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팀 스포츠에서 개인 기량보다 중요한 건 팀 호흡이며, 개인은 팀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 정설로 받아들여졌던 위 격언은 손쉽게 반박 가능하다. 로베르틀란디 시몬 아티스, 통칭 시몬. 2014년, 쿠바 태생의 월드 클래스 배구 선수는 창단 2년 차 한국 프로 배구팀의 부름을 받아 V-리그에 도전장을 내민다. 그리고 시몬은 역대급 원 맨 쇼를 통해 당시 소속팀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의 2연속 우승을 견인한다.

이처럼 축구, 야구 등 대규모 구기 종목이 아닌 스포츠에선 때로 개인이 팀보다 위대할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 개인이 홀몸으로도 상대 팀 모두를 잡아먹을 수 있는 압도적인 기량을 갖고 있을 것. 이 조건 때문에 LoL e스포츠는 원 맨 쇼가 불가능했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쵸비' 정지훈이 요네와 아칼리로 젠지라는 거인을 쓰러뜨리는 것을 보며 깨달았다. 특정 조건이 만족된다면, LoL e스포츠에서도 원 맨 쇼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 출처 : 한국e스포츠협회

'쵸비' 정지훈은 분명 위대한 선수다. 2018 LCK 섬머 스플릿에 혜성처럼 나타난 소년은 비슷한 경력의 신인들부터 LCK의 내로라하는 베테랑 미드 라이너들을 모조리 때려눕히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시간이 흐를수록 '쵸비'는 더욱 단단해졌고, 세계 최고의 미드 라이너를 꼽아보는 자리에 언제나 이름을 올렸다. 지금까지 쌓아온 커리어에 비록 우승 기록은 없지만, 프로게이머로서 '쵸비'의 기량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LoL에서 미드 라이너가 중요하지 않았던 메타는 단 한 번도 없었고, 이에 '쵸비'가 있으면 최소 플레이오프 진출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쵸비'는 2021 시즌을 앞두고 '데프트' 김혁규와 함께 한화생명e스포츠로 향해 새 도전을 앞뒀다.

시작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시험 무대였던 2020 KeSPA컵에선 한화생명e스포츠는 불안정한 경기력과 함께 조별 리그 2승 2패, 4강 마무리라는 아쉬운 성적을 남겼다. 미드를 단단하게 틀어막은 '쵸비'는 분당 CS 10.6개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달성했지만 팀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곧이어 개막한 2021 LCK 스프링 스플릿 정규 시즌, 첫 상대였던 T1에게도 어딘가 부족한 경기력을 보이며 패배했다.

그러나 이후 한화생명e스포츠는 급속도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흩어져 있던 생각을 모으고, 따로 놀던 호흡을 하나로 맞춰갔다. 그 속에서 '쵸비'와 팀원들은 분명 서로에게 기대는 법도 배웠으리라. 또한 실전에서 DRX와 kt 롤스터를 상대하며 서로에 대한 믿음은 더욱 확고해졌을 것이다. 와중 떨어질 줄을 모르는 '쵸비'의 기량은 언제든 팀을 캐리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지난 24일 진행된 1라운드 젠지전에선 한화생명e스포츠의 아귀가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팀원들이 물오른 젠지 선수들을 상대로 팽팽한 라인전을 유지하며 난전을 벌인 덕에 '쵸비'는 초반부터 킬을 챙길 수 있었다. 이후 팀원들은 무럭무럭 성장한 '쵸비'가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본인들의 동선을 조정했다. 이에 '쵸비'는 경기가 끝나기 직전까지 최적의 위치에서 최적의 플레이를 수행하며 확실한 보답을 전했다.


결과적으로 2세트에서 요네를 꺼낸 '쵸비'는 역사에 남을 하드 캐리를 선보였다. 아칼리를 기용한 3세트에선 2세트만큼의 임팩트는 내지 못했지만 충분히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다. 이는 여느 하위권 팀이 아닌 단독 1위를 노리던 젠지를 상대로 연출한 원 맨 쇼였기에 의미가 컸다. 이보다 뜻깊은 건 '쵸비'를 받친 팀원들도 우수한 호흡의 활약을 펼치며 더 많은 기대를 모았다는 점이다.

이제 막 2주 차를 마친 2021 LCK 스프링 스플릿 정규 시즌이기에 각 팀의 향후 전망과 순위는 섣불리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팀원들과 함께 하는 '쵸비'가 있는 한, 한화생명e스포츠의 플레이오프 진출은 결코 어렵지 않아 보인다. 마지막으로 서문에서 다뤘던 격언을 한화생명e스포츠와 LoL e스포츠에 어울리게끔 바꾸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하지만, 위대한 선수가 팀원들과 함께 한다면 상대 팀보다는 위대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