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대표 김택진)는 그동안 게임 개발에 관해서는 꼭꼭 숨겨왔다. 그런 엔씨소프트 신작 게임 개발 총괄이 인터뷰에 응했다. 이에 더해 엔씨소프트가 새로운 개발 문화와 조직을 인터뷰를 통해 공개했다. 엔씨소프트가 정말 변화를 추구하고, 변했다는 게 읽혔다.

엔씨소프트가 '엔씽' 한다. '엔씽(NCing)'은 엔씨소프트의 새로운 개발 문화다. 엔씽은 엔씨소프트가 만들고 있는 게임들을 개발 과정부터 팬들과 소통해가며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엔씨소프트가 바뀌고 있다. 지난 2월 홍원준 CFO가 "엔씨소프트가 대외적으로 변화를 보이려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며 "이제부터는 개발 과정에서 고객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 변화의 상징이 바로 '엔씽'이다.

'빌리지'는 엔씨소프트가 올해 초 신설한 조직이다. 엔씨소프트가 다양한 미디어 문화에 사용할 IP를 창조한다. 김택진 대표가 새로운 IP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사라지지 않도록 만든 조직이다.

최문영 PDMO, 서민석 디렉터, 이채선 실장으로부터 신작 개발 방향성과 엔씽, 빌리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울러 엔씨소프트가 왜 혁신하려 하고, 어떻게 변하고,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 확인했다.

▲ (왼쪽부터) 서민석 디렉터, 최문영 PDMO, 이채선 실장

엔씨소프트, 개발 혁신으로 초격차 게임 만든다
최문영 PDMO "모든 신작이 유저 삶에 의미가 있도록"

PDMO라는 직책은 생소하다.

최문영 PDMO = 엔씨소프트는 개발 중인 프로젝트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개발 프로세스를 혁신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항상 고민하고 있다. 그 혁신을 이끄는 직책이 PDMO(Principal Development Management Officer, 수석개발책임자)이다. 엔씨 내부의 다양한 신작들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준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택진 CCO(Chief Creative Officer, 최고창의력책임자)가 신작 게임의 큰 틀을 제시하면, 내가 이어받아 최종 결과물까지 만든다. 이 과정들을 기존보다 더 효율적으로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조직을 이끈다.


그러면 김택진 CCO가 신작에 대해 처음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 PDMO인가?

최문영 = 그런 개념은 아니다. 김택진 CCO 산하에는 '빌리지(village)'라는 조직이 있다. 빌리지는 네 가지 역할을 수행하는 '하우스(house)'로 구성된다. 하우스가 신작 게임의 세계관과 캐릭터 설정 등 게임이 기본적으로 가져가야 하는 기획의 뼈대를 설계한다. 그 설계가 숙성이 되면 실제 개발 프로젝트로 가져가 게임으로 완성해나가는 책임을 지고 있다. 김택진 CCO가 게임의 근간이 되는 설정을 집중해 보고, 내가 이어받아 완성까지 이끄는 개념이다.

조직도상으로도 차이가 있다. 김택진 CCO 산하에는 빌리지가 직속으로 있고, PDMO는 별도로 빠진 다른 조직이다. 개발 흐름으로 보면 빌리지가 상류, PDMO가 이어받는 구성으로 보면 된다. 그렇다고 빌리지와 PDMO 사이가 담으로 쌓은 거처럼 구별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설계했으니, 너흰 만들어'라는 개념이 아니다. 실제로 나도 빌리지 모임에 들어가 있고, PDMO 산하 조직에도 빌리지 구성원들이 있다. 서로가 더 집중하면서 유연하게 협업하기 위한 조직 구성이다.

PDMO 조직의 목표는 TL(Throne and Liberty)을 비롯해 모든 신작이 유저 삶에서 의미가 있도록 개발하는 것이다. 개발 초기부터 전반에 걸쳐 유저 의견을 직접 듣고, 반영하며 엔씨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팬덤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그렇게 '초격차 게임'을 만들어 유저에게 인정을 받는 것, 그리고 개발 과정 자체가 게임업계 내에서 모범사례가 될 수 있도록 환경을 구축하는 게 내 역할이다.


초격차 게임?

최문영 = 다른 회사가 슬쩍 봐선 도저히 따라 할 수 없을 거 같은 게임, 많이 봐도 엄두도 안 나는 게임이다. 엔씨만이 만들 수 있는 규모, 콘텐츠를 뜻한다.

▲ "초격차 게임으로 유저에게 인정받겠다"

앞서 '혁신'을 말했다. 왜 혁신의 필요성을 느꼈나?

최문영 = 이제 우리 게임산업 자체가 개발하는 속도는 빨라지고, 목표 자체도 내수가 아닌 글로벌을 향한다. 엔씨가 산업 내 경쟁자들보다 우위는 무조건 가져가야 할 부분도 있다. 또한 우리가 가진 인력, 기술들을 통해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라는 점에서 혁신의 필요성이 있었다.

아울러 현재 엔씨소프트는 빅데이터, 인공지능과 같은 차세대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게임 개발이 차세대 기술과 결합하거나 새로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고려한 것도 조직 구성에 반영이 됐다.


최근 엔씨가 유저와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최문영 = 테스트로 먼저 선보이거나 오프라인 행사에서의 공개는 소통 방법의 하나라 생각한다. 엔씨가 '유저와 소통하겠다'라는 말의 본질적인 의미는 '쉬프트 레프트(shift left)', 즉 모든 것을 왼쪽으로 옮겨 처음부터 함께 하겠다는 말이다. 과거 엔씨와는 완전히 달라지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소통은 여러 방식이 있다. 유저가 참여하는 OBT라던지, 게임쇼 참가 같은 것들도 방식의 하나에 들어간다. 실제 개발 단계에 있는 게임도 '엔씽'을 통해 지속해서 모든 것을 다 보여드리려고 한다.


실제로 엔씨는 '리니지M' 때부터 테스트 없이 곧바로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게임사로서는 자신감이 돋보이는 행보로 풀이됐다. 방식의 변화는 과거 방법이 이제 안 통할 거라 생각해서일까?

최문영 = 최근 5년 동안의 게임은 엔씨가 PC로 선보였던 것들을 모바일로 변환한 작품들이었다. 검증된 IP들이었기에 곧바로 선보일 수 있었던 이유도 있다. 사실, 모바일 게임들을 선보이면서 코로나19라는 상황 때문에 유저에게 직접 선보이기 어렵기도 했다. 그래서 내부 인원들로만 게임을 점검했다. 게임마다 특정하긴 어렵지만, 사전 공개를 안 했다기보단 코로나19 때문에 못 했던 점도 있다.

코로나19 방역 수칙이 완화됨에 따라, 앞서 말한 거처럼 다양한 방식을 통해 유저에게 직접 게임을 선보이는 걸 계획하고 있다. 현재 엔씨는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만들고 있는데, 종류에 따라 적합한 방식으로 선보이겠다. 이른 시일에 선보이려는 게 TL이다. 당장 생각하는 건 유저를 대상으로 한두 번의 테스트를 진행하려는 걸 생각하지만, 이 진행도 목표로 했던 출시 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어떤 게 가장 좋은 방법일지를 고민하고 있다.

일단 엔씨 직원 4,500여 명으로 테스트는 하게 될 거 같다. 그런데 유저를 대상으로 한 부하 테스트, 피드백 테스트도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라도 자리를 마련해 유저 의견을 받을 것을 준비하고 있다.


게임 외의 소통도 있을까?

최문영 = 플레이 공개도 점차 접점을 늘려가고, 그 이외의 것들도 확장해 가려 한다. 여러 시도를 내부에서 준비하고 있다. '자신감'이라 표현됐지만, 기존에는 먼저 공개했다가 나중에 출시까지 가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가급적 안에서 감싸고 있던 경향도 있었다. 예전에는 확실하다고 생각했을 때만 밖으로 내보였으니까.

이채선 실장 = 엔씨가 소통하려는 것이 게임뿐만은 아니다. 이전까지 게임의 내용만 공유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제작하는 과정과 게임만으론 알 수 없던 숨겨진 이야기, 게임을 개발하면서 생겼던 다양한 일들도 소통으로 공개하려 한다. 그저 게임을 먼저 보여주고, 테스트하는 것에만 그치진 않는다.

▲ "엔씨의 소통, 그저 게임 공개에만 그치지 않는다"

개인적으론 엔씨가 많은 것들을 해왔지만, 내부 허들이 너무 높아서 반도 못 보여줬단 얘기를 들었다.

최문영 = 반이 아니라 20%도 못 보여드렸다.(웃음) 그러다 보니 밖에서는 엔씨가 특정 장르, 특정 IP를 갖고서만 게임을 만드는 거 아니냐는 생각과 오해를 하는 거 같다. 그렇지 않다. 이제는 게임뿐만 아니라 여러 콘텐츠와 우리의 고민까지도 공개하는 자리를 만들도록 하겠다.


엔씨가 게임 외에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도 선보일까? 애니메이션이나 소설, 웹툰 같은.

최문영 = 그 콘텐츠들도 꽤 오래 준비해왔다. 아마 좋은 기회가 오면 소개하는 자리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엔씨가 많은 것을 준비했고 공개할 계획이지만, 많은 유저는 "결국 또 '리니지라이크' 만드는 거 아니냐?"라 말하지 않을까.

최문영 = 결론부터 말하면, 동일하지 않다. 유저의 우려는 엔씨소프트에 기대하는 게 있기 때문에 나오는 거라 생각한다. 아무래도 우려하는 마음은 BM(비즈니스 모델) 쪽으로 말씀들을 주는 거 같다. 내부에서 준비하는 장르가 굉장히 다양하고, 그에 맞는 BM을 설계하고 있다.

그리고 'TL'은 여름에 공식적으로 BM을 밝힐 준비를 하고 있다. 그때 유저가 보시면 걱정하는 마음이 해소될 거라 기대한다.


여름에 TL 비즈니스 모델을 공개하나?

최문영 = 4분기에 출시 예정이니, 아무래도 여름쯤에는 TL 비즈니스 모델을 구체적으로 공개하게 되지 않을까? 개인적으론 TL을 공개한 이후로, 게임 내적인 것에 대한 관심보다는 과금 모델에만 관심이 쏠려 아쉬움이 있었다.

내부에서는 TL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좋은 게임을 유저가 더 재밌게 즐길 수 있도록 전달할지를 고민한다. 정말 좋은 게임을 만들고 보여줘서 '얘네(엔씨소프트)가 어떻게 이런 것까지 생각했지?'라는 소리를 듣거나 누군가의 인생 게임, 추억이 되는 게임으로 만들겠단 생각을 하고 있다.

김택진 CCO가 생각하는 것도 대부분 이쪽이다. 김택진 CCO가 개발진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한 유저의 인생 게임이 될 수 있도록 치열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까닭이다. 이제는 엔씨소프트가 하는 고민에 대해서도 시장이 조금은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 "여름에 TL 비즈니스 모델이 공개되면, 유저 우려는 해소될 것"

확실히 TL이 오픈월드라고 소개되었지만, 젤다식, GTA식, 위쳐식 오픈월드일지 궁금해하는 반응은 찾기 힘들었다. 오히려 TL에도 변신 뽑기가 있을지는 많이들 궁금해했다.

서민석 디렉터 = 이미 여러 오픈월드 명작들이 많다. TL이 나온 뒤에는 'NC식 오픈월드'라는 말이 정립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문영 = 과거 PC 게임 시절, 엔씨소프트 게임에 뭔가를 기대하는 시장 반응이 있었다. "엔씨가 만들면 뭔가 다를 거야"라고 하는. 그런 기대감을 TL을 통해 다시 주는 게 목표다.


코로나19 때문에 출시가 미뤄진 대작들이 많았다. TL은 예정대로 4분기에 출시될까?

최문영 = 그렇게 되지 않도록 준비하고 있다. 여름 정도가 되면 출시 일정을 더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을 거 같다.


개인적으로 엔씨를 살펴보면, 지금 위기라 생각한다. 주식 얘기를 미루더라도, 5년 뒤와 10년 뒤에도 리니지뿐이라면... '리니지' IP와 MMORPG 의존도 탈피, 글로벌 시장 진출이 엔씨소프트 우선 과제이지 않을까?

최문영 = 엔씨소프트는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 계속 위기였다. 그 위기를 극복하며 지금의 엔씨소프트가 있을 수 있었다. 엔씨소프트는 긴장감을 갖고 게임을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위기라 생각해 시장에 걸맞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 내부 허들도 높았던 거다.

이제 엔씨는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나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준비의 결과물들이 조금씩 나타날 것이다.


글로벌 시장을 준비하면서, 아시아권과 북미유럽 시장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나?

최문영 = 개인적으론 분명히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역마다 유저가 자라면서 한 게임 자체도 다르고, 문화가 다르니까. 분명한 차이는 있겠지만, 잘 만든 게임은 다 통할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아시아권에서 좋아하는 건 북미유럽은 좋아하지 않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엔씨가 글로벌 시장 접근을 잘못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가진 장점을 잘 보이면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공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 "우리가 가진 장점을 잘 보이면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공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과거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이후로 리니지2, 아이온, 블레이드&소울 등 대단한 게임들을 연달아 선보이고 성공시켰다. 그 성공으로 엔씨는 업계 최고 수준의 게임 개발력을 갖췄단 신뢰를 보여줬다. 반면, 최근에는 모바일 게임 위주로만 공개해서 지금도 개발력이 업계 최고인지 우려하는 시선이 있다.

서민석 = 현재 게임산업을 보면 중국계 업체들 기술력이 많이 높아졌고, 전 세계적으로도 상향평준화 되어 있다. 그동안에 엔씨소프트가 놀고만 있지 않았다.

밖에서 엔씨를 보는 것과 달리, 내부에서는 항상 치열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가 치열하게 고민하는 이유는 단순히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유저가 게임을 재밌게 즐기도록 하기 위해서는 재미뿐만 아니라 퀄리티와 완성도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

지금까지 엔씨가 놀고 있지 않았지만, 그동안 꼭꼭 숨겨와서 유저분들이나 시장이 모를 수 있다. 이제는 소통을 통해 공개하려 한다. 소통하는 이유는 같이 만들기 위해서다. 같이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 보여줘야 하니, 점차 공개하려고 한다. 그 소통과 공개가 '엔씽'이다.



엔씽(NCing), 엔씨소프트의 새로운 개발 방향성
서민석 디렉터 "우리의 팬들과 소통해 함께 만들어가겠다"

'엔씽'이 무엇인가?

서민석 = 엔씽(NCing)은 엔씨소프트가 개발하는 게임들을 개발 과정에서부터 우리 팬들과 소통하며 함께 만들어가겠다는 의미다. 그동안 엔씨소프트가 개발에 있어 '소통하지 않는다'라는 이미지로 오해받고 있다. 사실, 그동안은 '이 정도 수준은 되어야'라는 기준이 있었기에 유저와 이야기를 시작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조금씩 변화해 보려고 한다. 모든 준비가 다 되었을 때까지 꼭꼭 숨겨둘 게 아니라, 우리가 지금 무슨 생각으로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를 알리겠다. 엔씨 게임들을 기대하는 많은 유저와 의견을 주고받겠다. 더 큰 재미를 담아내기 위해 노력해보려고 한다.

이러한 모든 과정이 바로 '엔씽'이다. 엔씨가 개발 중인 여러 게임의 이야기와 개발 과정들을 유저들과 함께해 나가겠다.



'엔씽'의 목표가 있나?

서민석 = 엔씨가 새로운 게임을 선보일 때 '아, 이런 게임이 나오는구나' 정도가 아니라 '내 새끼 기다렸다. 제대로 달려보자'라는 말을 듣고 싶다. 게임 하나하나에 우리 팬들과 애정을 쏟으며 함께 개발해 나가도록 하는 게 바로 '엔씽'의 가장 큰 목표다.


엔씨소프트가 엔씽에 거는 기대가 남달라 보인다.

서민석 = 원래는 브랜드로 만들어 5월 말에 공개하려고 했다. 지금 엔씽을 소개하는 것도 엔씨소프트가 독자들과 소통하려는 의지로 읽히길 바란다. 엔씽은 게임 영상을 만들어 공개하는 것일 수 있고, 인터뷰를 통해 소개일 수 있다. 또는 블로그 글이나 짧은 쇼츠 영상이 될 수도 있다. 다양한 내용을 다양한 형태로 지속해서 내보내려고 한다.


이전까지 엔씨소프트 내부의 높았던 검증 허들이 이제는 엔씽이라는 이름으로 밖에 나가는 것일까?

서민석 = 개인적으론 엔씽이 검증의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검증하려는 게 아니라, 소수의 의견이라도 외부에서 받아 게임을 더 재밌게 개발하는 데 쓰려고 한다. 당연하지만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도 게이머다. 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끼리 더 재밌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얘기해보자는 거다.

검증의 프로세스는 완성도와 퀄리티라는 측면에서 별도로 있을 거다. 엔씽은 여러 의견을 듣고, 회사가 유저와 소통하면서 함께 만들겠다는 의지로 받아주시길 바란다.



엔씽을 해보니 유저들은 기획 의도와 정반대로 여길 수 있다. 이 경우 엔씨는 처음 의도를 이어 나갈까, 유저 의견을 따르게 될까?

서민석 = 기획 의도와 아예 반대 의견들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많은 검토와 고민이 있을 것이다. 우선 엔씨소프트가 왜 이런 의도를 했고 방향성을 잡았는지 유저에게 알리는 걸 굉장히 심도 있게 알리겠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설명하면, 게임을 좋아하는 개발자와 유저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 "엔씽, 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끼리 더 재밌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얘기해보자는 거다"

엔씨가 MMORPG는 잘 만들지만, 배틀로열와 같이 다른 장르는 아직 물음표(?)가 뜬다. 다른 장르에 대해서도 엔씽 하는 게 개발에 도움이 될까?

최문영 = 다른 것도 잘 만든다.(웃음) 잘 만드는데, 유저나 시장이 걱정하는 건 아직 보여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경우론 'TL을 콘솔로도 선보이는데, 엔씨가 콘솔 게임도 잘 만드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결국엔 게임을 만들어 시장의 검증을 받아야겠지만, 엔씨는 잘 만든다.

엔씽은 다른 장르에 대한 검증, 플랫폼에 대한 검증이 최우선 목표는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만들어왔던 것을 이제는 유저에게 빠르게 보여주고, 엔씽으로 유저 피드백을 받아 더 나은 게임으로 만드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엔씽이라는 게 공식 홈페이지 글을 읽거나, 유튜브 좋아요 수를 체크하는 정도에 그치진 않을 텐데.

서민석 = PDMO 산하와 내 산하에 엔씽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실이 있다. 이 부서가 엔씽을 통한 유저 피드백을 정리하고, 정리된 결과물을 회사 내 다른 부서와 협업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말한 대로 엔씽은 단순히 유튜브 좋아요 수를 체크하거나 게시물 확인 정도 선에서 그치지 않는다. 가능한 모든 의견들을 받을 수 있는 소통 창구를 만들 것이다. 한 방향 소통에서 벗어나 엔씨소프트가 유저와 함께 게임을 만든다는 느낌이 들도록 하겠다.


엔씨소프트가 다음 IP를 만들려는 고심이 엿보인다.

서민석 = 전 세계적으로도 IP 경쟁이 워낙 심하다. PDMO나 빌리지 모두 따지고 보면 다양한 IP들을 만들고 있다. 또한, 게임은 그 자체가 IP이기도 하다.

내가 하는 엔씽을 엮어서 답하면, 결국 엔씽이라는 것은 미래의 팬들을 위한 일이다. 개발 중인 과정을 서로 이야기하고 소통하면서 함께 만들어가는 게 IP를 만드는 과정이다. 엔씨가 계획했던 것보다 팬들과 얘기할 때 더 좋은 방향이 나올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 완성될 때, 팬들이 "내가 좋아하는 게임이 인제야 나오는구나"라는 반응을 이끌어내는 게 IP라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엔씨가 개발 과정을 숨겨왔던 것은 원했던 수준에 못 미쳐서다. 사실 '우리가 그래도 엔씨소프트인데'하는 마음도 있었다. '내가 낸데!' 하는. 앞으로는 우리가 원하는 수준이 못 미쳤어도 우리의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줘 같이 만들자는 얘기를 할 거다. 그래서 조금은 준비가 덜 된 상태로 보일 수도 있다. 이제는 얘기를 더 듣고, 함께 만드는 과정을 해보려고 한다. 그래도 출시할 때는 완벽한 모습을 갖추고 선보일 거다.



엔씨소프트가 게임 개발에 있어 전보다 더 어려운 길을 선택한 거 같다.

최문영 = 결국, 엔씨는 팬덤을 만들어 그들과 함께 게임을 만들고자 한다. 빌리지 내 캐릭터 하우스 목표 중 하나도 팬을 만들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서다.

서민석 =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임팩트 있는 이벤트를 통해 유저의 이목을 끌어내야 한다. 그런 임팩트 있는 이벤트들이 조만간 있을 것이다. 당장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유저가 "왜 엔씨가 콘솔 게임을 만들려고 하는지 알겠다"라고 할 수 있도록 보여드릴 준비를 하고 있다.

▲ 엔씨소프트가 TL 콘솔(PS5) 플레이 모습을 인터뷰를 통해 처음 공개했다


빌리지, 엔씨의 IP 바이블(bible) 만든다
이채선 실장 "모든 아이디어를 더 자유롭게 논의한다"

지금까지 얘기를 들어보면 전체적으론 '엔씽'이라는 새로운 기조 아래에 '빌리지'라는 새로운 조직으로 엔씨소프트가 탈바꿈하는 거 같다. 특히 빌리지가 김택진 CCO 직속 조직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이채선 = '빌리지'라는 정식 명칭으로 불리게 된 건 올해 초부터다. 몇 해 전부터 엔씨 내부에서는 새로운 IP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추상적으로 떠돌다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김택진 CCO가 "좋은 아이디어들이 쌓이지 못하고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경향이 있으니, 회사의 자산이 될 수 있도록 구체화할 수 있는 팀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라고 해서 만들어졌다.

빌리지는 아트, 라이트박스, 캐릭터, 브릭이라는 네 개의 하우스(house)로 구성된 조직이다. 엔씨 게임이 사용할 IP는 물론, 애니메이션이나 웹툰, 소설 등 미디어 문화에 소개될 다양한 콘텐츠를 창조하는 IP 바이블 제작팀이다. 바이블이라는 게 성스러운 의미를 담는 건 아니고, 애니메이션 제작 분야에서 참고할 때 쓰는 각종 설정집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네 개의 하우스는 각자 어떤 일들을 하나?

이채선 = △캐릭터 하우스는 IP에 사용될 새로운 캐릭터들을 발굴해 입체성을 구축하는 작업을 한다. △라이트박스 하우스는 내러티브를 통해 IP를 살아있게 만든다. IP가 전략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다양한 조직과 협업해 IP 바이블을 만드는 작업도 한다.

△아트 하우스는 제시된 IP와 아이디어를 시각화하여, 주체적인 형상으로 인지할 수 있게 만드는 팀이다. △브릭 하우스는 만들어진 IP 각 요소들을 콘텐츠 브릭으로 형상화해 게임에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도를 작성한다.



프로젝트E 트레일러 영상을 보면, '김선겸'이라는 캐릭터가 '임금을 지키는 검'으로 소개된다. 프로젝트E를 사례로 빌리지의 작업을 소개한다면?

이채선 = 프로젝트E 트레일러 영상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진행됐다. 프로젝트E의 김선겸은 캐릭터 설정보다 전체 비주얼 컨셉을 먼저 정하고 시작한 경우다.

프로젝트E 영상에 전체적으로 인식되는 분위기가 있다. 제작은 그런 비주얼 영상을 한번 만들어볼 수 없을까? 라는 생각에서부터 시작됐다. 그 비주얼 컨셉에 담을 수 있는 내러티브는 어떤 것이 있을지 라이트박스 하우스를 통해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점차 완성되면서, 김선겸이라는 캐릭터도 만들어졌다. 이후 캐릭터 하우스가 김선겸이라는 캐릭터가 가질 법한 과거 이야기를 작업했다. 김선겸 캐릭터가 게임 내에 구현될 경우 어떤 식으로 등장하고 행동할지 등이 이때 정해졌다.

이전까지 개발사가 게임을 만들 때는 장르를 먼저 정하고 그에 어울리는 살들을 붙여가며 진행됐다. 반면 엔씨 빌리지는 어느 하우스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먼저 작업하고, 그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다른 하우스가 붙어 구체화를 한다. 그래서 기존 개발 과정처럼 A-B-C-D 순서를 갖지 않고, 보다 유연하고 유기적으로 진행된다.

예를 들면 캐릭터 하우스가 먼저 개성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 브릭 하우스가 사용할 수 있다. 반대로 브릭 하우스가 현재 진행된 컨셉에 필요한 캐릭터를 요청하면, 그때 캐릭터 하우스가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 수도 있다. 이처럼 빌리지는 IP로 사용될 수 있는 모든 아이디어를 더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는 조직이다.

엔씨는 오픈 이노베이션을 추구한다. 빌리지가 있다고 해서 게임에 필요한 모든 걸 회사 내에서 만들어 쓰려는 건 아니다. 엔씨가 잘할 수 있는 건 엔씨가 하고, 엔씨에 부족한 게 있다면 외부와 협업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려고 한다.


최문영 = 결국 빌리지는 엔씨가 깊이 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한 준비다. 과거에는 게임에 쓸만한 수준으로만 준비했다면, 이제는 소설과 웹툰, 애니메이션으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캐릭터와 세계관, 이야기들을 만들고 있다.

시장이 엔씨에 "글로벌 시장을 위한 준비가 뭐냐"라고 묻곤 한다. 빌리지가 그 답이 될 수 있을 거 같다. 액션 게임을 예로 들면, 글로벌에는 액션의 재미는 기본으로 갖추고 캐릭터의 내러티브와 세계관의 깊이를 원하는 유저가 많다.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 근본 없는 게임처럼 비칠 수 있다. 엔씨는 중요한 것 하나하나 빼놓지 않고 잘 준비하고 있다.

▲ 처음 공개되는 프로젝트E 컨셉 원화

▲ 처음 공개되는 프로젝트E 니르바(수라) 컨셉 아트

하긴 TL 트레일러 영상을 보면 공성전이 나오는데, 유저로선 그 성을 왜 뺐어야 하는지 이유를 알아야 할 테니까.

최문영 = 그 이유는 나중에 나올 TL 2차 창작물을 보면 다 알 수 있다. TL을 더 재밌게 즐길 수 있도록 엔씨 소속 작가나, 외부와 협업해 2차 창작물들을 만들고 있다. 전체 세계관을 다루거나, 캐릭터마다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선보이겠다. TL이라는 게임을 더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들이다.


결국 빌리지는 엔씨소프트의 문화 사업을 위한 부서일까?

이채선 = 단순히 문화 사업을 추구하기 위한 팀은 아니다. 김택진 CCO가 말 그대로 '크리에이티브 책임자'이지 않나? 새로운 IP로 창조적인 게임을 만들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

일각에선 IP를 단순히 설정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설정 외에 엔씨가 만들 수 있는 특수한 플레이나 문화들도 IP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다양한 IP가 소멸하지 않고, 엔씨 내에서는 다 같이 공유가 되어 개인 개발에 쓰거나 프로젝트로 고도화는 것도 빌리지의 목표다.

지금까지는 게임사가 게임을 만들 때, 기본 틀 안에서 비슷한 느낌으로 만든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엔씨가 게임을 만드는 기준은 그렇지 않다. 엔씨는 새로운 시도도 많이 하고 싶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많이 넣고 싶다. 이야기뿐만 아니라 비주얼적으로도 새로운 것, 전에 없던 플레이와 이전까지 게임이 보여주지 못했던 부분들도 채용하려는 등 여러 고민을 하고 있다. 이런 생각들을 구체화하기 위한 곳이 빌리지다.


▲ "빌리지는 IP로 사용될 수 있는 모든 아이디어를 더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는 조직이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변하자"
"장르를 다변화하고 글로벌과 소통하며 만들자"

김택진 CCO가 특별히 주문한 게 있을까?

최문영 = 김택진 CCO의 주문을 우리가 받아 만든다기보다는, 그와 같이 만들고 있다 생각한다. 김택진 CCO가 단순히 일을 우리에게 시키고 감독만 하지 않는다. 김택진 CCO도 신작 게임 개발에 있어서는 분 단위로 쪼개가며 참여한다.

김택진 CCO는 리더 그룹에 의견을 준 뒤에도, 결과물이 만들어질 때까지 얘기를 이어 나간다. 그리고 리더들이 내놓은 결과물을 김택진 CCO가 모두 만족하는 거 같지도 않다. 김택진 CCO를 100% 만족시키기란 어렵다. 사실, 일이라는 게 항상 아쉬움이 남기 마련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우리는 항상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전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을 만들어내려 하고, 그래도 아닌 거 같으면 많은 것을 해놨어도 과감하게 허무는 작업을 반복한다.

김택진 CCO가 생각하는 건 장르를 다변화하고 글로벌과 소통하며 만들자는 거다. 이건 내 생각과도 같다. 과거와 달라진 변화하는 엔씨 모습을 유저들에게 보여드리겠다.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면?

최문영 = 김택진 CCO가 "변하자"라고 했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엔씨소프트가 게임산업에 무언가를 남길까 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하길 원했다.

서민석 = "변하자"라는 게 과거 잘못된 것 때문에 변하자는 뜻은 아니다. 김택진 CCO가 보는 건 게임의 품질과 유저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만드는지다. 이 과정들을 더 다양하게 소통하며 변화시켜보자는 거다.

최문영 = 우리는 미래를 계속해 준비해야 하므로 기존 방식에 머물지 말라는 의미도 있다.


엔씨 입장을 생각하면 개발에 있어서는 앞에 따라잡을 만한 대상, 목표가 없기에 더 어려울 상황일 수 있겠다. 2위였으면 1위를 쫓아갈 텐데. 그래서 지금 상황이 더 어려운 거 같다.

최문영 = 결국 글로벌 넘버원이 되어야 한다.

▲ "엔씨소프트, 결국 글로벌 넘버원이 되어야 한다"

사실, '엔씨소프트=김택진 대표'라는 인식이 있다. 이제는 최문영 PDMO가 어떤 철학을 가진 게임 개발자인지 궁금하다. 어떤 사람이 엔씨 신작들을 총괄하는지는 중요하니까.

최문영 = 나는 그냥 하는 거 자체가 즐거운 게임을 만들고 싶다. 이제는 진정성이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 개인적으론 꼭 게임이 아니더라도, 어떤 제품을 봤을 때 '얘네가 이거까지 고민하고 만들었단 말이야?'라고 감동할 때가 있다. 게임으로 예를 들면, '아무도 가지 않을 곳이니 대충 만들었겠지'하는 곳까지도 꼼꼼히 만든 작품들이 있다. 아무도 오지 않을 거 같은 곳에 숨겨진 미션이 있는 거처럼. 그런 작은 디테일이 전체에 대한 감동으로 이어지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얘기들도 있지만, 결국 잘 만든 게임은 그 자체를 봐주는 유저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엔씨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도 잘 만들려고 노력한다. 1프레임이라도 더 원활하게 나오게 하려 하고, 연출도 어색한 부분이 눈에 띄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하려는 것에 고민을 많이 한다. 그런 게임을 만들고 싶다.

엔씨소프트에 입사한 지 14년 차가 됐다. 14년 전, 외부인으로서 상상한 엔씨 모습이 있다. 그때 엔씨는 거대한... 다른 게임사들은 할 수 없는 것들을 하는 곳이라 생각했다. 합류해 확인한 엔씨는 실제로 그러했다.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인 부분도 있지만, 아닌 부분도 분명히 존재는 한다. 확실한 것은 엔씨는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계속해 변화하고 있다. 지금 이후로도 외부 개발자가 엔씨를 봤을 때, 들어와 같이 일하고 싶은 회사로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