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하길 원하지만, 영원할 순 없습니다. 앳되기만 했던 프로 e스포츠 선수들도 그렇죠. 정말 아쉽지만 은퇴를 하기 마련입니다.

어느새 다들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더군요. 처음에는 선택지가 넓지 않았어요. 공식 중계 해설가 아니면 감독-코치 정도였죠. 지금도 그렇게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개인 방송이 있어 예전보다는 나아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수들을 더욱 자주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요.

[선수 그다음]이라는 코너를 통해, 선수들이 선택한 인생 2막은 어떤지 조명해보려고 합니다. 이번에는 앞선 문단에서 힌트를 얻으신 대로 개인 방송인들의 이야기입니다. 넉넉한 인상을 가진 '울프' 이재완과 '큐베' 이성진 선수를 모셨습니다.


개인 방송으로는 자주 뵙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네요.

큐베 : 개인 방송을 하지 않는 날에는 하고 싶은 거 모두 하면서 놀아요. 프로 선수들이 거의 그럴 텐데 보통 LoL 말고 다른 게임을 하면서 지내죠. 이것저것 다양하게 하는데, 요새는 원신이라는 게임에 빠져 있습니다. 다른 게임들에 비교하면 과금이 덜해요.

울프 : LCK가 있는 날은 중계하고, 남은 시간에는 저도 다른 게임을 많이 해요. 최근 인벤에서 발로란트 대회 중계로 불러주셔서 플레이하고 있어요. 발로란트에 관한 이미지가 한국서는 좋지 않아 저도 약간의 선입견을 품고 있었는데, 막상 해보니까 너무 재밌어요. 정통 FPS에 취약한 편이지만 스킬 쓰는 것도 있고 해서 꽤 잘 맞더군요.

그리곤 로스트아크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숙제하는 데만 해도 하루에 다섯 시간이 소요돼요. 이틀 전에 '25강 무기'가 붙어서 너무 기분이 좋네요.


두 분 모두 지금은 스트리머로 활동 중이신데, 선수 이후 진로에 관해 고민이 많으셨나요?

큐베 : 저는 워낙 성격이 낙천적이라 고민은 전혀 없었어요. 뭐 하나라도 얻어걸리면 무엇이든 선택할 생각이었고, 다 안되면 그냥 군대에 가려고 했거든요. 좋은 기회에 스트리머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울프 : 고민이 있긴 했지만, 훨훨 털어내기까지 기간은 짧았어요. 은퇴 당시 인터뷰서도 말씀드렸지만, 일반적인 선택지는 방송을 하거나 감독-코치 쪽이잖아요. 그게 안 되면 군대에 가야 하고요. 저는 제가 가진 네임벨류를 통해 방송-중계에서 여러 가지 길을 만들어보자 했어요.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사는 것 같아 좋아요.


감독-코치 쪽을 선택하지 않으신 이유가 궁금하네요.

큐베 : 제가 선수 생활을 오래 해서 그분들이 어떻게 일을 하는지 잘 알잖아요. 정말 힘들 거예요. 선수 때 너무 열심히 해서 코치까지 하게 된다면 체력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았어요. 스트리머가 육체와 정신적으로 모두 편안해요.

울프 : 선수 시절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마음의 병을 심하게 앓고 있어요. 3년 정도는 게임단 일과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해요. 바깥 생활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저도 옆에서 코치분들을 지켜봤을 때 너무 힘들어 보였거든요. 지금 당장 갈 필요는 없겠다 싶어요.

가장 먼저 해보고 싶었던 게 해설이에요. 친숙한 느낌의 개인 방송을 선호했고요. 은퇴한 지 오래되지 않은 선수들은 게임 보는 눈이 뛰어날 수밖에 없어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그럼 앞으로도 코치 생각은 없으신가요?

울프 : 생계가 힘들어지면... 혹시 모르죠. 스트리머 일을 하면서 선수 때보다 훨씬 못 벌기는 하는데요. 세후로 5억 정도 제의를 주신다면 갈 생각이 있어요. 신임 코치로 이 정도 대우면 너무 힘들어도 갈 만한 것 같아요(웃음). 하지만 당연히 아직 그만한 연락은 없었어요.

큐베 : 저는 군 복무를 마친 후에는 다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혹시 생각해보신 다른 일이 있을까요?

울프 : 사업 생각이 있었어요. 큰 갈래는 'PC방 창업'인데, 이 안에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실현해보고 싶었죠. 그런데 코로나19 이슈가 터지지 뭐예요. PC방에서 방송하고, 다른 이벤트도 하면 재밌지 않을까 생각해요. 프라모델 만들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하고요.

어떻게 보면 공간 사업이라고 해야 할까요. 선수 생활할 때 취미가 프라모델이었어요. 하지만 주변에 환기 시설이 설치된 공간도 없고 해서 굉장히 피곤했거든요. 아파트 공원에서 락카 뿌리면서 하려니 힘들더라고요. 뭐든지 내가 불편한 걸 해결하고자 하면 사업이 되잖아요. 코로나19가 좀 잠잠해지면 도전해볼까 합니다.

큐베 : 저는 자기 객관화를 잘하는 편인데요. 다른 쪽에서 활약할 능력이나 커리어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예 고민도 하지 않았습니다.


트위치tv 플랫폼을 택한 이유도 궁금한데요.

큐베 : 이건 간단한 문제였던 것 같아요. 트위치가 선수 때부터 방송했던 플랫폼이라서요. 자연스럽게 선택했어요. 기능 측면에서도 트위치만 익숙하거든요. 'LCK 같이 보기'도 가능하고요.

울프 : 같은 이유에요. 저도 선수 때 트위치에서 방송했거든요. 기존 팬층이 있어서 다른 플랫폼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선수 시절에 어떤 플랫폼에서 방송했느냐에 따라 갈리게 되는 것 같아요.


개인 방송할 때 추가됐으면 하는 기능이 있다면요?

울프 : 막상 말씀드리려니까 생각이 안 나네요. 불편하다 싶은 게 있었는데... 아무래도 별것 아녔나 봐요.

큐베 : 딱히 불편한 건 없어요. 원래부터 불편함을 잘 못 느끼는 성격이기도 해서요. 가끔 서버 렉이 걸리는데 그거 말고는 딱히 없네요.


실제로 스트리머 생활을 해보니 장단점이 무엇인가요?

큐베 : 단점 같은 경우는 선수 때에 비하면 아무래도 페이가 적다는 거예요. 그거 말고는 정신이나 육체적으로 편해요.

악성 시청자 때문에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시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채팅 싸움 같은 거 좋아해요(웃음). 탑 솔러다 보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즐겁게 하고 있어요. 워낙 스트레스를 안 받는 성격이라, 선수 때도 동료들이 저를 많이 부러워했어요. 걱정 없이 살았거든요.

울프 : 선수 생활이 즐겁기도 했지만 힘든 점이 많았어요. 그래서 지금이 행복하다고 이야기를 많이 해요. 행복하게 지낸다, 나 같은 사람이 없다, 이런 말을 자주 했어요. 승패가 없는 삶이잖아요. 무엇을 하더라도 하나의 정답지가 있는 게 아니라서요. 다 괜찮아요.

단점은 아무래도 수입이죠. 선수 때와 비교해서 5분의 1, 많게는 10분의 1 정도 차이가 나요. 이런 점 때문에 어려워하는 은퇴 선수들도 많아요.



그럼 소득 얘기를 조금 더 해주실 수 있을까요. 후배들에게도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큐베 : 선수 때 억 단위로 벌었다면, 스트리머로 억 단위까지는 어려워요. 그 정도는 말씀드릴 수 있어요.

울프 : 차이가 가장 크게 나는 부분이 안정성이죠. 선수 때는 매달 월급이 정해진 대로 찍혀서 나오잖아요. 이제는 하는 만큼 수입이 생기니 월마다 편차가 심해요. 어느 달에는 아예 수입이 없기도 해요. 이런 부분이 스트레스라면 스트레스일 거예요.


어떤 점이 방송하는 데 가장 중요할까요?

큐베 : 저는 선수 때 어떤 커리어를 쌓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성공한 선수는 어떤 걸 하든 평탄하게는 갈 거고, 그렇지 않은 쪽이라면 무얼 해도 험난하겠죠.

울프 : LCK 분석 데스트나 여러 가지 관련 방송도 보면, 사실 선수로 성공하지 못한 분들이 나오는 경우가 많지 않아요. 아마 커리어가 좋지 않다면 수입에서 압박이 될 거예요. 은퇴를 고민하는 선수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어요. "어지간하면 버텨라. 선수 은퇴하고 행복하다는 사람 거의 나밖에 없더라"라고요.


선수 출신 스트리머에게 커리어를 제외하고 또 필요한 덕목이 있나요?

울프 : 멀티 태스킹이 되느냐인 것 같아요. 다른 선수들이 방송하는 걸 봤는데, 정말 게임만 보고 소통이 안 되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소통을 같이 할 수 있어야 해요.

큐베 : 탑 솔러는 진짜 앞만 바라보는 선수들이 많아서 멀티가 잘 안 돼요. 이거 진심이에요. '너구리' 선수는 자기 화면만 고정되어 있다고 하더라고요.

울프 : 어떤 탑 솔러는 아래서 싸움이 치열하게 나는데 본인 앞에 타워만 보던데요. 한 번쯤은 아래도 볼 만한데...

큐베 : 그래도 저는 싸움이 나면 구경은 하는 편이에요.

울프 : 서포터는 화면 돌릴 여유가 꽤 있는데, 다른 싸움 보는 재미가 있긴 해요. 만약에 아깝게 죽었으면 바로 치고 들어가 줘야 하거든요. '까비' 이거 한마디 해주는 게 중요해요(웃음).



잠깐 샛길로 빠졌는데, 다시 돌아올게요. 일과는 어떻게 되시나요?

큐베 : 항상 비슷해요. 일어나는 시간은 안 정해져 있어요.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서 방송을 켜고, 끝나면 하고 싶은 거 해요. 다른 게임이라든지요. 대부분 늦게 일어나지만, LCK 하는 시간에는 일어나 있습니다.

울프 : 저도 그래요. 오후 두 시, 네 시 사이에 활동을 시작해요. 작년에는 LCK 시작하기 직전에 일어나니까 목소리가 안 나오고, 정신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올해부터는 조금 일찍 준비해요. LCK 중계가 끝나면 친한 형들과 다른 게임하면서 지냅니다. 넷플릭스를 보거나 요리를 할 때도 있고요. 자기 시간이 있다는 게 진짜 좋아요.

큐베 : 선수 때는 외출과 하고 싶은 게임을 마음대로 하지 못해요. LoL 말고 다른 게임을 할 수 없다는 게 정말 힘들죠. 일반적인 분들이라면 '여행할 시간이 없다' 같은 것들이 애로 사항일 텐데요(웃음). 어쨌든 저희에겐 개인 시간 같지 않은 개인 시간이었죠.

울프 : 막상 개인 시간이라고 해도 밥 먹고 쉬는 시간 정도인 거죠. 선수 때는 하루에 1~2시간만 여유가 있거든요. 그렇다고 외출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정비하는 시간이었어요. 워낙 짧다 보니,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프라모델을 30분씩 했어요. 이건 딱히 터치를 안 하더라고요.


정신적으로 너무 여유가 없는 탓에 선수 수명이 짧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울프 : 한국에서만 할 때는 잘 몰랐거든요. 다들 그러니까요. 하지만 외국에서 1년 생활하고 돌아오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터키서는 연습할 시간에만 집중하고 남는 시간은 전혀 간섭받지 않았어요. 무얼 하더라도 책임은 개인이 진다는 방향이었어요.

큐베 : 사람마다 영향을 받는 정도가 다른 것 같아요. 미국 같은 경우는 너무 풀어져서 자신을 놓게 되기도 하고, 한국은 너무 몰아세워서 무너지는 사람도 있어요. 성향이 어떠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 같아요.

울프 : 예전 T1이 조율을 잘했다고 생각해요. 대회나 스크림 성적이 너무 안 좋으면, 정균이 형이 저녁 스크림 같은 건 날려버리고 그냥 다 함께 놀게 했어요. 볼링을 친다거나, 영화를 본다거나. 정말 도움이 많이 됐어요. 이미 패배하는 분위기면 스크림도 도움이 하나도 안 되거든요.


그러면 스트리머를 하면서 생겨난 고민거리도 있나요?

큐베 : 매일 매일 뭘 먹어야 하는지에 관한 고민만 있어요. 아! 또 하나가 있다면 군대겠네요. 이런 것들 말고는 아예 없어요.

울프 : 간단한데요. 중계에 관한 거예요. 내년에도 이걸 할 수 있을까? MSI나 롤드컵 중계가 가능할까? 같은 거죠.



어떤 의미인가요?

울프 : 18년도에는 현역 선수들에게 따로 중계를 할 수 없다고 했고, 19년에는 완전히 은퇴 선언을 해야 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리그는 프랜차이즈를 도입하면서, 공식 중계 이외의 일반인 중계는 모두 막았어요. LCK만 열어놓은 상태인 거죠. 그리고 지금까지 라이엇 본사가 주관하는 대회는 중계할 수 없었어요. MSI나 롤드컵이 그렇죠.

중계하는 입장에서 어떤 규정이든 공식화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저에게는 밥벌이와 많은 연관이 있는 거라서요. 만약 앞으로 막히게 되면 무얼 해야 하나 고민이긴 합니다.


어떤 콘텐츠를 해야 하나라는 고민은 없으신가요?

큐베 : 젠지 쪽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아요. 부담도 주지도 않으세요. 기본적으로 수동적인 성향을 지닌 선수들이 많을 텐데, 이렇게 게임단 소속이 되는 게 편하겠다는 느낌이 들어요. 다른 분들도 활용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울프 : 콘텐츠 기획이 오히려 즐거움이에요. 선수 시절에 고민했던 걸 작년에 하나씩 다 해봤어요. 아카데미 선수들과 은퇴 선수를 조명해야 하지 않냐는 생각이 있었는데, 관련 대회를 다 해봤죠. 그중에 RCK는 크게 사랑받았고요.

방송 쪽으로 OGN에서 도움을 주셨어요. 돌이켜보면 감사한 분들이 많아요. "재완아 그래도 용돈 벌이는 해야지" 하시면서 이것저것 챙겨줬어요. '소사대'가 정말 감사했죠. T1과는 스트리머 계약을 했는데 이곳에도 익숙한 얼굴들이 많이 계세요. 제 의견을 가볍게 던지면 빌드업을 잘해주십니다. 먼저 제안을 해주실 때도 많고요. 엄청 자유로워요. 계약에 붙어 있는 거 다 무시하면서 하고 있거든요(웃음).


스트리머 직업의 전반적인 만족도를 숫자로 표현해주실 수 있을까요?

큐베 : 90점. 프로 때는 100점. 저에게는 다른 것보다도 페이가 우선이다 보니까요(웃음). 광대의 삶이 즐겁습니다.

울프 : 저도 마찬가지예요. 일단은 무엇보다 행복해요. 그게 가장 중요하잖아요. 수입도 배고플 정도는 아니에요. 어느 정도 만족해요. 먹고 살 만큼이고, 가끔 한 번씩 사치를 누릴 만큼이에요. 90~95점 줄게요.



장기적인 미래에 관해서도 이야기 부탁드릴게요.

큐베 : 저는 계획하고 살지 않는 편이에요. 경험 때문이기도 한데요. 프로게이머가 제 꿈이거나 계획이 아니었는데, 이렇게 잘됐잖아요. 미래를 설계하는 게 쓸모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만약 미래를 그려야만 한다면 군대에서 해볼게요. 거기선 시간이 많지 않겠어요.

울프 : 공식 해설 제의가 사실 작년부터 계속 있었지만, 정신적으로 건강한 게 중요해서 아직 나서지 못하고 있어요. 저 자리에 나가서 잘할 수 있을지에 관한 고민이 있어요. 필터링이 많이 필요한 자리라고 보거든요. 저는 지금 충분히 행복하게 바빠요. 그래서 아직은 그저 현재처럼 살고 싶네요.


끝으로 팬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큐베 : 다 감사드립니다. 방송 많이 봐주시고, 유튜브 구독해주세요. 그리고 젠지 화이팅입니다. 인터뷰서는 브리온보다 젠지 e스포츠를 응원하겠습니다. 젠지 소속이니까요.

울프 : 작년과 올해 너무 과분한 사랑을 받는 거 아닌가 싶어요. 많이 좋아해 주셔서요. 덕분에 사치 부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사랑 부탁드리고, 재미있는 콘텐츠 보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