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니싱: 그레이 레이븐'의 개발사, 쿠로 게임도 오픈월드 ARPG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난 26일 빌리빌리와 유튜브에 동시 공개한 신작 '워더링 웨이브'가 그 주인공으로, 쿠로 게임 특유의 컬러가 담긴 카툰렌더링을 오픈월드에 접목하면서 주목받았다.

그간 신작 개발 소식은 있었으나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윤곽이 잡히자마자 쿠로 게임은 전작과 달리 중국뿐만 아니라 글로벌도 겨냥한 행보를 보였다. 티저 영상 공개 하루만인 27일에는 CG 영상과 게임플레이 영상을 중국과 글로벌에 동시 공개하고, 공식 유튜브에 페이스북 그리고 디스코드까지 개설하면서 전세계 유저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 '퍼니싱'부터 이어진, 쿠로 게임 특유의 그래픽으로 빚어낸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


쿠로 게임은 전작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이 처음 공개될 당시부터 서브컬쳐 유저 사이에서는 주목을 받던 개발사였다. 장르 자체가 침체되고 있는 데다가, 서브컬쳐 영역에서는 '붕괴3rd'라는 강자가 군림하고 있는 모바일 액션 MORPG였지만, 붕괴3rd와는 다소 다른 스타일에 퀄리티는 그에 못지 않은 그래픽과 액션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특히나 붕괴3rd의 히트 이후, 원색에 가깝거나 화려한 혹은 밝은 톤의 색을 주로 입힌 카툰렌더링 기법이 유행했던 것에 비해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의 선택은 전혀 달랐다. 검은색, 회색, 흰색 등 무채색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 데다가 톤 자체도 다소 어두운 것이 특징이다. 물론 각 캐릭터마다 테마 컬러를 따로 지정해두었지만, 무채색 사이사이에 주요 포인트에만 테마 컬러를 입히는 형태로 캐릭터와 색상을 매치시켰다. 그렇게 해서 캐릭터별 테마 컬러를 강조하면서도, 아포칼립스 세계관의 어두운 분위기도 챙기는 그런 기법을 선보인 바 있었다.

단순히 캐릭터의 배색만 무채색 위주로, 혹은 어둡게 해서 분위기를 낸 것은 아니었다. 세계관을 묘사하거나 혹은 연출을 할 때도 배색을 그렇게 조합하거나 혹은 여러 효과를 가미해서 타 서브컬쳐 게임 대비 세기말의 암울한 분위기를 극적으로 제시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에서는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폐건물의 잔해 속에서의 싸움이나, 안개와 연기가 자욱한 파괴된 도시, 먼지가 불어닥치고 있는 폐허의 느낌을 살리기 위한 여러 효과들이 인게임 스테이지 곳곳에서 보인다. 색 자체도 카키색 등 어둡거나 원색의 화려한 느낌과 거리가 먼 계열의 색상들이 자주 나와서 더욱 세기말의 침체된 느낌을 살려냈다.

▲ 쿠로 게임은 전작부터 특유의 어두운 색감과 표현을 살린 그래픽으로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그려냈다

이러한 스타일은 '워더링 웨이브'의 첫 티저에서부터 확실히 드러났다. 물론 아예 지구가 퍼니싱 바이러스 감염체 때문에 다 파괴되고, 그나마 오염에 버틸 수 있는 기계들만 남아있던 전작과 동일한 세계관은 아니니, 다소 톤의 차이는 있었다. 전작에는 물이나 풀 등 자연 표현이 거의 없었지만, 이번에는 드물게나마 조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재난 때문에 바닥 곳곳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돌들이 튀어나오고, 회색 먼지로 세상이 뒤덮이는 연출을 보이면서 전작에서 보여준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티저 이후에 공개한 CG 트레일러와 게임플레이 영상을 통해서 '워더링 웨이브'는 퍼니싱 때의 그 특유의 느낌은 고스란히 살리면서도, 한 차원 발전시킨 것을 엿볼 수 있다. 이전에는 흐르는 물 등 유체 표현을 거의 안 보여주거나 부수적으로 보여줬지만, 이번에는 화면 중앙에 담아내면서 어떤 식으로 구현했나 좀 더 면밀히 살펴볼 수 있었다. 카툰렌더링을 채택한 만큼 완벽하게 실사풍은 아니고, 레이트레이싱 같은 옵션은 기대하긴 어렵지만 지표면의 떨림에 맞춰서 물결 사이사이로 파문이 자잘하게 이는 디테일까지 캐치한 모습이 엿보인다. 이외에도 수풀이 바람에 흔들거리거나 빗방울이 떨어지는 등,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에서는 드러내지 못했던 소소한 환경 변화 요소까지 구현된 것도 눈에 띈다.




캐릭터 모델링 및 표현도 좀 더 세련되게 바뀌었다. 전작에서는 타 서브컬쳐 게임 대비 캐릭터의 비율이 다소 길쭉하게 나온 감이 있었던 반면, 이번에는 전에 비해 캐릭터 비율을 과장되지 않게 조율한 느낌이었다. 전작의 비율은 무언가를 크게 휘두르고 내지르는 액션을 좀 더 시원시원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던 반면, 오픈월드에서 있을 법한 여러 상호작용을 할 때 비율이 다소 과장되어 위화감이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한 선택이라고 추정된다.

전작에서는 캐릭터의 음영 표현이 하이라이트 위주로만 처리되어있고, 펄럭이는 옷을 처리할 때 종종 뻣뻣하거나 모호하게 처리되는 느낌이 있었다. 반면 '워더링 웨이브'에서는 이러한 요소도 R&D를 통해서 개선한 모습이 보였다. 시간에 따른 빛의 방향의 변화나 음영의 변화까지는 현 단계에서는 미처 확인할 수 없지만, 앞머리라던가 옷 장식으로 인해서 드리워지는 그림자 표현 등 전작에서 미처 구현되지 못한 디테일까지 캐치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펄럭이는 의상이나, 점프 액션을 할 때 휘날리는 머리카락 표현도 한층 더 부드러워지면서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 특유의 색감에 한층 더 자연스럽게 업그레이드된 그래픽을 기대하기엔 충분해 보였다.




■ 감염체와는 또다른 '재난', 그리고 그와 함께 닥친 적의 정체는?


가상의 근미래, 그리고 지구를 배경으로 한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과 달리 '워더링 웨이브'의 정확한 세계관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100년도 전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재난이 들이닥쳤으며, 그로 인해서 인류 문명 대부분이 파괴되었다는 정보만 나왔을 뿐이다.

재난 자체도 인류 문명을 몰살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데다가, 재난과 함께 정체불명의 적이 출현하면서 인류는 절멸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렇지만 인류는 어찌저찌 생존, 다시 마을과 도시를 재건하고자 한다. 유저는 동면해있다가 기억을 잃은 채 깨어난 방랑자가 되어 황폐화된 세계를 떠돌게 되고, 그러면서 일련의 사태의 원인을 파악하고 자신의 과거를 찾아 기나긴 모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 '워더링 웨이브'의 핵심 스토리다.

▲ 갑작스럽게 원인을 알 수 없는 재난이 발생하고

▲ 이와 함께 정체불명의 적들이 도래, 인류 문명 대부분이 파괴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티저에서는 황폐화된 세계만 조명됐으나, 게임플레이 트레일러에서 공개된 바에 따르면 황폐화된 구역 사이사이로 마을이나 피난소, 그리고 도시들이 드문드문 설립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도시는 사방이 해자나 수로로 막혀있고 몇몇 진입로만 놓여 있으며, 중앙에는 레이더로 보이는 첨탑을 설치해 유사시에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첨탑은 도시뿐만 아니라 필드 곳곳에 설치되어있어 실제 플레이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추정된다.

필드에 있는 또다른 주요 오브젝트 중에서는 재난과 함께 솟아난 정체불명의 석탑이 눈에 띈다. 티저에서는 재난과 함께 솟아나면서, 적도 같이 등장하는 등 연출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재난 그리고 '적'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게임플레이 영상에서는 몇몇 석탑 주변에서는 스파크가 튀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전류가 흐르고 있을 여지가 있으며, 몇몇 석탑은 적이 발산하는 보라색의 빛이나 파형을 발산하고 있어 적과의 연관성을 한층 더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워더링 웨이브에서 인류를 위협하게 될 '적'의 정체는 아직 확실히 언급된 바가 없다. 대다수의 적이 인간형에 무채색의 배합인 점에서는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의 느낌이 들게 하지만, 전작은 퍼니싱 바이러스에 감염된 '기계'를 상대했던 반면 이번에는 기계가 아닌 유기체에 더 가까운 디자인이라는 점이 다르다. 인간형의 또다른 지성체일 수도 있으나, 티저에서 어떠한 '부름'에 응하라는 말과 함께 들이닥친 점을 미루어보아 원래 인간이었지만 어떤 힘에 의해 변질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아직 개발 초기인 만큼 모든 적이 나오진 않았지만, 현재까지 등장한 자잘한 적들은 한쪽 팔이 낫처럼 변형된 상태다. 변형된 팔을 휘둘러대는 것이 주요 공격 패턴으로 보이며, 공격 패턴이 복잡하지 않고 느리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대처가 가능하다. 개중에 보스로 판단되는 일부 고등 개체 또한 자신의 팔을 무기로 사용하나, 어느 정도 피해를 입은 뒤에는 힘을 각성해 붉은색의 빛이 도는 무기를 꺼내 한층 더 다양한 공격 방식을 선보이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고등 개체와의 대결에서는 필드 주변에 에너지 장막이 쳐져있기 때문에 전황이 불리해져도 중간에 도주하거나 이탈하기는 어려워보인다.

▲ 주로 보이는 적은 한쪽 팔이 기형적으로 변해있는 개체지만

▲ 보스급은 그런 규칙이 통용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게임플레이 티저 후반부 계곡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거대 도마뱀 스타일의 생명체와 싸우는 장면을 통해, 재난과 함께 세상에 나타난 인간형 적뿐만 아니라, 재난으로 인해 변형된 생명체나 혹은 다른 생명체의 모습을 한 적과도 싸우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 인간형 뿐만 아니라, 동물형 등 다양한 적을 맞상대해야 한다



■ 여타 멀티플랫폼 오픈월드 게임과 차별화된 액션을 보이기 위한 선택들


쿠로 게임의 전작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이 기존의 강력한 경쟁작이 자리잡고 있는 와중에도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그래픽 때문만은 아니었다. 모바일 액션 MORPG가 그간 채택해온 회피-QTE식 액션의 틀 위에, '스킬볼'과 '체인'이라는 새로운 요소를 가미하면서 차별화된 액션을 선보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스킬볼'과 '체인' 시스템은 엄밀히 말해 쿠로 게임이 완벽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적으로 생각해낸 것은 아니었다. 일반적인 모바일 ARPG의 스킬 체계에, 동일한 컬러가 세 개 이상 모이면 효과가 발동한다는 3매치 퍼즐식 룰을 가미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콘솔 액션 혹은 격투 게임의 EX 스킬이라는 개념까지 도입, 한층 더 발전한 액션을 추구하면서 완성도를 높이고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만의 액션을 구축하는 것에 성공했다.

▲ 쿠로 게임은 전작 '퍼니싱'에서도 기존의 QTE, 태그 액션에 특유의 '스킬볼 체인'으로 차별화를 꾀한 바 있다

이번 '워더링 웨이브' 또한 쿠로 게임의 그러한 스타일을 접목한 것으로 파악된다. 절벽을 자유자재로 올라타고, 높은 곳에서 활강할 수 있거나 혹은 공중에서 일반 공격을 해서 밑에 있는 적을 내려찍는 양상은 야숨 이후 등장한 여타 멀티플랫폼 오픈월드 게임의 기본 소양처럼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워더링 웨이브는 그러한 자유도 높은 무브에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에서 보여준 액션에 여타 콘솔 액션 게임의 다양한 무브들을 참고해 새로 녹여낸 듯하다. 절벽을 타고 올라가서 활강하기 이전 혹은 전투 중에 적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와이어를 꺼내서 한 번 더 점프하거나 서로의 공격이 부딪히면 상쇄하는 모습, 그리고 괴수의 머리에 달린 보석을 파괴하는 장면은 콘솔 액션 게임이 연상되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 절벽타기나 활강은 기본


▲ 그 기본기에 또다른 콘솔 액션 게임식 플레이를 가미해 차별화를 꾀했다

그러한 장면 외에는 적의 돌진 공격을 회피한 뒤, 특수한 공격을 하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이 장면에서는 회피 후 전작처럼 스킬볼 체인을 쓰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지만 일반 공격과는 다른 특수기를 발동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골렘 같은 모습으로 적에게 태클하던 아군 캐릭터가 다른 캐릭터로 바뀌어서 콤보를 이어나가는 것으로 볼 때,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처럼 태그 콤보도 중요한 요소로 추정된다. 아울러 영상 말미에 클로즈업 연출으로 미루어 보면 전작의 필살기에 해당하는 스킬을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이 하나씩은 다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자유도 높은 오픈월드 게임은 액션, 전투뿐만 아니라 생활 콘텐츠나 모험 콘텐츠 그리고 주요 캐릭터를 보여주기 마련이지만 '워더링 웨이브'는 조금 달랐다. 아직 개발 초기이긴 하지만 도시나 세계관 곳곳의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액션과 전투, 그리고 초반부터 유저가 마주치게 될 '적'에 좀 더 집중해서 소개하는 양상을 보였다.

캐릭터도 메인 아이콘과 CG 트레일러에 내세운 캐릭터와 스크린샷에 주로 나오는 캐릭터가 다른 만큼, 유저의 분신이 누구인지 아직은 명확히 알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외에 또 어떤 캐릭터가 있는지는 게임플레이 영상 극후반에 가서야 아주 조금씩 보여주는 터라, 여타 서브컬쳐풍 오픈월드 게임처럼 '캐릭터'에 대한 매력을 온전히 어필하기엔 무리였다.




▲ 전작과 유사하게 캐릭터 수집형에, 태그 액션을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작에서 다소 경직된 캐릭터 바리에이션을 보여줬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한층 더 캐릭터 표현의 폭이 넓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극후반부에서 필살기 컷씬으로 예상되는 연출이 나열된 와중에, 그간 쿠로 게임이 선보이지 않았던 짓궂은 개구쟁이 유형의 캐릭터나 활발한 여자아이 유형의 캐릭터 등이 스쳐지나갔기 때문이다. 다소 칙칙해보인 색감처럼 표정이 다소 굳어있던 이전과 달리, 짓궂은 미소 같은 표현이 시그널처럼 지나갔음에도 눈에 띌 정도인 점을 볼 때 전작에서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디테일까지 다듬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이미 '원신', '타워 오브 판타지' 등 서브컬쳐풍 멀티플랫폼 오픈월드 게임이 시장에 자리잡고 있는 상황. 여기에 쿠로 게임이 '워더링 웨이브'를 발표하자 일부 유저들은 이전 '붕괴3rd'와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의 구도를 연상하기도 했다. 특히나 '워더링 웨이브'가 PC, 모바일뿐만 아니라 PS로도 출시한다고 밝힌 터라 점점 더 이러한 구도를 의식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국내 출시 여부는 아직 미정이지만, 중국뿐만 아니라 글로벌에 동시에 발표한 '워더링 웨이브'가 과연 이번에도 경쟁작과의 입지 차이를 극복하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