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의 일생는 짧은 편이다.

선수마다 개인차는 있으나 대략 20대 중반을 넘어서면 은퇴를 생각하곤 한다. 물론, 그 이후에도 정상급 경기력을 보여주는 선수는 있다. 그러나 많은 선수가 스무살 중반을 넘어가면 선수 생활을 마감하거나 지도자의 길을 걷는다.

프로게이머의 황혼기는 지나치게 빨리 찾아오는 듯 싶다. 종목을 떠나, 선수가 자신의 실력이 전만큼 좋지 않다고 느끼게 되는 일은 잔인할만큼 슬프다. e스포츠 종목은 선수의 나이가 어린만큼 그 충격이 다른 스포츠 종목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듯 하다.

‘내가 이제 이 선수에게도 밀리나?’

“그런 생각이 들면 자괴감이 많이 들죠. 제가 상대 선수한테 밀린다는 게 느껴질 때. 단 한 경기를 위해 모든 걸 쏟아부으며 연습을 해왔는데, 그동안 해온 모든게 다 부정당하는 것 같잖아요.”

은퇴를 생각했냐는 질문, ‘울프’ 이재완은 고심 끝에 말을 꺼냈다. 사실 이번 이적 시즌을 앞두고 그의 은퇴에 대한 말들이 많았다. 그럴만 했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는 ‘에포트’ 이상호와의 주전경쟁에서 밀렸고, 정글러로서 포지션 변경은 실패로 돌아갔다. 설상가상 건강까지 악화되었기에 어찌보면 은퇴는 당연한 수순처럼 보였다.


“프로게이머를 시작할 때부터 박수칠 때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어요. 그 시기를 따진다면 16년이 좋았겠죠. 사실, 17년도는 누가 보더라도 제가 잘못한 시즌이었어요. 노력도 남들보다 덜한 시기였고. 그래서 후회가 남지 않으려고 이듬해에는 정말 열심히 했어요.

정글러로 포지션을 전향했던 것도 나름 이유가 있었어요. 아마추어 시절에도 주 포지션이 정글러였고, 평소에도 정글 포지션을 많이 했거든요. 당시 우리팀 상황이 좋지 않았는데, (김정균) 감독님이 정글 포지션을 해보지 않겠냐고 물어봤어요. 스크림을 해봤는데 성적도 굉장히 잘 나왔죠.

잘할 수 있었고, 잘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남들보다 빠르게 도착해서 솔로랭크를 하고, 밥먹고 연습하고, 정해진 연습 시간은 새벽 두 시이지만 5시, 6시까지 연습하고, 침대에 누워서도 영상을 보고, 심지어는 정글 동선을 생각하는 꿈도 꿨어요.”

그러나 이재완의 포지션 변경을 실패로 돌아갔다. 그는 실제로 출전한 경기에서는 이렇다할 장점을 보여주지 못했다. 스크림 성적이 좋았고, 자신 또한 열심히 연습했기에 더욱 아쉬운 결과였다.

“일주일만 더 연습했다면, 한 경기만 더 미루고 나왔다면, 더 잘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지금도 해요. 조금만 더 제게 시간이 주어졌다면 정말 잘할 수 있었을텐데…

그렇다고 당시 우리 팀이 나에게 몇 번씩 기회를 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잖아요. 그 점이 많이 아쉬워요. 감독님도 술자리나, 따로 만나면 그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우리가 상황이 좋았더라면, 더 많은 기회를 줬을 텐데 미안하다고.”


포지션 변경 실패와 서포터로서 기량 악화, 팀의 좋지 못한 사정까지 맞물리면서 이재완은 선수 생활 중 최악의 힘든 시간을 보냈다. 정신적으로 불안한 점도 눈에 띄었다. 패배가 확정되고 나면, 부스 안에서 눈물을 보이는 모습이 카메라에 자주 잡혔다.

이재완은 6년 동안 프로게이머 생활을 해온 선수다. 그가 보내온 영광의 나날도 많았지만, 패배의 경험도 결코 적지 않았다. 패배를 털어내고, 다음 경기에 집중하는 것은 베테랑이 일정한 경기력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이재완이 이를 모를리 없을 텐데, 패배를 쉽게 털어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 SKT는 달랐어요. 16년, 17년까지도 거의 항상 이기는 팀이었고.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 중 하나가 ‘지는데 익숙해지지 말자’였어요. 그게 익숙해지는 순간이 제가 낙오되는 때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매 한 판에 슬퍼하고, 분노하고, 분했죠.

솔직히 말하면, 팀이 지면 안된다는 생각보다 내가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어요. 팀 승리가 먼저지만, 팀이 잘 풀리지 않더라도 저는 잘하고 싶었어요. 팀이 이겨도 제가 만족할만큼 경기력이 나오지 못하면 그 것 만으로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동안 백 번, 천 번은 경험한 상황이고 머리로는 어떻게 하면 된다는 걸 아는데, 판단이나 움직임이 조금씩 늦는 거에요. 게임이 끝난 직후나, 상황이 끝나고 나면 내가 실수했다는 걸 바로 느껴요. 그래서 다시 잘해보려 해도 비슷한 실수가 나오는 거에요.

경기에 지면 연습한 모든게 아무 것도 아닌 게 되잖아요. 그 날 단 한 번의 경기를 위해서 열심히 달려왔는데, 아무 것도 아닌게 되는 거에요. 그게 너무 분하고 화가 나고…”


이재완은 조금은 격양된 듯 보였으나 이내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

새로운 출발을 앞둔 ‘울프’ 이재완 이였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SKT T1을 떠나 낯선 땅, 낯선 리그, 새로운 팀에서 용병 생활을 해야한다. 계속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선 안된다. 침착하게 다시 뛰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전했다. 한 번만 더 자신을 몰아붙여 스스로 만족할 경기력을 보이고 싶다 말했다. 지금은 은퇴할 시점이 아니라 다시 한 번 자신을 증명할 시기라고.

“프로게이머 전성기 짧죠. 신예 선수들에게 밀릴 때면, 이런게 세대교체인가 싶기도 해요. 그래도 아직까지 정상의 기량을 유지하는 선수들이 있잖아요. ‘마타’ 조세형도 있고, ‘고릴라’ 강범현도 있고. 은퇴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지금 은퇴를 하면, 사람들 생각에 저는 열심히 하지 않고, 자기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그런 사람이 되는 거잖아요.

새로운 환경에서 좋은 선수들과 한 번 더 열심히 뛰고 싶어요. 건강과 노력이라는 핑계를 댈 수 없는 환경에서 최대한 노력할 거에요. 그렇게 하고도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때가 정말 은퇴해야될 때이지 않을까요?”


‘울프’ 이재완이 우리 곁을 떠난다. SKT T1의 부흥기를 함께했고, 이는 곧 LCK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그를 다시 국제 무대에서 볼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어쩌면 내년 이적 시장이 끝나가는 어느 즈음 그의 은퇴 소식이 들려올지도 모를 일이다.

박수칠 때 떠나고 싶다던 그는 다시 남는 것을 결정했다. 그리고 팬들의 눈길이 닿기 힘든 곳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이재완에게 남겨진 이정표가 한 방향만을 가리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뛰겠다는 그의 다짐은 결과와 상관없이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감사하다는 말이 너무 하고 싶었어요. 제가 힘들 때마다 정말 많은 도움이 됐거든요. 트위터, 페이스북, 사무국을 통한 연락, 많은 편지들 모두 제게 많은 위로가 됐어요.

사실 팬심이란게 잘 이해가 되진 않았어요. 나란 게 뭔데, 이 사람이 나에게 신경을 써주고 물질과 시간을 들여 응원해주는가. 내가 누군가의 팬이 되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기분을 잘 몰랐는데, 힘들 때마다 꺼내보는 팬 분들이 보내준 편지를 보면서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프로게이머를 더 해야하는 이유가 되어주셨어요.

사실 팬과 선수는 굉장히 일방적인 관계잖아요. 팬 분들은 저희에게 많은 걸 해주시는데, 저희는 연례행사처럼 팬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해주는 게 전부에요. 저를 응원해주시는 분들께 저는 그렇게 여겨지고 싶지 않아요. 꼭 최선을 다하는 모습 보여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