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 시즌 6의 결승전이 펼쳐지기 전, 라이엇 게임즈의 수석 게임 플레이 디자이너인 'Meddler'는 차기 시즌, 새로운 클라이언트에 10개의 밴 카드를 적용하는 것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기존 6밴 시스템에서 총 네 개의 밴 카드를 추가하는 '대규모 패치 예고'였던 셈이다.

그동안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 유저들 사이에서는 늘어나는 챔피언 수, OP(오버 파워) 챔피언과 비주류 챔피언 간의 성능 차이 등을 이유로 새로운 밴 시스템 도입에 대한 목소리를 냈던 바 있다. 이번 'Meddler'가 언급했던 새로운 밴 시스템 역시 이러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계획의 하나로 보인다.



■ 개수 늘리기 환영... 단순 밴 카드 증가는 '글쎄'


팬들은 일단 정말 많이 늘어난 챔피언 수에 따라 밴 카드 자체를 늘리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처음 6밴 시스템이 도입됐을 때보다 챔피언이 약 2~3배 정도 늘어났기 때문. 만약 'Meddler'가 언급한대로 정말 10밴 시스템이 도입된다면 전체 챔피언 수에 비교했을 때 부족하지 않은 정도의 밴 횟수를 보일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조금 더 구체적인 의견도 있었다. 현재 밴 카드 개수를 늘리려는 계획에는 '보다 다양한 챔피언의 등장'이라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게 밴 카드를 늘린다고 이러한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는 것. 밴 카드만 늘어난다고 해서 밴픽 전략이 유동적으로 흘러가거나 훨씬 다양한 챔피언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지진 않는다는 의견이 등장했다.

밴픽 시스템에 대한 임시 안 발표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대다수 의견이 후자 쪽으로 모이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매번 진행되는 패치에도 OP 챔피언은 정해져 있으며 이들을 대체할 수 있는 비슷한 성능의 챔피언 역시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따져 보면, 라이엇 게임즈가 계획하고 있는 10밴 시스템에서도 결국 밴픽 전략은 굳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LoL과 같은 AOS 장르인 다른 게임에서는 어떤 밴픽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을까. 전 세계적으로 여전히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도타2와 e스포츠 AOS 장르 중에 가장 최근 출시된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이하 히어로즈)의 예를 살펴보자.



■ 밴픽 순서 섞는 '교차 드래프트 시스템'의 도타2와 히어로즈



도타2와 히어로즈는 모두 교차 드래프트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말 그대로 두 게임 모두 밴픽 첫 단계에서 일단 양 팀 모두 밴을 진행하고 서로 조합을 갖추다가 다시 밴을 하는 시스템이다.

이러한 교차 드래프트 밴픽 시스템의 장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로, 다양한 챔피언이 등장할 확률이 높다. 실제로 도타2에서는 첫 밴 페이즈에서 OP 영웅이나 특정 선수 저격 밴을 하고, 첫 픽에는 범용적으로 어느 조합에나 어울리는 영웅을 가져간다. 두 번째 밴 페이즈에는 재차 저격 밴, 혹은 상대 첫 픽을 보고 예상되는 조합을 깨뜨리는 밴이나 우리 조합에 큰 위험이 되는 영웅들을 밴한다. 두 번째 픽 페이즈에서는 자신들의 색을 드러내는 코어 픽들을 가져간다. 마지막 밴픽 페이즈에서는 대체로 상대 조합에 있으면 안 될 영웅을 자르고 최후의 픽에서 준비했던 깜짝 카드를 기용하기도 한다.

▲ 복잡한 만큼 색다른 영웅 선택이 잦은 도타2

그 과정에서 평소에 잘 보이지도 않았던 영웅이 전략상 밴 되기도 하며, 예상치 못했던 영웅이 등장해 색다른 조합을 완성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물론, 도타2에서도 유행하는 메타에 따라 어느 정도 밴픽 전략이 굳어지긴 하지만, LoL처럼 좁은 선택지 안에서 서로 '나눠 먹는' 구도는 쉽게 나오지 않는다. 상대 팀에서 우리가 갖추려던 조합을 잘 살릴 수 있는 영웅을 밴 하면 조합 자체를 급선회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엉뚱한' 영웅 픽까지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장점은 첫 번째 장점에서 이어지는 것이다. 바로 밴픽 전략의 다양성에 따른 '보는 재미'다. 물론, 현재 LoL에서도 '밴픽이 반'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밴픽 머리싸움이 치열하고, 밴픽 전략을 보는 재미도 있다. 하지만 매년 새롭게 시작되는 '시즌'이 막바지에 접어들 때쯤 열리는 경기를 보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밴픽 전략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번 롤드컵에서도 ROX 타이거즈가 선보였던 미스 포츈 서포터를 제외하면 밴픽 머리 싸움 과정에서 '보는 재미'가 뛰어난 경기는 거의 없었다.

교차 드래프트 시스템에서는 밴픽 전략을 보는 재미가 정말 뛰어나다. 가장 큰 재미는 두 번째 밴 페이즈에서 시작된다. 첫 픽 페이즈에서 상대가 가져간 픽과 그 조합을 보고 상대 팀은 '저 팀이 갖추려는 조합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빠르게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카드가 밴 되기도 한다. 두 번째 픽 페이즈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의 날카로운 밴 전략으로 자신들이 갖추려던 조합이 어그러진 상황이라면 특히 그렇다. 이를 통해 정말 색다르고 충격적인 카드가 선택되는 경우도 꽤 있다. 그만큼 팬들 입장에서는 교차 드래프트가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다.

▲ 히어로즈 역시 밴과 픽 페이즈가 서로 교차된다

도타2나 LoL보다 나이가 어린 히어로즈 역시 교차 드래프트 시스템을 활용 중이다. 앞서 말한 두 게임보다 히어로즈에는 영웅의 수가 적다. 그런데도 히어로즈는 교차 드래프트 시스템을 상황에 맞게 축소해서 사용하고 있다. 최초 픽 전에 1밴, 픽 페이즈 중간에 또 1밴을 끼우는 식이다. 영웅의 수가 현저히 적어 도타2의 밴픽 전략만큼 긴장감을 유발하진 않지만, 때때로 그 과정에서 평소에 잘 보지 못했던 영웅이 등장하기도 한다.



■ 선택의 주체는 라이엇 게임즈... 하지만 정답은 정해져 있다?



물론, 교차 드래프트 방식 역시 한계점을 보인다. 밴픽 과정에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밴 과정과 픽 과정이 교차하고 그에 따른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에 코치진과 선수들은 오랜 시간을 들여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 그러므로 도타2와 히어로즈는 밴픽 시간에 '추가 시간'까지 적용하고 있다. 따라서 교차 드래프트 시스템에 흥미를 느끼고 나름대로 전략을 예상해보는 '헤비 유저'를 제외한 나머지 유저들 입장에서는 경기 전부터 진이 빠질 수도 있다.


사실 'Meddler'가 계획 중이라고 언급했던 10밴 시스템이 어떤 방식으로 적용될 것인지 혹은 아예 백지화될지는 모르는 상황이다. 결국, 선택은 라이엇 게임즈의 몫이다. 그리고 그들 역시 팬들의 밴 카드 증가와 다양한 챔피언 등장에 대한 욕구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측면에서 들여다봤을 때 이미 밴픽 시스템 자체에 대한 정답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단순하게 밴 카드만 늘린다고 해서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챔피언이 모습을 드러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챔피언의 수가 정말 많고 그 안에서도 챔피언 간 확고한 '등급제'가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이미 도타2는 유저들 사이에서 '최고의 밴픽 시스템을 가진 게임'이라는 칭찬을 듣고 있다. 라이엇 게임즈가 발표한 10밴 시스템과 다양한 영웅의 출몰을 가능케 하는 교차 드래프트 시스템까지 갖춘 덕분이다. 라이엇 게임즈가 무조건 이를 따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들의 상황에 맞게 변형된 교차 드래프트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이 유저들의 요구에 호응하는 최고의 방법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