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격투 게임 '철권'은 1994년 아케이드 게임으로 첫 발매 후 시리즈를 거듭한 끝에 오늘날 세계적인 격투 게임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습니다. 오래된 시리즈인 만큼 수많은 철권 타이틀이 출시됐으며, 지난 9월에는 무려 7년 만에 정식 넘버링 후속작 '철권8'을 공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죠.

이처럼 많은 철권 시리즈 중에서도 타이틀의 이름값을 높이고 현재도 시리즈의 중심이 됐다고 손꼽히는 작품은 철권3입니다. 가정용 콘솔 기기 PS1의 이식과 더불어 횡이동, 반격, 선입력 등 많은 시스템이 새롭게 추가됐는데 이러한 시스템이 현재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한 철권7의 밑바탕이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임 개발자 하라다 카츠히로가 철권 개발팀에 합류한 것이 이 시기이며, 디렉터로 성공적인 성과를 낸 이후 개발팀의 중추 역할을 맡으면서 철권의 전성기를 이끌어왔습니다. 지금은 메인 개발자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격투 게임계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죠.

하라다 카츠히로는 어떻게 해서 격투 게임 개발을 시작했으며, 게임 개발자로서 지금까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왔을까요. 지스타 2022에서 한국을 방문한 하라다 카츠히로에게 게임 개발과 격투 게임의 미래 등을 물어보는 시간을 가져봤습니다.

▲ 반다이 남코 하라다 카츠히로 개발자



■ 게임 개발, 애정이 중요하다

Q. 개발자가 되기 전에는 오락실 점원으로 활동했다고 들었습니다. 굉장히 특별한 이력이라고 생각되는데 당시 어떤 생각을 갖고 일을 하셨고 또 본격적으로 개발자의 길을 걷고 싶다고 생각한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정확하게 말하면 제가 다녔던 시대에서는 반다이남코에 입사하면 프로그래머라고 할 지라도 3개월 동안 무조건 오락실 소속으로 시작해야했습니다. 다만, 저는 영업으로 입사를 했어서 원래부터 계속 오락실에 있을 예정이었지요.

입사 초기에는 가게 매상을 올리는데 집중했는데요. 입사 4개월 차에 당시 담당했던 오락실이 도쿄 지역 매상 1위, 가게 역대 매상을 갈아 치우면서 사장상을 받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사장님에게 개발팀으로 가고 싶다고 말을 했죠.

처음에는 본격적으로 개발을 하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입사 후 선배 개발자에게 "왜 이렇게 만들었습니까"라고 물어보면 "그냥 내가 이렇게 만들고 싶었어"라는 답변을 듣고 당시 오락실 점원으로 활동하면서 손님의 니즈를 파악한 경험 때문에 반대로 왜 그렇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이렇게 되면 내가 좀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한 번 개발을 해보게 됐습니다.


Q. 그렇다면 현재 개발자로서 지니는 자신만의 철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 철학이라고 운운할 정도로 대단한 말을 할 생각은 없지만 하나 생각하고 있는 나만의 방침은 있습니다. 사실 지금 게임 업계에는 돈을 벌고자 게임을 만들거나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경영진을 포함해서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애정이 샘솟지 않으면 게임을 만드는 것 자체에 대한 퀄리티 등이 전반적으로 낮아질 수 있잖아요.

제가 퍼즐 게임을 만들지 않았던 이유도 퍼즐 게임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인 것처럼 게임을 만드는 과정에서 애정을 갖고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크리에이터분들 중에서도 딱 봤을 때 정말 좋아하고 이렇게 만들고 싶어서 만들었다는 애정이 느껴지는 게 정말 많았습니다. 애정을 담아서 본인이 정말 원하는 걸 유저에게도 하게 해보고 싶었다는 느낌이 드는 게 있는데 그런 애정이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Q. 오랜 시간 개발자로 활동하셨으니 게임을 바라보는 시각이 남다르실 것 같은데요. 잘 만든 게임 혹은 좋은 게임에 대한 정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 답변하기 정말 어려운 이야기인 것 같은데 보는 관점이나 시각 자체가 일반인과 제가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어떤 포인트를 보고 말로 짚어서 할 수 있는 그런 차이가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잘 만든 게임의 정의에 대해서 최근에 든 생각은 옛날처럼 게임을 클리어할 수 없을 정도의 게임은 없고 대부분 게임이 상향 평준화가 돼서 거의 다 좋은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게임 산업이 굉장히 커지면서 게이머가 선택할 수 있는 게 많이 늘어났기 때문에 게임마다 판매량의 차이가 생기기 시작했고 본인에게 잘 맞는 게임을 찾기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퍼블리셔와 마케팅 등의 중요도가 커졌다고 볼 수 있죠.

인디 게임 중에서도 굉장히 좋고 재미있는 게임이 많은데 예를 들어 그런 게임이 알려지지 않아서 판매량이 높지 않다거나 반대로 그렇게 잘 만든 게임은 아니지만 워낙 유명해서 판매량이 높게 나온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사례를 보면 게임의 본질적인 재미와 만듦새는 굉장히 올라가 있는 상태고 게임의 존재감 혹은 선택을 어떻게 받을지에 대한 것이 중요해졌다고 생각합니다.


Q. 평소에 취미 생활은 어떻게 보내시나요. 추가로 게임 개발에 필요한 영감은 어디서 어떻게 얻는 편인지 궁금합니다.

=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컴퓨터를 조립하는 취미가 있었습니다. 수냉 커스텀으로 직접 만들기도 했죠. 그런데 아이가 생긴 후에는 아이를 위해 학교 준비물을 만들어주거나 코스프레 의상을 만들어주는 등의 취미가 생겼습니다. 올해는 할로윈 기념으로 코스프레 의상을 직접 만들어줬는데 시부야에서 한 저학년 할로윈 코스프레 대회에서 1등을 하기도 했죠.

뜨개질과 바느질도 직접 해줬는데 그렇게 집중해서 하다 보면 예전 일을 돌아보면서 그랬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확 떠오르는 것은 아닌데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돼서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바느질이 취미라기 보단 평소에 안 해본 것을 새롭게 도전하는 게 취미에 가깝게 되지 않았나 싶다. 게임도 비슷하게 생각하면 안 해본 것을 해봤다가 잘 되면 그게 또 하나의 흐름으로 완성이 되기도 한다.


Q. 지금까지 수많은 게임을 개발해왔는데 그중 가장 아픈 손가락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만약 그때로 돌아갔을 때 딱 하나를 바꿀 수 있다면 어떤 점을 바꾸고 싶은지도 궁금합니다.

= 철권4가 가장 아픈 손가락으로 떠오르네요. 영업적으로 봤을 떄는 잘 됐지만 유저의 의견이 나쁜쪽으로 갈리던 작품이었죠. 팬들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철권3과 태그1이 성공하고 난 뒤 당시에 유저의 의견을 듣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고 아이디어를 달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 오히려 반대로 나쁜 점을 물어보는 질문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모인 나쁜 것을 개선하는 작업을 진행했는데 여기에 너무 집중을 하다 보니 오히려 좋은 것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개발진도 어리고 유저의 의견을 해석하는 방법도 미숙했죠. 결과적으로 철권4가 가장 아쉬움이 남습니다.

▲ 단점을 지우다 장점마저 지워졌다는 철권4


Q. 서머 레슨 개발을 담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큰 화제가 됐었죠. 평소에 맡았던 게임과 분위기가 정말 달라서 더욱 놀라웠는데요. 혹시 그와 비슷한 도전을 다시 시도할 생각은 없나요?

= 물론 있습니다. 지금도 따로 해보고 싶어서 도전하고 있는 것들이 있기도 합니다. 다만,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나왔을 때 영감을 받고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철권도 2에서 폴리곤으로 바꿨을 때 스스로 게임 업계가 확 좋아졌다고 느꼈는데 타이밍을 맞추는 부분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 철권은 내 인생에서 뗄 수 없는 자연스러운 것

Q. 한국에서도 하라다 카츠히로 개발자하면 철권을 떠올릴 만큼 철권의 대명사처럼 불리고 있는데요. 하라다 카츠히로에게 철권 시리즈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

= 철권 시리즈는 나에게 라이프워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워크라고 해서 일이라기 보단 인생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하고 싶네요.


Q. 그렇다면 철권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와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해당 캐릭터로 몇 등급까지 올라가셨는지도 궁금합니다.

= 수많은 캐릭터 중에 누굴 꼽긴 어렵긴 한데 아무래도 헤이하치를 좋아합니다. 당연히 요즘 젊은 친구들은 못 이기지만 예전에 철권5가 나올때 까지는 반다이남코의 개발자 중에서는 제일 잘했습니다. 철권 팀뿐만 아니라 회사 전체를 통틀어서 1등이었죠.


Q. 그러면 전성기 시절의 하라다상과 현재의 프로 격투 게이머 '무릎' 선수가 싸우면 누가 이길 것 같나요.

= 당연히 무릎 선수가 이깁니다. 그런데 무릎님이 전날에 막걸리를 많이 마시고 다음 날 새벽 5시에 깨워서 싸우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어려울 것 같습니다.


Q. 격투 게임 개발자로서 좋은 격투 게임의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추가로 좋은 격투 게임을 만들려면 어떤 노력을 하는게 좋을까요?

= 정말 어려운 질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질문에 대한 답이 있다면 개발에 참여했던 소울칼리버도 철권만큼 많이 팔리는 시리즈가 됐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죠.

판매량으로 말한다면 예를 들어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스트리트 파이트 시리즈와 모탈 컴뱃, 철권도 다 잘 팔린 게임이고 특히, 철권은 곧 천 만장이 팔릴 예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다른 격투 게임을 살펴보면 판매량이 중간을 가는 게 없어요. 계단 형식이 아니라 극단적으로 가는데 판매량이 적다고 재미가 없냐고 한다면 절대 그렇지 않거든요.

그렇다면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했을때 인상적인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 캐릭터의 존재감이 중요


Q. 스트리스 파이터 시리즈와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 등 유명 격투 게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들 게임에서 좋다고 생각하는 시스템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다른 격투 게임도 많이 플레이하고 있는데 포괄적으로 말하면 격투 게임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를 개발할 때도 라이벌 게임이 잘 팔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일종의 파이가 커진다고 볼 수 있는데요. 가령, 철권이 잘 나간다면 격투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니까 격투 게임 시장 자체가 커지면서 이를 판매하는 입장에서도 뭔가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선순환 구조를 가지는 셈입니다.

스트리스 파이터 시리즈와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의 게임성을 말하면 너무 길어질 것 같고요. 그런데 진짜 좋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주로 캐릭터의 아이디어에 관한 것입니다. 다양한 캐릭터를 보면서 철권에서는 왜 이렇게 못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센스가 굉장히 좋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습니다.

모탈 컴뱃도 요즘 다양한 캐릭터가 나오고 있는데 그런 부분이 정말 부럽고 철권에서도 그런 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Q. 그러면 혹시 모탈 컴뱃과 철권의 콜라보에 대하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팬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한 번 보고 싶네요. 그런데 철권에는 팬더와 곰 등의 동물이 나오는데 나중에 동물 학대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고민이 됩니다.


Q. 철권 시리즈를 맡기 이전의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떤 장르의 게임을 개발하고 싶나요. 혹시 과거로 가도 여전히 철권 시리즈의 개발을 맡고 싶진 않나요?

= 꼭 격투 게임이 아니더라도 슈팅이나 전략, 액셩 등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장르의 게임을 만들더라도 PvP 대전 게임을 만들고 싶은 것은 변함없습니다.



철권8에 대해서 아직은 많이 알릴 수 있는게 없을텐데 그래도 혹시 게임 내에 달라지는 점이나 전작과 다른 대표적인 부분을 추상적이라도 좋으니 알려줄 수 있을까요.

= 일단 전작보다 좋은 작품을 선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은 말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 다음에 정보가 공개되면 그때 더욱 자세히 말씀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Q. 게임 디렉터로서 현재 게임 산업을 관통하는 트렌드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사실 트렌드라기보다 당연한 수순 중 하나로서 메타버스를 얘기하고 싶습니다. 예전부터 게임을 개발하던 사람 입장에서 메타버스는 옛날부터 있던 개념이기도 하고 지금 와서 이렇게 주목받을 일인가 싶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게시판도 문자 베이스이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메타버스라고 할 수 있고 예를 들어 포트나이트가 매칭 전에 로비에서 유저들을 기다리면서 노는 것 자체도 메타버스의 일종입니다. 앞으로는 유저분들이 느낄때 현장감 있는 분위기, 옆에 사람이 있게 느껴지는 게임 자체에 활기가 느껴지는 게 있으므로 앞으로도 가상 공간은 당분간 계속 핫하게 이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하나는 단기간을 생각한다면 10년 전과 현재를 비교했을 때 개발비의 단위가 많이 올라갔잖아요, 이는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올라가는 경향을 보일 것 같아요. 최근에 AI 기술이 발전되면서 개발비 단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더 뛰어난 기술 혁신이 있기 전까지는 아직 의논할 단계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계속 올라가는 개발비가 별로 달갑지 않은 트렌드라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 게임 개발 과정에서 있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 카미야 히데키 개발자가 IGC 강연 중에 말하기도 했는데 게임을 개발할 때 기둥이 되는 컨셉을 정하고 뻐대에 살을 붙이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일반적으로 게임 개발은 최소 3~5년 정도가 걸리는데 처음부터 많은 인원이 모여서 게임을 만들다 보니 기둥을 잡고 관리하는 프로젝트 매니저의 중요성이 점차 부각되는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을 파악하고 세세하게는 직원들의 건강을 파악하는 게 이전보다 중요해진다고 생각합니다.



Q. 향후 격투 게임이 나아갈 방향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 어떻게 보면 격투 게임뿐만 아니고 게임 전반으로 볼 수 있는데요. 옛날에 격투 게임으로 예를 들면 오락실이 생활 동선 안에 있었습니다. 눈길이 가는 자연스러운 곳에 오락실이 있었고 그곳에서 잘하는 사람들의 플레이를 보면서 같이 즐기고 심취하는 분위기가 있었죠.

그런데 최근에는 PC와 가정용 콘솔 기기가 발전하면서 이러한 접점이 많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평소에 격투 게임을 하거나 보지 않은 사람이 갑자기 게임을 구매하진 않잖아요. 철권을 예로 들면 한국에 무릎 선수처럼 슈퍼 스타가 있거나 관련 커뮤니티를 통해 서로 즐겁게 노는 그런것을 게임에서 어떻게 잘 전달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에는 모바일 게임이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유리한 게 있죠. 게이머의 선택지도 예전보다 더 많아진 만큼 게임 전반적으로 대회나 이벤트처럼 유저가 쉽게 모여서 즐길 수 있는 부분을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