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오후 서울 지하철 1호선 영등포역. 승강장에 인천 방향 전동차가 도착하자 수십명의 승객이 오르내렸다. 차 안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승객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빈자리가 없어서 서서 가는 승객 중에 절반가량은 혼자서 탑승한 노인이었다. 지팡이를 짚고 동승한 박모(72)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박씨는 7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환승해 상도역 집까지 가는 길이라고 소개했다. 지하철을 타면 1시간이 넘지만 버스를 타면 30분 만에 갈 수 있는 거리다. 박씨는 “돈 안 내는 노인이라고 욕먹지만 정상 요금을 내면 지하철도 탈 수가 없어서 그렇다”고 말했다.



최근 지하철 65세 이상 노인 무임승차에 대한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1980년대 초 도입된 무임승차 제도가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승객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하철 운영사들이 재정손실을 이유로 기본요금 인상까지 주장하면서 ‘세대갈등’으로까지 번지는 모양새다.


지하철 운영사들은 노인 무임승차로 인한 경영난을 호소한다. 지난해 서울교통공사의 ‘2017~2021년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을 보면 공사는 내년도 서울시 지하철 기본요금을 200원 인상하는 방안(1250원→1450원)을 검토하고 있다. 


공사 측에 따르면 2016년도 서울시 지하철 운행 적자는 3850억원이다. 이중 노인 무임승차가 차지하는 손실 비율은 71%(2750억원)에 달한다. 공사 관계자는 “전체 승객 중 무임승차 노인 비율은 2억명을 넘고 2015년 11%에서 지난해까지도 매년 0.4~0.5%씩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노인들의 무임승차가 늘면서 불편을 호소하는 젊은 사람들도 많아졌다. 교통비 부담이 커지자 무임승차 연령을 조정하거나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출퇴근 때마다 1호선을 이용한다는 보험사 직원 김모(27)씨는 “지하철을 매일 이용하지만 어르신들이 워낙 많아 앉아서 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일반 승객들의 편익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정모(24·여)씨는 “공짜로 타는 사람들이 불필요하게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 오히려 요금 지불하고 타는 사람들이 피해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임승차 제도를 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고령화로 인해 빈곤·소외 등 노인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보편적 복지를 축소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다. 실제로 2016년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빈곤율은 46.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고 OECD 평균(12.6%)의 4배에 달한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동권은 가장 가난한 세대인 노인도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기본권이기 때문에 사회적 자원 배분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에는 무임승차제도를 이용한 노인 일자리까지 생겨나는 추세다. 이른바 ‘실버 택배’라고 불리는 지하철을 이용한 배송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12년째 지하철 1호선과 5호선을 오가며 실버 택배기사로 일하는 서효식(82)씨는 일반 택배 기사의 3분의1 수준인 건당 670원을 받으며 일한다. 서씨는 “하루에 10시간 넘게 일해서 3만원을 버는 셈이지만 우리 같은 노인들 써주는 데가 이곳 말고는 없다”며 “매일 지하철을 10번을 타는데 만약 지하철 요금을 낸다면 남는 게 전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노인 무임승차를 향한 따가운 시선 탓에 자발적으로 돈을 내는 노인들도 있다. 모두가 이용하는 대중교통인 지하철을 떳떳하게 이용하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19일 서울 지하철 1호선 종로 5가역에서 만난 김영재(69)씨는 “무료 카드(시니어 패스)가 있어도 나이 들었다고 티 내는 것 같아서 안 쓰려고 한다”면서 “젊은 사람들한테도 민폐 주고 싶지 않고 지하철 요금정도 내고 타는데 전혀 문제 될 것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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