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잭 모리슨

 죽어도 되는 사람은 없다.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그것이 오버워치 야전 사령관 잭 모리슨의 신념이었다. 

 모리슨은 옴닉과의 전투에서 그 무엇보다 인명을 중시했다. 단순히 정이 많다거나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로봇 따위야 공장에서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는 고철에 불과하지만, 사람이란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오직 하나뿐이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그의 강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약점이기도 했다. 옴닉들은 그런 그의 성격을 파악한지 오래였다. 옴닉들이 설치한 함정엔 늘 인명이 걸려있었고 그는 알면서도 그 함정 속에 기어들어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함정이란 밟지 않으면 그만인 물건이었다. 그는 모른 척 지나칠 수도 있었다. 전쟁 중에 사람이 죽는 건 흔한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그냥 지나친 일이 없었다. 늘 사람을 구했고, 때로는 자신의 몸을 아끼지도 않았다. 그런 그의 행동은 늘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분쟁을 일으켰다. 그만큼 그의 자리는 복잡한 이해관계에 얽혀있기 때문이었다. 

 타인이 뭐라 평가하든 모리슨 자신이 생각하기엔  동정과 연민은 전쟁에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감정이었다. 하물며 그 상대가 로봇이라면 더욱 더. 그는 자신의 이런 성격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람을 구하는 걸 멈춘 적은 없지만 말이다. 

 이번에도 그 망할 무른 성격 탓에 결국 그는 옴닉이 설치해둔 함정으로 몸을 날렸고, 그 행동의 결과로 팔이 부러지고 온 몸에 타박상이 생기는 중상을 입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아직 어린 두 생명을 살렸다. 한 사람의 군인으로서는 옳은 행동이었으나 사령관으로선 실격이었다. 그의 목숨은 그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훨씬 무거웠고, 그런 그의 행동은 늘 문제시 되었다. 

 하지만 그런 무른 성격이 그답다고 이야기해준 여성이 있었다. 앙겔라 치글러. 둘만 있을 때 부르는 애칭은 앙기. 그리고 모리슨의 말을 빌리자면, ‘평생을 걸고 지켜줄 만한 가치가 있는’ 여자. 그녀는 전쟁으로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안식처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녀의 품에 안기면 모리슨은 모든 걱정을 털어버릴 수 있었다. 오버워치의 야전 사령관이라는 직책도, 블랙워치와의 알력도, 상부와의 갈등도 모두 잊을 수 있었다. 그녀의 품은 따뜻했고 포근했다. 

 그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면 그녀는 늘 ‘1부터 10까지 표현하자면 어느 정도로 만족하나요?’라고 귓가에 대고 장난스럽게 속삭여왔다. 수많은 의사가 환자들을 볼 때마다 하는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입을 거치면 특별한 말이 되었다. 그 말은 일종의 사랑의 신호였다. 유혹을 거절할 그가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권유를 내팽개칠 만큼 어리석지도 않았고, 참을성이 있지도 않았다. 앙기라는 여성이 그가 처음 만난 여자는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유혹만큼은 견딜 수가 없는 모리슨이었다. 

 그녀는 세월이 비껴간 듯 여전히 젊고 아름다웠다. 피부는 우유처럼 희고 고왔다. 나긋나긋하고 가녀린 손목과 손가락은 그의 거칠고 굳은살 박힌 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그의 손길이 좋은 듯, 한바탕 격렬한 사랑이 오고 간 후에는 늘 두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고선 뺨에 가져다 대었다. 살짝 거친 숨을 내쉬며 그의 손에 얼굴을 비비는 그녀의 모습은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녀에게 기대기만 하는 건 아니었다.   

 둘은 의존적인 관계였다. 그가 그녀에게 기대는 것처럼, 그녀 역시 그에게 기대어왔다. 때때로 그녀는 악몽이라도 꾼 듯 밤중에 자다 깨서 그의 품에 미친 듯이 파고들었다. 악몽의 내용은 늘 그의 죽음이었다. 그녀의 악몽 속에서 그는 참 다양한 방법으로 죽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영웅은 죽지 않아, 앙기.’ 라고 그녀의 귓가에 장난스럽게 속삭였다. 그럼 앙겔라는 안심하고 다시 잠이 들었다. 그래, 그때도 그랬다. 이번 작전에 나오기 전날 밤에도 그는 그녀에게 그렇게 속삭여줬다.

 영웅은 죽지 않는다고.

 “으음.”
 “…모리슨?”

 그가 천천히 눈을 뜨자마자 그의 이름을 부르는 이가 있었다. 그는 소리가 난 쪽으로 손을 뻗었다. 부드러운 볼이 만져졌다. 그는 볼을 더듬다가 흘러내린 머리카락 몇 가닥을 귀 뒤로 넘겨줬다. 그리고 그녀를 바라봤다.

 “눈뜨자마자 사랑하는 사람이 간호해주는 걸 보는 것도 나쁘지 않군.” 그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좀 더 자주 다쳐야겠어.”
 “제발, 농담이라도 끔찍하니까 그런 말은 하지 말아요.”

 앙겔라는 맥 빠진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웃고 있었지만, 애써 미소를 짓는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낯빛은 창백한데다가 눈은 발갛게 부어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모리슨은 괜한 말을 한 걸 후회했다. 농담으로 넘기기엔 그녀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보였다.

 “그래, 내가 누운 지 얼마나 지났지?”
 “얼마 안 됐어요. 좀 더 자요.”
 “앙기, 누누이 말하지만 넌 거짓말이 너무 서툴러.” 모리슨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거짓말을 할 땐 꼭 그렇게 뒤를 돌아서 말하더군. 평소엔 시선 피하는 걸 굉장히 싫어하면서.”
 “…당신은 쉬어야 해요.”
 “당신도 알잖아. 난 사령관이야, 앙기. 내 말 한 마디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사는 게 결정되는 자리지. 움직일 만하면 움직여야해.”

 그는 그렇게 말하며 병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솔직히, 앙겔라가 말한 대로였다. 그는 좀 더 쉬어야 했다. 부러진 팔은 이제 막 고정시킨 참이었고, 건물 파편에 깔렸을 때 입은 상처는 붕대에 가려지기만 했을 뿐 여전히 붉었다. 하지만 각오한 바였지 않는가. 그는 고통을 참으며 일어나 걸으려다가…전동 휠체어로 가 앉았다. 아무래도 아직 걷기는 무리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휠체어는 움직이지 않았다. 확인해보니 에너지 팩이 끼워져 있지 않은지 전원에 점등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앙겔라를 불렀다. 그녀는 심히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에너지 팩이 빠진 모양이군. 와서 팩 좀 끼워줘.”
 “…….”

 모리슨이 불렀지만, 그녀는 손가락만 비비 꼬며 망설일 뿐이었다. 그녀가 이렇게 불안한 모습을 보여준 건 처음이었다. 뭐, 하긴 그녀와 교제를 시작한 이후로 이렇게 심하게 다친 게 처음이기는 했다. 아니 생각해보니 오버워치에 들어와서 이렇게 다친 적은 처음이었다. 모리슨은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앙겔라.”
 “알겠어요.” 

 모리슨이 낮은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결국 앙겔라는 내키지 않는 투로 에너지 팩을 가져와 휠체어 아래쪽에 끼웠다. 그리고선 그가 움직이느라 흐트러진 옷매무새며 수액 병을 휠체어에 고정시키더니, 가만히 한숨을 쉬며 휠체어를 밀었다. 그녀 나름의 배웅이리라. 모리슨은 그렇게 생각하며 가만히 있었다. 지금 그녀의 기분이 어찌되었든 좋지 않다는 걸 모를 정도로 그는 아둔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라면 분명히 이해해 줄 거라 믿는 모리슨이었다.     

 위잉

 “끝났나, 치글러 박사?”

 문이 열리자마자 들려오는 낯선 소리에 모리슨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이리도 빨리 둘만의 시간이 깨질 줄은 몰랐던 그였다. 좌우로 열리는 문 앞에는 깐깐한 인상의 노인이 서있었다. 앙겔라와 비슷한 백의를 걸치고 있는 걸로 봐서 같은 의료 팀의 일원인 모양이었다.

 “네,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헤르만. 이제 됐어요. 미스터 모리슨? 죄송하지만 전 일이 있어서 이만 실례할게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몸에 무슨 일이 생기면 팔걸이 밑에 있는 버튼을 누르시기만 하면 돼요. 기지 안에만 있다면 1분 내로 의료 팀이 도착할 겁니다, 아셨죠?”
 “…아아, 그렇지. 고맙네. 이거 이런 기계엔 영 약해서 말이야. 그럼, 아니아니, 이만 실례하지.”

 하마터면 ‘나중에 보자고’ 라고 끝에 붙일 뻔한 모리슨이었다. 요즘 가까이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그런가, 그녀와의 관계가 비밀이란 걸 때때로 잊어버리는 그였다. 풀어진 건 그녀가 아니라 자신일지도 모르겠군, 이라 중얼거리며 모리슨은 서둘러 작전실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리고 멀어져가는 휠체어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는 앙겔라가 그 뒤에 있었다. 마침내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앙겔라는 조용히 말했다.

 “고마워요 헤르만 박사. 비밀을 지켜 줘서.”
 “개인사에는 참견 안 하는 주의라 말일세.” 그가 앙겔라 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게다가 난 의사로서의 자네에게 책임을 묻고 싶은 것뿐이지, 다른 의도는 없으니까 말이야. 괜히 위엣 놈들의 구정물을 여기까지 끌어들이고 싶진 않네.”

 그렇게 말하며 헤르만 박사는 손을 내밀었다. 앙겔라는 그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지만, 망설이지는 않았다. 그녀는 목에 걸고 있던 요원증을 풀어 그에게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 든 헤르만 박사는, 

 “좋소, 이제 가시오.”

 담담한 표정으로 선고하듯 말했다.

 “한 달간 자택 근신이오, 치글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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