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기대를 걸진 않았다. 최근 우리나라에 굵직한 선거가 진행되는 동안 정치권에서 e스포츠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음을 느꼈다. 그러나 한편으론 선거가 끝난 뒤 관심을 잃을 e스포츠 모습도 예상됐다. e스포츠 정책을 보면 잦은 일이다. 정치권에는 항상 중요한 이슈가 우선순위를 앞다툰다. 국방, 외교부터 시작해 아직 끝나지 않은 전염병 이슈 등. 우리에겐 중요하지만, 항상 우선순위에 밀려버리는 게 e스포츠 정책이었다. 그래서 선거가 끝난 뒤에도 정부나 국회가 e스포츠 진흥에 뜨거운 관심을 주리라 기대하진 않았다.

이번엔 좀 다르다. 정말 관심을 기울일 때다. 중국에서 당국과 민간을 이을 e스포츠공작위원회가 출범했다. e스포츠공작위원회 역할은 분명하다. 중국 내 e스포츠 관련 기업을 하나로 묶어 당국과 뜻을 맞춘다. 중국공산당중앙선전부 직속 기구 중국음향및디지털출판협회(cadpa) 쑨수산(孙寿山) 이사장은 "e스포츠가 정부에 봉사하고 청소년 관리 등 요구 사항을 구현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중국 당국의 청소년 프로파간다를 위한 포석이라는 설명이다.

e스포츠에 '중국이 중국 했다'라고 조소를 보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나 국회로선 e스포츠공작위원회가 중국의 청소년 프로파간다 도구라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당국과 민간이 e스포츠 산업을 공고히 하기 위해 뭉쳤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이미 e스포츠는 어느 한 나라의 청소년, 청년들이 즐기는 문화에서 국제 산업으로 발전해 나갔다. 국제 산업에서는 표준이 중요하다. e스포츠공작위원회 미션 중 하나가 표준을 만드는 일이다. 중국이 만든 표준을 세계가 쓰도록 하는 게 e스포츠공작위원회 목표인 셈이다.

우리 정부나 국회가 e스포츠 산업을 미래 산업으로 인식한다면, 우리 역시 e스포츠 표준화 경쟁에 나서야 한다. 문제는 경쟁에 나설 선수가 없다. e스포츠공작위원회 부회장사에는 텐센트, 넷이즈, 퍼펙트월드, 웨이버, 후야, 비리비리 등이 있다. 평회원에는 마이크로소프트차이나, 유비소프트, 소니엔터테인먼트 등이 있다. 우리나라는? 기관과 민간에서 선수를 찾아보면 그나마 한국e스포츠협회(KeSPA),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 내 게임담당부서 정도일까. 문체부 장관에게 자문할 e스포츠진흥자문위원회가 구성 중이기는 하나, 이름에 있는 공작(工作)과 자문(諮問)에서 역할 한계 차이를 느낀다.

뒤늦은 대안으로 지난 20대 국회에서 이동섭 의원이 제안했던 'e스포츠진흥원' 설립을 생각해볼 수 있다. 2019년 3월 당시 박양우 장관 후보자 청문회 때 이동섭 의원은 "우리나라는 e스포츠 종주국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중국에 추월당하고 뒤처졌다"며 "시스템 정비를 통해 명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e스포츠진흥원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는 말이다. e스포츠진흥원(가칭) 역할을 공고히 하기 위해 법정단체 근거를 만들어 민간에 머물던 케스파를 격상 혹은 계승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의 e스포츠 역할을 통합시키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케스파를 격상 또는 계승하는 부분에서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이뤄진다면 국정감사 대상이 되기 때문에 지금까지 있었던 아쉬운 부분을 일부 해소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e스포츠 산업은 생각보다 스스로 잘 컸다. 마땅한 공공의 지원 없이 팬, 선수, 민간의 힘으로 지금의 산업 규모를 키워냈다. 그래서인지 e스포츠 산업에 공공기관 등장은 낯설 수 있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없어도 괜찮았다고 해서 앞으로의 20년도 필요 없진 않다. 당장 닥친 글로벌 e스포츠 산업의 표준화 경쟁도 무시할 수 없다. e스포츠 표준화 경쟁은 사실상 국제 경쟁이다. 현 정부는 민간이 주도하는 자유로운 시장에서 역량이 마음껏 발휘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하는 것을 국정기조로 삼는다고 했다. 정부의 적극 지원이 e스포츠 표준화 경쟁에 필요하다. 우리 e스포츠 산업에 서포터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