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른쪽에서 대지의 무기를 뽑고 기뻐하는 따효니 (출처 OGN)

하스스톤에서 '운'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매 턴마다 카드를 한 장씩 뽑아서 플레이하는 CCG(Collectible Card Game)이기 때문에 다음 카드가 무엇이냐에 따라 승패가 엇갈리는 상황이 하스스톤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때문에 카드 드로우 한 번에 선수들은 웃거나 울고, 관중들은 환호성을 지르거나 탄식을 내뱉는다. 그것이 하스스톤의 매력이자 인기의 원동력 중 하나이다.

하지만 최근 하스스톤의 운 적인 요소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가장 뜨거운 감자인 '희망의 끝 요그사론'을 필두로 '투스카르 토템지기', '반즈', '이글거리는 박쥐' 등 단순한 운으로 엄청난 스노우볼을 굴릴 수 있는 확률 카드들이 늘어나면서 어느덧 하스스톤은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 아닌 운이 좋거나 기도를 열심히 한 사람이 이기는 '운빨 게임'이 되어 버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상황이다. 그도 그럴 것이 1턴에서 마나 지룡과 이글거리는 박쥐의 싸움에서 박쥐의 불꽃 방향에 따라 사냥꾼이 이길지 마법사가 이길지 어느 정도 가려질 정도로 엄청난 스노우볼을 굴릴 수 있기 때문이다.

▲ 최근 유행하고 있는 기도메타 (출처 OGN)


유명 하스스톤 게이머 레이나드는 인벤과의 인터뷰에서 하스스톤의 운 적인 요소에 대해서 의견을 말한 바 있다. 레이나드는 "블리자드가 RNG(Random Number Generator, 난수 발생기)에 대한 자신들의 철학을 바꿨으면 좋겠다"며 "단검 곡예사, 화염 곡예사, 이글거리는 박쥐, 왕두꺼비같이 빠른 타이밍에 등장해서 스노우볼을 굴릴 수 있는 랜덤 데미지 카드를 더 이상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러한 '운빨 게임' 논쟁에 화룡점정을 찍은 카드가 바로 '희망의 끝 요그사론'이다. 요그사론은 자신이 시전한 주문카드의 개수만큼 무작위로 주문을 시전한다. 여기서 주문의 대상은 무작위로 정해지지만 대상이 적이라고 명시된 카드는 정확하게 적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에 사실상 사용자가 이득을 볼 확률이 더 높다. 최근 APAC 한국 대표 선발전에서도 다 진 경기를 요그사론 하나로 역전하는 상황이 여러 차례 발생하기도 했다.

대회뿐만 아니라 등급전에서도 요그사론이 들어간 덱이 무려 3개나 1티어를 차지할 정도로 강력함을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요그사론이 강력함을 떠나 운 적인 요소가 지나치다는 점이다. 요그사론이 나오기 전까지 이루어진 플레이가 모두 의미가 없어질 만큼 카드 한 장이 불러오는 결과물이 엄청나기 때문에, 결국 '숙련된 요그사론 트레이너'가 승리하는 게임의 흐름이 주를 이루고 있다. 어느덧 e스포츠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소위 말하는 '운빨메타'가 현재 하스스톤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다.

▲ 1티어를 장악하고 있는 요그사론덱 (출처 템포스톰)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요그사론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지고 있는 게임을 요그사론 한 장으로 역전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등장하면서 요그사론을 대회에서 금지시키자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요그사론을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하스스톤이라는 게임 자체가 랜덤성을 포함한 카드게임이기 때문에 요그사론도 게임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러한 논란의 영향으로 최근 블리즈컨 초대 우승자 출신인 'Firebat' 제임스 코스테시치가 주관한 BatStone 토너먼트에서 카드 밴 룰이 도입되기도 했다. 카드 밴 룰에 대한 게이머들과 시청자들의 긍정적인 반응 속에서 'Firebat'의 대회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 BatStone 토너먼트 카드 밴 목록 (출처 팀리퀴드)


하스스톤 밸런스팀 게임 디자이너인 'Iksar' 딘 아얄라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요그사론에 대한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요그사론이 우리의 예상보다 더 강력한 성능을 발휘할 경우 등급전을 초토화 시킬 것이며, 하스스톤은 모두가 10턴만 바라보며 요그사론 하나에 의존하는 싸구려 게임이 될 것이다." 약 3달 전에 그가 한 발언대로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APAC 한국대표선발전에서 우승한 '알페' 김진근은 "요그사론은 하스스톤에 있어서는 안 될 카드이며, 너프 혹은 금지를 하지 않으면 하스스톤이 실력 게임이 아니라는 인식이 더 심해질 것이다"고 말했다. 유저들도 처음에는 요그사론이 만들어내는 명장면에 환호했지만 지금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최근 해외 하스스톤 프로팀 아콘, 나비, 디그니타스가 줄줄이 해체를 선언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소속 프로게이머들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 것이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프로선수들은 대회에서 입상함으로써 자신을 후원하는 스폰서를 광고하는 것이 의무 중 하나이지만 운적인 요소의 개입이 높은 하스스톤에서 꾸준히 대회에서 입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루에 10시간씩 연습을 하더라도 결국 운이 없으면 실력에서 앞서도 떨어지는 것이 하스스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하스스톤 프로게이머라는 타이틀과 프로팀의 존재의 의미가 흐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하스스톤이 가진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카드게임이기 때문에 운 적인 요소의 개입을 지우면 게임이 단순해지고 보는 재미가 사라진다. 반대로 운 적인 요소의 개입이 높아질수록 e스포츠로서의 가치가 떨어져 버린다. 운 적인 요소의 개입을 적절하게 유지해서 대회를 위해 노력한 선수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하스스톤이 e스포츠로서 성장해나갈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다. 좋은 평가를 얻었던 '발견'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무작위 카드 3장 중 스스로 판단해서 1장을 선택하기 때문에 운이 좋더라도 실력이 부족하면 질 수 밖에 없다.

유저들은 'Firebat' 이 한 것처럼 정규 대회에서 카드 밴 룰을 도입하자는 의견을 던지고 있다. 요그사론, 투스카르 토템지기, 반즈와 같이 게임을 순식간에 터트려 버릴 정도로 랜덤성이 강한 카드들을 밴 함으로써 운 적인 요소를 선수들 스스로 조정할 수 있도록 하면 실력으로 승부를 가리는 진정한 e스포츠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또한 지속적인 밸런스 패치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유저들도 많다. 야생으로 갈 때까지 2년간 방치하는 것이 아닌 밸런스가 맞지 않거나 카드 설계가 잘못된 카드는 밸런스 패치를 통해서 바로잡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 또한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뜨거운 감자 '희망의 끝 요그사론'


하스스톤은 출시 2년 만에 전 세계 수천만 명이 즐기는 인기 게임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e스포츠로서 하스스톤은 현재 중요한 과도기에 놓여있다. 딜레마에 빠져 있는 하스스톤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진정한 실력 게임으로 거듭나 명실상부한 e스포츠 인기 게임으로 성장을 할 수 있을지 앞으로의 행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