려가는 선수가 있다. 바로 올해를 끝으로 프로게이머 생활은 그만하겠다고 말한 담원 기아의 '칸' 김동하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아쉬운 기량 저하와 함께 쓸쓸하게 무대에서 떠나기 마련인데, '칸'은 선수로서 가장 높은 커리어에 도전을 앞두고 있다. 자신의 마지막 LCK에서 우승할 때 “눈시울이 붉어졌다”고 말한 만큼, 그에게도 마지막에 임하는 특별함이 보이곤 했다.


그런데 정작 '칸' 본인은 "마지막이라고 더 특별하지 않다"고만 말한다. LCK 결승전 우승 후 인터뷰 장면을 떠올리며, "화장이 지워지면서 파우더가 눈에 들어가서 그렇다"고 자신의 우승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고 한다. 한 달 안으로 다가온 롤드컵 역시 마찬가지였다. '칸'에게 이번 롤드컵은 최고의 커리어를 쌓을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칸'은 덤덤하게 끝을 맞이하려고 했다.

마지막이라고 더 특별하진 않은 것 같다. 떠나는 사람이라고 더 관심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가는 사람이 있으면 다시 들어오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내가 떠나면 또 다른 선수가 나타날 것이다. 만남에는 헤어짐이 정해져 있고 떠남이 있으면 반드시 돌아옴이 있다는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게 운명이고 순리라고 생각한다.


오랜 프로게이머 활동을 통해 경쟁을 경험하면서 어떤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일까. ‘칸’은 우승이라는 타이틀과 가장 밀접한 당사자임에도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아쉽게 놓쳤던 지난 우승, 마지막 LCK 우승, 그리고 앞으로 남은 롤드컵까지. 많은 대회를 경험한 ‘칸’은 우승 가능성을 단언하기보단 열려 있는 답을 내놓았다.

우승까지 도달하는 과정은 ‘운칠기삼’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LCK 우승 역시 하늘이 도와줬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한 것은 맞지만, 서머 정규 스플릿에서 몇 번 넘어지기도 해서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다. 모든 팀원의 실력과 운, 메타, 당일 컨디션 등 모든 게 겹쳐서 결과가 나오는 것 같다.

그동안 내가 국제 대회에서 우승이라는 성적을 내지 못했다. 내가 잘했으면 이겼을 경기가 있지만, 내 손을 떠난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매번 국제 대회에 나갈 때마다 우승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우승을 향한 근거 없는 자신감이 넘쳤다면, 이제는 근거는 있지만 그렇다고 자신감이 예전 만큼 크진 않더라.


▲ 사진 출처=LCK 현장취재단

그렇다면 ‘칸’이 말한 자신감의 근거는 어디서 나왔을까. 많은 것이 불안하고 불확실하다고 답하는 ‘칸’이 유일하게 믿고 있는 것은 팀이었다. 킹존 드래곤X-T1-담원 기아에서 LCK 우승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이유였다. 특히, 프로게이머로서 마지막 기회를 준 담원 기아에게 신뢰로 답하고 있었다.

매 경기 들어설 때마다 나는 아직도 긴장하는 편이다. 그럴 때마다 우리 팀원들이 긴장감을 많이 덜어줬다. 긴장되고 부담되더라도 팀원들이 잘해주면 사라지더라. 2017년부터 지금까지 매 경기 긴장하면서 시작했지만, 좋은 팀원들을 만나서 승리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함께 해왔던 모든 팀원들에게 감사하다.

그리고 담원 기아 팀원들이 내 마지막 LCK 우승과 롤드컵 진출이라고 평소보다 더 열심히 해주는 것 같더라. 그래서 더 고마웠다.

나도 팀에 최대한 빨리 녹아 들려고 했다. 양대인 전력 분석관이 서머에 합류해 많은 변화가 있었다. 피드백 방식이 내가 그동안 경험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작년 담원에서 활동한 팀원들은 피드백 방식에 익숙한 상황이었고, 내가 짧은 시간 내에 따라가야 했다. 그리고 새로운 피드백 방식 속에서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좋은 팀원들과 우승까지 도달하는 프로게이머의 삶은 멋있어 보인다. 하지만 프로게이머 개개인의 삶을 바라봤을 때, 그 이면에 프로가 아닌 이들이 알지 못하는 면도 있을 듯하다. ‘칸’ 역시 화려한 프로게이머 커리어의 이면에 가려진 점을 떠올리며 은퇴를 생각하고 있었다. 작년부터 이어온 은퇴에 관한 생각은 군 입대라는 상황을 떠나서도 확고해진 상태였다.

7-8년 동안 전력 질주만 했던 것 같다. 인생의 마라톤으로 전환할 시기인 것 같다. 이젠 행복을 찾아서 떠나고 싶다. 매일 아침 10시에 일어나서 솔로 랭크-스크림-프로 경기를 하는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까 사람이 피폐해지는 것 같다. 프로게이머로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얻은 게 분명 더 많지만, 잃은 것도 있다. 정신적으로나 몸 건강 면에서 좋은 것 같지 않다. 내가 잃은 것을 찾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직 은퇴하고 무엇을 할지 정하진 않았다. 일단, 지금까지 살면서 운동을 해 본 적이 없다. 몸 상태가 안 좋아서 은퇴하고 운동도 해 볼 생각이다. 개인 방송을 열심히 하기보단 휴가 느낌으로 할 일이 없을 때나 킬 것 같다.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 ‘칸’이지만, 롤드컵에 임하는 자세 만큼은 여전히 프로다움이 묻어있었다. ‘칸’이 자신과 팬들에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한 마디의 말뿐이었다.

이번 롤드컵에서 '잘하겠다, 못 하겠다'고 확답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열심히 하겠다는 말은 지키겠다. MSI 때도 준우승이라는 결과가 아쉽긴 하다. MSI 때도 내가 다른 리그의 어떤 선수와 비교하더라도 연습량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번에도 내 선에서 최대한 열심히 했다고 말할 수 있도록 하겠다. MSI 때는 준우승에 만족해야 하는 실력이었다고 생각한다면, 이번 롤드컵 때는 우승을 해야 하는 실력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