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저수탱크. 여기저기 깨져 누수가 심각하다. 목마른 서민의 물동이에서 긁어모은 물인 만큼 한방울도 아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아까운 물이 봇물 터진 듯 마구 흘러 나간다. ‘누수’를 잡겠다지만 하는 짓은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이다. ‘누수’를 물 빼내는 기회로 삼아 제 물동이를 가득 채워온 ‘기득권층’이 저수탱크를 관리하니 어쩌겠나.



서민은 거미줄에 걸린 불쌍한 파리

‘누수’가 없으면 부러 구멍이라도 뚫는 저들이다. 그러다가 저수탱크에 물이 부족하면 이미 바닥이 드러난 서민의 물동이에 또 빨대를 꽂는다. 서민은 정부라는 거미줄에 걸린 불쌍한 파리 신세. 정부가 원하면 언제든 제 몸에 빨대가 꽂히는 걸 감수해야 하니 말이다.

정부가 또 서민에게 빨대를 꽂으려 한다. 하나도 아니고 이번엔 한꺼번에 세 개다. 담뱃값을 2000원 인상하겠다더니 주민세와 주민세도 100% 올리겠다고 선포했다. ‘세 개의 빨대’ 얘기를 꺼낸 과정만 봐도 정부가 얼마나 잔머리를 굴리고 있는지 잘 드러난다.

먼저 담뱃값 인상을 거론했다. 흡연율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정부가 제시한 담뱃값과 흡연율 상관관계 분석 데이터도 조작된 것이었다. 간접세부터 올리려는 ‘우회 증세’가 아니냐는 거센 반발에 부딪히자 “증세 아니다”라고 버티던 정부는 말을 바꿔 “결과적으로는 증세로 볼 수 있다”고 시인했다. 그러면서 자동차세와 주민세 인상 카드를 또 빼 들었다.



증세 ‘빨대’ 한꺼번에 세 개 꽂겠다?

“증세는 없다”는 게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그런데 세 개의 빨대라니. 어차피 약속을 깼다는 비난을 받을 바에는 한꺼번에 욕을 먹는 대신 세 가지를 손에 넣겠다는 심보다. 담뱃값 인상이 ‘사실상 증세’라는 걸 국민이 알아차린 이상 이 참에 차라리 준비해 뒀던 제2, 제3의 인상카드를 모두 꺼내는 게 낫다는 건가. 다른 건 몰라도 정부의 잔머리 하나는 인정해줄 만하다.

대선 때 박근혜 후보는 입만 열면 “증세없는 복지”를 주장했다. 대선후보 TV토론에서 문재인 후보가 “박 후보가 증세 없이 복지 공약을 이행하려면 많은 돈이 들 텐데 재원확보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라고 지적해도 “대통령 되면 증세 없이 다 잘 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한 바 있다. 증세 없을 테니 안심하라는 말까지 하며 유권자의 환심을 샀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강조했다. 지하에 숨은 돈을 찾아내면 막대한 추가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게 박 후보의 주장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공약이행에 들어가는 135조원 가운데 국세수입으로 충당되는 48조원의 60%에 해당하는 27조2000억원을 지하경제 양성화로 충당하겠다고 장담했다.




사라진 ‘지하경제 양성화’, 기업과의 야합 결과

대통령이 된 뒤에도 툭하면 ‘지하경제 양성화’를 외쳤다. 그러더니 2013년 하반기부터 더 이상 이 말을 꺼내지 않는다. 올초 기자회견에서 증세에 관해 질문을 받자 “씀씀이를 줄인다든지, 비과세 감면제도 같은 조세제도 잘 정비하고, 줄줄 새는 낭비 같은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답했을 뿐이다. 질문한 기자는 근엄한 분위기에 눌려 ‘지하경제 양성화 공약은 어디로 갔느냐’고 따져 묻지도 못했다.

슬그머니 사라졌다. 묻어 둔 돈 많은 기업들이 ‘지하경제 양성화’가 기업의 투자심리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강력하게 반발하자 꼬리를 내린 것이다. 집권 초엔 밀어붙이겠다며 국세청과 관세청 등을 달달 볶았다. 이렇게 해서 2013년 약 3조원에 달하는 세수 증대 효과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이는 지하경제 양성화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각종 제도 개편, 세무조사 증가 등에 따른 일회적 성과에 불과했다.

‘숨겨놓은 곳간’에 손을 대려는 정부를 가만두고 볼 기업들이 아니다. ‘이러면 투자하지 않겠다’고 정부를 겁박하자 경제 분야를 최대 치적으로 평가받고 싶은 박근혜 정부는 공약을 깨서라도 기업들과 손잡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지하경제 양성화’ 포기는 정부와 기업 간 야합의 산물이나 다름없다.




15~20조 구멍 난 세수 메우기 위한 ‘서민증세’

‘지하경제 양성화’ 포기로 15조~20조원의 세수가 부족해진 정부가 이를 충당할 방도를 찾아낸 게 담뱃값과 자동차세, 주민세 인상인 셈이다. 담뱃값을 인상하면 2조8000억원 세수가 늘어나고, 자동차세와 주민세를 100% 올리면 1조4000억원을 더 걷을 수 있다. 지난해부터 시행된 소득공제의 세액공제 전환은 1조원짜리 증세에 해당한다.

담배값, 자동차세, 주민세 인상에 월급쟁이 증세로 불리는 세액공제 전환까지 합하면 연간 약 5조2000억원 세수가 늘어난다. ‘지하경제 양성화’ 포기로 구멍 난 세수를 얼추 메울 수 있는 수준이다. 참 셈 밝은 정부다.

힘 있는 기업들을 봐주는 대신 힘없는 서민들에게 빨대 꽂아 벌충하겠다는 정부. 거대한 ‘지하경제’를 반드시 찾아내 양성화하고 정당하게 세금 거둬 비정상의 정상화와 함께 경제민주화를 하겠다던 그 대선 후보는 어디로 간 걸까. 그는 당선과 함께 사라졌다. 단지 ‘지하경제’를 묵인해 주는 대통령만 있을 뿐이다.





“지하경제 활성화하겠다”, 이제보니 실수가 아니었네

‘지하경제’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뚜렷한 정황이 있다. 최고액권인 5만원권 환수율이 그것이다. 환수율은 지하경제의 규모를 가름해볼 수 있는 바로미터다. 환수율이 높아지면 지하경제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고 볼 수 있고, 환수율이 낮아지면 그 규모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5만원권이 본격 유통된 2010년부터 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인 2012년까지 환수율은 각각 41.4%(2010년), 59.7%(2011년), 61.7%(2012년)를 기록하며 꾸준히 상승하는 추세였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며 급감하기 시작했다. 2013년에는 48.6%로 뚝 떨어졌다. 감소 추세는 최근 들어 더욱 두드러진다. 올 1월부터 5월까지 5만원권 발행액은 5조2529억원어치. 이중 환수된 건 불과 1조4575억원에 불과해 환수율은 27.7%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52.3%)의 절반 수준이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외치며 출범한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 지하경제 규모가 더 커진 셈이다. 
대선 후보 때 ‘양성화’를 ‘활성화’라고 말해 웃음거리가 됐던 박 대통령. 실수했던 게 아닌 모양이다. (출처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