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을 발견하다. 자아를 성찰하다.' 어려운 이야기들이다. 사람은 너무나 복잡한 존재다. 너무 복잡해서 스스로도 어떤 성격인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어 하는지도 잘 모르는 체 살아간다. 나이가 서른이 돼도 혹은 그 이상, 아니 죽을 때까지도 자신을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냥 존재해 있는 나를 어떻게 다시 찾고 발견한단 말인가?

게임으로 나를 발견했다고 하면 믿을 수 있을까? 아마 쉽게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게임이 가지고 있는 편견 때문에 '아니 게임으로 나를 발견한다고?'라며 오히려 비웃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못 찾을 뻔했던 진짜 나를 찾아줬어요. 단순히 돈과 인기만 얻은 게 아니에요. 제가 성격이 되게 조용했는데 많이 바뀌었어요. 그냥 놀이가 아니에요. 저에게는... 말로 할 수 없는 그 이상의 값어치가 있어요."

지난 18일, 은퇴를 발표한 10년 차 프로게이머 '와치' 조재걸이 인터뷰 끝에 한 이야기다. 그는 게임으로 '나'를 발견했다. 그의 말은 진짜처럼 들렸다. 단순히 인터뷰 말미에 멋진 말을 하고자 지어낸 말이 아닌, 정말 그동안 가슴에 담고 있었던 그 말. 적어도 직접 인터뷰를 한 나는 그렇게 느꼈다. 감히 말하자면, 운동선수들이 선수 생활 끝에 하는 마지막 말과 같은 무게를 느꼈다. 게임은 누군가에게 교훈이, 철학이 그리고 인생이 될 수 있었다.

승부욕. 아마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내면이 밖으로 드러났던 게 승부욕이었다. 승부욕으로 인해 프로 게이머를 시작하게 됐고, 정상에도 오를 수 있었다.


"2008년도부터 프로 생활을 했으니 정말 오래됐네요. 중학교 때, 스타크래프트가 유행이었어요. 같은 반 친한 친구에게 지고서 너무 열이 받더라고요(웃음). 독하게 연습해서 그 친구를 이겼어요."

"그다음에는 더 잘하는 친구랑 붙어서 지고 연습해서 이기고, 이런 과정을 반복했어요(웃음). 최종적으로는 옆 학교 짱이었던, 지금은 절친한 친구인 (이)경민이랑 시합을 했어요. 결국 그게 인연이 돼서 같이 길드에 가입하고 같은 게임단에서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했어요."

"맞아요. 정신력으로 할 수 있는 건 이기고 싶어 해요. 체력적으로 어쩔 수 없이 지는 건 포기하는데, '찜질방 오래 참기' 이런 건 절대 안 져요. 독한 면이 있어요. 프로게이머 중에 정상급에 올랐던 사람들은 다 이런 게 있더라고요. 밖으로는 티가 안 나도, 속으로 독기가 엄청난 사람들이 항상 최고가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시작된 프로게이머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데뷔전에서 김택용을 이기고 상승세를 타는가 싶었지만, 내리 10연패를 했다. 무대만 서면 제대로 게임을 못한 본인의 탓이 가장 컸지만, 몸이 아팠던 영향도 있었다. 데뷔전 승리 후, 불행히도 오진때문에 맹장이 터져 수술을 받아야 했다. 스타크래프트 게이머는 며칠만 쉬어도 손이 굳는데 무려 한 달을 쉬었다고. 그렇게 아쉬웠던 2년 간의 프로 생활을 접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학창 시절에도 게임만 해서 너무 해본 게 없었어요. 일찍 사회생활을 한 거니까, 친구들과 추억도 없었죠. 그동안 하지 못했던 걸 했어요. 대학도 다녔고 아르바이트 해보고, 해외 봉사도 갔어요. 평범한 생활이 그리웠던 것 같아요."

"쉬는 2년 동안 행복한 때도 있었지만, 집안이 되게 힘들어서 행복함과 불행함이 공존해 있던 시기였어요. 오히려 힘든 시기였을지도 몰라요. 답이 없어지려던 찰나에 나진을 만났어요.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했어요."


어려운 집안이었다. 어머니의 몸은 오랜 시간 좋지 못했다. 현재도 병원에 계신다고. 수술 예정이라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정확한 병명을 묻지는 않았다. 귀공자 같은 외모 뒤에는 전혀 다른 배경이 숨어있었다. 그가 한국으로 돌아와 은퇴를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어머니의 건강 때문이었다.

"얼추 시기상 맞았어요. 어머니가 아픈 게 가장 큰 이유였고, ZTR도 선수들이 다 흩어지면서 새로운 출발을 원했어요. 계약 기간은 2년이었지만, 1년을 끝으로 팀에서 나오게 됐어요. 항상 서울 아니면 해외에서 지내서 어머니께 죄송한 마음이 컸어요. 어머니가 더 악화되기 전에 도울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잘 걷지도 못하시고 그래요. 입원해 계시는데, 한국에 온 이후로 계속 간호하며 지냈어요. 서울에 올라올 일이 있으면 간병인을 쓰고 있어요."

어려웠던 배경은 남들이 알지 못하게 그에게 나쁜 영향을 끼쳤다. 낮은 자존감과 자격지심. 그가 털어놓았던 단어들이다. 열등감은 승부욕을 만드는 핵심 원료다. 이런 이유로 남들보다 승부욕이 큰 것은 아니었을까.

승부욕은 큰 결과물을 만들어내지만, 단점이 있다. 사람을 지치게 한다. 그에게 프로게이머 생활 중 가장 좋았던 기억이 언제냐고 물었다. 당연히 우승을 얘기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첫 롤드컵 때인 것 같아요. 빨리 탈락을 해서 커피도 마시고 카드 게임도 하고 그러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많이 기억에 남아요. 그때 들었던 노래나 향수들이 남아있어요. 우승도 좋은데, 처음 느낀 여유였어요. 그 전까지는 너무 힘들었거든요. 집안도 안 좋았고 어머니도 아프셨으니까요."

"그런 부분에서 자격지심도 있었고 자존감도 낮았어요. 그 시간으로 인해 제 시야가 탁 트였어요. 처음 느꼈던 감정들이에요. 그래서 그다음 시즌에 바로 우승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를 성장시켜준 시간이에요."


어쩌면 열등감은 누구나 붙이고 살아가는 '혹'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혹을 복주머니로 만드느냐, 암 덩이로 만드느냐는 개개인에 달렸다. 조재걸은 혹을 완벽히 복으로 만든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기회를 준 것이 게임이었고 그중에서도 LoL이었다.

"LoL은 한국 서버가 생기고 나서부터 했는데, 되게 재밌고 색달랐어요. '스타1처럼 성공할 것 같다. 이거는 된다'고 생각했어요. 꾸준히 했어요. 그러다 보니 랭킹이 8위까지 올라갔었고, 상위 20명 중에 저만 프로 게이머가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CJ에서 연락이 왔어요. 저를 원거리 딜러로 영입하려고 하셨고, 테스트는 그런대로 잘 봤던 것 같아요.

"그런데, 테스트를 봤던 그 날 저녁에 랭크 게임을 하는데 '막눈' (윤)하운이랑 같은 팀이 됐어요. 첫판을 제가 정글로 하운이만 도와줘서 이기고, 다음 판은 적으로 만나서 하운이만 공격해서 이겼어요. 그랬더니 바로 친구 추가가 왔어요. 저한테 "우리 팀에 들어올 생각 없냐"고 물었어요."

"박정석 감독님께서 직접 전화하셔서 "포지션이 정글러냐?"고 물으셨고, 정글러가 필요하다니까 "정글러가 맞다"고 대답했어요(웃음). 그리곤 박정석 감독님이 예전에 같은 팀에 있었던 차재욱 선배에게 저에 관해 물어보셨대요. 차재욱 선배가 좋게 이야기를 해주셔서 테스트도 보지 않고 바로 팀에 들어갔어요."

"제가 CJ 쪽 테스트를 먼저 봤던 상태라 강현종 감독님께 물어보고 나진에 들어가게 됐어요. 평소에 박정석 감독님은 존경했던 분이라 나진에 가고 싶었어요. CJ에 갔으면 어떻게 됐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진에 간 게 잘 됐다고 생각해요. 좋은 선수들을 만나게 돼서 기뻤어요."



나진에 입단한 조재걸은 팀에 녹아들어 완벽한 조력자가 됐다. 승부욕은 강했지만, 질투와 시기는 없는 사람이어서 가능했다. 8위라는 랭크 성적과 가지고 있던 자신감이면, 팀 에이스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우리 팀에 '막눈', '프레이' (김)종인이 같은 스타가 있었어요. 스타가 너무 많으면 산으로 갈 수가 있어서, 저는 욕심이 없었어요. 게임 내 스타일도 화려한 스타일은 아니고 균형을 맞추는 스타일이었거든요."

그는 팀원들과 같이하는 게임이 너무 재밌었다. '막눈'을 주축으로 만들어진 팀이라 공격적이어서 재밌었고 팀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동료라는 존재는 그에게 엄청난 보물이었다. 그중에서도 정글은 탑과 뗄 수 없는 관계였으니 탑 선수들에 얽힌 이야기가 많았다.

"프로가 되기 전부터 제가 '막눈'을 되게 좋아했었어요. 당시에 거의 최고의 탑 라이너였으니까요. 그래서 탑만 파줬던 것 같기도 해요(웃음). 4차원이기는 한데, 정말 착한 친구에요."

"이상하게 우리 팀 탑 라이너들은 라인전을 엄청 잘하고, 약간 탑신봉자같은 끼가 있었어요. 저라서 호흡을 잘 맞출 수 있지 않았나...(웃음) '막눈'부터 시작해서 '세이브' (백)영진이까지 다들 대단했어요. 제가 '나무 관세음보살' 하면서 도와줬어요."

대화 내내 동료에 대해 얘기를 했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착한 친구들'이라는 얘기는 귀에 딱지가 박히도록 들었던 것 같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이라는 게 느껴졌다. 그런 면에 있어서 LoL은 스타크래프트 1보다는 그에게 훨씬 잘 맞는 옷이었다.

"스타1 때 연습에서는 잘했어요. 그래서 항상 대회를 내보내 주셨는데, 매번 졌어요. 방송 울렁증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요. 떨렸고, 게임이 연습 때처럼 되지를 않았어요. 그런데 LoL은 다섯 명이잖아요. 부스에 다섯 명이 나란히 있으면 제가 거의 중간쯤에 앉아요. 그러면 마음이 너무 안정됐어요. 든든하고 팀이 믿음직스러웠어요."

공감이 갔다. 나도 스타크래프트 1을 했던 유저로써 혼자는 무서웠다. 그래서 스타도 2:2나 3:3을 즐겨했다. LoL은 팀원들이 있어서 겁나지 않았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일지라도 무언가 의지가 됐다. 물론 지금은 변질이 됐지만, 은연중에 그런 마음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나 좋아했던 동료들도 하나, 둘씩 바뀌고 팀 성적은 차츰 내리막을 걸었다. 메인 스폰서인 나진도 상황이 썩 좋지 못했다. 상황이 악화되자 최고 인기 팀이었던 나진은 돌연 해체를 선언했다. 그는 팀에 남을 수 있었지만, 팀을 떠나기로 했다.

"진짜 아쉬움이 컸어요. 제가 커리어를 쌓고, 이 자리에 있고, 사람들이 기억해주는 것도 다 나진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팀이 사라지니 너무 아쉬웠죠. 팀을 떠나는 입장이기도 해서 미안함도 있었어요. '좀 더 잘했으면 팀이 유지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했어요. 후회보다는 반성이 많이 됐어요."

팀을 떠나 안착한 곳은 중국의 2부 팀 ZTR였다. 한국 팬들은 당연하고, 중국 팬들에게도 낯선 팀이었다. 1부 리그 팀에게도 제의가 왔었지만, ZTR이 그를 정말로 원하는 팀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1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나름 열심히 했지만, 마음처럼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고 했다. '와치' 조재걸의 프로게이머 인생은 소리소문없이 타지에서 끝이 났다.

그에게 프로 게이머 인생은 어땠을까?

"시원섭섭, 아쉬웠다. 그래도 좋았다. 게임이 너무 좋아서..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었고 너무 행복했어요."

"프로게이머를 하지 않았으면 삶이 재미없었을 것 같아요. 좋은 팀원과 감독님을 만나서 행복감을 많이 느낄 수 있었어요. 사람들이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해도 현실적으로는 잘 안 되잖아요. 저는 하고 싶은 것을 정말 할 수 있었고 돈도 벌고 명예도 얻을 수 있었으니 행복했어요."


끝으로, 실력보다는 외모로 평가받은 게 아쉽지 않았는지도 궁금했다. 돌아온 말은 '조재걸' 다운 대답이었다.

"외모에 대한 얘기는 처음에는 좋았죠. 하지만, 나중에는 실력에 대한 부분이 인정을 약간 못 받는 것 같기도 했어요. 그래서 더 독하게 마음을 먹고 노력했어요. 상대 정글에게 절대 안 지려고 했어요. 저에게는 오히려 좋은 자극제가 된 것 같아요."


프로게이머 인생은 이제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게임과 앞으로도 함께 간다. 지난 18일, 조재걸은 은퇴를 발표함과 동시에 콩두 컴퍼니에 합류 소식도 전했다. 원래부터 팬들과의 소통을 원했던 조재걸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콩두 소속으로 개인 방송을 시작할 예정이다. 그는 앞으로 팬들을 만날 생각에 들떠있었다. 인터뷰 내내 밝은 모습이었다.

"많이 그리웠고 보고 싶었어요. 중국에 있는 동안 한국 커뮤니티나 SNS를 통해 소통을 못 했어요. 이렇게 인사드리게 돼서 반갑고 좋아요."

"앞으로는 개인 방송으로 찾아뵐 것 같아요. 다음 주, 어머니 수술이 끝나고 이사를 해요. 안정을 찾게 되면 다음 달부터는 찾아뵐 수 있을 것 같아요.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소통하고 싶어요. 궁금하신 것은 다 알려드릴게요. 지금 스타가 된 前 나진 선수들의 비밀을 다 폭로해드릴게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