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르시

 의사란, 사람을 살리는 직업이다. 

 실리나 명예 따위를 위해서가 아니다.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다. 다친 사람이 있고,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그곳이 산꼭대기이든 바다 한가운데이든 전쟁터든 상관없이 가야 한다. 그게 앙겔라 치글러 박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의사의 상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가장 존경해 마지않는 의사는 슈바이처 박사였다. 그야말로 진정한 의사의 귀감이 될 만한 사람 중 하나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앙겔라 치글러 박사는 자신도 그와 같은 삶을 살기를 원했다. 그것이 그녀가 많은 고민 후 오버워치에 몸을 맡긴 이유 중 하나였다. 

 오버워치에 들어와 그녀는 많은 생명을 구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각양각색의 이유로, 각양각색의 상처로 그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녀는 손수 발키리 슈트와 카두세우스 지팡이라는 의료 보조용 장비까지 만들어가며 문자 그대로 정신없이 ‘날아’다녔다. 

 그래도 바빴다. 환자가 어디 밤낮을 가리던가. 그녀의 의술과 능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많아만 갔다. 곧 그녀는 오버워치 내에 자신만의 의료팀을 꾸렸고, 그녀의 팀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의료 활동을 계속해 나아갔다. 힘들지만 보람찬 나날들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그녀는 앙겔라 치글러라는 본명보다 ‘메르시(Mercy)’라는 별명으로 불릴 때가 더 많아지고 있었다. 어떻게 붙은 별명인지 모르겠지만, 앙겔라는 그 별명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메르시. 감사의 뜻을 담은 그 단어의 울림은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보람차다 해도 힘든 일은 힘든 일이었다. 때로는 그 보람이 무색하리만큼 절망적인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번은 도라도에서 옴닉 기계들이 기습을 감행해 한 건물을 무너뜨린 적이 있었다. 기계들 자체는 비교적 금방 제압되었지만, 그 후속처리가 문제였다. 상당수의 민간인들이 건물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너져가는 건물 잔해 속에서 앙겔라는 한 여성을 치료하고 있었다. 

 만삭의 임산부였다. 잔해에 깔려 그녀는 죽어가고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양수가 터져 출산이 시작된 상태였다. 산모의 출혈이 너무 심해 아기와 산모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산모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기를 택했고,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로서 할 일을 마쳤다는 듯 절명하고 말았다. 그러나 태어난 아기는 숨을 쉬지 않았다. 아기의 심장은 멈춰 있었다. 

 붕괴되는 건물 속에서 그녀는 사람들에게 억지로 끌려 나올 수밖에 없었다. 모든 일이 끝나고 기지로 돌아온 뒤, 그녀는 오래도록 울었다. 자신이 이토록 무력하게 느껴지던 적은 처음이었기에. 동료들이 그녀를 위로했다. 그녀의 탓이 아니라고, 나쁜 건 그곳을 습격한 옴닉이라고. 하지만 그 무엇도 그녀를 위로해 줄 수 없었다. 그를 알게 된 건 바로 그때였다. 잭 모리슨. 오버워치의 야전 사령관인 그 남자를.

 그들은 아주 일면식도 없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다. 애초에 활동하는 구역과 목적부터가 달랐다. 모리슨은 최전방 사령관이었고 그녀는 후방 지원 부대 소속이었다. 어쩌다 마주치더라도 그저 지나가거나 업무상의 목적으로 만날 뿐이었다. 

 하지만 어떤 사건을 계기로 앙겔라가 모리슨의 부상을 치료해주는 걸 계기로 둘의 사이는 가까워졌다. 모리슨은 정의롭고 올바른 사람이었고, 세계 평화를 위해 자신의 한 몸 다 바치는 사람이었다. 그는 앙겔라가 꿈꾸는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녀가 그에게 끌리게 된 건 필연일지도 몰랐다. 

 둘의 사이는 점차 가까워졌다. 모리슨 역시 사람이었기에, 과중한 업무와 부담 속에서 활동하며 멀쩡할 리가 없었다. 그런 그에게 앙겔라는 아주 좋은 안식처가 되어 주었다. 그녀는 자애로운 성모처럼 지친 그를 감싸 안아줬고, 그의 상처를 보듬어줬다. 때로는 마음으로, 때로는 그 몸으로. 

 어느 정도에 이르자 그들의 비밀스러운 연애는 급속도로 깊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서로가 없으면 살 수가 없을 정도로 서로에게 의지하게 되었다. 둘은 불꽃처럼 사랑했다. 마치 십대 철부지 어린아이들이 오직 상대만을 바라보며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것처럼. 거기에는 막연한 불안감을 성적 욕구로 해소해버리자는 사심도 조금은 들어가 있었다. 그녀는 그를 통해 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느끼는 죄책감을 위로받고자 했고, 그는 그녀를 통해 옴닉과의 전쟁에 대한 공포를 잠시나마 잊었다.

 어쨌든, 서로를 원하는 이유가 뭐가 되었든지 간에, 앙겔라는 모리슨을 사랑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도 된다고 생각할 만큼 말이다. 그의 등을 바라보며 그녀는 자신도 이상적인 의사가 되기를 꿈꿨다. 자신의 안위보다 고통 받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는 그런 의사 말이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그녀는 그런 의사가 될 수 없었다.




 그걸 깨닫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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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0. 앙겔라 시리즈 이렇게 단편 형식으로 계속 써볼까 생각중

1. 단편이고 이야기 짜기도 쉽고 해서 연재분 쓰다 멘탈 터지면 끼적이기 쉬워 보인당

2. 일상물은 참 편함 별 생각 안하고 써도 됨...

3. 어른의 사랑을 세밀하게 표현하고 싶었으나 왠지 모르게 한심한 기분이 들어 패스

4. 메르시 솔져는 참 맘에 든다 

5. 미녀와 야수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