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서 무서운 이야기들 올리시기에 저도 올립니다.


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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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두 강대국이 핵전쟁의 공포에 서로 미친 시대였다.



1950년대부터 미국과 소련은 상대가 핵무기로 자신들을 선제 공격해서 
멸망시킬거라는 악몽에 시달렸다.

핵무기 군축조약은 망상가의 이상주의로 비웃던 시절
유일한 대책은 상대보다 더 많은 핵을 만들어 겨눠야만 안심할 수 있었다.


학자와 지식인들은 기존 핵무기의 수로도 인류를 멸망시키기에 충분하다고 만류했지만
서로에게 상대는 자신을 멸망시키려는 자들이었다.



결국 역대 두 초강대국의 권력자들은 
한밤중 상대국의 선제 핵공격 경보로 시작하는 꿈을 꾸다
경기를 일으키며 깨어나는걸 막겠다며 
인류말살무기를 대량생산했고. 



이 미친 경주로 결국 1980년 초반, 소련의 핵 보유량은 미국을 추월했다.
두 국가의 핵위력은 지구를 20여차례나 멸망시키고도 남을 화력이었다.



1983년 미국 정부는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명명한다.
이 표현은 나치나 일본처럼 미국이 상대를 멸망시키기 전에 부르는 단골 홍보문구였다.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는 1983년 11월 2일에 소련에 대한 '선제 핵공격'
에이블 아처 83 훈련을 하기로 한다.




모스크바의 모든 지도층과 군인들은 극도의 긴장상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에이블 아처 훈련은 '훈련'을 가장한 공격준비며,
미국의 선제 핵 공격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공포가 자라났다.



대한항공 007편이 9월 1일 격추되면서 미국과 소련의 냉전은 그동안의 제3세계 
지역대리전에서 양국이 격돌하는 핵전쟁이 확실시 되어갔고, 
미디어에서는 관련 다큐와 드라마가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1983년 9월 26일 0시.

소련은 미국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 발사 경보를 받는다. 



소련 핵전쟁 관제센터는 첫 발사 경고 후
미국에서 총 5발의 핵미사일이 발사된 추가 인공위성 경보를 받았다.



소련이 보유한 모든 핵 미사일 시설에 일제히 발사경보가 울렸다.
미국의 EMP 핵공격이 도착하는 10분안에 35000여발의 핵 미사일을 발사해야 했다.



발사 직전, 소련 핵 관제센터 당직사령 페트로프 중령이 모스크바에 연락을 보낸다.


"컴퓨터의 오류인 듯하다." 

인류 역사상 혼자서 가장 많은 인간을 살려낸 군인이며 
앞으로도 이 기록이 깨지지는 않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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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담.

몇 시간 동안 긴장감에 감싸인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핵미사일 발사 경보는 인공위성이 햇빛을 ICBM의 발사 섬광으로 잘못 인식해서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 그가 내린 판단은 정말로 도박성이 짙은 것이었다. 일단 미사일 하나가 탐지된 상황에서, 소련 관제센터는 미사일 하나가 날아온다고 해서 핵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었기 때문에 경보가 오류인지 정말인지 알아보기 위해 신중을 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사일이 다섯으로 늘어났고, 지상에 설치된 레이더는 지평선 너머까지 탐지할 수 없으니 미사일이 더 탐지될 때까지 기다릴 여유는 없었다. 거기에 몇 개의 미사일만 감지되었다고 하더라도, 미사일 몇 발을 발사하면 나타나는 EMP효과가 소련 측의 통신망 및 레이더망을 마비시키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공격을 개시하는 작전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럼에도 페트로프는 핵미사일 탐지 시스템이 불안정하다는 문제가 이미 몇 차례 제기된 적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만약 핵미사일이 실제로 발사돼서 '중앙과의 교신이 두절된다고 해도 알아서 전쟁을 수행하는 기계'의 존재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은 컴퓨터의 오류로 보고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우발적인 핵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았으니 영웅으로 칭송받아 마땅했을 것 같지만, 오히려 페트로프는 사건 직후에 한직으로 내쫓겼다. 핵무기 시스템에 결함이 있다는 것은 곧 국가 존망과 직관된 문제였기 때문에, 관련사건과 인물을 1급 기밀로 지정하고 숨기기 위함이었다. 즉, 전 인류를 위해 자신의 지위를 바치게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