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멀티플레이 게임이 '사막'이 되는 과정



먼 옛날 그러니까 한 달에 출시되는 게임을 대충 숫자로 셀 수 있던 시절, 게임의 성패를 가르는 요소는 그저 '완성도'였습니다. 애초에 게임의 수가 적으니 대부분의 게임들이 이전엔 보기 힘들던 독특한 재미 요소와 디자인을 갖추고 있었고, 노골적으로 다른 게임을 배낀 카피캣이라 해도 원본이 좋다 보니 완성도만 갖춰져 있다면 다들 별 생각 없이 플레이하곤 했죠.

그러나, 하루에도 수십종 이상의 게임이 출시되는 지금은 다소 다릅니다. 지적재산권이 민감한 화두로 떠오르고, 너무나 많은 카피캣이 쏟아지면서 몸살을 앓는 장르가 많아지다 보니, 이제 '좋은 게임'의 조건에는 독특하고 새로운 게임 디자인이 반드시 들어갑니다. 다른 게임에서는 볼 수 없는, 반드시 이 게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죠.

그런 관점에서 '후드: 아웃로 앤 레전드(이하 후드)'는 괜찮은 게임입니다. 무수히 많은 경비병을 뚫고 보물을 훔쳐야 하는데, 이게 또 두 팀이 경쟁을 합니다. 보물을 지키는 경비들을 처리하고, 은신 상태로 열쇠를 훔치고, 보물을 운반하는 와중 상대 팀의 견제를 뚫고 보물을 뺏기지 않기 위해 싸워야 하죠. 귀신도 모르게 보물을 훔쳐내 봐야 마지막 인양 작업에서 상대에게 털려 버리면 몽땅 잃을 뿐입니다.

꽤 괜찮지 않습니까? 말만 들어 보면 엄청나진 않아도 퍽 흥미로운 시스템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게임을 해 보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게임의 기본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라면, 독특한 디자인을 가져와 봐야 말짱 꽝이라는 걸 알게 되죠. '후드'가 그렇습니다. 오늘 리뷰는 일반적인 게임 리뷰와는 다소 다릅니다. 후드의 좋고 나쁜 점을 말하기보단, 후드의 사례에 비춰 멀티플레이 베이스 게임이 아무도 남지 않는 '사막'이 되는 이유를 말해볼까 합니다.

게임명 : 후드 아웃로 앤 레전드
장르명 : 협동, 대전, 액션 슈터
출시일 : 2021. 5.11.
개발사 : 스모 디지털
서비스 : 포커스 홈 인터랙티브
플랫폼 : PC(Steam), PS4,5, XBO




'후드'를 시작한 게이머가 경험하게 될 것

'후드'의 시작은 튜토리얼입니다. 게임을 켬과 동시에 메인 메뉴보다 튜토리얼이 먼저 나옵니다. 정말로요. 그리곤, 네 명의 캐릭터를 돌아가며 플레이하고, 그 과정에서 각각의 캐릭터가 가진 특수 능력이나 컨셉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 외에도 경비병을 잡아 능력 게이지를 채우는 법이라던가, 안 들키고 열쇠를 훔치는 방법, 기타 등등을 배우게 되죠.

▲ 리빙포인트: 문을 열려면 덩치가 커야 한다

그렇게 튜토리얼이 끝나면, 은신처로 이동 후 강도질을 시작해야 합니다. PvPvE라는 컨셉에 걸맞게, 이 게임에서 할 건 강도질 외에 없기 때문입니다. 각 캐릭터마다 고유한 이름과 외형이 있지만, 이들이 왜 강도질을 하는지, 왜 저렇게 사는지, 의적인지, 그냥 날강도인지 뭐 이런 부분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안 만들어 두었으니까요. 다행이라면 강도질은 두 가지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앞서 말한 매치메이킹을 통한 PvPvE가 있고, 그냥 PvE가 있죠. 하지만 PvE는 아무도 하지 않기 때문에 매치메이킹이 되질 않고, 결국 할 건 PvPvE 하나뿐입니다.

그렇게 매치메이킹을 시작하면, 로비에 들어가게 되고 로비에선 아군과 적의 레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레벨이 낮다면, 게임 시작까지는 꽤 오래 걸릴 겁니다. 간혹 들어온 플레이어가 상대적으로 낮은 아군 레벨을 확인하면 그냥 나가 버리거든요. 저 같은 경우 두 명을 더 꼬셔 셋이서 게임을 시작했는데, 첫 게임 시작까지 거의 30분을 매치메이킹만 했습니다. 상대는 100레벨 전후의 멤버 넷인데, 1~2레벨 셋이 모여 있는걸 누가 참겠습니까. 저같아도 나갈 겁니다.

▲ 이 상태로 30분을 기다린 후엔

어찌어찌 게임을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캐릭터간 밸런스의 불합리를 온몸으로 느낍니다. 튜토리얼에서 배운 지식을 토대로 어찌어찌 경비병들을 처리하고 열쇠를 훔치고 나면, 그 때부턴 본격적으로 상대 팀과 교전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은신 상태의 마리안에게 암살당하고, 부활해서 또 암살당하고, 부활하면 또 암살당하고, 세번째 부활하면 그 땐 나오자마자 화살이 머리에 박힙니다. 부활까지 걸리는 10초 동안 킬 캠이라도 틀어주면 내가 어떻게 죽는지라도 알 텐데, 그런 것 없습니다. 대전액션 이상으로 모르면 그냥 죽어야 합니다.

▲ 대충 끔찍하게 졌다

그나마 게임이라도 제대로 되면 그 판은 다행입니다. 처참히 깨진 첫 판 이후, 또 30분의 매치메이킹 끝이 시작한 다음판은 핑이 말썽입니다. 지연 시간때문에 공격 튕기기는 제대로 되는 법이 없고, 상대는 순간이동을 합니다. 어찌어찌 핑이 안정된 방에서 상대와 1:1 상황이 되었다 해도 문제입니다. 화면에 비해 캐릭터의 크기가 너무 크게 잡히다 보니 언제나 '포 아너'의 대결 집중 상태같은 답답한 시야에서 싸워야 하고, 애니메이션도 솔직히 2021년 게임이라 보기엔 조잡합니다. 4년전 게임인 포 아너가 선녀같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이기고 지다 보면 보상도 얻긴 합니다. 물론, 보상으로 딱히 할 건 없습니다. 옷을 사 입는 정도지요. 레벨이 오르면 '퍽'을 찍을 수 있는데, 안그래도 밸런스를 맞추기 힘든 게임에서 왜 굳이 레벨에 따른 성장 시스템을 사용하는지 의문입니다. 안그래도 초보 플레이어들에겐 지옥이 따로 없는 게임인데 말이죠. 그냥 스킬 몇 개를 던져주고, 그 중 하나를 골라서 들고 가라고 했으면 나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몇 시간, 게임을 하다 보면 더 이상 할게 없습니다. 모드는 하나 뿐이고, 맵도 몇 없습니다. 이쯤되면 경비병을 잡고 보물을 얻는 과정은 그냥 지루한 요식행위가 될 뿐이고, 게임의 포커스는 오로지 PVP로 향하게 되는데, 그마저도 별로 재미가 없거든요. 딱히 PvPvE에 집중한 게임도 아닌 '시오브시브스'의 PvPvE가 훨씬 박진감 넘치고 재밌습니다. 이런 게임은 승패를 뒤집을 변수가 존재해야 재미있기 마련이고 게이머도 이를 기대하지만, '후드'는 딱히 그런 변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 게임 컨셉만 보면 재밌어야 하는데...



게임이 '사막'이 되는 이유와 과정

그 결과, 사람들은 하나 둘 게임을 떠납니다. 저야 리뷰를 써야 했기에 이를 악물고 게임을 이어나갔지만, 일반 게이머들은 그럴 필요가 없죠. 같이 게임을 하던 친구들이 하나 둘 똥겜 인증 마크를 찍고 떠나자 그 때부턴 정말 기나긴 고행의 길이 열렸습니다.

튜토리얼에서 알려주듯, 이 게임은 각각의 캐릭터에 부여된 역할이 있고 서로 상호보완을 해 가며 전략적 플레이를 해야 참맛이 우러납니다. 하지만, 매치메이킹으로 모르는 이들과 게임을 하면서 이런 전략적 플레이를 느낀 순간은 손에 꼽도록 적습니다. 다들 본인이 하고 싶은걸 합니다. 그냥 우르르 몰려다니며 온갖 경보를 다 울리는가 하면, 전부 다 흩어져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의문사를 당합니다.


▲ 손발이 맞으면 재밌는데 모르는 이들과는 손발 맞추기가 참 어렵습니다.

게이머의 문제가 아닙니다. 음성 채팅이 없을 경우 플레이를 지시하거나, 플레이 방향을 설정할 어떤 시스템도 없기 때문입니다. 퀵챗도 없으며, 맵에 마커를 찍는 기능도 없고, 핑은 이전의 다른 게임들과 비교해도 현저히 기능성이 떨어집니다.

게임의 디자인만 괜찮을 뿐, 그 외에 모든 부분에서 제대로 된 부분이 없습니다. 최적화, 밸런스, 매치메이킹, 애니메이션, AI, 커뮤니케이션 기능은 물론이고, 게임 외적 부분에 해당하는 로어나 설정, 캐릭터 배경, 시나리오도 없죠. 게임에 몰입하기도 힘든 마당에 재미마저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플레이어 숫자에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 로어 설정은 그리 어렵지도 않은데 왜 없는지

사전 억세스 기간 중 최대 9천명까지 올라갔던 피크 플레이어는 출시 이후 절반 가까이 떨어졌습니다. 딱히 핑계도 댈 수 없는, 그냥 드러난 결과가 그렇습니다. 그나마 희망을 잃지 않은 게이머들은 업데이트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회생 가능성이 드러날 거라 말하지만, 쉽지는 않을 겁니다. 지금의 '포 아너'가 적은 게이머 수에도 그렇게 열심히 업데이트를 해 왔는데 아직까지 회생하지 못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이왕 포 아너 얘기가 나온 김에 조금만 더 해 봅시다. 포 아너가 어느 순간 수그러든 이유는 단적으로 하드코어한 게임 난이도 때문입니다. 저 또한 나름 포 아너 출시 초에 캐릭터 장인이랍시고 대회까지 나가 봤으니 하는 말입니다만, 이 게임은 어느정도 선까지 실력 상승이 이뤄지고 나면, 그 이후는 재능의 영역으로 들어갑니다. 뭇 게임들의 프로들이 아마추어와 전혀 다른 레벨에서 놀듯, 그들만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거죠. 이런 게임이 흥행하려면 무조건 많은 게이머가 뒤를 받쳐 주어야 하고 이들을 적절히 섞어줄 매치메이킹이 필요합니다.

▲ 신작이라기엔 너무 곤두박질쳐버린 유저 수

'후드'도 마찬가지입니다. 포 아너 못지않게 하드코어한 난이도를 가진 PvP 게임인 만큼, 업데이트를 이어갈 탄력이라도 받으려면 셋 중 하나가 충족되어야 합니다. 기가막힌 매치메이킹 시스템을 갖추거나, 엄청난 수의 게이머를 확보하거나, 이도저도 아니라면 유비소프트급의 뒷심이 있어야 하죠. 하지만, 후드는 이 중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가 이 게임의 미래를 어둡게 바라보는 이유입니다.

사실, 그렇게 놀라운 일만은 아닙니다. 이처럼 사막화를 거쳐 끝내 회생하지 못하고 소멸해버리는 게임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멀티플레이 기반'은 많은 게이머를 모으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걸 실패하면 소생의 여지도 없이 망해버리는 양날의 검이니까요.

▲ 대형 게임사 + 초대형 IP라는 조합도 사막화가 한 번 진행되면 끝입니다.

다만, 그렇게 사라지는 수많은 게임들과 후드의 차이는 '부족한 점'이 서로 달랐다는 것입니다. 사라지는 게임 중 그럭저럭 괜찮은 완성도를 지닌 게임들은 일반적으로 다른 게임과 차별화된 매력을 보이지 못하지만, 후드는 이와 반대로 차별화된 시스템을 갖추었지만 완성도가 턱없이 모자랍니다. 사실, 그 차별화된 시스템도 그리 재미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다르게 생각하면, 그 부족한 부분을 꼭꼭 채워넣으면 후드의 소생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겁니다. 그러나,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렸습니다. 이미 출시가 이뤄진 지금, 부족한 점을 다시 모두 메울 때까지 게이머들이 게임을 떠나지 않도록 붙잡을 힘이 과연 있을까요? 저로서는 그저 막막해 보이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