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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든어택
2017-11-08 07:35
조회: 14,667
추천: 6
충무공 이순신의 명언 모음
(三尺誓天 삼척서천 山河動色 산하동색 一揮掃蕩 일휘소탕 血染山河 혈염산하)
바로 충무공의 검명입니다.
"망령되이 움직이지 말라. 침착하게 태산처럼 무겁게 행동하라." (勿令妄動 물령망동 靜重如山 정중여산)
"흐리고 비가 내렸다. 배를 끌어 중방포에 옮겨 대고 영구를 상여에 실어 본가로 돌아왔다. 마을을 바라보고 통곡하니 찢어지는 마음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는가. 집에 이르러 빈소를 차렸다. 비가 크게 퍼부었다. 남쪽으로 떠날 일도 급박했다. 부르짖어 통곡하며 속히 죽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충무공께서는 왜적들의 간계과 간신들의 모함으로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되십니다. 이후 서울로 압송되어 기망조정 무군지죄(欺罔朝廷 無君之罪), 종적불토 부국지죄(縱賊不討 負國之罪), 탈인지공 함인어죄(奪人之功 陷人於罪), 무비종자 무기탄지죄(無非縱恣 無忌憚之罪)라는 말도 되지 않는 4가지 죄목으로 모진 고문을 당하시고 목숨을 잃을 뻔하셨으나 류성룡과 정탁의 목숨을 건 탄원으로 겨우 사형을 면하여 백의종군을 하시게 됩니다. 충무공의 불행은 여기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직후 충무공의 어머님께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위의 글은 어머님의 상을 치르신 후 충무공께서 난중일기에 쓰신 글입니다. "속히 죽기만을 기다릴 뿐이다."라는 충무공의 이 한 마디가 너무도 우리들의 마음을 슬프게 합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남아 있습니다." (今臣戰船 금신전선 尙有十二 상유십이)
개인적으로 충무공의 말씀 중 최고의 명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칠천량 해전에서의 패배로 조선 수군은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소멸이라는 단어가 적절한 상황이었습니다. 남은 것은 배설이 데리고 도망친 전선 12척뿐. 상대해야할 왜적은 133척의 전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책에서는 330척이 넘었다고도 합니다). 선조는 수군을 폐하고 육군에 합류하라는 명을 내리지만 충무공께서는 위에 소개한 저 명대사로 왕의 명령을 철회시킵니다. 그리고 충무공께서는 승산이 전혀 없는 저 험준한 명량의 바다로 출전합니다. "무릇 죽기를 각오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 (必死則生 필사즉생 必生則死 필생즉사)
"조선 수군은 패배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전멸할 것이며, 그러므로 이곳 명랑의 바다는 조선 수군의 무덤이 될 것이다.
역사에 대해 알지 못하는 저는 충무공의 어록 외에 다른 것에 대하여는 언급을 삼가고 싶습니다만, 이 명량해전만큼은 참지를 못하겠습니다. 너무도 기적과 같은 해전이기 때문입니다. 12척 대 133척의 맞대결임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전함과 병력만이 부족했을까요? 소멸한 것과 다름 없던 조선 수군에는 포, 화약, 피사체 등 무기는 물론 군량까지 전투에 필요한 군수품조차 남아있지 않았고 당연히 조정으로부터 어떤 보급도 없었습니다. (물론 명량해전 이전에도 이후에도 조정에서의 지원은 전혀 없었습니다. 임진왜란 7년간 병력 충원, 군수품 보급 등 모든 것을 충무공께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면서 전투에 임하셨다고 합니다.) 충무공께서는 전투를 치르기 위한 군량과 물자를 짧은 시간 동안 직접 준비하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 전투가 벌어지자 사기가 땅에 떨어진 장병들이 감히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충무공의 대장선이 홀로 선두에 서서 적함 133척을 상대로 악전고투하셨다고 합니다. 그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명량해전의 결과는 적선 31척 격파, 아군 전선 피해 전무, 사망자 2명.
충무공께서 세째 아드님 이면의 전사 소식을 듣고 난중일기에 기록하신 내용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 앞에서는 우리나라 오천년 최고의 영웅조차도 이 땅의 모든 아버지 중 하나일 뿐입니다. 원문을 소개해 드리면, "저녁에 천안에서 온 사람이 집에서 보낸 편지를 전하는데, 봉함을 뜯기도 전에 온몸이 먼저 떨리고 정신이 어지러웠다. 거칠게 겉면을 뜯고 열이 쓴 편지를 보니 겉면에 ‘통곡’ 두 자가 쓰여 있었다. 면이 적과 싸우다 죽었음을 알고, 간담이 떨어져 목 놓아 통곡하였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어질지 못하는가?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것 같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마땅한데,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어쩌다 이처럼 이치에 어긋났는가? 천지가 깜깜하고 해조차도 빛이 변했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영리하기가 보통을 넘어섰기에 하늘이 이 세상에 머물게 하지 않은 것이냐! 내가 지은 죄 때문에 화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 내 이제 세상에서 누구에게 의지할 것이냐! 너를 따라 죽어서 지하에서 같이 지내고 같이 울고 싶지만 네 형, 네 누이, 네 어머니가 의지할 곳이 없으므로 아직은 참고 목숨을 이을 수 밖에 없구나! 마음은 죽고 껍데기만 남은 채 울부짖을 따름이다. 하룻밤 지내기가 한 해를 지내는 것 같구나." 김훈은 "칼의 노래"에서 셋째 아드님을 잃으신 충무공의 끊어지는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환도 두 자루와 면사첩이 걸린 내 숙사에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었다. 바람이 잠들어 바다는 고요했다. 덜 삭은 젖내가 나던 면의 푸른 똥과 면이 돌을 지날 무렵의 아내의 몸 냄새를 생각했다. 쌀 냄새가 나고 보리 냄새가 나던 면의 작은 입과 그 알아들을 수 없는 옹알이를 생각했다. 날이 선 무기를 신기해하던 면의 장난을 생각했다. 허벅지와 어깨에 적의 칼을 받고 혼자서 죽어갈 때의 면의 무서움을 생각했고, 산 위에서 불타는 집을 내려다보던 면의 분노를 생각했다. 쓰러져 뒹굴며 통곡하는 늙은 아내를 생각했다. 나를 닮아서, 사물을 아래에서 위로 빨아 당기듯이 훑어내는 면의 눈동자를 생각했고, 또 내가 닮은 내 죽은 어머니의 이마와 눈썹과 시선을 생각했다. 젊은 날, 국경에서 돌아와 면을 처음 안았을 때 그 따스한 젖비린내 속에서 뭉클거리며 솟아오르던 슬픔을 생각했다. 탯줄에 붙어서 여자의 배로 태어나는 인간이 혈육의 이마와 눈썹을 닮고, 시선까지도 닮는 운명을 나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송장으로 뒤덮인 이 쓰레기의 바다 위에서 그 하찮은 운명을 힘들어하는 내 슬픔의 하찮음이 나는 진실로 슬펐다. 몸 깊은 곳에서 치솟는 울음을 이를 악물어 참았다. 밀려내려 갔던 울음은 다시 잇새로 새어나오려 했다.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었다. 면의 죽음을 알아챈 종사관과 군관들은 내 앞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옆방에는 종사관 김수철이 보고 서류를 부스럭거리고 있었고 마루 밖 댓돌 앞에는 창을 쥔 위병이 번을 서고 있었다. 저녁때 나는 숙사를 나와 갯가 염전으로 갔다. 종사관과 당번 군관을 물리치고 나는 혼자서 갔다. 낡은 소금창고들이 노을에 잠겨 있었다. 나는 소금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마니 위에 엎드려 나는 겨우 숨죽여 울었다. 적들은 오지 않았다." "이 원수를 갚을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나이다." (此讎若除 차수약제 死即無憾 사즉무감)
(戰方急 전방급 愼勿言我死 신물언아사)
모두가 알고 있는 충무공의 유언입니다. 충무공과 대장선에 함께 승선해 있던 조카 이완이 충무공의 갑옷과 투구를 착용하고 노량해전의 마지막까지 장병들이 흔들림이 없도록 전사하신 충무공을 대신하여 지휘하였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誓海漁龍動 서해어룡동 盟山草木知 맹산초목지 讐夷如盡滅 수이여진멸 雖死不爲辭 수사불위사) 충무공의 장수로서 그리고 무인으로서의 기개를 드러내신 명언입니다. 이충무공전서 진중음 (陳中吟)에 기록된 충무공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원문의 앞부분은 생략하고 (임금은 도망가고 세자는 북쪽에 있고 등등의 내용 입니다) 포스가 넘치는 뒷부분만 소개하였습니다.
(閑山島月明夜上戍樓 한산도월명야상수루 撫大刀探愁時 무대도탐수시 何處一聲羌笛更添愁 하처일성강적경첨수) 충무공의 자작 시조인 한산도가입니다. " 나라를 지키는 장군으로서의 작자의 우국충정과 고독한 심회가 비장하게 나타나 있다. 이 작품의 한역가가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에 전하고 있다. 작품의 배경이 한산도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작자가 전라좌도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가 되어 한산도에서 군진을 치고 있을 때의 착잡한 심회와 충정을 노래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네이버 지식백과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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