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라이엇 게임즈

T1의 카드 몇 개가 기계처럼 돌아가던 EDG의 행보를 멈춰 세웠다.

EDG는 2021 롤드컵 그룹 스테이지 B조 2R 경기 전까지 거의 완벽에 가까운 팀처럼 보였다. 1R 3전 전승에 2R 출발 역시 압도적이었고, 딜러진인 '스카웃-바이퍼'가 든든하게 팀 승리를 보장해주고 있었기에 그렇다. 특히, B조 2R 첫 경기까지 유일하게 0데스를 기록 중인 '바이퍼'는 정말 기계 같았다. LPL 서머 결승전에서 1:3 교전을 압도하는 '딜링 머신', 불리한 1R DFM전을 당연한 듯이 뒤집는 무결점의 선수처럼 보였다.

그런 EDG 역시 T1의 영리한 플레이와 픽밴에 크게 흔들렸다. 지난 경기에 이어 이번에도 두 팀은 팽팽한 운영 대결을 펼쳤다. 킬 없이 고요한 경기의 균형을 무너뜨린 첫 카드는 '페이커' 이상혁이 선택한 트위스티드 페이트의 손에서 나왔다.


'페이커'표 트페 카드
카드 셔플에 속고 또 속았다

'페이커'의 카드는 상대 EDG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나오곤 했다. T1이 드래곤을 가져가고 천천히 운영해도 충분한 경기 양상이었다. 영상에서 볼 수 있듯이 '페이커'는 미드 라인을 밀거나 앞에 보이는 제어와드 정도를 제거할 것 같은 타이밍에 2차 포탑으로 향한다. 그리고 상대 탑 '플란드레'가 2차 포탑 근처에서 멀리나가지도 않았는데, 예상못한 '칸나-페이커'의 기습에 끊기고 말았다. 해당 플레이로 T1은 EDG표 운영에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 케넨이 앞에 있는데? 한타 때 뒤잡는 '페이커' 트페

'페이커'의 카드는 한타 때도 쉬지 않고 EDG의 허를 찔렀다. 정면과 후면을 가리지 않고 등장해 골드 카드로 교전을 여는 장면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해당 경기전까지 데스가 없었던 '바이퍼' 역시 '페이커'의 카드에 기록이 깨지고 말았다.

일반적으로 바론 지역에서 한타가 열릴 때, 케넨이나 라칸-오공처럼 광역 CC기를 지닌 챔피언이 우회하는 플레이를 염두에 둔다. 그런데 T1은 케넨이 정면에 서 있는 선택을 하니 EDG와 '바이퍼' 역시 의심 없이 정면 한타를 생각하는 그림을 그렸다. T1과 '페이커'는 이런 심리의 허점을 제대로 노렸다. 오히려 '칸나'가 아닌 '페이커'가 우회해 EDG의 뒤를 잡은 역할을 맡은 것. 골드 카드로 열린 한타에 EDG 역시 당황하며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페이커'는 닉네임처럼 상대를 속이고 있었다. 그것도 그동안 많이 알려졌고, 지난 번에 꺼냈던 트위스티드 페이트로 말이다. 뻔하게 보일 수 있는 카드로 생각하지 못한 변수를 만들어내는 플레이. 그것이 이번 EDG전을 비롯해 '페이커'가 이번 롤드컵에서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닐까.


급부상 T1표 아펠-룰루 카드
EDG 너희도 써보려고?


T1은 봇 라인 픽밴에서도 EDG를 크게 말리게 했다. 당일 T1은 상대에게 유미를 풀어주고 아펠리오스-룰루를 가져오는 선택을 했다. EDG가 유미를 가져가자 T1은 상대 봇 듀오를 몰아넣고 속도를 높였다. 다른 포탑 라인까지 빠르게 무너뜨린 T1은 여러 이득을 챙겼다. 앞서 언급한 '페이커'의 활동 범위를 넓히는 것은 물론, 봇 이외의 라인에서도 포탑 방패를 뜯으며 골드를 채굴한 아펠리오스까지 성장시킬 수 있었다. 성장한 '구마유시' 이민형의 아펠리오스는 다른 원거리 딜러 못지 않은 능력을 발휘했는데, 이는 T1과 DFM의 대결에서 그 위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B조 양상은 점점 EDG와 T1의 1위 결정전까지 갈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이에 EDG 역시 남은 T1전에서 아펠리오스-룰루를 빼앗아올 수 있다는 무언의 압박을 주고 싶었는지, 100 씨브즈를 상대로 해당 픽을 가져왔다. EDG가 이번 롤드컵에서 처음으로 아펠리오스-룰루를 꺼내자 대반전이 일어났다. 루시안-나미를 뽑은 100 씨브즈가 탄탄하던 EDG의 봇 라인전을 무너뜨린 것이다. 앞서 T1전에서 EDG가 루시안을 밴했다면, 100 씨브즈 전에서 풀린 루시안에게 뒷덜미를 쌔게 잡혔다. 그렇게 EDG는 아펠리오스-룰루의 장점을 보여주지 못한 상태로 그룹 스테이지를 2위로 마무리하게 됐다.


▲ 아펠리오스-룰루, 루시안-나미, 유미까지 엉킨 EDG 픽밴

T1과 EDG의 1R 경기 결과를 기억한다면, 2R에 다시 등장한 트위스티드 페이트와 풀린 유미 픽이 불안하게 다가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T1은 자신들의 픽밴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2차전을 통해 증명했다. 현 롤드컵 대세 픽인 유미는 충분히 포탑 운영으로 카운터칠 수 있고,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여전히 강력하다는 메시지를 남기면서 말이다.

거기에 지난 인터뷰에서 '케리아' 류민석은 "루시안-나미를 카운터 칠 만한 카드가 많다"는 말까지 남긴 바 있다. 당시 롤드컵 그룹 스테이지에서 뽀삐 정글을 처음으로 선보여 루시안을 압도했던 만큼, T1의 픽밴에도 점점 신뢰가 쌓이고 있다.

이제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EDG를 꺾은 T1의 픽밴은 8강까지 영향을 줄 수 있겠다. 상위 라운드에서 상대 역시 T1의 아펠리오스-룰루와 트위스티드 페이트를 대처할 만한 수 싸움을 벌일 텐데, 또 어떤 새로운 픽밴 구도와 카드를 선보일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