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고 툭툭끊기지만 즐거운 이세계 라이프 스타일


전 농장 생활 게임에는 사실 별로 흥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농사일은 잘 알고 있습니다. 수십 년간 어르신들이 하는 것을 보고 배웠고 실제로도 경험한 세월이 적지 않은 편이니까요. 그래서 이상적이고 환상을 품는 '귀농 생활'의 현실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독 농장을 운영하거나 목장을 운영하는 게임에서, 쓸데없이 과몰입하는 경향도 적지 않아 제대로 즐기질 못하는 편이고요. 밭이랑 하나 파고 정비하는데 하루종일 걸리고 매일 봐야 하는데, 꼴랑 일주일 만에 수확한다고? 하고 쓸데없이 진지해지는 거죠.

그래서 현대적인 '농사 게임'보다는 판타지스러운 농사, 목장에 대해서 더욱 관심을 가진 편입니다. 내가 모르는 생태가 있고,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마법적인 법칙이 가능하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 게임을 꽤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판타지 세계'의 생활을 즐기는 RPG, '룬팩토리5'입니다.

게임명 : 룬팩토리5(RuneFactory5)
장르명 : 판타지 생활
출시일 : 2021.09.09.
개발사 : HAKAMA
서비스 : 세가
플랫폼 : Switch

관련 링크: '룬팩토리5' 오픈크리틱 페이지

룬팩토리5는 전작과의 연결고리 없이, 기억을 잃은 주인공 아레스(앨리스가)가 마을 '리그버스'에 정착하면서 마을의 평화를 지키는 'Seed' 대원으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게임입니다. 대충 판타지 농촌 경찰같은 느낌입니다. 일단 '룬팩토리' 시리즈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자면 매우 길게 될 것 같으니, 화끈하게 요약하자면 '판타지 라이프 + RPG'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시골 마을이 대부분의 매체에서 평화롭게 그려지는 만큼, 리그버스 역시 안경 하나 못찾는 일이 대사건으로 치부될만큼 평화롭습니다. 현실과 비교하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주민들은 선량합니다. 정체도 모르고 기억도 없는 데다가 무일푼에 그저 신분이 "수상한 사람 아님"이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숙식을 제공할 정도로요. 게다가 주 5일은 정규 근무 다 채우고 토-일요일은 단축 근무하는 걸 보니 매우 부지런한 사람들인 것 같아요.

잠시 이야기사 삼천포로 샜지만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플레이어는 리그버스 마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해결하면서, 자신의 농장을 키우고 성장합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리그버스 마을을 점차 발전시키고 더욱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다시 '전투'를 진행하는 식이죠. 분명히 'Seed' 요원은 현실로 치면 경찰같은데, 하는 건 농사일이 매우 많으니 영락없는 이세계 농사꾼이 된 기분입니다.

▲ 사소한 일조차 '대 사건'이 되어버리는 한가한 마을의 대단한 첫번째 임무

대신 농사에만 너무 치우지지 않도록 큰 흐름을 잡아주는 '메인 스토리'가 있고, 이러한 메인 스토리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핵심적인 사건들이 전개됩니다. 그리고 플레이어가 선택하는 방법에 따라서 흐름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죠.

즉, 농장을 좀 더 키우고 싶다면 당분간 메인 스토리를 진행하지 않아도 되는 식이죠. 이 과정에서 주민들과 친분을 더욱 올릴 수도 있고, 마을을 빠르게 발전시켜서 RPG 진행이나 농사일에 더욱 효과적인 장비들도 만들고 배울 수 있습니다.

▲ 타일식 농사, 흐름은 비슷하지만 이전과 달리 쿼터뷰로 진행됩니다.

▲ 농장일과 메인스토리는 꾸준히 진행되는 편.

정말 말 그대로 판타지 생활입니다. '목장이야기'가 농사일을 핵심으로 잡고 이를 중심으로 스토리를 이끌어나가면서도 항상 목장을 키우는 일이 메인이었다면, 룬 팩토리는 커다란 스토리와 농장이 서로 조화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을 주민들과 친분을 쌓고 그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고, 연애도 할 수 있죠. 이것이 바로 '룬팩토리'의 핵심입니다. 농장을 키우는 게 핵심이 아니라는 점이죠. 명확하게 플레이어가 해결해야 할 사건을 전해주고, 이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해주면서 '농장'은 하나의 요소로 자리 잡은 셈입니다.

전투를 돌아보자면, 플레이어가 사용하는 무기마다 여러 가지 스킬이 있으며 추가로 다양한 룬 어빌리티를 사용하여 적들과 대적할 수 있습니다. 정확한 타이밍에는 저스트 회피류라고 할 수 있는 '저스트 프론트 스탭'이 발동하여 강한 반격을 할 수 있는 액션이죠. 또한 무기마다 사용하는 콤보, 조작도 다르고 생각보다 많은 액션들이 존재하고 이에 대한 구현 자체는 다양하면서도 개성있게 된 편입니다.

액션에도 다소 공을 들인 모습을 보이지만, 그렇다고 '룬팩토리5'가 액션 게임으로서 정체성을 높게 쳐줄 수 있는 정도는 아닙니다. 액션은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정도이며, 게임오버도 존재하지 않지만 무시무시한 치료비가 청구되므로 자신의 성장 정도를 파악해서 적절히 도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일반 몬스터들은 그저 일반 공격 난사로 처리할 수 있지만, 보스급 몬스터의 경우는 일정한 공략점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보스전 역시 어렵지 않고, 무난하게 적당히 피하면서 적당히 때려주면 됩니다. 액션의 흐름은 정해져있고 다름 다양한 구조로 만들어져있지만, 정교하며 뛰어나다곤 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캐릭터의 성장 체감은 뛰어나도 다양한 무기를 쓰는 재미가 없는 건 아니기에, 가볍게 즐기기에는 그럭저럭 괜찮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생각보단 훨씬 현란한 액션, 템포는 빠르지만 정교하진 않습니다.

▲ 물론 마음에 드는 몬스터는 동료로 삼을 수 있습니다. 하루 이내로 플레이어를 따르게 해야합니다.

이는 목장 콘텐츠에서도 이어집니다. 밭을 갈구고 씨앗을 뿌리는 과정 자체에서는 나름 편의적인 부분과 성장의 재미를 알 수 있는 포인트가 있습니다. 이러한 목장은 시나리오를 진행하면서 차차 확장되고, 플레이어 혼자서 관리하기 벅찬 상황이 옵니다. 이를 몬스터 테이밍, 조련을 통해 해결하죠. 전투에서 포획한 몬스터를 음식으로 유혹하면, 플레이어를 따르게 됩니다.

이러한 몬스터들을 사육장에 두고, 친밀도를 쌓게 되면 이들이 대신해서 간단한 농사일을 도와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몬스터에 따라서 특수한 생산물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기에, 단순한 농노를 채우는 목적이 아닌 '목장'을 운영하는 느낌으로 진행됩니다. 그렇지만 목장과 농장 운영이 핵심적인 콘텐츠다라는 느낌은, 메인 스토리의 진행이 따로 존재하므로 크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냥 '해야 할 일' 정도로 느껴지는 신기한 균형이 잡혀있죠.

▲ 꾸준히 주민들의 의뢰를 해결하면서 마을과 스스로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됩니다.

이렇게 농사와 전투를 번갈아가면서 획득한 생산물들을 출하하고, 이를 통해 얻은 재화와 꾸준히 수집한 재화들로 마을과 각종 시설을 업그레이드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레시피들을 배우고 생산할 수 있죠. 재미있는 건 이 '모든 활동'이 성장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굳이 전투를 하지 않아도 높은 근력과 HP를 가질 수 있으며, 휴식도 중요한 성장 요소 중 하나이므로 쉴 때 확실히 쉬는 플랜도 필요하죠.

다만 각종 활동들 모두 '숙련도'가 존재하고 영향력이 높으므로, 숙련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라도 전투 및 크래프팅, 조련, 농사, 낚시 등 모든 활동을 할 필요가 있죠. 심지어 걸어다니는 '보행'도 숙련 레벨이 있을 정도니까, 사실상 거의 모든 행동이 캐릭터의 성장과 이어집니다.

또한 마을 주민들과 친해지면 모험을 함께 떠나기도 하며, 특수한 이벤트 스토리가 진행되어 연애와 결혼까지 할 수 있습니다. 모든 NPC들과 연애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이 아쉽게 느껴집니다만, 대사의 분량-바리에이션이 다양하고 방대한 편이라 캐릭터들의 성격과 성향, 이야기를 파악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연애를 하지 않더라도, 친해진 캐릭터들과는 같이 모험을 해서 특수한 액션을 보여주기도 하며 함꼐 낚시를 하는 등 기존 콘텐츠도 여러가지로 다르게 활용할 수 있는 모습도 등장해서 "얘는 뭔짓을 할까?"라는 호기심이 늘어나며 판타지 생활이 점점 즐거워집니다. 원래 이런 팜류 게임이 비슷하지만, 농사와 전투를 번갈아서 하다 보니 더욱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 연애가 가능한 캐릭터들이 많고,

▲ 무려 결혼하고 애도 낳는 게임

이러한 다양한 콘텐츠 구성을 해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 '룬팩토리5'에는 크나큰 단점이 존재합니다. 사실상 가장 큰 걸림돌은 최적화 이슈입니다. 심지어 현재 버전이 한차례 개선된 버전임에도 불구하고, 심각할 정도의 프레임 드랍을 게임을 조금만 해도 경험할 수 있죠.

건물 진입과 대화, 그리고 일자가 바뀌는 등 여러 가지 장면 전환 과정에서 심각한 프레임 드랍 현상을 만나게 됩니다. 게임의 그래픽은 나쁘지 않은 편이지만, 연출이 좋다고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러한 심각한 프레임 드랍은 몰입과 플레이의 흐름을 크게 해칩니다. 게다가 스킵이 불가능한 연출, 장면도 적지 않기에 최적화 이슈로 게임의 몰입감이 크게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고 봅니다.

게다가 매력적인 NPC들 중에는 공략이 불가능한 캐릭터들도 있으며, 회복이나 섭취, 농사일 및 가구 배치 등 세심한 부분은 편의 기능이 매우 부족해 일일이 플레이어가 메뉴를 열어 호출하거나 교체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몬스터에게 맡기는 등의 요소가 있지만, 게임에 흥미를 느끼는 가장 중요한 구간인 극 초반에 이를 절실하게 경험하게 된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현재 버전은 1.01 버전이고 이는 아시아판 기준 9월 2일 배포되었습니다.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본 패치노트에서는 이전 버전에서는 얼마나 게임이 힘든 환경에서 플레이해야 했는지 적나라하게 알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수정과 변경 내용이 있기에, 출시 전부터 세가가 신경 써서 패치를 전달해 준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프레임과 최적화, 버그가 발견된다는 점은 마이너스라고 밖에 할 수 없겠죠.

▲ 본받을 만한 마인드, 이래야 서장까지 올라갈 수 있나봅니다.

▲ 11시부터 대회인데 벌써부터 낚시중인 적극적인 모녀

그런데 이게임이 참 묘합니다. 초반에는 플레이하는 도중에도 프레임 저하로 인해 매우 화가 나고 답답한 감정이 앞섰는데, 어느 정도 농장이 성장하고 캐릭터도 성장하며 이야기를 풀어 나가다 보니 이를 잊고 계속 플레이하게 되더군요.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라 적응해서 '둔감해진' 것이라고 하기에는, 잠깐만하고 꺼야지 했는데 3~4시간이 훌쩍 지나있고 "빨리 다음날이 돼서 수확하고 또 심어야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분명히 매력이 있고, 재미있는 게임으로 여겼다고 생각합니다. 재미를 느끼는 구간은 게임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다양한 이벤트를 만난 이후이기에, 앞서 말한 프레임 드랍과 최적화, 버그 및 편의 등에서 큰 장벽이 더 아쉽게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지금와서도 재미있게 플레이하고, 빨리 다시 농장에 무엇인가를 심고 제작대에서 요리와 장비 등을 만들면서 더욱 게임을 해보고 싶은 마음은 여전합니다. 게다가 게임의 템포조차 '천천히 즐기세요'라는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극적인 갈등보다는 즐겁고 활기찬 일상을 그리고 있는 분위기도 부담 없이 즐기도록 유도하는 느낌이 매우 강하죠. 그렇기에 취향이 맞다면 '룬팩토리5'는 확실한 매력은 있는 '판타지 라이프'를 느껴볼 수 있는 게임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