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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탐정
2014-10-24 17:12
조회: 7,872
추천: 0
●잊혀져가는 역사 - 관동 한국인 대학살
1920년대 초 일본은 한국, 중국의 민족해방운동이 격화되기 시작하였으며, 농민운동, 노동운동이 사회의 저변을 뒤흔들어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기회라 여기고, 대지진이 일어난 직후인 1923년 9월 1일 오후 경시청은 정부에 출병을 요청함과 동시에 계엄령 선포를 준비하였다.
학살이 가장 먼저 행해진 동경과 가나가와현에서는 군대와 경찰이 중심이 되어 행해졌고, 지바·사이타마현 등지에서는 민족배외주의자를 중심으로 한 자경단에 의해 행해졌다.
이들 자경단은 죽창·일본도·곤봉·철봉 등을 들고 도망치는 한국인들을 붙잡아 무차별 학살하였으며, 심지어 경무서내로 도망친 한국인들까지 쫓아 들어와 학살하였는데도 일본 관헌은 사실상 이를 방조하였다.
당시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의 독립신문 특파원이 조사 보고한 바에 의하면, 이 때 각지에서 학살을 당한 한국인의 수는 약 6661명이 피살된 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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