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게만 보였던 30레벨이 드디어 되었다. 시간을 쪼개 즐겼던 탓에 게임을 하면서 종종 이상한 기분이 들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게임 접속자였다. 게이머로서 게임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게 많아 블레스 인벤을 자주 들렸는데, '대기열'이라는게 게시판에 자꾸 올라왔다. 나는 단 한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블레스가 처음 오픈하던 시절로 기억을 되감아 보았다. "야 우리 서버 뭐하지? 아 모르겠다. 릴리안테스."

그래 그랬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별 생각없이 '릴리안테스'에 캐릭터를 만들고 키워왔다. 그런데 이 서버가 좀 많이 시골이다. 다른 서버가 도시나 군, 하다못해 읍내 정도 된다면 우리 서버는 '리'정도다. 시골 길 다니다 보면 엄청 큰 돌에 음각으로 새겨진 '대수 1리'같은 느낌의 서버. 그 와중에 말을 꺼내신 우리 팀장님은 실수로 다른 서버에서 캐릭터를 키우고 있었는데, 그 서버도 이곳 못지않은 시골인 '이리야코포스'였기에 우리는 다 같은 서버에서 하는 줄 알고 있었다. 그곳은 '대수 2리'쯤 되려나….



전장 진입! 30 vs 30이지만 괜찮아...!

레벨 30을 달성하자마자 전장으로 향했다. 매일 단 두 번만 열리는 '카스트라 전장'. 100 vs 100이라는 어마어마한 규모로 치러지는 전장이다. 하지만 100 vs 100이 가득 찰 거라는 건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30을 찍는 동안 만난 사람을 다 합쳐도 전장을 다 못 채울 거다. 미리 전장을 체험해본 기자 말로는 10 vs 10도 해봤고 40 vs 10(...?)도 해봤다고 하니 상대적으로 쾌적한 전장 플레이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카스트라 전장'에 들어섰다.

처음 들어선 전장. 디자인은 꽤 직관적이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도 일단 보면 '아'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디자인. 목표는 상대의 성문을 깨부수는 것이고, 수단은 보통 '나무'라 부르는 정령 나무에서 얻는 '수호 정령'으로 성문을 타격하거나, '수호석'을 깨부숴 상대 성벽의 보호막을 해체한 후, 직접 타격하는 방식이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던, 상대 또한 똑같은 목표를 가지고 달려오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다. 전투 시작 30초 전, 진격로를 정하고 자리를 잡았다. 인원수는 30대 30. 많은 수는 아니지만, 우리 서버 상황을 생각해보면 역대 급 인원이다. 그때 한 유저가 말했다.

▲ 헤헤 첫 전장 입성

"스펙 아무리 자신 있으셔도 그래픽은 1로 낮추시는 게 좋아요."

순간 '그 정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블레스 권장 PC보다 좋은 내 업무용 컴퓨터를 믿었다. 그리고 전투 시작과 동시에, 화면이 멈춰버렸다.

이런 세상에. 프레임이 내려가다 못해 0.5프레임이 나오는 것 같다. 2초에 한 번씩 갱신되는 화면을 보면서 전투를 치렀다. 물론 캐릭터 모습도 로딩이 되다 말아 위장약 '개비스X'에 나오는 그 허연 덩어리들처럼 되어버렸다. 아이고 여기가 위장 속이구나…. 그래 항상 이게 아쉬웠다. 게임 자체는 잘 만든 것 같은데, 게임 외적인 부분이 항상 날 괴롭혔다. 전장은 더 심했다. 평소에 혼자 플레이해도 프레임이 너덜거리던 게임이 사람이 많아지니 더 심해졌다.

▲ 아아. 당신들은.. 그 위장약 '개비스X'...?

초 단위의 컨트롤로 결정 나는 싸움을 원했는데 아직 그 정도 안정성은 갖추지 못한 모습이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하지만 그건 적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가끔 아군이 몰려가도 멍하니 서 있는 모습이 애처롭다. 첫 싸움은 3시 방향의 정령 나무에서 펼쳐졌다. 나무에 결정타를 날리면 수호 정령이 소환되는데, 이 때문에 나무를 때릴 것인지 적을 방해할 것인지를 잘 선택해야 한다. 아쉽게도 나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논타겟 마법사라는 변태 스타일에다가 프레임 드랍도 있다 보니 그냥 나무만 팰 수밖에. 그래도 간혹 걸려든 적에게 마법 폭격을 날려 쏠쏠히 재미를 보긴 했다. 괜히 마법사가 세다는 말이 나온 게 아니었다.

하지만 전황은 좋게 풀리지 않았다. 첫 나무싸움에서 지고, 수호석이 깨지고, 그다음 나무싸움에서도 졌다. 점수 차이가 두 배 가까이 벌어진 상황. 하지만 블레스의 전장은 언제나 역전이 가능한 곳이었고, 그건 지금 내가 들어와 있는 이 시골의 전장도 다르지 않았다. 이제 제대로 싸워볼 때다. 자존심을 버리고 그래픽 프리셋을 최하로 낮추니 그나마 게임이 좀 할만하다.

초반 전투에서 쭉 밀려버렸지만, 아직 성벽은 건재했다. 지기 전까진 진 게 아니다. 마침 오더를 내리던 아군 플레이어도 절망하지 않고 '힘내서 합시다!'를 외치며 공격 명령을 내렸다. 정신을 차리고 재정비를 마친 아군 병력이 처음 싸움을 벌였던 나무로 달려갔다.

▲ 이때 점수 차이가 4000 대 11000 정도 됐다. 당연히 지는 중

이번엔 조금 달랐다. 이대로 져버릴 수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탓일까? 적 유저들은 하염없이 나무를 공격했고, 아군 유저들은 그런 적 유저를 먼저 공격했다. 아마 승기를 굳히고 싶었던 탓에 나무를 집중적으로 공격했으리라.

하지만 아주 대놓고 나무를 무시하고 상대 유저만 집중적으로 패는 우리를 상대로 오래 버틸 수는 없었다. 중간마다 나오는 나무들이 우리를 공격했지만, 가볍게 무시하고 적을 전멸시킨 후 나무의 마지막까지 빼앗아 갔다. 이로써 한 번의 국지전에 승리했다. 아직 점수 차이가 크지만, 적어도 역전의 불씨는 당긴 셈이다.

여세를 몰아 맵 중앙에 있는 수호석으로 향했다. 나무들이 성벽을 두들기면서 시간을 벌어줄 동안 수호석을 차지해 몰아붙이겠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반대편 나무도 포기할 수 없다. 반대편 나무를 뺏기는 순간 분위기는 또 넘어가 버릴 테니 말이다. 결국, 수호석 파괴조와 나무 접수조로 병력이 나뉘었다. 비슷한 수의 병력이 있을 때 병력을 나누는건 좋은 방법이 아니지만, 둘 다 쉽게 포기할수 없었다.

▲ 우하하 주거랑!

여기서 좀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수호석이 손상을 입게 되면, 적에게 메시지가 간다. 그래서 적 병력은 나무로 모두 몰려가지도, 수호석으로 올인하지도 못하고 나무와 수호석에 1:3 정도로 병력이 분산되어버렸다. 하지만 쿨기까지 돌려가며 파워 딜링을 하던 수호석조가 결국 마지막 타격까지 성공해 수호석을 차지하고, 애초에 수적으로 우세하던 나무조가 추가 나무까지 따내자 전황은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이제 점수 차이는 제로. 이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면 승리도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승리 분위기에 도취한 유저들이 무리하기 시작하면서(나 역시...) 전투는 점점 진흙탕이 되었다. 오더를 내리던 유저가 강하게 주장하지 않았으면, 승기를 또 빼앗겼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초반에 당하던 것을 잊지 못한 아군은 끝까지 큰 실수를 하지 않았고, 결국 나무를 공격하던 적의 후미를 공격해 어마어마한 피해를 주면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이쯤 되면 춤을 줘도 이길 수 있는 전투였다.

▲ 주제모르고 까불다가 요단강 익스프레스

그렇게 전장은 역전 끝에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내 최종 점수는 32명 중에 13등. 사실 아무것도 모르고 갓 30레벨인 주제에 온 것치고는 괜찮게 한 것 같아 괜스레 우쭐해졌다. 게임을 끄고 영상을 돌려보면서 생각해보았다. 인터뷰에서 나왔던 것처럼 30레벨을 찍고 전장에 합류했다. 난 이걸 재미있게 플레이했나?


격전 끝 승리... 재미는 과연 어땠나?

자 체험이 끝났으니 이제 그 감상을 말해볼 차례다. 일단 눈여겨볼 건 '레벨 보정'이다. "30레벨이 재밌다."라는 말이 나온 것도 이것 때문인데, 전장에 들어서면 원래 레벨과 관계없이 내 레벨이 45로 고정되며, 스킬 대미지와 체력 등 능력치들도 자동으로 보정된다. 물론 장비에 따른 차이나 스킬셋의 차이 등은 있을 수 있으나, 어쨌든 '싸울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대부분 MMORPG에서 '전장' 콘텐츠는 사실상 '만 레벨 콘텐츠'로 취급된다. 무한 레벨의 RPG가 가라앉고 고정 만 레벨의 MMORPG가 대세가 된 이후, '만 레벨 달성'은 일종의 '튜토리얼' 정도로 취급되는 시대다. 이런 상황에서 만 레벨이 아닌 상태로 전장에 참여한다는 건 총알 없이 전쟁에 나서는 거랑 비슷한 거다.

▲ 일단 레벨이 45가 되니 전투는 치를수 있다.

하지만 '블레스'의 전장은 싸움이 된다. 타 게임의 전장이 총알이고 총이고 죄다 내가 사서 가야 하는 거라면, 블레스는 적어도 기본적인 전투장비는 보급해주는 격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전장을 처음 접하는 유저, 그리고 평소에 PVP콘텐츠를 별로 즐기지 않는 유저들도 무리 없이 게임에 녹아들 수 있도록 돕는다.

한 가지 더 짚어야 할 것은 '100vs100'이라는 전장의 '규모'다. '10vs10'전장이나 '15vs15'의 전장 같은 경우 '개인의 기량'이 매우 중요하다. 사실 대부분 유저의 능력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아이템이 같다면) MMORPG에서 '개인의 기량'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컨트롤과 전투 감각이 충분하다면 소규모 전장에서는 전황을 뒤엎는 활약을 보이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100vs100'이라는 규모의 싸움에서, 개인의 기량은 무의미하다. 이 전장에서 개개인은 집단을 이루는 하나의 톱니바퀴에 불과할 뿐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잘 못해도 티가 안 난다.' 그럼 안 좋은 거 아닌가? 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매우 많은 MMORPG 유저들이 이 '시선'때문에 PVP콘텐츠를 꺼린다. 못하는 건 상관이 없는데 못한다고 눈총받는 게 두려운 거다.

▲ 솔직히 나같은 초보유저가 많으면 힘들겠지만 부담은 없었다.

하지만 대규모 전장이라면 그런 부담 없이 쉽게 들어올 수 있다. 지금이야 전장의 종류가 적지만, 앞으로 소규모 전장들은 충분히 추가될 거다. '100vs100'의 '카스트라 전장'은 라이트 유저나 미들 코어 유저들을 PVP로 끌어들일 아주 쉬우면서도 좋은 콘텐츠라 할 수 있다.

전장의 디자인도 생각보다 탄탄하다. 각 진영의 성문을 제외한 중요 포인트는 단 세 곳. 좌우에 있는 나무와 중앙의 '수호석'뿐이다. 보통 이런 식으로 '거점'을 두는 전장은 거점 수를 홀수로 유지하기 마련인데, 그래야 힘의 균형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레스는 단순한 '3개의 거점'이 아닌, 성격이 다른 하나의 거점을 만들어둠으로써 변수를 창출했다. 전장의 재미는 전투도 있지만, 변수에 따라 바뀌는 전황도 한몫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맵 구조가 단순한 편이라 파악도 어렵지 않다. 실제로 전장을 몇 차례 플레이하면서 난 금방 전장의 규칙에 익숙해졌고, 혼자서도 요충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 심플하니 알기 쉬운 맵 디자인

다만,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는 '카스트라 전장'의 문제가 아닌, 블레스가 가진 태생적 한계일지도 모른다. 현재 '블레스'를 즐기는 이들이 가장 불만을 표하는 부분이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랙'이다. 사양에 관계없이 펼쳐지는 이 끊김 현상은 전장이라고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많은 사람이 격돌하는 전장에서 더 심해진다.

사실상 내가 마법사를 플레이했기에 유의미한 딜링이 가능했지, 만약 근접 캐릭터였으면 뭘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픽 수준을 1단계로 낮추었음에도 체감할 만큼 나아지진 않았다. 혹시나 사양을 묻는다면, 네오위즈에서 제시한 권장 사양보다 훨씬 높은 사양이다. 문제는 이 끊김 현상이 단순히 업그레이드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980Ti를 쓰는 유저나 250m을 쓰는 유저나 끊김 현상을 똑같다고 하니 말이다. 또 가끔은 이상할 정도로 끊김이 없다가 어느 순간 프레임이 너덜거리는 등, 발생 빈도도 종잡을 수가 없다.

아쉽다. 솔직히 블레스의 게임 구조에 100% 만족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장 콘텐츠만큼은 내 생각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그런데 그 재미의 80% 이상을, 과장이 아니라 진짜 그 정도를 단순히 이 끊김 현상이 잡아먹어 버렸다. 전장을 몇 차례 하다 보니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었다. "아니 게임은 왜 이렇게 오랫동안 잘 만들어두고 게임 외적 부분에서 재미를 다 갉아먹게 한 건가..." 아마 매끄럽게 돌아갔다면 내 생각 이상으로 재미있었을지도 모르겠다.

▲ 아... 제모습 잃은 유저들이여...

그리고 또 한가지, 전장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다. '카스트라 전장'은 하루 두 번, 저녁 7시와 밤 10시에 열린다. 문제는 이때를 맞춰 게임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거다. 솔직히 30레벨 달성은 1주일 전에 이미 끝냈었다. 하지만 전장 체험기가 지금에서야 나오는 이유는 그동안 전장을 뛰고 싶어도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 없어서 해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사람이 좀 없더라도 몇 시간 단위로 주기적으로 열던가, 혹은 다들 쓰는 매칭형 시스템으로 돌리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블레스를 하다 보면 참 자주 생각나는 말이 있다. "왜 굳이...?"

정리하자면 '블레스'의 전장은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 사실 엄밀히 말해 '카스트라 전장'은 굉장히 단순한 편이지만, 그 단순함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는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게임 외적인 부분이 그 가치를 대폭 갉아먹는다. 물론 내가 플레이한 서버는 한적한 시골이고, 전장 참여 인원도 기준치의 3분의 1밖에 안된다. 그럼에도 할만했다. 아마 '100vs100'으로 진행되는 전장은 더 정신은 없을지언정 '전쟁'의 느낌이 더 잘 살아날 테다.

▲ 그래도 피터지게 싸워 이기니까 재밌더라 진짜

'블레스'가 서비스를 시작한 지 열흘이 지났다. 아마 네오위즈 측에서도 충분히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을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 아쉽다. 처음 기사를 시작한 이유였던 네오위즈의 '30레벨' 발언은 반만 정답이었다. 오픈 일자를 조금 늦추더라도 이런 부분을 확실히 잡아냈다면 더 가치 있는 게임이 되었을 텐데. 매우 빡빡한 포장지로 감아둔 맛있는 과자를 먹는 기분이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시선은 낙관적이다. 원래 MMORPG의 오픈 초기는 인기 폭발과 이에 따른 서버 폭발이라는 두 종류의 폭발을 함께 보여주었다. 게임트릭스 등 몇몇 지표만 참고해 보아도 현재 블레스는 매우 많은 유저들이 플레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서버가 이 정도만 터졌다는 건 생각 외로 서버의 건강이 탄탄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제 과제는 자잘한 랙이다. 시간이 흘러 어느 상황에서도 매끄럽게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 된다면, '블레스'는 제대로 날개를 펼칠 수 있으리라. 물론 그게 언제가 될지는 개발진의 노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 말해줘요 앞으로 더 나아질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