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K가 프랜차이즈화를 선언한 지 어느덧 3개월 정도 흘렀다. 많은 게임단 및 기업이 프랜차이즈에 뛰어들 것을 선언했고 그 중에 21개 단체가 최종 지원했다. 결과는 9월 말에 나온다.

브리온 컴퍼니 산하 하이프레시 블레이드도 프랜차이즈에 도전한 팀들 중 하나다. 가장 먼저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프랜차이즈 입성 도전을 선언했고 그 후의 행보도 팬들에게 착실히 공개했다. 그 중에 가장 눈에 띄었던 행보는 한국야쿠르트와의 네이밍 파트너십 체결과 박정석 신임 단장 선임이었다.

박정석 단장은 e스포츠의 역사와 함께 호흡했던 인물이다. 과거 스타크래프트 시절 선수로 활동하며 화려한 이력을 쌓았고 LoL의 시대가 온 뒤로는 게임단 감독직도 수행한 바 있다. 또한, e스포츠 학원을 설립해 꿈나무들을 지원하기 위한 노력도 했으며 이번엔 게임단장으로 변신했다.

하이프레시 블레이드로 이름을 바꾸고 활동 중인 게임단의 단장이 된 박정석과 직접 만날 수 있었다. 그가 생각하는 하이프레시 블레이드의 향후 방향성은 물론, 프랜차이즈에 대한 생각과 목표는 어떤지 상세히 들을 수 있었다.


■ 선수부터 감독, 그리고 단장까지

내가 맡은 직책인 단장은 스포츠 구단에서 말 그대로 선수단의 장이다. 거기서 감독을 선임할 수 있고 감독과 상의해서 코치나 선수를 선발할 수 있다. 전통 스포츠에서는 구단마다 역할이 조금씩 다르다. 어떤 곳에서는 사무국이나 단장이 선수를 데려오면 감독이 기용 여부를 판단하기도 하고 반대로 감독이 원하는 선수를 사무국이나 단장에게 말하면 영입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나도 이러한 업무들을 맡게 될 거다. 그 외에도 팀의 전반적인 마케팅과 홍보 등 수익 창출이 가능한 사업들도 담당하고 있다.

하이프레시 블레이드는 나진 e엠파이어의 후신이다. 나진과 콩두 몬스터, 그리고 하이프레시 블레이드 이렇게 이어진다. 내가 나진에 있을 때 중간에 삐끗하면서 게임단이 해체 수순을 밟았다. 그런 부분에서 내실을 잘 다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팀에 단장으로 합류하게 됐을 때 나진 때의 생각이 바로 들었다. 그때 다 이루지 못했던 꿈을 여기선 다 이루고 싶고 그때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들은 여기서 반복되지 않도록 하고 싶다. 난 회사에 전문 e스포츠인이로 온 거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철학을 하이프레시 블레이드에 뿌리내리고 싶다.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건 생활 리듬이었다. 과거 선수 생활과 게임단 감독직을 했다 보니 생체 리듬도 낮부터 새벽까지 활동하는 걸로 맞춰져 있었다. 그러다가 지금은 9 to 6 (오전 9시 출근에 오후 6시 퇴근)에 적응 중이다. 경기가 있는 날엔 바뀌기도 한다. 처음엔 아침에 일어나기 너무 힘들었다. 지금은 적응 잘 해가고 있다.

내가 선수였을 땐 훈련 시스템이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주먹구구식 느낌이 강했다. e스포츠의 초창기였기에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어떨 땐 24시간 연습하고 24시간 쉬는 패턴도 있었고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서 산을 오른 뒤에 내려와서 연습에 돌입하는 시기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방식이었다. 그 때부터 개인적으로 '이런 시스템이 과연 선수들에게 도움이 될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아쉬운 부분들을 내가 감독하면서 고치고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나진 e엠파이어 감독 시절

나진에 처음 감독이 됐을 땐 감독 본연의 업무 외에 참 다양한 일을 해야 했다. 나 뿐만 아니라 당시 감독들이 다 그랬다. 지금은 전문성을 가진 코치진이 선수단의 경기력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대지만, 내가 감독이었던 12년도엔 감독이 매니저와 프론트나 사무국 역할까지 다 해야 했다. 크게는 스폰서십 체결에도 나섰고 작게는 숙소 장보기도 했다. 요즘은 다행히 그런 시스템이 잘 갖춰지고 나눠져있다.

당시엔 감독이 스카우터 역할도 했다. 당시 나 같은 경우는 '피넛' 한왕호와 '울프' 이재완을 직접 찾아갔다. 이들의 부모님을 직접 뵙고 설명을 드리고 걱정하시는 부분들을 최대한 성실히 답변드렸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단장이 됐다. 사람 일이란 게 진짜 모르는 것 같다. 선수 은퇴했을 때 e스포츠에 대한 회의감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e스포츠 씬에 합류하지 않을 거란 선언도 했다. 그러다가 당시 나진 대표님의 제안으로 감독을 하게 됐다. 감독 사퇴 후엔 후진 양성을 위해 학원을 차리면서 현장보단 뒤로 빠져서 도움을 주는 쪽으로 자리를 잡자고 생각했다. 그때도 비슷한 내용의 선언을 했는데 이번엔 브리온 대표님이 단장직을 제의해주셔서 고민 끝에 합류했다. 사람은 항상 말을 조심해야 한다고 느꼈다(웃음).



감독 때 했던 게임 외적인 일들이 지금 도움을 주고 있다. 난 항상 다른 사람들의 장점을 최대한 배우고 흡수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사람마다 어쩔 수 없이 단점도 있게 마련인데 난 그런 부분은 최대한 닮지 않고자 한다. 내가 감독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사무국이나 단장이 된다면 이런 부분들은 신경써야겠다고 느꼈던 것들이 있었다.

그 중에 하나는 사무국의 선수단 개입 여부다. 실제 단장이 되고 첫 출근한 날, 직원들에게 '절대 게임단 멤버들에게 밴픽과 선수 기용에 대해 뭐라 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해야될 일이 생겨도 나 혹은 그런 역할을 하는 분들만 하자고 말이다. 누구나 관여를 하기 시작하면 게임단이 잘 돌아가지 않는다. 대표님에게도 같은 말씀을 드렸다.

만약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가 있는데 주변에서 자꾸 개입하면 처음 신념과 확신이 흔들린다. 모든 게임단은 훈련 과정에서 좋은 결과를 냈기 때문에 실제 대회에서 꺼내는 건데 옆에서 개입이 들어오면 코치진이나 선수들 중에 분명 흔들리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코치진은 인게임에 대해선 전문가다. 전문가들이 전문적인 영역에서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해주는 게 사무국과 단장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누가 봐도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면 어느 정도 제지할 필요는 있다. 그게 사무국과 단장의 역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건 정말 개입이 필요한 시기에만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단,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다면 사무국은 개입이 아니라 시스템적인 변화와 발전을 통해 코치진과 선수단을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게임단 자체의 방향성이 옳지 않은데 거기에 개입하지 않으면 방관하는 게 된다.

정말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코치진에게 믿고 맡기되 필요할 땐 다같이 모여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 상관이자 인사권을 가진 사람이 권한으로 찍어 누르는 모양이 아닌, 모두가 생각을 공유하고 의논해서 더 발전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필수라고 생각한다.


■ 스타크래프트 출신에 대한 인식

특정 직업군을 언급하게 되어 죄송하지만, 오해가 없다는 전제 하에 예를 하나 들고 싶다. 누군가 택시를 잡으려고 했는데 탑승 거부를 당했다. 당연히 기분이 나쁠 거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모든 택시 기사분들을 다 탑승 거부하는 사람으로 여기진 않는다. 실제로 모든 택시 기사분들이 다 그러지 않는다. 친절하신 분들도 정말 많지 않은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다 똑같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말씀하신 것처럼 현재 스타크래프트 시절 인물들이 관리직에 많이 자리를 잡았다. 내가 처음 LoL 감독을 했을 때를 떠올려보면, 스타크래프트 때 활동했던 사람들 딱히 게임단의 감독이나 관리직을 맡을 사람이 없었다. 12년도에 처음 LoL e스포츠가 생겼는데 당시 LoL 프로게이머들 혹은 프로게이머를 꿈꾸던 사람들 중에 누가 감독직을 맡을 수 있었을지를 생각해보시면 좋을 것 같다.

게임단에서는 감독이나 관리직에 사람이 필요한데 그 조건에는 당연히 경력이나 경험, 나이 등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여러가지 측면에서 당장 LoL 프로게이머 중에 한 명을 관리직에 앉힐 순 없지 않을까.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세대 교체가 될 거다. 지금도 역사가 길어지면서 LoL 프로게이머 출신 인물들이 슬슬 코치나 감독을 맡고 있다.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나면서 바뀔 일이다.

만약 LoL 세대 이후에 또 다른 e스포츠 종목이 생긴다면, 그땐 똑같이 LoL 프로게이머 출신들이 관리직을 맡게 될 거다. 새로 생길 종목의 선수들이 당장 감독 등이 될 순 없으니 말이다. 이처럼 자연스러운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해주셨으면 한다.


■ 하이프레시 블레이드와 프랜차이즈

e스포츠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e스포츠도 스포츠'라고 주장하고 인정받길 원한다. 얼마 전엔 아시안게임에서 e스포츠가 시범 종목이 됐다. 그게 먼 미래라고 생각했는데 빨리 현실이 된 걸 보고 놀라고 기뻤다. 나중에 정말 e스포츠가 스포츠로 인정받는 날이 오면 e스포츠 씬에 쌓여있는 많은 문제가 해결되리라 믿는다.

우리 회사의 장점이라고 하면 전통 스포츠에 잔뼈가 굵은 인원이 정말 많다는 거다. 브리온 컴퍼니는 스포츠 매니지먼트도 해오고 있고 온,오프라인 유통 판매도 하고 있다. 결국, e스포츠도 스포츠라는 시각에서 분명히 시너지가 극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 팀들이 어떻게 게임단을 영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지를 고민 중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봤을 땐 브리온 컴퍼니가 그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실제로 현재 게임단 직원분들 중에 체대를 나오신 분들이 많다. K리그의 인천 유나이티드 프론트로 활동하시던 분도 우리 쪽으로 오셨다. 그런 분들에게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 전통 스포츠는 역사와 전통이 오래된 만큼 사람들의 경험과 지식이 많이 쌓인 상태다. 그만큼 시스템이 탄탄하고 긍정적인 측면이 정말 많다. 우린 결국 스포츠를 지향하지 않나.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서양 e스포츠 게임단들도 전통 스포츠의 좋은 점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프랜차이즈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문제 없이 꼼꼼히 해야 하는 것도 맞는데 이것도 사실 경쟁이다. 우리가 다른 게임단과 단체들 속에서 돋보여야 한다. 팀원 전부가 머리 맞대고 고민 중이다.


디테일한 부분까지 밝힐 순 없지만, 굵직한 방향성 정도는 알려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하이프레시 블레이드의 목표는 5년 내 글로벌 TOP 4가 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다양한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중에 하나는 육성군 혹은 유망주들에 관한 것이다. 오랜 시기 동안 이런 친구들이 해외로 많이 나갔다. 이걸 부정적으로 보진 않는다. 선수 입장에선 선택지가 많을수록 좋다. 다만, 게임단에서 좋은 시스템과 프로그램을 갖춘 상태라면 선수들이 국내에 머무는 선택지를 좀 더 좋게 생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게 장기적으로는 LCK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이 되리라 생각한다.

K리그 포항 스틸러스 구단에 유망주 시스템이 있는데 국내에서 가장 선진화된 육성 시스템으로 알려졌다. KBO엔 두산 베어즈 유망주 시스템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 이들은 오랜 시간을 거쳐 좋은 시스템을 갖추고 발전시켜 지금의 명성을 얻었다. 하이프레시 블레이드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고자 한다.

학원을 운영했을 때 보면 아이 손을 잡고 문의를 하러 오시는 부모들이 대부분 내가 프로게이머로 활동할 때 e스포츠 경기를 시청했던 세대다. 그 분들은 게임이나 e스포츠를 즐겼던 분들이라 아이가 학원에서 게임을 배워 장래를 꿈꿀 수 있게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시더라. 심지어 부모는 LoL을 배우고 아이들은 스타크래프트를 배워서 같이 하기도 한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음을 느낀다. 앞으로는 더욱 그럴 거다. 그걸 대비할 필요도 있다.

거기에 필요한 시간이 약 1년~3년 정도로 생각 중이다. 지금부터 씨앗을 잘 뿌리고 양질의 물과 볕을 주면 그들이 싹을 틔워 결실을 맺는데 그 정도 시간이 필요할 거라 본다. 그런 과정이 잘 갖춰진다면, 축구나 야구의 선례를 그대로 가져올 수 있으리라 믿는다. 처음에는 방과후 학원처럼 금액을 지불하고 아카데미에 합류해 게임을 배운다. 그러다가 가능성이 높은 유망주가 되면 자연스레 2군 리그로 콜업되고 거기서도 두각을 드러내면 1군까지 합류할 수 있는 시스템 말이다.

현재 1군들이 몇 명을 제외하곤 매년 FA로 풀리고 해외로 나가는 경우도 잦다. 이게 선수 입장에서는 당연히 좋은 조건을 찾아 떠나는 거라 좋다. 하지만 게임단 입장에선 골치 아픈 일이기도 하다. 선수들의 연봉은 매년 크게 오르는데 국내 게임단을 운영하는 회사들에게 매년 그만한 액수를 쏟아부으라고 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그럴 때 계속 말했던 유망주 시스템을 잘 갖추고 거기서 선수들을 키워서 1군에 합류시킬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런 과정은 아까 말했던 것처럼 1년에서 3년 정도에 걸쳐 완성될 것으로 기대되는데 프랜차이즈 입성에 성공한다면 이에 더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 같다.

과거 나의 경우에도 팀이 강등의 위기에 시달렸다. 그땐 정말 뭔가 시도를 할 수가 없었다. 좋은 선수를 높은 연봉을 주고 데려온다고 해도 강등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으니 말이다. 프랜차이즈는 이런 의미에서 보면 모든 팀이 긍정적으로 변화를 꾀하고 많은 시간을 들여 자신들의 것들을 갖추게 해주는 요소라고 본다.

육성군 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은퇴 후의 삶도 함께 고민해주고자 한다. 선수들 중에 대부분은 '난 선수만 하고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친구들에게 다양한 경로를 알려주고 가르쳐서 활동을 이어가게 해주고 싶다. 다양한 진로 중에서도 지도자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이 은퇴 이후에 지도자가 되고 싶다면 그에 걸맞는 좋은 프로그램을 갖춰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 해당 선수가 나중에 좋은 코치 혹은 감독이 될 수 있도록 만들고자 한다.

전통 스포츠를 보면 간혹 비선수 출신(이하 비선출) 지도자가 두각을 보이기도 한다. 이에 대해 생각을 안해본 건 아니다. 당연히 비선출 인물이 선수 출신(이하 선출)보다 좋은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비선출 코치나 감독은 증명해야 할 부분이 너무나도 많다. 본인 스스로도 부담을 느낄 수 있다고 본다.

현재로는 비선출 지도자가 활약할 수 있는 분야는 데이터 코치 쪽인 것 같다. 이제 LoL e스포츠는 선출 지도자의 감이나 경험 만으로는 모든 걸 아우를 수 없게 됐다. 패치마다 다른 게임이 되는 경우도 허다해 더욱 그렇다. 데이터라는 건 급변하는 게임 속에서도 항상 의미를 갖게 마련이다. 지도자 양성 프로그램에 이러한 분야를 추가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물론, 개인 역량에 따라 추후 충분히 데이터 관련 지도자도 코치나 감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종합하면, 우린 선수 생활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걸 아우를 수 있는 게임단이 되고자 한다.

나를 포함해 하이프레시 블레이드 구성원 모두 프랜차이즈 심사 통과를 위해 열심히 노력 중이다. 위에 말했던 모든 것들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하이프레시 블레이드에 많은 응원 바라고 내년엔 꼭 LCK가 열리는 롤 파크에서 인사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