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 브루드워를 처음 플레이 한 건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당시 인기를 끌기 시작하던 스타크래프트는 내가 살던 조그만 지역에도 점점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곧이어 남학생들의 주요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이후, 학창 시절을 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스타크래프트의 레이스 아이콘은 바탕화면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여전히 스타크래프트를 가까이하고 있지만, 리마스터 소식이 들려왔을 땐 기대 반 걱정 반의 복잡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래픽 개선과 한국어 지원, 인터페이스 수정 등 새 옷을 입고 등장하는 것은 반가웠다. 다만, 20년 만의 큰 변화가 기존 버전과의 괴리감을 불러일으키진 않을지, 혹은 그 수준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실망하게 되진 않을지 내심 두렵기도 했다.

출시가 예고된 여름이 깊어지며 리마스터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커지고 있을 때, 운 좋게 이를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얼마 전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된 유닛 GIF 이미지가 다소 실망스럽다는 의견이 있어 직접 확인해보고 싶던 차에 생긴 좋은 기회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를 시연하고 느낀 변경점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 "이렇게 생긴 건물이었구나!" 선명해진 화면과 넓어진 시야, 타일셋과 초상화도 개선

처음 접한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는 게임 모드 선택 화면이었다. 시연에 사용된 버전은 아직 완성 상태가 아니기에, 한글화는 지원되지 않는 상태였고 싱글 플레이로는 진입이 불가능했다. 게임 모드 선택 화면의 배경 이미지는 변경된 상태였고 4:3 비율의 화면이 아닌 와이드 스크린으로 제공되고 있었다. 게임 도중이라도 F5키 입력을 통해 리마스터 버전과 기존 버전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가장 궁금한 건 역시 그래픽 개선이었다.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이었기에 빠르게 게임을 시작해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래픽 개선은 기대를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 게임이 시작되고 건물과 일꾼이 보이자 그래픽의 변화가 확연히 느껴지기 시작했다. 넥서스는 건물에 새겨진 무늬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고 프로브도 그 외형이 다소 변경된 것을 알 수 있었다. 리마스터 출시 계획이 공개된 이후, 차례로 공개되던 유닛의 새로운 외형을 그대로 만날 수 있었다.

프로토스에서는 리버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유닛에 비해 곡선이 많이 있는 외형을 지니고 있어 변화를 크게 다가온 것 같다. 움직임에 따라 리버를 감싸고 있는 장갑도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닛과 건물의 개선은 프로토스뿐만 아니라 테란과 저그를 플레이 할 때도 어렵지 않게 체감할 수 있었다. 유닛의 경우, 단순한 외형 뿐만 아니라 사망 시 발생하는 이펙트, 공격 이펙트 등이 변경된 사례도 있었다. 테란은 파이어뱃의 사망 효과가 기억에 남는데, 폭탄이 터지는 것과 유사한 폭발이 발생한다. 그러고 보니, SCV가 미네랄을 채집하거나 건물을 지을 때 발생하는 푸른색 불빛 이펙트도 용접을 떠올릴 정도로 강렬해졌다.

▲ 테란과 프로토스 유닛은 정갈한 느낌으로 개선되었다


▲ 프로토스 건물에 새겨진 무늬도 확인할 수 있다


깔끔하고 정갈해진 프로토스, 테란과 달리 저그는 조금 더 생동감 있고 괴물에 가까워진 외계 종족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눈에 익숙해지기 전까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저그라는 종족의 특성을 고려하면 괜찮은 접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개선은 라바부터 울트라리스크, 해처리부터 하이브까지 모든 저그 유닛과 건물에 걸쳐 보이는 특징이다. 특히, 디바우러에게서는 더듬이 부분이 반짝이는 외형상의 변화도 만날 수 있었는데 기존 디바우러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부분이라 잠깐 멍하게 지켜보기도 했다. 가장 많은 차이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일까. 묘하게도 저그의 유닛과 건물들은 보는 맛이 있었다.

유닛과 건물을 전반적으로 살피고 나자, 지형과 초상화의 변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픽 개선의 섬세함을 알 수 있는 측면이었다. 지형은 기존보다 입체감이 생긴 모양새다. 언덕이 조금 더 섬세하게 표현되었을 뿐 아니라, 타일셋은 그 형태가 조금 더 명확해졌다. '초록색 바닥'으로만 기억하던 곳은 리마스터에서 잔디밭으로 다시 태어났다. 초상화는 미리 공개된 SCV, 메딕, 프로브 등 외에도 모든 유닛이 새로운 모습을 갖췄다.

화면 비율이 4:3에서 와이드 스크린으로 변경되면서, 한 화면에 담기는 것도 많아졌다. 그래픽 개선 내용 중 유일하게 실제 게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이다. 대부분의 모니터가 16:9를 기본 화면 비율로 삼고 있는 시점에서, 스타크래프트는 별도 조치를 하지 않는 한 모니터 좌,우에 검은색 여백이 발생했다.

물론, 이를 전체 화면으로 조정하는 방법도 있고 실제로 많은 이들이 사용 중이다. 그러나 이 경우 화면 자체를 가로로 늘리는 것이라 이질감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다. 리마스터에서는 16:9 비율을 지원함으로써 더욱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리마스터 화면에서는 대규모 병력을 운용하는 것과 다수의 건물에서 유닛을 생산하는 과정이 수월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스타크래프트를 하면서 화면을 이동해가며 병력을 움직이고 생산하는 것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테란 유저라면 시야 확보와 거리 재기가 일상처럼 발생하는 테란 vs 테란전 시즈 탱크 싸움에서 조금이나마 편리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할 만하다.

▲ 리마스터는 와이드 스크린으로 넓은 시야를 제공한다



■ APM 등 1.18 버전에 추가된 기능은 그대로 이전, 배틀넷은 형제작 닮은꼴

시스템 측면에서는 현재 1.18 버전에 추가된 사항들과 등장이 예고된 시스템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깜짝 놀랄 만큼 파격적인 부분은 없었지만, 편의성과 직관성이 개선되었다는 점에서는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실시간으로 집계되는 APM과 게임 진행 시간을 나타내는 시계는 큰 변화 없이 리마스터에 적용되어 있었다. 설정 방법도 1.18 버전과 같기에 큰 어려움 없이 이용이 가능했다. 단, 버전에 따라 화면 비율이 달라졌기에 노출 위치에는 변동이 발생하는 모습이었다.

리마스터의 배틀넷은 전반적으로 형제작 '스타크래프트2'의 시스템을 닮은 형태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변화는 블리자드앱 아이콘을 만나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기능 이동 시 로딩 시간이 소모되는 경우 푸른색의 블리자드앱 아이콘이 화면에 표시되었다. 사소하지만 스타크래프트 배틀넷이 개선되었다는 것을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흔적인 것 같아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미리 공개된 대화 채널, 게임 생성과 참여, 순위표 등도 살펴볼 수 있었다. 특이점으로 게임 참여 창에서는 개설되어 있는 방 리스트에서 해당 방의 생성 시점이 표기된다. 게임 타입에 따라 필터 검색도 가능하고 필요 시 새로고침 버튼을 통해 리스트를 갱신할 수도 있어 편의성이 강화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간혹, 원하지 않는 방에 입장하는 난감한 일이 발생하곤 했는데 리마스터에서는 의도치 않은 게임 참여 횟수를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 리마스터 배틀넷의 게임 참가 화면, 편의성이 강화되었다


순위표는 랭크 순위를 알 수 있는 곳이다. 랭크를 플레이한 이들의 기록이 집계되며 점수순으로 플레이어 순위가 나열된다. 가장 많이 플레이한 종족과 승, 패 기록도 간편하게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별도의 사설 서버를 통해 명맥을 이어오던 래더가 체계적이고 직관적인 랭크 시스템으로 대체될 것으로 보인다. 검색 기능도 활용 가능한데 플레이어 ID 뿐만 아니라 배틀 태그도 지원되는 것으로 확인된다.

랭크 기능은 아직 미리보기가 공개되지 않았기에 이번 시연에서 처음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랭크의 가장 큰 특징은 일반 게임과 달리 참여하기 전 플레이 할 종족을 고른다는 점이다. 테란, 프로토스, 저그 뿐만 아니라 랜덤도 선택이 가능하다. 직접 랭크를 진행할 수는 없었기에 정확하진 않지만, 스타크래프트2와 많은 부분이 유사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종족을 고른 상태에서 매칭을 시작해 비슷한 수준의 상대와 만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밖에 개인의 종족별 승률과 랭크 순위 등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 예고된 프로필 기능은 아쉽게도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된 순위표 시스템, 랭크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 "20년 된 게임이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와 e스포츠




'20년도 넘은 게임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을까?' 리마스터에 대한 소식을 접했을 때 든 심정 중 하나였다. 2012년 허영무의 우승으로 끝난 스타리그 이후 줄어들었던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에 대한 관심도 리마스터에 대한 소식 이후 ASL이나 BJ들의 개인방송을 통해 조금씩이나마 다시 관심이 생겼다.

사실 현재 스타크래프트로 진행되는 리그들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편이었다. e스포츠라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낸 얼마나 대단한 게임인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2017년에 어울리는 게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요즘 출시되고 있는 게임들에 비해 현저히 그래픽에서 뒤처지는 20년이나 된 스타크래프트 기존 버전에 신규 유저를 유입하기엔 쉽지 않다. 실제로, 과거에 스타크래프트를 많이 즐겼던 사람들도 오랜만에 접하게 되면 그래픽이나 유닛들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느낌을 받는다.

요즘 ASL과 같은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꽤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그 수명이 뻔히 보였다. 새로운 선수들은 등장하지 않고, 예전에 활동하던 선수들만이 돌고 도는 '그들만의 리그'의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사실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를 체험하러 가는 길에도 성공에 대한 큰 기대감은 없었다.

그러나 리마스터를 직접 접해본 뒤 든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지난 3월 26일 아이 러브 스타크래프트 행사 당시 공개된 리마스터 영상을 봤을 때도 큰 감흥은 없었는데, 막상 직접 플레이해보니 향상된 그래픽이 확연히 느껴졌다. 과거 브루드워가 시력이 0.3~0.4라면 리마스터는 1.0 이상 된 느낌이랄까.

짧은 시간 동안의 체험이었으나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는 리마스터로 인해 2017년에 어울리는 그래픽으로 재탄생했다. 기존의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향수를 간직한 유저들과 과거 스타크래프트의 부흥기를 몰랐던 신규 유저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게임으로 우리 곁에 돌아올 것 같다. 그로 인해, 기존 선수들뿐만 아니라 즐기는 유저가 많아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루키들의 등장도 기대해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