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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웅은 죽지 않아, 앙기.]

 그 말을 들은 지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았는데, 앙겔라 치글러 박사는 피투성이가 된 채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잭 모리슨을 마주하고 있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앙겔라 치글러 박사는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여기가 어딘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심지어 자기가 누군지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만은 분명히 그랬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일은 잭 모리슨이 그녀 앞에 큰 부상을 입고 중태에 빠져 있다는 사실 뿐이었고, 그게 전부였다. 그 이상으로 중요한 일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시간이 아주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 사물들이 전부 흐릿했다. 오직 잭 모리슨의 모습만이 그녀의 눈에 비치는 세계 전부였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그가 전날 밤 이불 속에서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속삭였던 말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영웅은 죽지 않아, 앙기……. 영웅은 죽지 않아, 영웅은 죽지 않아. 그는 죽지 않아, 죽지 않을 거야, 절대로……. 앙겔라 치글러 박사는 뭔가에 홀린 눈빛으로 끊임없이 그 말만을 입속에서 되뇌었다. 그 말만이 지금 그녀의 정신이 붕괴되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죽는 사람은 많이 봐왔다.
 죽어가는 사람 역시 많이 봐왔다.
 구했던 사람도, 구하지 못했던 사람도 많이 봐왔다. 하지만.

 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한 사람이 중태에 빠져있는 이 순간만큼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잭 모리슨은 그녀에게 있어 연인 이상의 의미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그녀가 남들에게 보여주지 못하는 죄책감을 달래고 이해해 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가지는 죄책감을 공유하는 사이이기도 했다. 

 [영웅은 죽지 않아, 앙기.]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말한 그가 지금 죽어가고 있었다. 

 지금껏 그녀는 죽어가는 가족을 보며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연민의 감정을 가졌을지언정, 크게 공감하지는 못했다. 그들이 보는 세계와 그녀가 보는 세계는 달랐기에. 그들에게 중요한 사람은 가족 한 명이겠지만, 그녀에게는 환자 모두의 목숨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한 환자의 죽음은 차트에서 이름 하나가 지워지는 것 정도의 의미밖에 없을 때도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슬퍼할 겨를 따위는 없었다. 밖에서는 옴닉 군단이 끊임없이 전쟁을 일삼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오버워치가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은 한계가 있었다. 그들은 신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영웅은 죽지 않아, 제발…….’

 누군가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누군가는 와서 그녀의 팔을 잡았다. 그 모든 것이 아스라한 새벽녘 안개 속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희미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이 그녀를 그에게서 떼어놓았다. 중환자들, 일, 정신, 여러 가지 단어가 어지러이 섞여 그녀의 안으로 들어왔으나, 전혀 의미를 이루지 못했다. 대답 대신 그녀는 모리슨이 누워있는 들것의 모서리를 으스러져라 잡았다. 그게 구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그와 떨어질 수 없었다. 그와 떨어지게 된다면 정말 죽을 것만 같은 앙겔라 박사였다. 하지만 우악스런 손길은 결국 그녀를 그에게서 떼어 놓고야 말았다. 그녀는 거칠게 바닥에 내동댕이쳐졌고, 그들은 모리슨과 함께 사라졌다.

 고통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짜악!

 순간 둔탁한 고통이 그녀를 훑고 지나갔다. 정황상 누가 뺨을 때린 것이리라. 하지만 별로 아프지 않은 앙겔라 박사였다. 상대가 약하게 때린 건지, 아니면 그저 자신이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시선을 올렸다. 뺨이 붉게 부어오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흡사 시체처럼 죽어있었다.
 “정신 차려요, 치글러 박사! 대체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소리친 사람이 그녀 앞에 쭈그리더니, 그녀의 어깨를 마구 흔들었다.

 “사령관님만 다친 게 아닙니다! 지금 당장 수술이 필요한 중환자가 한둘이 아니란 말이에요!”
 “…….”
 “치글러 박사!”
 “그만하면 됐네.”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그녀의 옆에서였다. 중년 남성의 목소리인데,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라 사리분별이 전혀 안 되고 있었다. 지금 그녀를 향해 말하는 사람들이 그녀의 의료 팀이라는 것도 모를 정도로 말이다.

 “이대로는 문제만 일으키겠군. 일단 자네가 이 사람 좀 방까지 옮겨주게. 핑계는 피로가 겹쳤다든지, 스트레스가 심하다든지…뭐라도 좋으니까 자네가 알아서 대고. 하지만 방문은 밖에서 잠가두게. 오버워치의 의료 팀장이나 되는 사람이 이런 꼴로 밖에 나돌아 다녀봤자 좋은 소리 하나 들을 리 없을 테니까.”
 “하, 하지만…….”
 “자네도 이 치글러 박사처럼 다른 사람의 목숨을 내동댕이칠 참인가? 헛소리 말고 데려다 놓는 즉시 제 2 수술실로 달려오기나 하게. 후,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때에 팀장이란 사람이 저 모양이니…….”

 발소리 하나가 멀어져갔다. 누군가 그녀를 업고 걷기 시작했다. 앙겔라 박사는 물가에 내놓은 해파리처럼 그 등에 축 늘어졌다. 그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그녀의 가슴을 송곳처럼 찌르고 있었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지금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는 모리슨에게 매달려 다른 환자들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단순히 그들을 치료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들에 대해서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건 분명히 그녀의 이상에 반할 뿐만 아니라 의사로서의 의무에도 반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 일로 인해 모리슨에게 혹시나 모를 불이익이 갈 수도 있다 생각하니, 그녀의 가슴속에선 공포가 밤안개처럼 스멀스멀 밀려왔다.

 ‘미안해요, 모리슨.’

 그녀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닿지 않았다. 닿을 리 없는 사과였다.

 앙겔라 치글러 박사는 자신의 나약함을 뼈저리게 느끼며 숨죽여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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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0. 왜 이렇게 메르시가 펑펑 우냐고?

1. 마음의 상처가 앵간치 많다는 설정임

2. 메르시의 멘탈이 아작난 걸 글로 표현해보려고 중구난방으로 써봄

3. 효과가 있을진 모르겠음

4. 영웅은 죽지 않아요 이게 난 뭔가 자기 마음을 다잡는 주문처럼 들려서 깊은 사연이 있을거라 멋대로 생각

5. 따라서 저 대사는 먼저 김병장이 해준걸로. 그 뒤에 3편에 나올 사건 진행 후 메르시가 자기 마음 다잡을 때마다 영웅은 뒤지지 않아여 ㅎ 이러면서 다잡는다고 하려고 생각중

5. 저 대사는 침대에서 했음

6. 아니 근데 메르시랑 솔져는 볼장 다 본 사이 같아서 침대씬이 딱히 나쁘지가 않어 

7. 아 이거 나중에 레예스 시점으로 이 둘 본거 한번 써볼까 생각중

8. 근데 딴거 써야 해서, 안 쓸 확률이 높음

9. 솔직히 추천이 생각보다 많아서 계속 쓰는 거긴 함. 내 글이 좋은 건지 메르시가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10. 옆동네 롤인벤이랑 조XX에서는 딴거 연재중인데 것도 볼만함. 메르시 같은 캐릭터도 나오니 심심하믄 보시길. 그건 장편임. 이거랑 달리 공들여서 쓰고 있기도 하고

11. 그럼 이만 총총

12. 덧글로 피드백 주면 고마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