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 예쁘고 부유했던 아가씨는 난세에서 가난한 남자와 사랑을 맹세했다. 한국 드라마와 같은 대통령부부 이야기(白富美乱世中定情草根男 总统夫妇的故事如韩剧)

 

1. 대통령 부인은 방객《访客》이라는 시를 읊었는데 비록 알아듣기 힘들었으나 성악을 해서인지 분위기를 자아냈다. 여사가 밝은 옷의 외투를 입고 남편의 옷매무새를 다듬는다.

 

2.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약간 통통한 이 부인은 김정숙이란 이름을 가진 한국의 퍼스트레이디다.


3. 김정숙은 1954년 11월 15일 서울의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한복집을 하셨다. 후에 아버지가 몸이 안좋으셔서 공기가 좋은 인천 강화도로 거주지를 옮겼다. 목장을 하였는데 괜찮은 편이었다. 서울의 명문인 숙명여고를 다녔으며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여 경희대 성악과에 합격하였다. 그녀는 다니던 대학교에서 재수생 출신의 '불성실한' 남학생과 만나게 된다.

 

4. 한국 대통령 문재인. 난민 수용소 출생. 부친은 거액의 빚을 지었으며 가난한 집안의 다섯 형제자매 가운데 큰 형. 오직 믿을 것은 자신밖에 없었다. 우수한 성적으로 4년 장학금을 받고 경희대 법학과에 들어갔다. 그는 학비를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대학 내에서 풍운아가 된다.

 

5. 김정숙 여사는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문대통령과 만나 알아가는 과정은 마치 구덩이에 뛰어드는 것과 같았다고 말했다. 김여사의 친구 오빠는 당시 경희대 법학과에 다녔는데 문재인을 학교축제에 나오도록 하고 싶어했다. 문대통령이 예쁜 여자를 소개시켜주면 나오겠다고 하자, 친구 오빠는 김정숙 여사에게 알랑드롱 같이 잘생긴 남자를 소개시켜주겠다고 하면서 축제에 나오도록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나와보니 굉장히 촌스러웠다고(太土了)...

 

6. 첫만남부터 불꽃이 튀거나 하진 않았다. 하지만 종종 만날 기회는 있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 전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군정부에 반대 데모활동을 하는 '불성실한' 학생이었다. 한번은 문대통령이 최루탄에 맞아 기절해 쓰러지자 마침 길을 지나가던 김정숙 여사가 쓰러진 그를 발견하고는 얼굴을 닦으며 돌봤다. 김정숙여사가 눈을 세심하게 닦다가 문대통령이 정신을 차리고 몰래 눈을 뜨고 자신을 보고 있는걸 발견하였다. 그러자 둥그런 얼굴의 여자아이의 감동이 식어버렸다. 한국드라마와 같은 다소 유머러스한 이 만남은 두 사람이 진정한 연인이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7.문재인은 믿을만한 남자가 아니었다. 종종 데모를 하고 다녔으며, 네 번이나 퇴학을 권유받았다. 결국 학교에서 제명당했으며 군정부로부터 8개월의 징역을 선고받았다. 문 대통령의 풍운아적인 행보는 감동을 위주로하는 한국드라마의 스토리를 연상케한다. 그런데 문재인의 투옥은 김정숙여사와의 격차를 벌리는 일이기도 했다. 여자친구는 학교를 졸업해 서울합창단에 들어갔는데 문재인은 감옥을 나와 살 길을 찾아 특수부대로 들어갔던 것이다.

​8. 군인 옷을 입은 남자친구가 찾아와 청혼을 했다. 장인장모는 놀랄수 밖에 없었다. 대학교 졸업장도 없고, 감옥도 갔다왔는데 어떻게 딸을 줄 수 있겠는가.  


9. 가난한 보통남자라면 상처받았겠지만 문재인은 달랐다. 장인장모에게 쫓겨난 뒤 도리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이기로 했다. 그는 절에 들어가 1년간 공부해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변호사가 되어 회색정장을 입고 안경을 쓰고 있는 번듯한 문재인.  


10. 김여사의 성격은 화통했다. 결혼을 주도한건 그녀였다. 어느날 그녀는 남자친구와 만난 자리에서 갑자기 "너 나랑 결혼할거야? 안할거야?"라고 말했다. 문재인은 놀라 얼빠진 상태로 한참을 있다가 "알았어."라고 대답했다. 7년간의 연애, '강요한 결혼'으로 그녀는 애교있고 수줍어하는 신부가 될 수 있었다.


11. 불성실한 청년과의 결혼으로 김여사는 험난한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문대통령은 전과가 있어 법관이나 검찰이 될 수 없었고, 단지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가 살 길을 찾아야 했다. 김여사 역시 좋아하는 성악일을 그만 두고 부산으로 돌아가 미래가 보이지 않는 어두운 길을 향해 갔다.

12. 생활이 곤경에 처했을 때 그는 평생의 친구 노무현을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모두 가난한 출신의 변호사였다. 합심하여 법률 사무소를 차렸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소송업무를 하였다. 돈을 벌기란 힘들었다. 김정숙 여사는 집을 팔뻔 했으나 다행히 시간이 지나 형편이 나아졌다. 국민들 사이에 두 사람의 명성은 높아져 갔고, 노무현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문재인은 노 대통령의 비서실장 업무를 2년간 수행했다.


13. 그러나 문재인의 이상은 속세에서 벗어난 안정적 생활이었기 때문에 결국 사표를 내고 산 기슭의 집을 하나 사 닭을 기르고 채소를 심으며 살았다. 아들하나 딸하나 기르며 여행을 자주 다니며 즐겁게 지냈다.



14. 그녀는 꽃을 좋아했기 때문에 매년 꽃피는 계절에 남편과 꽃구경을 갔다. 문대통령에게 수염이 남아있는데 조금 아저씨 같다.

15. 김정숙 여사가 오디를 먹는 것을 좋아하자, 남편은 자주 그녀에게 오디를 갖다 주었다. 김 여사는 "남편은 말이없지만, 행동으로 온정이 있는 남자라는걸 느끼게 해준다."라고 말했다.


16. 일상생활


17. 그러나 평온한 생활도 끝이 났다. 전대통령 노무현은 뇌물 수수혐의 추문에 시달리다 언덕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묘 앞에서 오랜 친구에게 헌화하며, 안정적인 생활을 끝내고 도전을 하게 된다.


18. 문재인 대통령 후보는 전 대통령 노무현의 지지자들의 지원에 힘입어 박근혜 대통령 후보와의 대결을 시작한다. 김정숙 여사는 남편을 적극 지원하였으며, 양로원을 다니며 봉사활동을 하고, 채소 시장에서 남편을 위한 표를 호소하였다.


19. 김정숙 여사는 모양새에 신경쓰지 않고 폭탄머리 가발을 쓰고 현장에서 고음의 노래를 부르곤 했다. 주위에서 어느새 '유쾌한 정숙씨'로 불리게 되었다. 정숙씨는 어디서나 환영을 받았다. 문후보는 전라도에서 승리를 거두었는데 김정숙 여사의 공로가 컸다.

20. 항상 미소를 머금으며 더불어민주당의 부인들을 경선후원단으로 데리고 다녔다. 김정숙 여사는 "나는 어진 아내가 될 생각이 없다. 힘이 닿는데까지 남편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21. 문재인의 대통령 도전은 대학입시와 마찬가지로 재수였다. 5년이 걸린 두  번의 대선 도전 끝에 마침내 청와대에 입성할 수 있었다. 출근하는 남편의 팔을 잡으며 대중을 향해 남편에 대한 애정을 과시하는 김정숙 여사.


22. 남편의 품안에서 쓰러져 웃는 모습은 많이 볼 수 없다.


23. 서로 잔을 부딪히는 걸 잊지 않는다.


24. 영부인이라고 거드름 피우지 않고 소탈하게 연회에서 강남스타일 안무를 춘다.


25. 이 대통령 부인은 언제나 유쾌하며 대범한 성격을 지녔다. 그렇지 않으면 고난을 겪는 가난한 남자에게 시집가지도 않았을것이고, 오랜싸움을 인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은 결코 36년간 혼인생활 뒤의 기복을 알지 못한다. 그녀는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남편을 도우며 "그에게 시집간 건 일생의 행복이다."라고 말한다. 자신의 마음가짐은 혼인을 결정하는데 큰 부분을 차지한다.

 

답글

- 그야말로 진정한 아내로 지음(知音, 서로의 음악을 알 정도로 막역한 사이)과 같은 생활의 반려자.

- 조작하지 않으며, 꾸미지 않으며, 소박하고 성실하다.

- 문대통령 역시 매력이 있는 남자로, 성공한 후 김정숙 여사가 아닌 다른 여자를 만나지 않고 신의를 지킨 사랑이 깊은 남자였다.

- 화면만 보더라도 내심(內心)에서 나오는 웃음이 있다.

 - 비록 한국은 좋아하지 않지만 낙천적인 대통령 부인을 위해 공감을 누르겠다.

 - 나는 한국 좋아하고, 빈궁하나 부유하나 서로를 버리지 않고 도와가며 살아간 진실한 사랑에 공감을 누르겠다.

- 인생은 무상하며, 과거와 현재를 귀중히 여기며, 자신의 내면에 충실하길.

- 한중 양국을 위해 좋은 일 하길 바란다.

- 눈빛으로도 마음속의 사랑을 알 수 있다.

- 문대통령 젊었을 때 잘 생겼어....(여기에 답글 - 지금이 더 잘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