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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에? 그럼 그게 정말로 잡아온 거였어요? 산 게 아니라요?”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러나.”

 시큰둥한 레예스의 태도와는 달리 앙겔라의 얼굴엔 경악이 서려 있었다. 

 사건의 전말은 대충 이랬다. 앙겔라에게 부탁을 받은 레예스가 블랙워치 요원 대부분을 끌고 가서 산지 직송으로 식재료를 조달했다는 것이었다. 다양한 식재료만큼 당연히 다양한 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갔을 터였다. 앙겔라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이 정도까지 일을 키울 줄은 꿈에도 몰랐던 그녀였다.

 “그 정도라니요? 그러면 블랙워치 분들 전부가 고생했다는 말인데! 저 그냥 당신에게 넌지시 물어본 거였어요, 레예스! 장난이었다고요! 어떡해, 어쩜 좋아…….”

 앙겔라는 발을 동동 구르며 울상을 지었다. 그들 역시 오버워치의 일원으로 엄청 고생한다는 사실을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오버워치 내의 모든 의료 기록은 전부 그녀에게 오도록 되어 있었으니까. 블랙워치의 요원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부상 빈도도 훨씬 높았고,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사망 빈도도 높았다. 

 그런 최정예 부대를 고작 식재료 따위나 구하게 했다니 어찌 얼굴이 굳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요원들을 사사로운 일에 부리는 건 중죄 중에서도 중죄였다. 하지만 앙겔라는 그런 여부를 떠나 그들에게 미안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 앙겔라의 모습을 보던 레예스는 가뜩이나 찌푸렸던 미간을 더욱 더 찌푸렸다. 어째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그의 절망적인 커뮤니케이션 능력 때문이란 것을, 그는 눈치 채지 못했다.

 “뭔가 착각하는데, 앙겔라. 그건 그 녀석들이 휴가지에서 선물로 보낸 거야.”
 “네? 휴가요? 무슨 휴가요?”
 “…말 안했나?”

 레예스는 복잡미묘하게 변하는 그녀의 시선을 슬쩍 피하며 품속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그녀 쪽으로 내밀었다. 커다란 연어를 한 무더기씩 쌓아놓고 씨익 웃고 있는 사람들부터 부모님으로 보이는 분들과 작업복을 입고 있는 사람 등등 많은 사람들의 사진이 찍혀 있었다. 너무 평범한 사진들이었기에, 처음에 앙겔라는 이 사람들이 누군지 몰랐다. 하지만 어떤 사진 앞에서 그녀는 이게 정말 ‘휴가’에서 찍은 사진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켁, 맥크리 씨……. 제가 알던 맥크리 씨의 애인 분의 얼굴이 아닌데요?”
 “본인 말로는 현지처(妻)라더군.”

 어떤 흑인 여성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찍은 맥크리의 사진을 끝으로, 앙겔라의 의구심은 모두 풀렸다. 이걸로 됐겠지, 하고 레예스는 생각했다. 하지만 웬걸, 앙겔라는 허리에 손을 올리더니 도끼눈을 뜨고 그를 쏘아봤다.

 “아니 휴가를 갔다면 갔다고 얘기를 해 줘야죠!”
 “난 아는 줄 알았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내가 무슨 인사 담당자에요?”
 “음, 그렇게 들으니 모를 수도 있겠군.”
 “네에? 당신 지금 저 놀려요? 이렇게 만날 오해나 부르게 말하니까 친구가 없는 거예요!”
 “그 얘기가 왜 지금 나오나?”

 한가로운 초저녁 거리에 때 아닌 고성이 오고갔다. 정확히는 고성은 앙겔라의 것이었고, 그걸 받아치는 레예스는 시큰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난감한 표정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말싸움하는 것처럼 보여도, 가브리엘 레예스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이 봤다면 놀라 뒤집어질 장면이었다. 그는 말이 안 통할 것 같으면 주변이고 뭐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사람이었지, 저렇게 변명까지 해가며 말싸움을 하는 사람이 ‘절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얼마간 씩씩거리던 앙겔라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그의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렸다. 일단 그의 한쪽 팔에 올린 손을 내리지 않는 걸로 봐서 화는 어느 정도 풀린 모양이었다. 레예스의 스마트폰에서 블랙워치 요원들의 휴가 사진을 보던 앙겔라가 문득 입을 열었다.

 “…저, 생각해보니 블랙워치 분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는 모르고 있었어요. 그런데 꽤 평범하네요.”
 “블랙워치 요원이라 해서 뭐 특별할 줄 알았나? 별 거 없어.”
 “그래요. 정말 별 거 없네요.”

 앙겔라가 그렇게 말하며 미미하게 미소지었다. 이들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저 하는 일이 조금 다를 뿐. 평범하게 낚시하고, 평범하게 부모님을 찾아뵙고, 평범하게……. 그 ‘평범’이라는 단어 하나가 앙겔라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오버워치는 평범한 삶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일터였다. 모두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곳이었다. 지금 이렇게 놀고 떠드는 순간에도 본부에선 비상 대기 요원이 있었으며, 아무리 파티를 즐긴다 해도 비상 연락망과 호신용 무기 정도는 늘 가지고 다녀야 했다. 당장에 그녀만 보더라도 핸드백 속에는 화장품이나 장신구가 아니라 권총과 스마트폰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앙겔라의 가슴이 답답한 건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의 평범함이 깨지는 그 순간, 앙겔라는 그걸 가장 가까이서 봐야한 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구하지 못했던 사람들.
 구할 수 없었던 사람들.
 구해야만 했던 사람들.

 “으음…….”

 애써 잊었던 안 좋은 기억들이 다시금 고개를 쳐들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조금 허리를 숙였다. 욕지기가 밀려 올라오고 있었다. 야전 의무관인 주제에 그녀는 아직 전장에 익숙해지지 못했다. 오버워치의 근무 기간 중 삼분의 일을 현장에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현장 일에 익숙해지지 못했다. 아니, 익숙해지지 못했다는 조심스러운 표현보다는…….

 “이봐.”

 그때 그녀의 어깨를 꽉 잡아주는 이가 있었다. 레예스가 그녀를 걱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를 올려다봤다. 그 순간 레예스는 그녀를 휙 업어 들더니 빨리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 으…….”
 “괜히 걸었군. 안색이 많이 안 좋아. 가서 따뜻한 거라도 좀 먹지.”
 “미안해요. 저…….”
 “말할 필요 없어.” 레예스가 딱딱하게 말했다. “넌 지금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고, 내가 알아야 할 건 그게 전부야.”

 딱딱한 목소리에 앙겔라는 피식 웃고선 그의 등에 얼굴을 묻었다. 정말 표현이 서툰 남자였다. 때로는 사정을 캐묻는 것보다 이렇게 말없이 있어주는 게 더 위로가 될 때도 있었다. 그의 무뚝뚝한 배려가 고맙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했다. 괜히 신경 쓰게 한 건 사실이니 말이다. 손을 통해 단단한 그의 등이 느껴졌다. 그녀의 다리를 철근처럼 꽉 잡고 있는 그의 팔이 느껴졌다. 이상하게 부끄럽다기보다는 마음이 편안했다.

 “가브리엘.”
 “왜?”

 그는 걷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말했다. 

 “언제 한 번 당신이 살아온 얘기도 좀 해줘요.”
 “뭐 하러 그러나. 재미도 없을 텐데.”
 “듣고 싶어요. 대신 저도 들려드릴게요.”
 “…나중에. 우선 지금은 집으로 돌아가는 게 우선이다.”

 그는 짤막하게 말하고선 다시 입을 닫았다. 앙겔라의 얼굴에 배시시 미소가 걸렸다. 그는 늘 그녀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런 레예스의 상냥함이 기쁜 그녀였다. 

 “그래요. 어서 집으로 가요.”

 그녀는 속삭이듯 말하고선 다시 그의 등에 얼굴을 기댔다. 분명 아파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그는 그녀를 내려놓아줄 터였다. 하지만 그때까지 지금 이 편안한 기분을 좀 더 느끼고 싶었다. 갑자기 불안이 밀려올 때, 누군가 옆에 기댈 사람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레예스, 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어줘요.’

 그건 그녀의 바람이었다. 하지만 앙겔라는 구태여 그 말을 입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레예스는 언제나 그녀의 곁에 있어 줄 테니까. 





 그녀를 어둠 속에 혼자 내버려두지 않을 테니까.





















잡담

-1: 빨리 올라온 이유-호응이 좋아서

0. 가벼운 이야기에도 무게추가 필요합니다.

1. 무슨 말인고 하니, 100% 가벼운 이야기만 하면 무게감이 없어서 재미가 없다 이말입니다.

2. 따라서 전 아무리 가벼운 이야기를 써도 90% 가벼움에 10% 무거움을 섞습니다.

3. 이런 식으로 좀 쐐기를 박아줘야 메인 시나리오에서 안 벗어나거든요. 그게 무슨 말이냐면...아 설명 귀찮다

4. 개똥같이 말해도 천금같이 알아들을 수 있는 독자분들을 믿습니다.

5. 3편은 문자 그대로 유쾌한 할로윈이 될 것입니다!

6. 아 가로등과 별 써야하는데, 겁나 안써지네. 일은 바쁘고, 뒤질 거 같습니다.

7. 표지 좀 기부해주시면 왕땡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