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부고(訃告)란은 최근 영면한 인물 중 세계적으로 울림을 가진 이들을 선택해 집중 조명한다. 최신호(9월 7~13일)가 다룬 이는 네덜란드계 호주인 얀 루프 오헤른(1923~2019)이다. 일본군에게 납치돼 인도네시아에서 3개월 동안 ‘위안부’로 강제 수용됐던 여성이다. 알려진 유럽계 위안부 피해자 중 그간 유일한 생존자였다. 그는 생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사과를 받기 전까지는 절대 죽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그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는 지난달 19일 호주 애들레이드 자택에서 96세를 일기로 노환으로 숨을 거뒀다. 과거를 감추고 평범한 주부이자 두 딸의 엄마로 살던 그는 1991년 고(故) 김학순 위안부 할머니가 최초로 위안부 사실을 공개 증언한 것을 우연히 본 뒤 용기를 냈다. 이듬해 호주 언론에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렸고, 이후 미국·유럽·일본 등지에서 증언 활동을 펼쳤다.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들과도 활발히 교류했다. 자서전 『50년간의 침묵(Fifty Years of Silence)』 은 6개 언어로 번역됐다.













이코노미스트는 오헤른이 인도네시아 일본군 위안소에서 겪은 일도 소상히 소개했다.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부유한 무역상의 딸로 태어난 그는 수녀가 되기 위해 공부 중이었다. 그러다 42년 일본군이 인도네시아를 침공했고, 2년 뒤인 44년 납치됐다. 당시 21세였다. 이코노미스트는 그와 6명의 네덜란드계 여성들이 “(인도네시아) 스마랑의 일본군 사창가(brothel)로 끌려갔다”고 표현했다. ‘위안부’라는 표현 대신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갔음을 강조한 것이다. 루프 오헤른은 ‘위안부(comfort woman)’라는 말을 혐오했다고 한다. “일본군을 위안하는 역할이라는 이 말에 모욕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울부짖고 소리를 지르며 저항하는 오헤른에게 일본군은 칼을 들이대며 옷을 찢고 강간했다(raping)”고 전했다. 그는 나중엔 스스로 삭발을 했는데, 일본군이 그런 자신을 찾지 않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스마랑 위안소에서의 세월은 오헤른에게 평생 상처를 남겼다. 위안소 방마다 꽃 이름이 붙어있던 까닭에 그는 평생 꽃 선물을 제일 싫어했고, 어두워질 무렵만 되면 불안 증세를 보였다. 방마다 두꺼운 커튼을 쳐서 아예 밤낮 구별이 안 되게 했을 정도였다. 전쟁은 일본의 패배로 끝나고 그도 자유의 몸이 됐다. 60년 영국인 장교 톰 루프와 결혼해 호주로 이사했다. 스마랑에서의 악몽은 남편에게만 한 번 얘기했고 그 뒤론 비밀에 부쳤다고 한다. 처음엔 아이도 낳지 않을 작정이었지만 남편의 위로로 마음을 추스르면서 가족도 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