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챔스 무대에서 정글이란 곳은 살벌했다. 조금만 메타에 뒤처지거나 너프를 받으면 바로 상대에게 무너지는 글자 그대로 약육강식의 정글이었다. 정글러를 지칭하는 표현마저 '육식'과 '초식'으로 굳어질 정도로 잡아 먹고, 먹히는 치열한 생존 경쟁을 지속했다. 그리고 매번 당대 OP로 평가받는 소수의 챔피언이 정글을 지배해왔다.

그런데, 요즘 롤챔스 정글에 오랜만에 다양한 얼굴을 볼 수 있게 됐다. 엘리스-렉사이-그라가스 중심의 정글에 워윅-니달리를 비롯해 세주아니-스카너-아무무와 같은 초식 정글러가 등장해 새로운 흐름을 선사한 것. 아직 확실한 주류 픽으로 모두 자리 잡진 못했지만, 다시 등장할 가능성은 충분히 보여줬다. 더는 일부 챔피언만의 독무대가 아니게 됐다.

게다가, 최근 적용된 7.14 패치로 여러 챔피언들이 등장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다양한 아이템 변화와 챔피언 스킬 변동으로 정글에 새로운 바람이 불 전망이다. 롤챔스에도 25일부터 적용될 7.14 패치와 함께 육식과 초식 정글러들의 더욱 치열한 대결 구도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초식 - 시작은 깜짝 카드, 그 끝은 승리 카드? 새 패치와 그들의 향방



7.13 패치로 진행된 마지막 주차에 초식 정글러들이 대거 등장했다. 샹향된 바미의 불씨와 잿불거인 덕에 초식 정글러에게 좋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프로 단계에서 바로 쓰이진 못했다. 그런데 '앰비션' 강찬용의 세주아니를 시작으로 '스코어' 고동빈의 스카너, '비욘드' 김규석의 아무무까지 등장해버렸다. 살벌한 프로 무대에서 그 가능성을 어느 정도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 '스코어' : 정글러는 '팀빨'


▲ 7.13 패치로 상향된 '바미의 불씨', '잿불거인'


MVP의 이종원 코치는 초식 정글러가 다시 등장할 수 있게 된 기본 배경에 대해 "한동안 초식 정글러들은 사냥하다가 마나를 소진해 갱킹은 꿈도 못 꿀 정도였다. 하지만 정글 지역에서 마나 재생 효과를 높여주는 정글 아이템(추적자의 검-추격자의 나이프-척후병의 사브르) 덕분에 초식 정글러도 꾸준히 사냥을 이어가거나 갱킹이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다양한 초식 정글러가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2라운드 kt 롤스터 전을 앞두고 스카너-헤카림-아무무 등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초식 정글러를 쓰려면 팀의 상황, 상대 조합에 맞춰야 한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스카너를 기용해 MVP를 꺾었던 kt 롤스터의 이야기도 들어봤다. 이지훈 감독은 스카너의 등장할 수 있었던 조건에 대해 "우리 팀 라이너들이 확실히 라인 주도권을 잡을 수 있기에 가능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어서 "스카너가 깜짝 카드로 등장했을 때 많은 팀들이 당황하더라. MVP가 그동안 우리를 상대로 변수픽으로 많이 승리했는데, 우리도 상대에게 한번 혼란을 주고 싶었다"며 스카너 카드를 쓴 이유를 설명했다.

초식 정글러의 추가 등장 가능성 대해서는 "다른 팀들도 언제 스카너-초가스와 같은 카드를 꺼낼지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고 언급했다. 동시에 "여전히 엘리스-렉사이-자크와 같은 픽이 정글 싸움에서 강력하므로 주류 픽이겠지만, 섬머 스플릿 후반부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는 초식 정글러가 생길 것이다"고 의견을 냈다.

▲정당한 영광으로 기동성 살린 '스코어' 스카너, 과연 초가스도?

이지훈 감독과 '스코어'가 모두 언급한 초가스는 다른 코치진과 프로들 사이에서도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스카너처럼 정당한 영광으로 약점이었던 기동성을 살리고, 날카로운 가시(E) '3타'에 둔화 효과까지 적용됐기 때문이다. 이젠 단순히 파열-흉포한 울부짖음 스킬 샷에 의존하는 챔피언 이상의 모습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7.14에서 초식 정글러와 탱커에게 힘을 실어주는 '덤불 조끼'라는 아이템이 등장했다. 가시 갑옷의 하위 아이템으로 기본 공격을 한 상대에게 마법 피해를 돌려주고 고통스러운 상처 효과(치유 능력 감소)를 남긴다. 예전처럼 상대가 AD 딜러가 많을 때만 뽑는 아이템이 아니다. AP 챔피언과 정글 몬스터의 기본 공격에도 반격할 수 있게 됐다. 모렐로노미콘이나 처형인의 대검을 갈 수 없었던 탱커들에게 덤불 조끼의 고통스러운 상처 효과는 환영할 만한 기능이다.

초가스 외에도 해외에서 먼저 등장했던 마오카이까지 다양한 초식 정글러가 프로들의 솔로 랭크에서 선택받고 있다. 다양한 변화 속에서 초식 정글러가 오랜 침묵을 깨고 자신들의 자리를 잡아갈 기회를 잡았다.






육식 - 정글의 진정한 맹수, 날카로운 발톱을 세울 수 있을까.





'육식' 정글러 역시 자신의 터전을 쉽게 내줄 수 없다. 최근 패치로 탱커 챔피언과 아이템 변화가 주를 이뤘지만, AD 암살자들의 아이템 역시 바뀌었다. 화끈한 암살 능력으로 돌아온 드락사르의 황혼검을 필두로 하위템인 톱날 단검까지 변화했다. 두 아이템의 변화는 스프링 스플릿 이후 너프로 잠시 자리를 비운 카직스-렝가에게 반가운 소식이라 할 수 있다. 톱날 단검이 스킬 대미지를 추가로 넣을 수 있고, 드락사르 황혼의 검에 둔화 효과까지 붙게 됐다. 두 아이템의 비전투 시 이동 속도 증가 효과는 사라졌지만, 딜적인 부분이 확실히 강화된 상태다.

한동안 다른 팀에서 안 쓰던 카직스를 섬머 스플릿 2라운드까지 선택했던 '커즈' 문우찬은 패치의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카직스에 대해서는 "챔피언 자체의 딜 너프가 있었지만, 궁극기 시간 버프와 물리 관통력 아이템의 상향이 있어서 상대를 끊기가 좋아진 것 같다"며 1:1 능력이 좋아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최신 메타와 관련한 우려도 있었다. "요즘 근거리 서포터가 많이 나오면서 한타에서 활약하기 더욱 힘들어졌다. 렝가 역시 마찬가지다"며 물리 관통력 아이템 중심의 암살자 챔피언의 한계 역시 지적했다.

▲ 섬머 스플릿에서 카직스를 가장 오래 쓴 롱주 게이밍 '커즈'

롱주 게이밍의 '커즈' 외에도 롤챔스에서 암살자 정글러를 잘 쓰기로 유명한 선수들이 있다. 렝가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삼성 갤럭시의 '하루' 강민승과 에버 8 위너스의 '말랑' 김근성 등이 극한의 암살 능력을 발휘해 '육식' 정글러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역시 관심사다.

이제부터 롤챔스 경기는 프로들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가장 큰 대회인 롤드컵으로 향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7.14 패치 변화는 그들에게 선택의 기로일 것이다. 당장 코앞에 닥친 경기를 앞두고 가장 정형화된 픽으로 변수를 없앨지, 새롭게 떠오른 깜짝 픽을 선택해 의외의 승리를 거둘 수도 있다. 그리고 경기 전반의 운영 스타일을 좌우하는 '육식-초식' 정글러 선택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한순간의 선택이 롤드컵이라는 영광스러운 무대로 그들을 인도할 수 있기에 LoL 프로팀들의 결정이 더욱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