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종. 이윤


말이 없다, 나약하다, 불쌍하다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는 몇 안되는 이미지입니다


그의 어미는 장희빈이었습니다.

아비인 숙종이 어미인 장희빈을 내치고

사약을 내려 죽이려 할 때


고작 14살에 불과하던 세자는

아비에게 제발 어미의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애걸 복걸하고

노론 신하들에게 매달려

제발 어미를 죽이지 말아달라고 빌고 또 빌었지만


"이게 다 세자를 위한 것입니다" 라며

차갑게 세자를 뿌리치는 노론 신하들 속에서

울면서 어미의 죽음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아니 실제는 그 임종 장면조차 제대로 볼 수가 없었죠

어미를 죽이기로 결정 했단 말을 듣고

잠도 못 자며 울며 기다리다가

어미가 아직 안죽었단 소식을 들으면

 혹시나 어미가 살수 있을까 살려주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여기저기 다니며 살려 달라고 빌고


결국 자신의 어미도 아닌 노론 신하들이 내세운

인현왕후의 상중이란 이유로 형식상 아들이된 세자는

어미가 죽어갈 때도 그저 울면서 빈소를 지켜야 했습니다.


그런 세자가 왕이 되면

자신의 어미를 죽인 노론에게 세자가 해악을 가할까 염려하여

노론은 세자를 폐하고 싶어했습니다.


  숙종의 병세가 악화되어 드러눕자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시킨 것도 그 때문이죠.

말이 좋아서 대리청정이지

나약한 세자를 정치판 전면에 나오게 하여

만약 조그만한 실수라도 하게 되면

그걸 꼬투리 잡아 끌어 내리고자 한 계략입니다.




그도 그걸 너무도 잘 알았기에

꼬투리를 안잡히려고 필사적으로 말을 조심했습니다.

말을 조심하는 정도를 넘어 아예 극도로 아끼게 됩니다.


오직 한 마디만 했습니다.


"유의하겠다"


즉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거만 하며 끈질기에 버틴거죠


노론 신하들이 이게 아닌데? 하고 느끼었는지

세자를 압박을 하기 위해 무슨 의견이나 비답을 달라고

면전에서 윽박 질러도


그에 대한 답변도

"유의하겠다" 였습니다


말 그대로 목숨을 건 대리청정이었기에

그 한 마디도 아끼고 아끼어 뱉은것이죠

그런 세자가 단 한번 화를 낸 적이 있습니다.


승지가 아예 늦게 입시를 해

세자를 기다리게 한 사건이죠


지금으로 치면 비서가

자신이 모시는 사장이 바지사장 같다고

늦게 출근하며 사장 보고 기다리게 시킨 것입니다.


그때 경종이 폭발하여

전부다 물러나라!! 너희가 감히 이럴수 있냐며

노발대발하며 승지들의 죄를 추궁한 적이 있습니다

세자가참고 참은게 터진 것이죠

 

근데 그 조차 거꾸로 세자가 질타를 받았습니다

숙종은 지나친 행동이다 질책을 했고

세자는 자신의 행동을 거꾸로 사과를 해야했습니다.



죄인의 아들이기에 목숨을 걸고 행동 해야 하는

당시 경종의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였을지 상상이 안 될 정도입니다.  

노론에서 당시 경종에 대해 평가하길


"세자는 때때로 벽을 향하고 앉아서 조그마한 소리로 중얼거려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했다.

또 한밤중에 계단과 뜰 사이를 방황하기도 했고 정신도 안정되지 못했으며 지각도 불분명했다.

숙종의 상에도 한 번도 곡소리를 내지 않았으며 까닭 없이 웃기까지 했다."


노론의 악의적인 평가가 담겨 있다고는 하나

세자시절 경종이 어떤 정신적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


경종을 주제로 한 방송에서는 그를 이렇게 평가했죠

"횟집 수족관에 같혀 있는 생선의 심정일 것이다"


노론은 세자에게 꼬투리를 잡고자 부단히 노력 했지만

아예 말 조차 하지 않는 세자를 두고 도무지 빌미를 잡을 수가 없었고


그러다 결국

 숙종이 1720년 승하하게 되면서

아슬아슬하게 지위를 붙잡고 있던 세자가

드디어 왕으로 즉위를 하게 됩니다  


숙종의 아들이자 영조의 형인

경종입니다.

 

원래 경종은 어린시절 그 총명함으로 주위의 칭찬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특히 글씨를 매우 잘 써서 경종의 어필을 두고

신하들이 앞다투어 글씨를 가지고자 했을 정도였다고 하죠


그런 경종이 즉위 한 후

신하들이 경종에 대해 평가 하길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주상은 평상시에 말과 웃음이 없어 사람들이 그 마음을 측량할 수가 없었다'


경종은 왕으로 즉위한 후에도

기록에 따라 실어증이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로

말 자체를 극도로 하지 않았고 감정을 표정으로 드러내지도 않았습니다.


여전히 "유의하겠다" 만 반복할 뿐이었죠.


그도 그럴수 밖에 없는것이

형식상 왕으로 즉위는 하였지만

세상은 여전히 노론 신하들의 세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삼정승, 육조, 비변사, 삼사를 비롯한 행정기관 전체

군사를 움직이는 병권은 물론 유림들, 성균관의 학생들도

전부 노론 사람이었으며  

왕을 모시는 내시, 궁인들도 노론 측에서 심어둔 사람들이었죠


경종과 같은 기구한 가족 사연을 겪은 왕이

조선시대에 한번 존재 있던 적이 있습니다.


바로 연산군입니다.


어미를 죽인 신하들에게 복수를 했다가

그 신하들이 반정을 일으켜 쫓아낸 왕이죠.


연산군은 어미가 죽을 때 어린이였기에

그 죽음을 본적이 없음에도 저 지경이 되었는데

경종은 자신의 눈앞에서 어미가 처참히 죽는걸 직접 본 인물입니다


노론은 그런 경종을 예의주시했고

경종도 그런 노론을 경계했습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노론과 대립하던 소론측의 조중우란 신하가

경종이 왕으로 즉위하자 상소를 올립니다.




왕이 된 경종의 친어머니인 장희빈의 명호를 회복하자


장희빈의 아들 경종이 새로운 왕이 즉위하였으니

왕의 어머니 명예를 회복해 주자는 뜻입니다.


하지만 곧 노론 신하들과 사헌부가 이를 탄핵하게 되고

경종은 이런 노론의 눈치를 보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조중우를 벌하라고 지시하게 됩니다.


그렇게 왕의 명예를 회복하자 주장한 조중우는

끌려가서 심문을 받고 잔인하게 매를 맞아서 죽임을 당합니다.


이걸로 끝난게 아니죠

 이는 더 나아가 이런 사건까지 벌어지게 됩니다.



이번에는 노론 측 신하인 윤지술이

경종의 친어머니인 장희빈의 악랄한 악행이 역사책에 미흡하게 기록되었다고

왕의 어머니를 더 악랄한 년으로 확정해야 한다

대놓고 패드립 하는 상소를 올리는 지경에 이릅니다.


왕이 아닌 일반인도  부모를 욕하는 패드립을 듣게 되면

당연히 그에 분노하기 마련인데

당쟁의 과정에서 희생당한 왕의 어미를 대놓고 까며

신하가 왕에게 패드립을 하는 기상천외한 상황이 터진 것이죠

 

평소 말이 없고 조용한 경종도 이는 못참고

윤지술을 유배 보내라고 명령합니다.

근데 또 사헌부를 비롯한 노론 신하들이 반대를 하고

성균관 유생들까지 나서서 이를 반대하게 됩니다.


경종은 결국 윤지술을 풀어주게 됩니다.


아비인 숙종시절이었다면

환빠 숙종의 전매특허인 환국을 일으켜도 전혀 손색이 없을 사안인데

경종은 그런 힘이 없음을 보여준 사건이죠.


그렇게 경종 즉위 1년

노론은 정말 해선 안되는 짓을 하기에 이릅니다.


"연잉군을 왕세제로 임명해 주소서!"


 






당시 경종의 나이가 고작 32살이고

왕후의 나이가 겨우 17살이었습니다.


과거 경종이 세자로 책봉이 될 때

노론에서 극렬히 반대를 한 가장 큰 이유가

노론 측 왕후인 인현왕후의 나이가 22살이니

언제든 후사를 볼 수 있다는 논리였죠


그랬던 노론 신하들이

17살의 왕후가 멀쩡히 살아 있고

왕의 나이가 32살인데


지금 당장 후사가 없다는?? 이유로

왕의 동생인 연잉군을 왕세제로 임명하라 주장한 것이죠.

일설에는 경종이 고자여서 후사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는 당연히 공식화 된 내용도 아니었고 

 감히 살아있는 왕에게 후계자 문제를

신하가 거론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역모에 가까운 행동입니다.   


심지어 이런 엄청난 주장을 한게

경종이 왕으로 즉위 한지 고작 1년만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래요 딱 1년 만의 일이죠.



한 줌도 안되는 소수세력인 소론이 경종을 지지하고

권력을 모두 장악한 노론이 숙종의 또 다른 아들

연잉군(훗날의 영조)을 밀던 시점에서


경종이 왕으로 즉위 한지 고작 1년만에

노론 신하들이 왕에게

너와 너의 자식을 인정 할 수 없으니

우리가 밀고 있는 왕자 연잉군을 다음 후계자인 왕세제로 임명하라

대놓고 역모를 벌인 사건입니다.  


그리고


경종은 이를 "승낙" 합니다.


...



왕의 후사가 없으면 건강을 찾으시고

조속히 왕후와 후사를 얻으시라고 충언을 해야 할 신하가

어찌 감히 젊은 왕을 능멸하고 동생을 후계로 세우라 하냐!! 며

눈물 흘리며 통곡하는 소론 신하들의 읍소에도


대체 무슨 생각을 가진 것인지

말도 없고 표정도 없는 왕 경종이

그냥 순순히 승낙을 한 것입니다.


세자 시설 극심한 스트레스로 얻은 병으로

평소 병약하고 몸이 안좋았던 경종이

후사를 못 본다는 것을 스스로 알았는지

아니면 노론 신하들의 겁박에 굴복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조선 건국이래 이방원을 제외하면

단 한번도 전례가 없는 왕의 동생을 다음 후계자로 임명하는 것을

경종이 허락한 것이죠.


더 기가막히는 일은 이런 왕세제 임명을

청나라에 알리러 간 노론 신하들의 작태에서 일어납니다


청나라에서 이 소식을 듣고

"님들아 이게 말이 되는 주장임?" 하며 의아하게 여기자


사신으로 간 노론 신하들이 그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왕이 발기불능이라 자손을 둘 수가 없다"


사실상 이 발언 하나로 집안을 멸족해도 부족할 정도의

참람한 언사로 사실상 경종을 모욕한 것을 넘어 능멸하는 발언이죠

그런짓을 무려 청나라에 외교 사절로 가서 했던 것입니다.


매번 순순히 노론의 주장을 받아 들이는

경종의 나약한 모습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노론 신하들은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더욱 무리한 주장을 하게 됩니다.

 

"왕 세제에게 대리청정을 시키소서"


이게 연잉군을 왕세제로 임명한 지 2달만에

왕세제 책봉식이 거행 된지 고작 보름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


그리고


경종은 이를 "승낙" 합니다.


여전히 말이 없고 무표정하며

어늘하게 나약한 왕은

대체 무슨 생각을 가진 것인지

또 그냥 승낙해 버립니다.


근데 이건 사실은 아예 말이 안되는 것이죠

왕에게 너 왕하지 말라고 한 사건이니...


조선이 유교의 충효사상을 근본으로 삼고

왕정체제를 유지하는 국가인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현재 즉위하는 왕이 신하들에게

대리청정을 하겠다고 하면

절대 안된다고 하는게 정답이고

신하들이 극구 말리며 안됩니다! 라고 메달리는게

정상적인 상황입니다.


유교의 충효를 근본으로 삼는 조선에서  

왕이 대리청정을 언급했을 때 

"아니되옵니다" 말고는

다른 정답이란게 존재할 수 없죠


그런데

왕이 그걸 또 조용히 승낙하는

기막힌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아무리 힘이 없는 소론이라고는 하지만

조선 건국이래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고

 발칵 뒤집어지며 난리가 납니다

소론 신하들이 맹렬하게 노론을 탄핵하죠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노론 신하들은

그제서야 "아니되옵니다"로 선회하여

대리청정 승낙을 거두워 줄것을 요구하고


무슨 생각인지 알수 없는   

경종은 또 조용히 "승낙을 철회" 합니다.


근데

이후 상당히 일이 흥미롭게 진행 됩니다.

얼마 뒤 경종이 뜬금없이

연잉군에게 "대리청정"을 시키겠다고


다시 대리청정을 하라 선언한 것이죠


당연히 이번에는 소론, 노론, 연잉군 모두가 나와서

절대 안되는 일이라고 말리며 모두가 반대를 합니다

그럼에도 경종이 대리청정의 뜻을 끝까지 거두질 않습니다.


???뭐지


그리고 여기에 노론이 크게 낚이게 됩니다. 파닥 파닥~

경종이 진짜로 대리청정을 시키고 싶어해서 저러는 것이다! 

이게 왠 떡이냐? 여기며 착각을 한 노론은


기왕에 노론이 조정도 장악했으니 왕이 뱉은 말 그대로 대리청정이 결정되도록

소론의 대리청정 반대 상소가 올라오면 승정원을 통해

모두 물리쳐 숨겨 버리며 확정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날 밤 소론 측 신하 조태구가

왕과의 독대를 요청하며 입궁하게 됩니다.

당연히 대리청정을 해선 안된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이고

당시 왕의 비서실인 승정원을 장악한 노론 신하 홍계적이

조태구의 알현을 막고자 거꾸로 조태구를 처벌해야 된다고 날 뛰고

최대한 왕을 못 만나 보도록 막아 보았지만

세자시절 부터 모셔온 내관이 조태구가 궁에 왔음을

왕에게 알려서 결국 독대가 성사가 됩니다


그 자리에서 조태구가 통곡하고 울면서

왕의 자리는 결코 사사로운 자리가 아니니

절대 대리청정을 해선 안된다고 간언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경종은 "대리청정 명령을 철회" 하죠


이 소식이 알려지자 노론의 4대신을 비롯해 육조관원들이

크게 놀라서 난리가 납니다.

그당시 모습을 마치 변란이 터진것과 같았다고 하는데

노론 신하들이 야밤에 궁궐로 죄다 달려와 납작 엎드려

그제서야 때늦은 "대리청정 반대"를 재차 주장했지만

그렇게 왕의 대리청정 명령에 반대를 하지 않고

이를 수용하려고 시도한

노론은 빼박 역적으로 확정이 되게 됩니다


왕의 대리청정을 실현 시킨 것도 아니면서

이를 반대 조차 안하고 부추겨서 사실상 불충한 역모를 만천하에 시인하는

최악의 상황에 떨어져 버린 것이죠   

 

다음 날 이대로 죽을 수 없다 여긴 노론 신하들이 조정에 나와

독대를 하며 반대한 조태구가 죄가 있다,

승정원이 막았는데 어찌 들어 온 것이냐?

은밀하게 환관과 교통해 오며 결탁했다

절차가 잘 못되었다 조태구를 벌해야 한다 등등의

주장을 마구 쏟아내는데


이제까지 조정에서 신하들을 대할 때


마치 실어증 환자 마냥 말 없이 앉아  

어눌한 말투로 조용하고 나약하게 그저 순응만 하던


경종이


갑자기 대노하며 일갈을 합니다



"결탁이니 교통이니 하는 따위의 말은 자못 심히 무엄하다.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






마치 유주얼서스펙트급 반전 처럼


나약하고 병약한 왕으로

어눌하게 말 조차 없던

그 경종이


노론의 무엄하고 참람한 무례를

매번 순응하고 그저 받아주던

그 경종이  


노론을 상대할 모든 명분을 갖추게 되자 마자

갑자기 급 반전을 하며 그동안에 숨겨왔던 모습을 드러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변해 버린 것이죠.


실록에는 이 당시의 모습을


"하룻밤 사이에 건단(乾斷)을 크게 휘둘렀다’ 라고 기록 합니다

왕을 하늘에 빗대어 용단을 내렸단 말이죠


곧이어 목호룡의 고변이라는 노론이 역모를 꾀한다는 상소가 올라오자

노론 신하들은 가당치도 않다고 놀라서 설설 기면서 살려달라고 읍소를 하였지만


경종은 그 상소를 오히려

"생각한 바를 솔직하게 올린 것을 깊히 받아들인다! " 라고 선언하고


조선이 왕의 나라임을 마치 증명이라도 하듯

노론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에 돌입합니다.




경종은 마치 그동안의 오랜 한을 풀기라도 하듯

노론에 대한 잔인하고 완벽한 숙청을 감행하며


노론의 영수를 비롯해 노론 4대신을 처형하고

비변사, 육조, 삼사에 있는 노론 일파를 일거에 색출하여

전부 역모로 처형시킵니다

수 많은 노론 명문가들이 줄줄이 엮여서 형장으로 끌려갔죠


과거 경종의 어미 장희빈에 대해 패드립을 날렸으나

노론의 반대로 유배에서 풀어 준 윤지술은

이번에는 역모라는 엄청난 죄로 일족을 멸족시키죠


이 당시 노론 4대신을 비롯해 노론 신하 60명이 역모로 처형되고

160명이 유배형을 받으며 줄줄이 엮어서 전부 숙청이 되었습니다.

이를 신임옥사라 부릅니다

 


참으로 신기한게

경종은 세자 시절 부터 즉위 후

병약함을 트레이드 마크로 달고 살았습니다

병에 걸려 앓아 누웠다는 기록만 3개월에 한번씩 나올 정도로

매번 병에 걸려있던 왕이죠


근데 이 노론 대숙청의 기간에는

단 한번도 아프다. 병에 걸렸다는 기록이 안나옵니다.  

말 그대로 유주얼서스펙트의 절름발이가

멀쩡하게 걷게되는 순간이죠



이때 경종의 갑작스런 돌변과 노론을 대거 숙청한 사건을 두고

그저 유약한 경종을 강경파 소론이 부추겨서 한 것이다? 라는

일각의 주장도 있었습니다.


근데

한 가지 잊은 중요한 사실이 있죠.


경종의 부모가 어떤 사람들이고

경종이 누구의 아들인지 말입니다


아비가 조선 최고의 카리스마를 가진 왕이자

환국이란 이름으로 신하들 살륙하기로 유명한

환빠 숙종이고





어미가 조선에서 가장 유명한 궁중 암투 싸움의 주인공인

그 장희빈입니다.





언제나 조용하고 말이 없으며 유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그 사람은

사실은 그 무서운 분노를 참고 참으며 숨기고 있던 사람이었던 것이죠.


세자시절 자신을 노리던 세력들

즉위 하자 마자 자신을 모욕하고 능멸하던 세력들

모두 그저 묵묵히 참고 참고 견디다

절호의 기회가 오자 그것을 놓치지 않고

한번에 덫을 놓아 싹쓸어버린 것입니다.


이 사건에 대해 사관이 평가 하길 다음과 같이 합니다


 

"왕께서는 평소에 지나치게 얌전하셔서 흉악한 무리들이 전하를 업신여겼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하늘과 땅을 뒤집듯 피의 숙청을 하시니

전하께서 본성을 숨기고 계셨음을 이제야 알겠다"

 




그리고 마지막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연잉군의 존재입니다.


노론이 강력하게 밀던 왕자이자

왕세제로 옹립한 인물

이 모든 숙청의 단초가 된

대리청정의 당사자이기도 한


연잉군.


심지어 역모의 수괴로 고발되기까지 했습니다

연잉군은 그때 마다

"저 같은 죄인이 어찌 세제가 됩니까 폐해달라"고 간청했죠...

하지만 경종은 절대 연잉군을 건들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보호했습니다.


노론의 숙청이 한창 대대적으로 진행되며 소론 강경파가 연잉군의 죄를 탄핵하자

다시 한번 극대노해서 소론에게 한번만 더 연잉군을 엮으면

너네도 끝장 낼거라고 일갈을 가했고 소론도 놀라서 이후 설설기게 됩니다.


이유는 경종과 연잉군 단 두명 유일하게 남겨진 효종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효종혈맥, 삼종혈맥(효종-현종-숙종) 으로 지칭되는

이 혈통은 인조반정 이후 성립된 조선 후기 왕실에서

가장 중요한 가장 정통성있는 혈통이됩니다.

이 혈통이기 때문에 왕이 정통성을 가지는 것이고

왕이 힘을 지니는 이유와 근거가 되는 것이죠

영조가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를 끝까지 지킨 이유도

바로 이 혈통이기 때문입니다.


경종이 후사가 없는 상황에서

연잉군이 죽게 된다면 효종의 후손은 끊어지니

경종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존재입니다

훗날 영조가 되는 연잉군과 형인 경종은

이런 애증의 관계였다고 생각되는데

영조도 자신을 보호해주고 지켜준 경종을 두고

말년에 매번 황형을 그리워하며 슬퍼했다고 하죠


그리고 또 다른 반전이


그런 이 경종은

바로 그 왕세제 연잉군이 올린 간장게장을 먹고


어느날 급사를 하게 되니...


조선시대 최대 음모론이자

지금도 각종 드라마에 나오는 음모론인  

경종 독살설이 이때 만들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