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습격



 세라는 뒤에서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앞으로 향해 달렸다. 달리고 달리고 계속 달렸다. 무엇을 향해, 무언가를 쫏기 위해, 아무런 목적도 없이, 계속 달리기만 했다. 무언가를 생각하는것 같으면서도 눈을 질끈 감고 달린다. 한참을 달리고 달리니 모래 해변가가 나왔다. 이미 어둑어둑해져 암흑의 바다는 저 멀리 고기잡이 배만 불빛을 내곤 했다. 세라는 무엇에게서 떨어지기 위해 계속 달렸다. 숨차서 그만 땅바닥에 털썩 주저 앉는다. 단지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했다. 갑자기 등 뒤에 누군가가 어깨에 손을 올린다. 곧 세라가 잘 알고 있는 익숙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여기서 뭐하냐, 꼬맹이. 남의 집 앞에서..


 말콤이였다. 포도주를 오크통 통째로 들어 마시고 있었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자신은 말콤의 오두막집 앞에 있었다. 세라는 손과 옷에 묻은 모래를 털어내며 일어선다. 


 - 그...그냥 산책중이였어요.


 - 핫! 이런 밤중에?? 너희 엄마가 가만두지 않을텐데!


 - 엄마는 괜찮다고 했어요! 그리고 난 꼬맹이가 아니에요!


 - 하-핫! 열흘 전 나를 속이던 녀석은 어디갔나?! 응? 응?


 말콤의 마지막 말에 세라는 기세가 꺾인다. 거기에 대해 더이상 말할 수가 없었다. 모래로 더러워진 신발,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옷. 한번 훑어본 말콤이 까칠까칠한 수염을 만지며 말한다.,

 

 

 - 보아하니 집에서 뛰쳐나왔구만!


 

세라는 아무말도 하지 못한채. 말콤을 똑바로 볼 수 없어 계속  자신의 신발 끝을 쳐다본다.

 


 - 겁에 질린 눈이군. 눈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 겁이요? 제가 겁나서 도망친거라 생각하세요?


 - 끝없이 도망치는 이에겐 편안함이란 없지


 말을 마친 말콤은 등을 돌려 문을 쾅 하고 크게 닫고 들어가버린다. 닫혀버린 문에서 한기가 느껴지는듯 했다. 항상 유쾌하고 괴짜같은 말콤이 오늘따라 왜 저런지 모르겠다. 세라는 누구에게서 도망친것인지 강해진다해도 이것에 맛설 수 없는 이유를 궁금해 했다. 세라의 곁에는 오직 바닷바람이 같이 할 뿐이였다.  세라가 무겁게 발걸음을 돎기며 자리를 뜨자 뒤에서 문이 삐걱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 들어와라, 잘 곳은 마련해 주지.

 



 - 이거 먹어라. 니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지만.


  말콤이 오크통 안을 뒤적거린다. 숙성된 뒷다리고기를 건넨다. 럼주에 절인듯 냄새가 시큼하다. 


 - 자 먹어봐, 저녁도 굶었을테니


  세라가 마지못해 한입 베어 문다. 럼주와 후추의 독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처음 한입은 먹기 힘든 반면 계속 씹으니 한결 나아진다. 목이 막히자 말콤은 자신이 먹던 컵을 건넨다.


 - 이거 럼주잖아요.


 - 하핫! 그래서 뭐 문제 될게 있나?


 보다 못한 세라가 럼주를 한모금 들이킨다. 쓰고 독한 기운에 목이 타들어가는듯하다. 연심 콜록거리는 모습에 말콤이 크게 웃는다. 


 - 으하하핫! 꼬맹이.. 좀전에 다 컷다고 한건 거짓말이구나!

 

 - 닥쳐,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냐...


 세라가 남은 럼주를 원샷으로 쭉 들이킨다. 참을수 없이 쓰고 목구멍이 타들어갈 정도로 후끈거렸지만 애써 괜찮은듯 참는 기색이 역력하다. 세라의 인상 쓰는 표정에 말콤은 또 한바탕 크게 웃는다.



 - 난 내일 빌지워터를 떠날꺼다. 응? 왜냐구? 그야 한 밑천 벌기 위해서지. 난 방랑가니깐. 요전에 좋은 녀석을 만났는데 아 그녀석이랑 뭔가 해보면 굉장히 죽이 잘 맞겠더라고. 그래 빌지워터는 내 고향이지만 수배가 붙은 이상 이곳에 머물순 없어. 응? 넌 어떻게 되냐고? 그래, 오늘부터 해산이다! 세라. 너도 나중에 커서 나처럼.......! 


 말콤이 한쪽벽으로 쿵 쓰러진다. 이내 코를 골며 잠들어 버린다. 세라도 처음 느끼는 취기에 서서히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훗날 말콤과 세라는 리그에 참여하는 챔피언이 된다. 빌지워터 출신의 무법자, 그가 그레이브즈다.



 얼마나 지났을까? 새벽 뱃고동 우는 소리에 세라가 눈을 뜬다. 바닥에는 고지와 술이 널브러져 있다.


 - 으으 머리야....


 이미 말콤은자리에 없다. 무슨 급한일이라도 있듯이 작별인사도 없이 말콤은 짐을 모두 챙겨 떠났다. 뭔가 이상한걸 느낀 세라가 눈을 비비며 오두막집을 나선다. 






 마을이 뭔가 이상하다. 아무도 없이 거리에 모두 텅 비어있다. 집집마다 문들이 부숴져 있고 멀리 보이는 몃몇 집들은 연기가 난다. 그 순간 세라는 불길한 생각이 스친다. 그리고 곧장 앞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불길한 생각은 밀물처럼 쓸려와 세라를 감싼다. 제발, 제발 아니였으면 하는 생각이 입안에 가득차 차츰 목소리로 새어나온다. 그렇게 세라가 도착한 곳은 어제 엄마 혼자 남겨진 집이였다. 집이 조그맣게 보일때부터 세라의 불길한 예감은 어느정도 현실이 되어 다가왔다. 집문은 뜯겨 떨어져있고 장화 발자국들이 여기저기 찍혀있다. 해적이 나타났다.


아..


 외마디의 감탄사를 내밷고 손이 부들부들 떨려온다. 눈에 보이는 그 믿지 못할 광경을 본 9살 의 여자아이는 순간 얼음이 된듯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 눈앞에 죽음을 보는 심정은 어떠할까. 그것은 며칠전 말콤이 2명의 상대를 죽일때보다는 다른 충격이였다. 쓰러져 있는 몸에서 온 마루바닥이 피로 물들어 벌겋게 변한다. 


 - 어...엄마


 세라의 눈에는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머리에 아직 뜨거운 피를 흘리며 아무런 반응도 없는 엄마를 흔든다.아직 체온이 남아있지만 물을 먹은듯해 축축하고 무거워 뚝 떨어진다. 


 - 어..엄마.... 엄마... 엄마....



 집안은 온통 난장판, 세라의 걱정이 한치의 거짓이 아닌 사실로 변해버렸다. 그러기에도 자신의 눈 앞에 벌어진 광경을 믿지 못했다. 그리고 세라의 등 뒤에서 뭔가 인기척이 느껴진다.


 - 퍽..


 - 퍽?


 - 등 뒤에 있던 누군가가 내 머리를 친거지. 총 꺼내려고 하기엔 너무 늦은 상황이였어


 - 낄낄.... 그래서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고?


 - 응. 마지막으로 쓰러지며 범인의 눈을 보았어. 분명 빨간 눈이였지. 붉은색으로 빛나는 눈. 복면을 쓰고 있어서 누군지 확인 할 수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