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출시한 그리고 출시가 예정된 '그림판당고', '홈월드', '히어로즈 마이트 앤 매직3', '레지던트 이블'. 이 게임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많은 사랑을 받은 원작을 첨단 기술을 이용해 새롭게 꾸며 유저에게 선보이는 작품이다.

신기술을 사용해 유저들에게 다시 선보이는 게임들은 '라스트오브어스'처럼 원작의 해상도를 높여 출시하는 것에서부터 '파이널판타지3'처럼 고전 게임의 그래픽 리소스를 새롭게 제작하고 현대적 감각의 UI를 고안하는 등 넓은 의미의 재창조 혹은 재구성 작업을 수반한다.

이 때문에 리메이크냐, 리마스터냐라는 모호한 경계에 서 있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이 글에서는 모두 포괄하여 '리마스터, 리메이크'로 명명하기로 한다.

'다시 하기 게임'은 패키지 게임에서 쌓아왔던 노하우 덕분에 모바일 게임계에서 먼저 자리 잡았다. 아직 모바일 게임의 흥행공식이 성립되기 이전, 그래픽과 사운드를 현대적 감각에 맞춰 재해석한 '원숭이섬의 비밀 시리즈'라던가 '라스트 익스프레스'처럼 포인트&클릭 방식을 사용하는 어드벤처 게임들이 터치 디바이스 기반으로 상당수 재창조되곤 했다.

이런 움직임은 모바일 게임계를 넘어 일종의 유행이 되었다. 이미 발표된 원작의 해상도를 올리기만 하는 것에서부터 원작을 재구성하는 시도까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 세월은 루루누님의 볼륨을 더욱 굴곡지게 만들었다.




남는 장사, 만족 구매.

상황극을 한번 해보자. 당신은 현재 배가 매우 고픈 상태다. 그리고 주머니에는 이 목소리 밖에 아귀찜 한 그릇을 시켜먹을 돈밖에 없다. 이 상태에서 방송에도 여러 차례 언급되어 검증된 식당에 들어갔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지를 고르겠는가?

가. 예전에 먹어봤는데 맛있었던 아귀찜.
나. 식당의 신기술이 총 집약된 파마산 치즈가루와 말린 청어를 곁들인 아귀찜.

아버지가 남성이고 어머니가 여성이라면 대부분이 '가'를 선택했을 확률이 높으리라 장담한다. 같은 값을 지불한다면, 전혀 경험이 없는 새로운 음식을 고르기보다는 확실히 검증된 음식을 고르는 것이 만족을 얻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당신의 선택은?


게임도 마찬가지다. 자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더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 거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새로운 것보다는 자신에게 친숙한 것을 선택하게 된다.

굳이 합리적인 이유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친숙한 것, 검증된 것을 선택하는 행위는 인지상정이다. 거기에 저 아귀찜을 여자친구와 알콩달콩 나눠 먹었던 좋은 추억이 가미 되어 있다면 두말 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또한, 개발사 입장에서도 '리마스터, 리메이크' 게임의 제작은 실패의 위험성을 줄이고 성공 가능성을 높여주는 방법이다. 신뢰받는 원작의 검증된 콘텐츠가 있기에 출시 전부터 유저들에게 강한 기대감을 불러올 수 있으며 안정적인 선택을 가능하게 한다. 새로운 시스템 설계에 대한 부담감이 줄어들 뿐 아니라 게임성에 대한 사전 검증도 명확해진다. 아울러 완전히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는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발 비용도 적게 들게 된다.

▲ 홈월드 신작이 나온다고 했으면 이렇게까지 기대하지도 않는다. X3 처럼...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리마스터, 리메이크' 게임은 매력 있는 선택지다. 출시 전 화제 몰이에 용이한 데다 이미 검증받았다는 점에서 안전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세워져 있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원작보다 완성도를 높일 수 있어 기술적 발전에 힘입어 뛰어난 몰입도를 끌어낼 수 있다.

우리는 '엑스컴:에너미 언노운'을 통해 청출어람을 경험한 바 있지 않은가. 결국, '다시 하기 게임'은 ‘남는 장사’다. 원작을 그리워하는 팬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팬들을 끌어들여 해당 작품의 생명력을 연장하는 ‘양수겸장’의 묘수이기 때문이다.



'다시 하기 게임'에 대한 부정적 측면?

'리마스터, 리메이크' 게임은 검증된 콘텐츠이긴 하지만, 이에 기대기만 하는 것은 문화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창작의 토양을 훼손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부정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이러한 부정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리마스터, 리메이크' 게임은 하나의 새로운 게임으로서 의미를 지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게임의 가치를 주제와 플롯에만 국한 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달방법으로 보는 시선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앞서 언급한 '원숭이 섬의 비밀'은 마우스를 사용한 포인트&클릭 방식을 터치로 구현해 올드팬들에게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게임이 가진 철학과 내용은 변하게 하지 않으면서 깔끔한 그래픽과 정돈된 사운드로 원작의 명성만을 들었던 이들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었다. UI의 개선 역시 '어택 땅'과 부대 번호 지정 기능이 추가된 '워크래프트2:배틀넷 에디션'을 통해 충분히 입증됐다.

▲ 가이브러쉬가 저리도 훤칠한 청년이었던가


임진왜란 이전에는 누구나 김치하면 백김치를 떠올렸다. 하지만 왜란 이후 고추가루가 전래 되고는 김치는 빨간 김치를 떠올린다는 점에서 양념의 변화가, 시대의 변화가 본질은 간직하면서 새로운 장을 연 것이다.

'리마스터, 리메이크' 게임은 과거의 것에 현재의 옷을 입혀 새로운 것을 탄생시킨 것이다. 재창작이라는 단어와 일맥상통하며 이를 통해 새로운 기술과 과거 감성의 결합 그리고 세대 간의 간극을 줄이는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 추억팔이라도 좋다! 나와만 다오

발 빠른 시대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은 도태되는 지름길이다. '리마스터, 리메이크' 게임이 추억에 기댄 마케팅과 창작 저해를 불러일으킨다는 부정적인 시선을 거두고 작품의 품격을 끌어올릴 방법을 고민할 때다. 게임 미디어의 특성상 부가가치까지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원작의 답습이 아닌 재창작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물론 '리마스터, 리메이크' 게임이 무조건적인 성공을 보장한다고 보기에는 힘들다. '라스트 익스프레스'는 요즘 세대 게이머의 호흡과는 조금 다른 전개로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지금 다시 플레이하기엔 인내할 것이 너무 많았다.

단순히 흥행을 위한 리마스터, 리메이크가 아닌 과거의 감성과 현재의 기술력을 이용해 멋스럽게 게임을 담아 유저에게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보다 다양한 경험을 원하는 시대의 욕구를 반영하지 못한다면 단순히 '추억 팔이'로만 그칠 위험이 있다.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이를 먹은 게임들이 2015년 회춘해 돌아오는 모습을 보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과거의 감동을 고스란히 현재로 환기할 기회를 제공해준다는 점. 그 기회만으로도 나는, 게이머는 행복할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