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0년간 유럽의 안보는 미국이 주도하는 집단안보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책임졌다. 이 체제는 소련(러시아)을 견제하고, 유럽대륙 안에서는 더 이상 분열해서 싸우지 않는 구조를 굳혀 영구 평화의 가능성을 높였다. 2000년 전 팍스 로마나(로마제국하의 평화) 이후 최장기 평화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동맹국들을 비난하고,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연합(EU)의 주축이 반발하면서 대서양동맹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유럽의 안보 환경과 나토의 위상 변화는 미국의 군사 헤게모니 및 세계 차원의 세력 균형과 연결된 문제라 눈여겨볼 수밖에 없다. 





유럽의 안보에서 전통적으로 결정적인 요소는 세력 규합이다. 미국과 유럽은 1949년 나토라는 집단안보체제를 구축했다. 미국은 소련과 공산주의의 확장 저지를 지상 목표로 유럽의 대부 구실을 해왔다. 나토는 헤이스팅스 이즈메이 초대 사무총장이 말한 대로 “소련을 막고, 미국을 끌어들이고, 독일을 억제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이 도전 과제를 안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 분담금이나 제대로 내라”며 유럽 정상들을 거듭 꾸짖었다. 사실은 틀린 주장이다. 회원국들은 정해진 분담금을 낸다. 그의 말 중 틀리지 않은 것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지출을 늘리라는 주장이다. 냉전이 한창일 때 40만명에 이른 유럽 주둔 미군은 현재 6만명대로 줄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부담이 여전히 부당하게 높다고 주장한다. 그가 지난 7월 <폭스 뉴스> 인터뷰에서 3차대전을 감수하면서까지 발칸반도의 소국 몬테네그로(지난해 나토의 29번째 회원국으로 가입)를 지켜줘야 하느냐고 말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개별 회원국이 공격받으면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자동 개입한다는 나토의 핵심 규약에 의문을 제기한 셈이라서다.





유럽 국가들이 국방비를 늘리더라도 두개의 장벽이 존재한다. 첫째, ‘통합 유럽군’은 완벽한 형태로 만들어지기 어렵다. 유럽 국민국가들은 초국가를 지향하는 유럽연합에 많은 것을 양보했지만 국방과 사법 등 본질적으로 국가가 독점하는 권한은 내놓지 않았다. 다음은 독일의 ‘재무장’과 군사적 주도권을 주변국들과 미국, 러시아가 받아들일 수 있느냐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은 1990년 “나토를 동쪽으로 1인치도 확장시키지 않겠다”(제임스 베이커 미국 국무장관)는 약속에 독일 통일에 합의해줬다. 이때 아버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통일 독일을 나토에 남겨두도록 소련과 협상한 것에는 독일의 손발을 계속 묶어둔다는 포석도 있었다. 지금도 독일 주둔 미군은 3만5천명으로 유럽에서는 가장 많다. 동맹국을 방어하는 동시에 과거의 전범국에 족쇄를 채우려는 목적은 주일미군도 같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