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브리엘 레예스

 앙겔라가 방으로 들어가자, 가브리엘 레예스는 눈을 떴다. 그의 표정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앙겔라가 다가오는 걸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잠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가 혼잣말로 얘기하기 시작할 때 깨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에겐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신선한 충격이라면 하나 더 있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뺨을 쓰다듬었다. 조금 전의 감촉이 잊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고마워요, 가브리엘. 정말로요. 나, 당신이 와줘서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마치 부드러운 깃털이 뺨에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따뜻했고, 촉촉했으며 또한 부드러웠다. 마치 쥐면 스러질 것 같아 조심스럽게 볼 수밖에 없는 눈송이처럼 말이다. 비유가 이상하지만 따뜻한 눈송이 같았다. 그는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아무 사심도 없는 호의를 느껴본 게 얼마 만이던가. 그래서 그는 앙겔라가 입을 맞춰 준 뺨을 오래도록 매만지며 그 느낌을 음미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뭔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슬프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이었다. 그녀가 과거 이야기를 한 것은. 늘 밝게 웃고 명랑한 그녀가 그런 상처를 안고 있는 줄 몰랐다. 막연하게, 아주 막연하게 레예스는 그녀가 그냥 평범한 가족을 가진 사람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휴일이 되면 부모님을 찾아가 어리광을 부리기도 하고, 때로는 다투다가 금세 화해하는 그런 평범한 가족 말이다. 하지만 그녀도 역시 전쟁의 피해자였다. 

 ‘저주받을 쇳덩이들 같으니라고.’

 그는 이를 뿌득 갈았다. 그는 옴닉을 저주했고, 또한 증오했다. 그것들은 해충 같은 것들이었다. 부수고 부숴도 어디선가 기어 나오는 더러운 해충. 개중에는 옴닉을 이용해 제 뱃속을 채우거나 무고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더러운 인간쓰레기들도 있었다. 그놈들 역시 옴닉과 하등 다를 바 없는 놈들이었다.

 부웅
 “그래.”

 상념에 잠겨 있는 와중이었어도 비상연락용 휴대폰에 응답하는 그의 손놀림은 무척이나 재빨랐다. 오히려 상대 쪽에서 놀랐는지 떨떠름한 목소리였다.

 [레예스? 이런, 자는 줄 알고 있었는데.]
 “생각할 게 좀 있어서 말이지.” 레예스는 툴툴거리며 말했다. “모리슨 자네가 연락한 걸 보니 그리 좋은 소식은 아니겠군.”
 [부정은 안 하겠네. 상황이 좀 급해서 말이지. 실은 일본 쪽에서 대규모 옴닉 사태가 발발했다네. 근데 알잖나. 그 나라 정부가 이상한 데서 고집이 있어서 남의 도움 잘 안 받으려 하는 거.]
 “아, 몇 년 전에 있었던 도쿄 사태 말이로군. 기억나. 파견 승인 요청은 자기네들이 늦게 해놓고는, 정작 피해가 극심하니까 죄를 오버워치 쪽에 전부 떠밀어버렸던 거 말이지. 꽤나 인상 깊은 사건이었네.”

 그는 가볍게 빈정거렸다. 휴대폰 너머로 모리슨이 씁쓸하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나라들이 꼭 있었다. 자기네 힘으로만 옴닉과의 전쟁을 이겨보겠다고 하다가, 엄청난 희생을 치루고 나서야 마지못해 오버워치에 도움을 요청하는……. 그런 일에는 꼭 정치적인 문제가 끼어 있었다. 결국 정치꾼들의 밥그릇 싸움의 연장이었다. 

 [하하……. 그래서 말인데 저번처럼 요청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간 또 피해가 너무 클 것 같아서 말이네. 그래서 자네의…….]
 “그래, 블랙워치(Blackwatch)의 차례다 이거로군. 세 시간 내로 준비해주게. 지금 바로 출발하지.”

 그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별 생각 없이 움직이는 것 같은데도 그의 움직임은 퓨마처럼 날렵하고 소리 없었다. 

 […자네 괜찮나?]
 “뭐가?”

 레예스는 저도 모르게 날이 선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는 차라리 지금 일거리가 생긴 게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이 영문도 모르는 분노를 어디다 어떻게 풀어야 할지 종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좀……. 신경이 곤두선 것 같네만. 너무 급하게 갈 것 없네. 한동안은 대치 상태가 계속될 것 같으니 말이야.]
 “괜찮아. 일거리가 생기니 훨씬 낫군.”

 아주 거짓말은 아니었다. 정말로 타이밍 좋게 옴닉들을 시원하게 때려 부술 일거리가 생겼으니 말이다. 그는 전화를 끊고 겉옷을 걸친 채 조용히 앙겔라의 집을 빠져 나왔다. 쌀쌀한 바람이 그의 얼굴을 때렸다. 허나 그는 개의치 않고 발걸음을 빨리 했다. 새벽이라 사람이 없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의 얼굴은 마치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악마처럼 끔찍하게 일그러져 있었으니까.

 “옴닉이란 옴닉은 모조리 씨를 말려주지.”

 낮게 읊조리는 그의 입에선 흡사 독기가 새어나오는 듯했다. 더 이상 앙겔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만들지 않기 위해. 그에게 재주라고는 죽이고 부순다는 것밖에 없었다. 적의 공격이 있다면 공격 받기 전에 제거할 뿐이었다. 그게 그의 방식이자, 블랙워치의 방식이었다.

 이 날, 그의 증오심에 새로운 덧칠이 있었다. 그는 그것이 앙겔라 치글러를 지키는 길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걸 후회하게 되는 건, 조금 나중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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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0.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1. 뜨거운 기억 편 완결입니다.

2. 그동안 바빠서 못 썼는데 드디어 이 단편도 마무리짓네요.

3. 의도치않긴 했지만 단편들끼리 지금 이어지고 있습니다.

4. 초반에 시트콤 분위기로 가볍게 간다는 건 이미 물건너갔네요...

5. 하지만 다음 편은 꼭 느긋한 분위기의 편을 들고 올겁니다.

6. 하지만 이 둘의 끝은 아시죠? 아이 괴롭히는거 너무 씽난다 헤헤

7. 그럼 이만 총총

8. 다음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