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솔로로 생을 마감한 유명인 10명





1. 데이비드 흄 




'영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일컬어지는 데이비드 흄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흄이 독신을 고집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열 여덟살이 되자 사유의 새로운 장면이 열리면서 온통 거기에 몰두하기 위해 '다른 모든 즐거움이나 업무를 내던져 버리게됐다"고 말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온 정신을 사유하는 데 쓴 탓으로 추측되고 있다. 

흄은 "지적생활을 하는 데 가장 장애가 되는 요소는 중병을 제외하고는 가족이다"라거나 "여성의 경우 아이를 두 명 이상 낳아 키워야 한다면 지적생활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독신 생활을 추천했다. 

하지만 흄은 거친 스코틀랜드의 억양과 후줄근한 차림새라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긴 했으나 여성들에게 꽤 인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 라이트 형제



인류에게 비행기를 안겨준 라이트 형제에게 여자는 비행기보다 흥미로운 것이 되지 못했던 것 같다. 라이트 형제는 오로지 비행기에만 열중하며 여자뿐만 아니라 술과 담배도 가까이 하지 않았다. 결국 형과 동생은 모두 독신으로 생을 마감했다. 





3.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결혼을 하지 않고 평생 솔로로 지냈다.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제자이자 동반자였던 프란세스코 멜지가 모든 유산을 상속했다.

하지만 그가 동성애자였다는 주장도 제기됐는데 프로이트는 '다빈치와 그의 유년시절 기억'이라는 책에서 "다 빈치가 과연 욕정을 느끼고 여자를 안아본 적이 있을지 지극히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또 프로이트는 다 빈치가 성적인 것을 혐오해 극도로 절제된 생활을 했으며 성 에너지를 예술 에너지를 전환시키기 위해 매우 힘겨운 전쟁을 벌여나갔을 것이라고 봤다.

프로이트 외에도 많은 이들이 다 빈치가 동성애자일 것이라고 지적했다.다 빈치가 자신의 그림이나 조각에서 여자의 음부를 부정확하게 묘사한 것이 그 증거로 제시됐다. 또 다 빈치는 제자들을 미남 청년들로만 뽑아 이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 빈치는 성교에 대해 "너무나 혐오스러운 것이라서 만약 그것이 관습으로 이어져 내려오지 않는다면, 아름다운 얼굴과 관능미가 없다면, 인간은 얼마 못 가서 멸종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4. 쇼펜하우어 



염세주의적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여자에 대해서도 염세적인 입장을 취했다. 젊은 시절 사진에서 그는 꽤 괜찮은 외모를 뽐냈으나 노년시절의 사진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홀아비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쇼펜하우어는 어머니 요한나와 불화를 겪으면서 극도로 여성을 혐오하고 멸시하는 성향을 갖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랑이 없다'는 에세이에서 이러한 성향을 분명히 나타냈는데 사랑을 종족을 보존하려는 생물학적 본능에서 기인하는 순간적인 감정이라고 정의하면서 "나는 여자보다 개가 더 좋다"고 말했다. 

또 쇼펜하우어는 "결혼한다는 것은 권리를 반감시키고 의무를 배가시키는 것"이라는 결혼에 관한 유명한 말을 남겼다.






5. 아이작 뉴턴 



뉴턴이야말로 진정한 마법사였다. 많은 이들은 뉴턴이 동정을 지킨 상태로 땅에 묻혔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뉴턴은 물리학, 수학, 연금술 등을 연구하느라 사회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뉴턴은 동료 교수들과 담소도 거의 나누지 않았으며 연구에 미친 나머지 눈에 압력이 가해질 때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알기 위해 자신의 눈을 바늘로 찌르기도 했다. 

그가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은 것은 지독한 여성 혐오증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뉴턴의 아버지가 죽은 후 어머니가 얼마 안돼 40살 연상의 목사와 결혼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뉴턴은 새 아버지와 어머니가 미워서 집에 불을 지르려 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또 뉴턴은 여성 혐오증으로 절친인 존 로크에게 "여자 문제에 말려들게 했다"며 편집증적인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이는 뉴턴이 양성애적 성향으로 인해 평생 갈등을 겪었다면서 여성 혐오로 인해 자연히 관심이 남성에게 집중될 수 밖에 없었다고 동성애설을 제기했다. 






6. 에밀리 브론테



독신으로 생을 마감한 유명인들이 남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폭풍의 언덕'을 쓴 에밀리 브론테 역시 모태 솔로였다. 

사실 에밀리 브론테가 독신이었던 것은 30살 젊은 나이에 요절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당시 영국에서는 여성의 수가 남성의 수를 크게 웃돌아 독신과 만혼이 흔했다. 에밀리 브론테의 친언니이자 '제인 에어'를 쓴 샬롯 브론테도 38살의 늦은 나이에 겨우 결혼에 성공했다. 





7. 베토벤



베토벤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다만 '불멸의 연인'을 그리워하며 편지 세 통을 남겼다. 그 연인으로는 '엘리제를 위하여'의 주인공인 테레제가 유력한 후보로 제기되고 있다. 

베토벤은 여러 명의 여성과 교류를 하긴 했으나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다. 






8. 제인 오스틴



제인 오스틴은 에밀리 브론테와 마찬가지로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그는 첫사랑에 빠져 결혼할 뻔 했으나 남자 쪽 집안의 반대로 결혼이 무산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첫 인상'은 '오만과 편견'이라는 이름으로 개작돼 세상에 나오게 됐다.








9. 폴 에르되시 



현대 수학자 폴 에르되시는 각성제 암페타민을 복용하면서 하루에 4~5시간 밖에 자지 않고 연구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는데 연구에 대한 열의에서인지 또는 여성 혐오에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성적 쾌락이 정말 싫다"는 말을 남겼다.







10. 제임스 뷰캐넌



제임스 뷰캐넌은 평생 결혼하지 않은 유일한 미국 대통령이다. 하지만 그는 상원의원 시절 동료 의원 윌리엄 킹과 동거하기도 했다. 엄밀히 말하면 모태 솔로는 아닌 셈이다. 

뷰캐넌은 킹이 프랑스 공사로 임명돼 헤어지게 되자 지인에게 쓴 편지에서 "고독하고 외롭다. 다른 남성에게 구애해봤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위키트리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