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이라는 긴 시간을 기다려 올라왔던 첫 개인리그 결승 무대. 김대엽은 스타2 스타리그 시즌1 결승전에서 준우승이라는 아쉬운 기록을 뒤로하고 무대에서 내려와야 했다. 오랫동안 프로게이머의 길을 걸어왔지만, 유독 결승과 우승이라는 타이틀과 거리가 멀었다. 자신이 원하는 바가 이뤄지지 않았기에 좌절할 수도, 나의 길에 대해 의심이 들어 힘들어할 만한 상황.

김대엽은 달랐다. 결승 직후 팬들과 시간을 갖고 우연히 기자를 만났을 때, 김대엽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프로리그 경기에서 자신의 패배로 에이스 결정전을 가게 되면 팀원들에게 부담을 줬다는 미안한 마음에 어찌할 줄 몰랐지만, 개인리그의 아쉬움은 누구에게도 떠넘기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김대엽은 개인리그의 아쉬움을 자신의 실력으로 극복했다. 한 단계 더 성장해 프로리그 2라운드 플레이오프 올킬, 크로스 파이널 시즌1 우승, 해외 대회인 2016 쿵푸컵 시즌1 우승까지 최고의 행보를 멈추지 않고 있다. 양대리그 결승 주자인 주성욱-전태양(kt)과 자신에게 준우승을 안겨줬던 박령우(SKT)까지 최강자들을 모두 넘어선 것이다. '대기만성'이라는 말처럼 8년 만에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최근 우승 역시 우연이 아니었다. 김대엽은 당대 최강자들에게 기본기 위주의 경기로 승부수를 띄웠다. 자신의 실력에 확실한 자신감이 있었고, 이를 뒷받침해줄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김대엽이 공들여 쌓은 기본기는 화려한 전략-전술을 넘어섰다.


단판제 위주의 프로리그에서 최강은 단연 SKT T1이다. 특유의 단판제 판짜기와 전략으로 상대를 압살하며 2연속 프로리그 통합 포스트 시즌 그랜드 파이널 결승 진출했고 작년 프로리그를 자신들의 무대로 만들었다. SKT T1은 신인 선수들마저 팀과 함께 준비한 전략을 들고나오기에 팀원 모두가 강력한 팀이다.

그런데 김대엽은 최강 군단 SKT T1을 상대로 포스트 시즌 올킬을 줄곧 해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2라운드 포스트 시즌 올킬을 기록하며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작년 2R의 SKT T1의 기세가 안 좋았지만, 이번 해에는 스타2 스타리그 시즌1에서 자신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박령우(SKT)를 비롯한 준플레이오프에서 올킬을 기록한 김도우(SKT)까지 등장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흔들리지 않는 김대엽의 승리였다. 상대의 공격을 차분히 막아내고 반격으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저글링-맹독충 중심의 체제로 프로토스전 무적의 포스를 자랑했던 박령우지만, 김대엽의 깔끔한 대처에 힘을 써보지 못했다. 마지막 세트에서는 어윤수가 엘리전이라는 과감한 변수를 꺼내 들었음에도 김대엽은 끝까지 차분하게 대처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최고의 판단으로 승리를 따낸 것이다.

김대엽의 단단한 기본기는 크로스 파이널에서 더욱 빛났다. 상대는 양대리그 우승자인 무결점의 '주파고' 주성욱과 군락 운영의 대가인 박령우였다. 두 선수 역시 기본기 싸움과 빈틈없는 플레이를 자랑했다. 하지만 김대엽은 대부분 경기에서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자신 역시 기본기에서 밀리지 않기에 상대의 전략에 맞춰만 가도 승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 체제만 알면 밀리지 않는다? 김대엽의 끈질긴 정찰


▲ 불리한 병력 상황, '불멸자 그 자체' 김대엽 교전 승리

김대엽이 주성욱을 상대로 0:1로 밀리며 2세트를 맞이했다. 최근 주성욱은 최고의 포스를 자랑했기에 김대엽에게 특별한 전략이 필요해 보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김대엽은 가장 안정적이고 단단한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해설자들도 암흑 기사를 배제한 상황에서 끊임없이 '환상 불사조' 정찰을 시도해 변수를 차단했다. 경기 중 주성욱이 점멸 추적자로 멀티를 파괴하고 유리한 상황이 이어졌지만, 김대엽은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불멸자를 활용한 전투로 극적인 역전승을 해냈다. 3세트에서는 2차원 관문과 소수의 불멸자로 주성욱의 몰래 8차원 관문 러시를 막아내는 기적 같은 장면을 연출해냈다.

박령우와의 결승전에서도 김대엽은 침착하게 경기를 기본기 싸움으로 끌고 갔다. 마지막이 될 수 있는 4세트에서 김대엽은 회심의 초반 사도 러시를 실패했다. 상대는 언제든지 매서운 초반 무기를 꺼낼 가능성이 있는 박령우이기에 위기가 찾아온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김대엽은 한 수 앞을 더 내다봤다. 사도 4기가 짤린 상황에서도 꾸준히 사도를 찔러넣어 박령우의 체제를 확인한 것. 박령우의 바퀴 체제를 정찰한 김대엽은 빈틈없는 불멸자 중심의 운영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중, 후반 운영 역시 뛰어난 박령우지만 김대엽의 단단함을 뚫어내지 못했다.

▲ 사도가 끊겨도 정찰은 계속된다

두 경기 모두 김대엽의 정확한 정찰로 승부가 판가름났다고 볼 수 있다. 중요한 점은 김대엽의 정찰 타이밍과 횟수 역시 오랜 경험과 연습을 통해 이뤄진 것이다. 화려하고 멋진 플레이는 아니지만, 꾸준히 자신의 실력을 쌓아왔기에 누구도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자신만의 무기를 완성한 것이다.

자신의 진가를 발휘할 김대엽의 행보는 또 다른 시작을 앞두고 있다. 오랫동안 인연이 없었던 2016 GSL 시즌2 코드A 경기를 시작으로 다시 한 번 프로리그와 스타2 스타리그가 곧 열리기 때문이다. 결과와 상관없이 꾸준히 자신의 길을 걸어왔던 김대엽이기에 앞으로도 겸손한 자세로, 좌절하지 않고 경기에 임할 것이다. 데뷔 8년 만에 개인리그 빛을 보기 시작한 프로게이머 김대엽이 시즌2에서도 최고의 자리에 설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