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2004년 7월, 울긋불긋한 여드름, 앳돼 보이는 외모, 17살이었던 송병구의 프로게이머 인생이 시작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 시절부터 점차 발전하며 백만 프로토스의 수장 '총사령관', 그리고 산전수전을 겪으며 선수에서 한 발짝 물러나 삼성 스타2 프로게임단의 '헤드' 역할인 코치까지. '삼성' 송병구의 마침표가 찍힌 2016년 11월 30일까지 무려 한 곳에서 12년이란 세월 동안 묵묵히 견뎌온 진짜 '삼성인' 송병구.

프로리그 폐지와 스타2 게임단들의 해체 윤곽이 잡힌 시점부터 송병구는 하루하루가 고뇌의 연속이었다. 12년 동안 몸담았던 곳에서 떠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것도 자의에 의한 게 아닌 팀의 해체라는 통보에 의해 말이다.

'삼성' 송병구로 만나볼 수 있던 마지막 날, 그는 오히려 편안해 보였다. 생각의 정리가 끝난 상황에서 만나서였을까. 송병구는 이제 '삼성'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그동안 팀이라는 소속과 코치라는 자리 때문에 말할 수 없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다며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갔다.




Q. 안녕하세요. 삼성 소속이 아닌 '송병구'는 많이 어색하네요.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일단 프로리그가 종료된 뒤에도 (강)민수나 (백)동준이가 개인 리그에서 꾸준히 활약했기 때문에 바빴어요. 블리즈컨도 다녀왔고요. 사실 7, 8월쯤에 프로리그 폐지와 팀의 해체 소식을 어느 정도 접해서 '이제는 정말 끝이구나' 생각이 들어 코치로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만 하며 지냈던 것 같네요. 블리즈컨에 다녀온 뒤에도 kt 기가 레전드 매치, WESG 스타2 해설, 2016 e스포츠 시상식 등 일정이 계속 있었어요.


Q. 처음에 팀의 해체 소식을 접했을 때 기분이 정말 묘했을 것 같아요.

정확한 시점은 프로리그 3라운드 3~4주차에 처음 들었어요. 그때 들었던 생각은 스타1 때부터 '항상 지금이 마지막이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런 해프닝이 아닐까 싶었지만 이번에는 진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는 선수여서 정확한 정보라기보다는 소문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번일은 코치 입장에서 좀 더 정확한 정보를 빠르게 듣다 보니 실감이 나더라고요.

사실 처음에는 현실을 부정하고 원망도 많이 했죠. 승부조작을 했던 선수들, 그리고 물증은 없지만, 소문이 도는 선수들까지도 싫어졌어요. 한국e스포츠에 대한 원망(?)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투정이 더 정확할 수 있겠네요. '논란이 불거지기 전에 왜 대처를 하지 못했을까'에 대한 것들이요.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것에 불만이 많았던 것 같아요. 지금도 뭐 기본적인 마인드는 변하지 않았지만, 결국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제일 잘못하고 모든 원인은 조작했던 선수들이 가장 큰 것 같아요. 기업이나 협회에서도 손쓰기 힘들 정도로 그들이 많은 잘못을 했던 것도 사실이고, 그런 신세 한탄보다는 이제 인정할 건 인정하고 내가 어떤 길을 가야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어요.



Q. 언급했던 불만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 해주 실 수 있을까요?

한가지 예를 들어보면, 블리자드와 게임단의 미팅 자리였어요. 아무래도 게임단 해체와 프로리그 폐지가 주제라 분위기도 무거웠죠. 그런데 게임단 관계자를 제외한 분들은 이제 이런 것들에 대한 대비를 논하거나 역경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가 아니라 이제는 그만 내려놓는 분위기였고, 승부조작 이슈에 대한 파악의 정도가 생각보다 낮은 것에 놀랐어요.

저를 포함한 감독님들은 정말 벼랑 끝에 서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려보기 위한 발버둥을 치고 있는데, '저 분들은 그렇지 않구나'라고 느낀 순간이었죠. 이게 저만의 생각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난 뒤 조금 시야를 넓게 가지고 생각해 보면 그분들의 입장도 이해가 됩니다. 협회나 블리자드는 스타2 하나만 보는 것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고요. 어쨌든, 결국 문제는 선수들이었거든요. 그리고 생각해 보면 협회는 최선을 다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협회와 블리자드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제가 스타2에 종사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은 있기 마련이죠. 그리고 스타2 게이머 후배들을 생각하니 더 안타까웠어요.


Q. 스타크래프트2에 대한 아쉬움도 상당할 것 같아요.

음.. 글쎄요. 일단 선수 '송병구'로는 성적이 아쉬웠죠(웃음). 코치일로 보면 사실 처음 코치 제의를 받았을 때는 내키지 않았어요. 선수를 더 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여러 가지 팀 내적인 상황상 제가 제일 적임자였고, 승낙하게 됐죠. 그래서 김동건 코치와 함께 팀을 이끌어 나가게 됐는데, 둘의 스타일도 다르고, 서로 코치일이 처음이라 시행착오도 많았어요. 그래서 팀의 색깔을 잡아나가고 정착시키는 데 꽤 시간이 걸렸죠. 그 점이 가장 아쉽고, 아마 선수들도 그 시기에 꽤 혼란스러웠을 겁니다.



Q. 그런 부분 외에 게임 내적으로 아쉬운 부분도 있다고 들었어요.

저는 지금도 단언컨대, 스타크래프트2가 굉장히 재밌는 게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막상 해보면 정말 재밌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안 해보니까 잘 모른다고 생각해요. 한, 두판해보고 재미없다고 안 하는 게 아니라, 스타2에 대한 이해도를 느낄 수 있을 정도까지만 해본 뒤에 프로 선수들의 경기를 보면 진짜 재미를 알 수 있을 텐데 말이죠. 그리고 스타2의 인기가 없는 건 시대적 흐름이 계속 변한 것도 한몫한다고 생각해요.


Q. 계약이 종료된 지금 삼성 선수들의 거취는 어떻게 됐나요?

일단 강민수 선수와 남기웅 선수는 계속 활동을 이어 간다고 했어요(인터뷰 시기는 강민수의 스플라이스 입단 전). 백동준 선수는 일단 2017년 첫 시즌까지는 도전한다고 알고 있어요. 아마 다른 선수들은 군대에 가거나 휴식, 새로운 일을 찾아보겠죠?

말이 나온 김에 스타2 후배 게이머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게임에 대한 열정이 크지 않다면 지금 그만두는 게 제일 좋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직 게임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계속 도전하는 게 좋다고 봐요. 단지 안정적인 환경이 없어졌다는 이유 하나로 포기하는 선수들이 생겨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분명한 건 환경이 힘들어도 자신이 열정이 있고, 성적을 잘 낼 수 있는 자신감만 있으면 원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어요. 변현우 선수처럼요. 물론, 실패하는 선수도 있겠죠. 하지만, 한 번쯤 도전해보는 것도 굉장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Q. 그렇다면 '총사령관' 송병구 본인의 향후 미래는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고민이 정말 많았어요. 스타2 선수, 스타1 방송, 오버워치 등등 모든 분야에 가능성을 열어뒀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선택에 제 나이가 걸려요. 군대를 가야 하니까요. 시간적 제한이 있는 상황에서 신규 종목에 대한 도전은 사실 불가능하고, 스타2는 선수 생활을 이어가려면 해외 활동이 중요한데, 군 문제로 해외 나가는 것도 이제 쉽지 않거든요.

그리고 스타1 방송은 제가 예전에 언론을 통해 했던 말들도 있어서 팬들이 더 안 좋게 보실까봐 걱정도 됐고요. 결과적으로 스타1 방송을 선택했는데, 솔직히 아직도 팬들의 쓴소리가 두렵긴 해요(웃음).

이와 관련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실 예전에 언급했던 내용들이 스타1 방송을 하는 BJ 전체를 내가 싫어하는 것처럼 와전이 많이 됐어요. 제 의도는 그게 아니라 특정 인물 몇몇을 지적한 건데..(웃음). 그래서 내가 다시 스타1을 한다고 하면 스타1 전프로 선수들도 저를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이 되긴 해요. 친했던 선수들조차 내가 그들을 엄청 싫어하는 거로 오해하고 있더라고요. 그런 건 절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Q. 스타1 리그인 ASL에 택뱅리쌍이 모두 본선에 올랐어요.

그 친구들과 kt 기가 레전드 매치 당시 부산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내가 과연 혼자서 방송을 잘 이끌어 나갈 수 있을지,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인데 기대도 되고, 부담도 많이 되니까요. 그런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죠.


Q. 현재 스타1에 대한 자신감은 어느 정도인가요?

본격적으로 스타1을 다시 시작한 건 2~3주 됐는데, 5~6년 만에 하려다 보니 적응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 잘해질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은 있지만, 지금 당장 경기력에 대한 자신은 없거든요.

24강에서 유영진이라는 선수랑 붙고, 반대편에는 윤용태, 한두열 선수가 있거든요. 아마 대부분 팬들이 유영진과 한두열 선수를 잘 모르실 텐데, 래더에서 정말 핫하고 잘하는 선수들이거든요. 그런데 인지도에서 내가 압도적이다 보니 지면 날아올 화살들이 살짝 두렵네요.(송병구는 6일 펼쳐진 ASL에서 조 1위로 상위 라운드에 진출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많은 고민 끝에 개인 방송을 시작하게 됐어요. 열심히 할 테니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고,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