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승리는 재밌다. 약자의 승리는 장르를 불문하고 항상 짜릿한 무언가를 선사한다. 카타르시스라고 하던가. 지난 1월 23일. 리그 오브 레전드 팬들은 약자의 승리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2016 롯데 꼬깔콘 LoL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롤챔스) 스프링 시즌 1라운드 8일 차 1경기. 최약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e엠파이어가 반전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던 스베누 소닉붐을 제물로 첫 승을 거뒀다. e엠파이어 입장에서는 최고의 순간이었고, 스베누 소닉붐에겐 지난 시즌의 악몽을 회상케 하는 최악의 순간이었다.


경기 시작 전, 열에 아홉은 스베누 소닉붐의 승리를 예상했다.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스베누 소닉붐에게는 e엠파이어에게 없는 것이 있었다. 롤챔스 가장 밑바닥을 구르며 1년 간 쌓은 내공. 그리고 실전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까지. 롤챔스 섬머 포스트 시즌과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 등 모든 축제에서 소외된 스베누 소닉붐이 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연습 뿐이었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시간마저 아껴가며 연습에 매진했던 스베누 소닉붐은 결실을 맺었다. 롤드컵 준우승을 차지했던 ROX 타이거즈(당시 타이거즈)를 2015 네이버 KeSPA컵에서 깔끔하게 제압했다. 그 중심에는 '플로리스' 성연준이 있었다. 성연준은 롤챔스 승강전부터 화려한 리 신 플레이로 팬들의 눈을 사로 잡았다. 그의 합류는 팀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이제 스베누 소닉붐은 모두의 기대를 받은 팀이 됐다.

그렇게 맞이한 롤챔스 첫 경기. 상대는 '3강'으로 평가받는 kt 롤스터였다. 스베누 소닉붐은 패배했다. 그래도 그 패배는 예상 범위 내였다. 롤드컵 8강에 올랐던 kt 롤스터는 한 수위의 운영과 밴픽을 선보였다. 기대를 모았던 성연준도 '스코어' 고동빈에게 힘을 쓰지 못했다.

그러나 스베누 소닉붐은 e엠파이어에게 패배했다. 이는 본인들은 물론 팬들도, 전문가들도 쉽게 예측할 수 없었던 '이변'이었다.



[Mistake 1] - 능동적이지 못한 밴픽.


한 번씩 주고 받은 양팀. 3세트 밴픽이 시작됐다. e엠파이어가 성연준의 리 신을 밴했다. 괜찮다. 예상 가능했다. 하지만 e엠파이어의 다음 밴 카드 두 장이 심상치 않았다. 리산드라와 룰루. 어찌 보면 당연했다. 룰루는 에이스인 '뉴클리어' 신정현에게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 또한, 리산드라는 '소아르' 이강표와 '사신' 오승주가 자주 보여줬던 카드다. 하지만 e엠파이어의 밴은 단순히 상대 주력 챔피언 두 개를 잘라낸 것이 아니었다.

▲ 보이는 것 그 이상을 노린 e엠파이어의 영악한 밴픽. 스베누의 판단이 아쉬웠다.


e엠파이어는 그 이상의 효과를 노렸다. 라인 주도권. 그들은 소리없이 원했던 것을 가져갔다. 스베누 소닉붐이 e엠파이어의 예측대로 알리스타를 선픽으로 가져갔다. 그러자 e엠파이어는 대놓고 1, 2픽에 나르와 빅토르를 선택했다. 보통 레드 진영에서는 쉽게 카운터 당하는 탑과 미드 챔피언을 늦게 가져간다. 하지만 e엠파이어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이를 포기했다.

나르와 빅토르 모두 라인 관리에 일가견이 있다. 밴픽 단계에서 상대의 조합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던 스베누 소닉붐은 준비한 조합을 그대로 꺼내 들었다. 엘리스와 쉔, 카사딘이 차례로 스베누 소닉붐의 편에 섰다.

스베누 소닉붐의 생각도 일리는 있었다. 알리스타와 엘리스, 쉔, 카사딘 등 소규모 난전에 좋은 챔피언들을 계속 가져갔다. 챔피언들 간의 시너지도 좋고, 한 번 스노우 볼을 굴리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불릴 수 있는 조합이었다. 그들은 미리 준비했던 조합으로 덜 성숙한 e엠파이어를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베누 소닉붐은 핵심을 놓쳤다. 원하는 대로 소규모 교전을 펼치기 위해선 라인 주도권이 필수라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말이다. 이렇게 놓고 보니 스베누 소닉붐의 조합이 이상하다. 나르를 상대로 게임 끝까지 주도권을 잡을 수 없는 쉔. 빅토르의 라인 클리어 능력을 따라갈 길이 없는 카사딘까지. 그들은 순진하게도 e엠파이어의 의도대로 조합을 꾸리고 말았다.



[Mistake 2] - 컨셉을 유지한 고집.



e엠파이어가 의도한 대로 나르와 쉔의 맞라인 구도를 만들자 그제서야 스베누 소닉붐은 상대의 의도를 알아챘다. 쉔을 풀어주지 않으면 힘든 경기가 될 것이 뻔했다. 성연준은 상대 나르를 집요하게 노렸고 괜찮은 성과를 냈다. 상대 렉사이가 빅토르를 봐주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스베누 소닉붐과 달리 e엠파이어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내줄 정도로 순진하지 않았다.

▲ 빅토르가 먼저 합류한 순간. 카사딘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스베누 소닉붐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e엠파이너는 주도권을 잡은 빅토르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스베누 소닉붐에게도 기회였다. 나르가 못 오는 상황에서 쉔만 합류할 수 있다면 주도권을 빼앗아 올 수 있었다. 그들은 준비한대로 소규모 교전을 유도했다. 그 고집이 거대한 눈덩이로 돌아올지도 모른 채 말이다.

이 싸움의 결말은 e엠파이어의 승리로 미리 정해져 있었다. 라인을 재빨리 밀어 놓은 빅토르는 카사딘보다 먼 거리를 이동했음에도 먼저 합류할 수 있었다. 쉔의 궁극기 역시 라인을 빨리 밀어넣은 나르에게 끊겼다. 스베누 소닉붐은 당황했다. 왜 합류전에서 자신들이 밀렸는지 파악할 겨를도 없었다. 순식간에 미드 타워가 붕괴됐다. 라인 클리어가 더딘 스베누 소닉붐의 혈관에 독이 퍼지기 시작했다.

스베누 소닉붐에게도 기회는 찾아왔다. 카사딘은 드디어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순식간에 4킬을 가져간 스베누 소닉붐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반면, e엠파이어는 변함없이 원하는 대로 경기를 이어갔다. 나르가 스플릿 푸쉬를 하는 동안 나머지가 수비했다. 스베누 소닉붐은 방황했다. 한 곳으로 뭉치자니 나르가 거슬렸고, 뭉치자니 빅토르와 코르키의 라인 클리어 능력을 뚫을 수 없었다.

▲ 스베누는 한타 승리에도 오브젝트를 가져갈 수 없었다. e엠파이어의 보험은 '불공평'했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솔로랭크를 하다보면 교전에서 이겼는데도 상대 미니언을 정리하기에 급급했던 경험. e엠파이어와 스베누 소닉붐의 경기가 그랬다. e엠파이어는 밴픽 단계에서부터 이를 노렸다. '라인 관리'라는 보험을 들어 놓은 e엠파이어는 이 경기에서 벼랑 끝에 섰던 적이 없었다. 반면, 스베누 소닉붐은 연이은 한타 승리에도 전진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너무 순진했다.


[Realization] 깨달음 - 배움은 언제나 아픔을 동반한다.



▲ 패배는 언제나 아프다 (출처 : OGN 방송 화면)

순진함과 고집은 스베누 소닉붐에게 예상치 못했던 패배가 되어 돌아왔다. 스베누 소닉붐은 e엠파이어가 승리의 기쁨을 누리는 동안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분한 마음에 떨리는 손으로 애꿎은 입술을 만지기도 했고,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지난 시즌의 악몽이 다시 떠올랐을 것이다. 패배에 익숙해지고 뭔가 멍해지는 느낌. 이번 시즌도 별 거 없을 거라는 생각이 머릿 속을 멤돌기도 했을 것이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항상 현장에 찾아와 격려를 해주던 팬들의 얼굴도 떠올랐을 것이다. 미안한 마음에 고개가 절로 무거워진다.

이런 말이 있다. 배움은 언제나 아픔과 함께 한다는 말. 잔인하지만 맞는 말이다. 무언가를 새롭게 배우려면 그만큼의 고통이 따르는 법이다. 스베누 소닉붐도 마찬가지다. 예상 밖의 패배는 쓰라리지만 항상 깨달음을 선물해준다. 분명 스베누 소닉붐은 이번 패배로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증명한 것도 있다. 자신들의 무한한 가능성과 뛰어난 경기력을 스스로 입증해냈다. 그들은 불리한 상황에서 얻어낸 한타 대승으로 승리에 대한 집념을 증명했다. 또한, 자신들의 심장부로 내달리는 상대를 홀로 막아내는 기이한 집중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분명 스베누 소닉붐은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말은 바꿔 말하면 언제든지 기대에 부응할 수 있다는 것과 같은 표현이다. 많은 것을 배우고 증명해낸 스베누 소닉붐. 그들은 지난 시즌과 다를 것이다. 그들이 보여준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 본다.

▲ 한층 성장했을 스베누 소닉붐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