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반(反)페미’를 선언한 여대생 A씨는 페미니즘 동아리로부터 받은 실망감을 이같이 털어놨다. 2015년 8월 ‘유사강간’을 당했다는 그는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결심에 자신의 사연을 대학 내 익명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커뮤니티인 대나무 숲에 공유했다. 이후 한 페미니즘 관련 동아리에서 “함께 연대하자”, “우리는 서로의 용기가 될 수 있다”며 A씨에게 연락이 왔고, 그는 고마운 마음에 피해 내용을 공유했다. 그러나 한 달쯤 지나 페미니즘 동아리에 대한 A씨의 믿음이 무너졌다. 해당 동아리가 동의 없이 자신의 피해사실을 언론에 제보하고 페미니즘 활동에 사용하는 등 2차 피해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A씨가 불쾌감을 피력하자 동아리 측은 되레 A씨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그는 SNS상에서 여성인권문제를 다뤄온 다른 페미니즘 동아리에 이 같은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그 동아리 역시 바쁘다며 사양했다. 결국 A씨는 “페미니즘에 너무나 큰 실망을 했다”며 피해사실을 지난해 7월 한 시민단체에 제보했다.






18일 여성계에 따르면 페미니즘에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이 나오고 있다. 여성의 인권신장과 성 평등을 위한 페미니즘이 변질돼 같은 여성이 페미니즘의 피해자가 되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 대학의 여학생이 많은 ‘여초학과’에 다닌다는 B씨의 경우 ‘이수역 폭행사건’이 이슈화하던 지난해 11월 대학 선배에게 ‘페미니즘’을 강요받아 괴로웠다고 토로했다. 그는 “당시 이수역 폭행사건 청와대 청원이 30만명 돌파를 앞두고 있던 상황에서 한 선배로부터 지속적으로 페미니즘 활동에 참여하라는 압박을 받았다”며 “저와 동기들은 청원내용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선배 성격이 워낙 불같아서 수차례 페미니즘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피해 사례가 잇따르자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의 저자 오세라비 작가와 일부 누리꾼은 이달 초 사연들을 모아 자체적으로 사례집까지 내겠다고 나섰다. 오 작가는 “메갈, 워마드 이후 여성인권을 위한 페미니즘이 여성에게 또 다른 피해를 끼치는 결과를 낳고 있다”며 “피해 사례를 제보받을 때마다 심각성을 느낀다”고 했다.






급기야 일부 극단적이고 과격한 페미니즘에 실망을 느껴 여성들이 등을 돌리는 이른바 ‘안티 페미니즘’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영상플랫폼 유튜브에는 최근 ‘안티 페미’, ‘반페미’를 주장하는 여성들의 영상이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한 유튜버는 지난 2일 올린 영상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혐오적인 범죄에는 분명 고쳐나가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재 페미니스트들의 활동이 여권신장에 도움을 주지 않고 하락시킨다”며 ‘안티 페미니스트’가 된 배경을 설명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 15일 발표한 ‘한국사회의 성평등 현안 인식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20대 여성 79.4%가 ‘우리사회 성차별 문제에 대해 관심 있다’고 응답한 반면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다는 20대 여성은 42.7%에 그쳤다. 성차별 문제와 페미니즘이 무관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격차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 20대 여성의 비중도 지난해 7월 48.9%에서 11월 42.7%로 줄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마경희 정책연구실장은 “워마드 논란 등 페미니즘이란 단어에 부여된 일종의 사회적 낙인의 영향으로 성차별과 페미니즘 사이의 인식 차이가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