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카스텐이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이장희의 '한잔의 추억'을 리메이크할 때 묘한 감정이 들었어요. 언제라도 술 한잔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사람이, 나만 알고 있던 보석을 다른 누구와 공유한다는 감정이었거든요. 저만의 보석이 사라지는 것 같았어요.

작년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이하 조조전 온라인)' 개발 소식을 접했을 때도 그랬어요. 제 안에 영롱하게 빛나고 있는 보석이 변색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동시에 들었거든요. 괜히 추억을 건드렸다가 좋았던 추억마저 잊고 싶지 않았어요. 훌륭한 IP를 끌어와서 실패한 게임이 어디 한 두 개인가요.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조조전 온라인'을 플레이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만족스러워요. 추억 보정을 통해 원작이 더 크게 보일 법한데도 그다지 원작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조조전 온라인'을 플레이하면서 떠오른 몇 가지 생각을 적어봅니다.


1.
조홍형이 말했다. "좌절감이 사나이를 키우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조조전'이에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더 좋았어요. '조조전'이 보통 작품인가요. 괜히 현대적 감각에 맞춰 재해석한다면서 이상한 모습으로 바꾸지 않았어요.

띵소프트는 잘 차려진 '조조전'이란 밥상 위에 꽃과 바질을 사용해 아름답게 장식을 했어요. 원작의 특징적 요소는 간직하면서 현재 추세에 맞게 잘 벼려 냈어요. 예컨대 "조홍좌절감이 사나이를 키우는 것이다." 같은 대사로 추억을 끌어내면서도, 새로운 게임에 걸맞은 역동감을 더할 콘텐츠를 잘 살렸어요.

원작 '조조전'과 마찬가지로 허자상과 만나면서 게임이 시작됩니다. 허자상의 물음에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 야망 게이지가 변화하죠. 원작 '조조전'에서는 야망게이지에 따라 스토리 분기가 발생했죠. 시연 버전에서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아마 '조조전 온라인'도 같은 방식일 거라 예상합니다. 플레이 타임이 40시간에 육박한다고 그랬거든요.

전투화면 역시 원작에 충실합니다. 크리티컬 발생 시 등장하는 컷신이나 이펙트가 매우 멋있어진 것 말고는 영락없는 '조조전'입니다. 다들 어릴 때 죽도 휘두르며 '받아라. 이것이 하늘의 검이다!'라고 외쳐본 적 있잖아요? 시연 중 저도 모르게 그 말이 튀어나올 뻔했을 정도였어요.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원터치로 이동과 전투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유닛을 터치하면 이동 가능한 범위와 공격방식이 표시되죠. '파이널판타지택틱스'가 모바일로 넘어오면서 불편한 UI 때문에 성적이 좋지 못했던 걸 생각해보면 띵소프트는 작은 요소로 훌륭한 진화를 이루어냈어요.

터치 횟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원작보다 빠른 진행이 가능합니다. SRPG의 매력인 고민의 맛을 놓지 않으면서도 속도감을 더한 거죠. 전투 정보를 전달하는 화면도 세련돼졌습니다. 표현하는 정보는 같지만, 한눈에 볼 수 있게 잘 표현되어 있어요.

물론 단점도 있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단점은 피아식별이 원작보다 직관적이지 못하다는 겁니다. 아무래도 그래픽이 좀 더 화려해졌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색감의 문제일까요.

▲ 연의편 영천 전투



2.
이득규 디렉터가 말했다. "최고의 픽셀 아티스트들과 함께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원작 '조조전'이 식용유에 구운 달걀부침이라고 한다면 '조조전 온라인'은 올리브유에 구운 달걀부침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비슷한데 풍기는 풍미가 다릅니다.

아마 코에이의 IP이기 때문에, 또 일본 시장 진출도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래픽 작업이 쉽지 않았을 겁니다. 일본 회사의 빡빡한 검수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니까요. 표현의 자유가 제한된 상황에서 디테일과 분위기 모두 놓치지 않은 그래픽 아트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예요.

캐릭터는 깔끔한 2D로 표현했어요. 깔끔하다고 단순하기만 한 건 아니죠. 자세히 보면 세밀한 디테일과 그라데이션 효과도 들어가 있어요. 배경 그래픽은 2D와 3D를 혼용했습니다. 덕분에 원작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더 발전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됐죠.

이득규 디렉터는 지난 21일 인터뷰를 통해 "캐릭터 픽셀 아트의 경우 '라테일', '테일즈 위버' 그래픽 파트장급 이상의 픽셀 아티스트들이 작업하고 있다. 이렇게 대단한 팀을 찾기 힘들 거라 자부한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이 허언이 아니었어요. 근래에 본 최고의 2D 그래픽이었어요.

아마 요즘 추세처럼 화려한 3D 그래픽이었다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겁니다. 창세기전에서 마그나카르타로 넘어갈 때의 충격은 인생에 단 한 번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3.
직장인이 말했다. "자동 전투 없으면 못해요."

스스로 코어 게이머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자동전투를 매우 사랑합니다. 업무적으로 플레이해야 되는 상황이 아니면 자동전투가 없는 게임은 쳐다보지도 않으니까요. 물론 장르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동전투가 없는 모바일 게임은 잔존율은 낮을 수밖에 없어요.

모바일 게임의 최대 장점은 간편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디바이스 성능이 올라감에 따라 PC 뺨치는 고품질의 대작 게임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본질 자체는 변하지 않았어요. 신경을 덜 쓰는, 손이 덜 가는 게임임에는 여전합니다. 자동 전투에 적합한 RPG 시장으로 시장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죠.

자 그럼 SRPG인 '조조전 온라인'도 자동전투가 구현되어 있을까요. 네. '위임'이라는 개념으로 구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자동전투를 하라고 만든 게임은 아니다."라고 말한 이득규 디렉터의 말처럼 자동전투가 이 게임에서 가지는 비중은 미미합니다.

SRPG의 묘미인 생각의 매력을 지키려고 한 까닭이죠. SPRG는 몇 수 앞을 내다보며 판단하고, 실행에 옮기는 장르입니다. 성장으로 귀결되는 최근 모바일 RPG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다만 시대의 흐름 자체를 거부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원작 '조조전'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는 세대는 20대 후반부터 30대 후반까지라고 생각합니다. 구매력이 월등한 세대죠. 업무, 연애, 가정, 육아 등등에 치이는 세대기도 하고요. 그들을 외면할 수 없었을 거로 생각합니다. 먹고 살기도 바쁜 일상에서 각 잡고 하는 게임을 강요할 수는 없으니까요.

'조조전 온라인'의 위임 AI는 그렇게 똑똑한 편이 아닙니다. 원작보다 강화된 지형효과와 상성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어요. 결국, 어려운 스테이지를 깨기 위해서는 직접 플레이해야만 하게 되겠죠. 유성에서 곽가를 살릴 때, 혹은 곽가가 없어 적벽에서 해일 난타를 맞을 때를 생각해보면 직접 플레이하는 게 속 편할 것 같습니다.

▲ 모바일에서는 옛날처럼 일일이 움직이기 솔직히 귀찮을 거에요.



4.
조조전 팬이 말했다. "그럼 파이널판타지10 HD 처럼 추억팔이를 노린 건가요."

지금까지 말한건 연의편이에요. 원작 조조전을 모바일로 리메이크한 모드죠. '조조전 온라인'은 연의편과 전략편을 제공합니다. 연의편을 3스테이지 진행하고 나면 전략편을 플레이할 수 있어요.

전략편은 천하 통일을 목표로 하는 모드로 다른 유저들과 자웅을 겨룰 수 있는 모드입니다. 겉모습은 모바일 전략 게임들과 비슷하게 생겼어요. 은전고, 군량고, 시장들을 업그레이드해 발전해 나가는 모습도 비슷해요.

기본적으로 시스템에 의해 비슷한 전력의 상대를 매칭해줍니다. 상대를 이기면 성과 약탈물을 얻을 수 있고 패배한 유저는 성을 빼앗기는 거죠. 전투는 연의편과 똑같이 진행됩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출진 가능한 장수를 코스트에 맞게 편제해야된다는 정도죠. 쉽게 말하자면 코에이의 '삼국지'시리즈에 '영걸전 시리즈'를 멀티로 이어놓은 겁니다.

천하 통일을 이루고 나면 길드전을 통해 더 값진 보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띵소프트는 이 길드전을 엔드 콘텐츠라고 설명하기도 했죠.

연의편은 필연적으로 콘텐츠 소모를 감당할 방법이 없습니다. 원작 조조전을 옮겨놓은 것이고, '삼국지연의'의 이야기를 사용했기 때문이죠. 출시후 업데이트는 전략편을 중심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연의편으로 게임의 기본을 배우고, 전략편으로 다른 유저와 경쟁하며 재미를 느끼는 구조입니다.

물론 "나는 혼자만 하고 싶은데?"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신 분은 연의편만 즐기셔도 무방합니다.

▲ 원작과는 다르다! 원작과는! 전략편





5
내가 말했다. "그래서 언제 나오는데."

원작 '조조전이' 17년 전 게임이다 보니 20대 미만 유저들은 원작 자체를 모를 수도 있습니다. 우리 같은 아저씨들에게나 '조조전'의 IP가 통하겠죠. 그들에게는 쏟아져 나오는 모바일 게임 중에 하나일 겁니다. 게임 자체를 두고 평가하겠죠.

SRPG가 대중적인 장르는 아닙니다. PC에서도 모바일에서도 마찬가지죠. 게임 자체가 정적이기 때문일까요? 그런 점을 타개하기 위해 '조조전 온라인'은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컷신과 화려한 이펙트가 요즘 게이머 입맛을 공략할 예정입니다.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은 이후 일본과 국내에서 각각 한 차례 FGT를 진행하고 올해 안에 출시될 예정입니다.

이득규 디렉터는 "엄백호를 조조보다 강하게 키울 수 있다."고 말했는데요, 우리 귀요미 허저를 군주로 지정할 날을 생각하며 '조조전 온라인'을 기다려 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