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G를 휩쓰는, 솔로 킬을 내는, 딜러보다 딜량이 높은 서포터. 프로 경기에서 이런 말들은 서포터라는 역할군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역할 명처럼 누구를 도와주거나 팀 게임에 힘을 실어주는 게 우선한다. 이들의 활약은 이니시에이팅으로 교전을 열거나 적절한 와드 설치로 상대의 위치를 절묘하게 확인하는 것부터 떠오른다.

그런데 이 모든 말들이 잘 어울리는 서포터가 있다. 담원 게이밍의 '베릴' 조건희에게 모두 해당되는 말이다. "서포터는 이래야 한다"는 편견과 같은 말을 모두 자신의 플레이로 무너뜨리고 새로운 서포터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으니까. 담원이 챌린저스에서 롤드컵 우승까지 달성하기까지 '베릴' 역시 그에 걸맞게 성장해왔다.


국제전 첫 행보부터 남달랐던 서포터


▲ 작년 리프트 라이벌즈 승리 이끈 '베릴' 알리스타

'베릴'이 확실하게 눈에 띈 건 작년 리프트 라이벌즈부터다. 이전에도 이니시에이팅을 잘한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담원의 첫 국제전부터 남다른 존재감을 발휘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마타-울프'와 같은 롤드컵 우승 경력이 있는 서포터들은 전성기에 우승자의 자신감이 묻어나는 알리스타 플레이를 펼치곤 했다. 그런 장면을 국제 대전이 처음인 '베릴' 역시 선보였다. '베릴'의 활약과 함께 담원은 JDG를 상대로 승리, LPL에게 왕좌를 빼앗긴 LCK에게 간절한 승리를 마지막 경기에서 안겨주며 남다른 인상을 남겼다.

그 후 올해 '베릴'은 LCK에서 내실을 차근차근 다져갔다. '고스트' 장용준이 합류하면서 '베릴' 역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할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러던 중 단식 세나를 필두로 마오카이-사이온과 같은 탱커형 서포터가 나오는 시기가 찾아왔다. 탱커형 서포터로 세나보다 더 돋보이는 플레이를 펼쳤다. 이니시에이팅에 탱커 역할까지 수행해 밴해야 하는 까다로운 상대로 거듭났었다.


롤드컵-MSC 패배 후 LCK부터 다진 내실


'베릴'의 흐름은 여름 LCK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이번에는 딜러 판테온을 서포터로 기용해 판을 바꿔놓기 시작했다. LCK 섬머 1라운드 중반부에 POG 500 포인트를 넘기고, POG에 많이 선발되는 솔로 라이너들과 1위 경쟁을 할 정도였으니까. 서포터가 스플릿 초반부터 POG 상위권에 있는 경우는 정말 드물었다.

그만큼 '베릴'의 플레이는 남달랐다고 보면 된다. 자신들이 원하는 라인 구도를 만들어 킬을 만들어낸 뒤, 로밍을 다닐 기회를 만들었다. 그 정점의 플레이를 판테온으로 완성했다. 딜러인 판테온의 장점을 최대로 활용했다. 서포터지만, 마주치는 상대를 1:1 상황에서 솔로 킬을 낼 정도로 막강하다. 강가를 활보하는 판테온이 다른 라이너 킬을 확정 짓는 모습은 담원의 경기에서 수없이 봐왔던 장면이다. 특히, 협곡의 전령이 나오는 타이밍에 미리 올라와 상대를 제압하는 플레이는 담원의 강한 '상체'에 큰 힘을 실어줬다. 미드 라이너나 원거리 딜러보다 더 DPS가 높게 나오는 경기가 나올 만큼, 서포터 중 존재감 면에서는 독보적이었다.

미드 시즌 컵(MSC) 이후 "LPL-LCK 서포터 간 격차가 난다"는 비판이 나온 상황. 당시 LPL 서포터들은 레오나-바드와 같은 새로운 카드로 메타를 선도하고, 플레이메이킹-이니시에이팅이 뛰어다고 평가받았다. 하지만 막상 LCK 섬머라는 본 무대가 열리니 '베릴' 만큼은 LPL 서포터 못지않은, 그 이상이 될 수 있는 선수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판테온으로 독보적인 행보로 많은 프로들이 따라할 법한 최고의 플레이를 이어갔다.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서포터



'베릴'의 판테온은 그때부터 롤드컵 결승까지 유일무이(唯一無二)했다. 많은 프로들이 '베릴' 판테온을 따라해봤지만, 한타와 경기의 핵심을 찌르는 한 합은 따라올 수 없었다. 한 두 번은 킬을 만들어냈을지 몰라도 쌓여가는 데스와 갈수록 무기력해지는 '보통의 판테온'의 결말을 피해갈 수 없었다. G2 '미키'를 비롯해 판테온을 뽑은 많은 팀들의 결말이 그랬다.

앞서 많은 팀들이 판테온을 쓰다가 미끄러졌기에 롤드컵 결승이라는 중요한 무대에서 판테온이 다시 나올지는 미지수였다. 특히나 결승전 1세트는 그 의미가 남다르기에 더 그렇다. 그동안 준비한 것 중 최선의 전략을 기선 제압을 위해 꺼내며, 패배로 한 번 틀어지면 이후 자신들이 준비한 방향성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베릴'은 과감하게 1티어 픽인 레오나를 상대에게 주고 판테온을 가져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순간, 판테온의 창으로 상대의 핵심을 찌를 줄 알았다. 정신없는 난전과 접전이 이어지는 1세트에서 '베릴'이 먼저 상대 한타의 핵심인 오공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쑤닝 '빈'의 오공은 TES 전에서 이미 그 괴력을 보여준 바 있는데, '베릴'의 판테온 앞에서는 그 힘을 써보지도 못했다. 앞서 강조한 첫 세트에서 '베릴'이 상대의 핵심 전략 하나를 제거했다고 보면 된다. '베릴'의 한 합이 4세트까지 이어진 결승전 전반에 큰 영향을 줬다. 1세트를 패배한 쑤닝은 '빈' 잭스-피오라 중심의 사이드 라인 운영 위주의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베릴'은 롤드컵 우승팀의 서포터로 거듭났다. 그것도 기존 서포터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흐름을 선도하며 말이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세계 최고로 뽑히는 서포터 중에서도 눈에 띈다. 그가 선보일 내년 LoL 프로씬의 서포터 메타, 새롭게 제시할 서포터의 역할이 무엇일지, 담원의 우승을 확정지은 그 순간부터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