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에서 규정한도를 넘어 과도한 베팅을 했던 자산가가 “고객보호의무를 소홀히 했다”며 카지노 업체를 상대로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한다면 지급해야 할까.

21일 정모(67)씨가 강원랜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자기 책임으로 도박을 했다면 결과도 감수해야 한다”며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던 1심과 2심 결론을 뒤집은 것이다. 중소기업 대표였던 정씨가 도박에 빠진 건 2003년 4월. 강원랜드를 처음 찾은 그는 그날 700만원을 잃었지만 일주일 뒤 두 번째 방문에서 2280만원을 땄다. 피 말리는 승부 끝에 찾아오는 기쁨을 맛본 그는 점차 중독의 길을 걸었다. 좀 더 스릴을 느끼기 위해 1회 베팅한도가 1000만원인 최상위 VIP회원 전용 룸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마저도 부족해 수수료를 받고 대리베팅을 해주는 속칭 ‘병정’을 고용했다. 예약실 이용인원이 최대 6명인 만큼 한 번에 6000만원씩 베팅이 가능해졌다. 3년간 200억원 이상을 날리자 아들이 나서 강원랜드에 출입제한 요청서를 보냈다. 하지만 아들을 설득해 전화로 출입제한 요청을 철회토록 하고 강원랜드 직원에게 사정해 출입을 허락받았다. 그러나 카지노를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333회에 걸쳐 총 231억원을 날렸다. 재산의 상당액을 날리고서야 정신을 차린 정씨는 2006년 말 “도박중독에 빠진 고객을 보호하지 않고 한도를 초과한 베팅을 묵인해 사행성을 부추겼다”며 강원랜드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 2심 재판부는 강원랜드 측 책임을 일부 인정했다. 카지노 측이 대리베팅을 묵인했고 편법적 방법으로 출입제한조치를 풀어줬다고 판단했다. 1심은 손실액의 20%인 28억여원, 2심은 15%인 21억여원을 배상하도록 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사법절차의 근간인 ‘자기책임의 원칙’에 따라 명시적 법규 위반이 없었다면 도박으로 입은 손실은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카지노 이용자가 손실을 보는 게 사회 통념상 용인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고 볼 사정이 없는 한 업체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하급심이 불법행위의 근거로 제시한 대리베팅에 대해서는 “해당 조항의 위반으로 행정적 처분은 받을 수 있겠지만 이를 어겼다고 고객보호의무를 소홀히 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도박은 자신뿐만 아니라 가정도 무너뜨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