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윽!”
 “참아요! 정말, 이렇게 망가져 와서는…….”

 뭐, 반가운 재회는 재회였고 치료는 치료였다. 

 솔직히 말해 앙겔라는 방심하고 있었다. 모리슨이 몰골은 좀 나빠도 그렇게 크게 다친 것처럼 느껴지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웬걸, 뚜껑을 열어보니 전혀 아니올시다였다. 그는 그녀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중상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좀 살살 못하겠나?”
 “이게 제 탓인가요, 당신 탓이지? 대체 그때 이후로 몸에 무슨 짓을 했길래 마취도 안 듣는 거예요? 근육도 무슨…이익!”
 “끄으, 이런 빌어먹을!”

 쾅!

 상반신을 벗은 채로 엎드려있는 모리슨은 성질은 성질대로 부리고 발이며 주먹을 내리쳤지만 앙겔라에겐 씨알도 안 먹힐 위협이었다. 지금 그녀는 그의 옆구리며 등에 박힌 쇳조각들을 빼내는 데만 해도 진땀을 빼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체 몸에 무슨 짓을 한 건지 몸이 터무니없이 단단해서, 앙겔라는 마치 단단한 돌 틈새에 끼인 조각들을 억지로 비틀어 빼내는 기분이었다. 그에겐 마취도 듣지 않았기에 그냥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빼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니 모리슨은 고통 때문에 힘을 주고, 그럴수록 조각은 더욱 빠지질 않고……. 악몽도 이런 악몽이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그의 욕설과, 그녀의 짜증 섞인 목소리와 함께 어우러져서.

 “하아, 하아…….”

 댕그랑

 마침내 앙겔라는 왼쪽 옆구리에 깊숙이 박혀 있던 쇳조각 하나를 뽑아드는 걸 마지막으로 의료용 집게를 내동댕이쳤다. 그게 모리슨의 몸에 박힌 마지막 파편이었던 것이다. 

 그녀가 여기로 들어올 때만 해도 12를 가리키던 시계의 시침이 벌써 2를 가리키고 있었다. 모리슨의 몸에 박힌 파편을 제거하고 간단한 처치를 해주는 데만 벌써 두 시간이 흘러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모리슨의 몸을 한 번 더 훑고, 상처가 더 없는지 확인한 다음 모든 상처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고 나서야 손을 멈췄다. 완전히 탈진한 모양인지 앙겔라는 소파 발치에 등을 기대고 축 늘어져버렸다. 하긴 쉬지도 못한 채 두 시간 내내 중노동에 견줄만한 치료를 했는데 멀쩡한 게 이상한 일이었다.

 “고맙군, 의사 양반.”
 “아, 오랜만에 듣네요. 그 ‘의사 양반’이라는 거.”

 앙겔라가 아련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리슨은 벌떡 일어나 팔이며 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붕대와 거즈로 곳곳이 뒤덮인 몸이었지만 그는 한결 낫다는 태도였다. 하긴 몸에서 느껴지던 이물감들이 죄다 사라졌으니 시원할 만도 했다.

 “수고했어. 훨씬 낫군.”
 “당신도 잘 참았어요.” 앙겔라가 모리슨을 향해 맥없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거의 생살을 헤집는 거라 엄청 아팠을 거예요. 미안해요, 설비가 조금 더 갖춰져 있었다면 더 좋은 치료를 할 수 있었을 텐데…….”
 “됐어. 이 정도면 충분하니까.”

 그는 더 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다는 의도로 말한 것이었지만, 듣기에 따라서는 충분히 ‘별 기대도 안 했다’라는 말로 들릴 수 있을 정도로 그의 목소리는 딱딱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른하고 피곤한 표정으로 늘어져있던 앙겔라의 고운 두 눈썹이 역 팔자로 확 돌아섰다. 안타깝게도 후자의 뜻으로 알아들은 게 틀림없었다. 그것이 모리슨의 첫 번째 불행이었다.

 “미안하지만 부탁 하나만 더 하지.”
 “뭐죠?”

 앙겔라의 목소리엔 방금 전까지와는 달리 놀라울 정도로 날이 서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한 게 모리슨의 두 번째 불행이었다.

 “휴대용 생체장, 그거 네가 개발하던 거 맞지? 그걸 좀 얻으려 하는데 말이야. 지브롤터에서 가져왔던 놈들은 시험작이라 그런지 몇 번 쓰면 작동을 안 하더군.”
 “…그게 끝이에요?”
 “그럼 또 뭐가 있겠나?” 모리슨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아, 집에 허락도 없이 들어온 건 내 사과하지. 그리고 나노 머신 값은 떼먹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

 잭 모리슨은 앙겔라가 준 마지막 기회를 시원하게 걷어차며, 그녀의 기대를 완벽하게 무너뜨렸다. 앙겔라는 많은 걸 원하는 게 아니었다. 돈 따윌 원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만나서 반가웠고, 여기 온 목적이 뭐건 간에 ‘보고 싶었다’라고 한 마디만 듣고 싶었다. 이 무뚝뚝한 남자에게 그 이상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런데, 와서 고작 한다는 말이 그 빌어먹을 나노 머신이나 달라는 소리라니. 지금까지 죽은 줄 알고 가슴 졸이며 괴로워했던 자신이 멍청하게 느껴지는 앙겔라 치글러 박사였다.

 잭 모리슨, 전직 오버워치 사령관의 죽음은 상당히 오랫동안 호사가들과 언론의 구설수에 오르내렸다. 혹자는 그의 죽음이 선택적 자살이라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그의 죽음이 죄다 자작극이라 했다. 심지어 어떤 삼류 가십 잡지에서는 그의 여자 친구라 주장하는 여자가 그를 자기 집에서 치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그의 죽음이 피리냐 수조에 넣은 닭고기처럼 얼마나 이리 뜯기고 저리 뜯겼는지는 두 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조차 단 한 가지 사실에서만큼은 공통된 반응을 보였다. 어쨌든 그의 부재가(죽었건 뭘 했건) 오버워치 몰락의 종지부를 찍었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모리슨의 죽음에 대해 그렇게 왈가왈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한 명의 사람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상징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를 상징이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 보고 있던 사람의 심정은 과연 어땠을지 생각해보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도 모르는 곳에 가서 멋대로 죽고, 전 세계는 그것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 체 잔뜩 떠들어대고, 그리고 자신은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속으로만 삭여야 한다면, 그것은 도대체 어떤 기분이었을까. 

 앙겔라 치글러 박사가 바로 그 경우에 속했다. 

 그녀는 한때나마 잭 모리슨이라는 남자의 연인이었으니까.

 그것은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였다. 애초에 오버워치가 건재했을 무렵에도 그들의 연애사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극히 소수였기 때문에. 그래, 앙겔라에게도 그런 봄날이 있었던 것이다. 비록 서로의 일에 치이고 이런 일 저런 일에 치이다 자연히 멀어진 사이이긴 했지만, 앙겔라의 마음속엔 모리슨에 대한 애정이 잔불처럼 조용히 남아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잊더라도 그녀만큼은 그의 모습을 기억하기 위해서. 그런데 그런 그가 살아서 다시 앞에 나타나다니 그 어찌 기쁠 일이 아니겠는가. 앙겔라도 형태가 어찌되었든 간에 그를 다시 만나 무척 기뻤다. 구태여 과거형으로 쓴 건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기분은,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다지 좋지 않았다.

 “좋아요, 드리죠.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그래, 얼마나 원하나?”
 “돈 따윈 필요 없어요.” 어찌나 그녀의 목소리가 딱딱했는지 흡사 입에서 냉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며칠 전에 제 컴퓨터로 요원 긴급 소집 메시지가 왔어요. 발신지는 지브롤터. 윈스턴이 보낸 것이더군요. 그는 오버워치를 다시금 일으킬 생각이에요.”
 “하, 그 원숭이 자식이 기어코…….”
 “그는 과학자에요. 원숭이가 아니라.” 앙겔라가 그의 말을 딱 자르며 말했다. “내 조건은 이거에요. 돌아와요, 모리슨. 이 시대에는 오버워치가 필요해요. 그리고 오버워치엔 당신이 필요하고요.”
 “…….”

 모리슨은 말없이 앙겔라를 노려봤다. 그녀 역시 팔짱을 끼고선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좀 전까지만 해도 느슨하던 분위기가 삽시간에 팽팽해져 있었다.

 “넌 오버워치 결성에 반대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맞아요, 반대해요. 오버워치는 힘이에요. 옴닉 사태나, 탈론 같은 테러 단체 같은 더 강한 힘을 제압하기 위한 힘에 불과하죠. 그러니 쓰지 말아야 하는 게 최선일 거예요. 하지만 지금 누군가가 나서지 않는다면 애써 이룩한 평화가 순식간에 무너질 위기를 맞고 있어요.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뿐이에요. 오버워치의 재결성.”
 “그럼 나는 왜 끌어들이려 하는 거지? 보시다시피 난 실패자야. 그 망할 오버워치의 몰락의 종지부를 찍은 게 바로 나라고. 이미 한 번 실패한 사람을 왜 다시 오라고 하는 거지? 동정인가?”
 “사람은 실패로부터 배우니까요. 전 당신이 잘할 거라 믿어요, 모리슨. 이번에는요.”
 “난 돌아가지 않아, 절대로.”
 “그럼 나노 머신은 없어요.”    

 허공에 불꽃이 튄다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둘의 시선은 사납기 그지없었다. 저 잭 모리슨이라는 사람을 상대로 이렇게 불꽃 튀는 신경전을 벌일 만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침묵이 흘렀다. 몇 분 간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노려보기만 했다. 앙겔라의 태도는 여전히 차가웠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그가 그녀를 섭섭하게 만들었다는 데서 기인한 게 아니라, 정말로 그가 오버워치에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고수하고 있는 태도였다. 장난기는 이미 저 멀리 날아간 지 오래였다. 그건 모리슨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건 나노 머신 따위가 아니라, 신념을 관철하는 것이었다.

 “오버워치는 옴닉 사태에 대항하기 위해 조직되었지. 그때만 해도 나와 오버워치의 적은 옴닉인줄로만 알았어. 하지만 아니었지. 진정한 적은 바로 우리 등 뒤의 인간들이었어. 우리가 어떤 꼴을 당했나? 옴닉 사태가 끝나고 어느 정도 평화가 찾아오니 마치 토끼 사냥 뒤에 사냥개를 삶아먹는 것처럼 허무하게 내쳐지지 않았나? 하지만 이젠 아냐. 난 반드시, 우릴 몰락시켰던 놈들을 찾아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모리슨, 제발!” 앙겔라가 거의 비명 지르듯 외치며 그에게 달려와 매달렸다. “복수심에 당신을 내맡기지 말아요. 그런 걸로 당신의 눈을 가리지 말란 말이에요! 당신은 그런 사람들도 포용할 수 있는 영웅이잖아요! 왜 자신을 상처 입히는 거죠?”
 “그야 난 영웅 따위가 아니니까.” 모리슨이 조용히 말했다. “나노 머신을 줄 생각이 없으면 이만 실례하지. 갈 길이 머니까 말이야, 도라도에서 취리히까지라니, 하. 무슨 바람이 불어서 철부지 어린애처럼 온 건지.”

 모리슨은 그렇게 말하고 옷가지를 주섬주섬 주워 입고선 등을 돌려 걸어나갔다. 그 모습을 보는 앙겔라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이러려고 싸웠던 게 아니었는데……. 그가 현관까지 가자 안되겠다 싶었는지 그녀는 벽장 한쪽에서 보온병 같은 통 하나를 꺼내 그에게 달려갔다. 예의 그 나노 머신이 든 통이었다.

 “…뭐지? 안 준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주든 주지 않든 당신은 또 남을 위해 위험에 몸을 던질 테니까, 할 수 없이 준 거예요.”
 “남을 위한다니, 말했듯이 난 이제 복수만을 위해…….”
 “당신의 상처, 뒤에만 나있었어요. 앞에는 하나도 없었고요. 전 그런 류의 상처를 알아요. 누군가를 온 몸으로 감싸고 자신이 방패가 되었을 때만 생기는 상처죠. 당신은 부정하지만, 여전히 영웅은 당신 안에 남아있어요, 모리슨.”
 “…….”
 “우리의 의견이 지금 당장 좁혀지지 않으리라는 건 알아요. 하지만 전 반드시 당신이 돌아올 거라 믿어요.”

 모리슨은 대꾸도 없이 그녀의 손에서 통을 낚아채고는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밤바람이 차게 들어왔다. 그는 뒤를 슬쩍 돌아봤지만, 앙겔라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가면이 그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표정을 알 수 없었다. 모리슨은 그렇게, 앙겔라의 말을 곱씹듯 그녀를 몇 번이나 바라보더니 이내 걸음을 옮겨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떠난 자리엔 차디찬 밤바람만이 불어오고 있을 뿐이었다.

 “기다릴게요, 모리슨. 당신은 기대를 저버리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닿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어둠을 향해 속삭였다.

 “만나서 반가웠어요. 그리고 살아 있어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을 끌어안았다.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가 살아있다는 데에 대한 감사와, 그의 상처에 대한 연민의 눈물이. 그를 사랑했던 한 명의 여자로서, 그녀는 그 자리에 서서 오래오래 눈물을 흘렸다. 밤바람은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쌀쌀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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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0. 호응이 생각보다 너무 좋아서 놀랐음

1. 좀 대충 쓴거라 미안하기도 했음

2. 문제는 이번에도 쓰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좀 대충 씀...

3. 아직 한 조각 더 남았다

4. 끝은 해피엔딩

5. 솔저 대사 쓰는 거 진짜 어려웠음

6. 내 평가는 분위기는 살렸는데 개연성이 빵점임

7. 메르시 애정 하나로 쓴다 진짜

8. 흐흐 내가 여기서 이거 쓰고 있는 거 알면 독자들이 와서 머리끄댕이 잡아챌거야...

9. 그럼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