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보드의 겉모양은 항상 사랑스럽지만, 그 속내는 알기 싫다

모니터? 마우스? 헤드셋? 혹은 컴퓨터 책상?

모든 게이머의 PC 환경을 면밀히 본 것은 아니지만 집히는 물건이 하나 있다. 먼지가 가장 많이 쌓여있는 것으로 따졌을 때, 본체에 달린 먼지 필터보다 보기 두려운(?) 구역은 없겠지만 컴퓨터를 쓸 때마다 필터를 만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논외로 치겠다.

먼지가 가장 많이 쌓이는 제품, 바로 키보드 되시겠다. "난 비싼 키보드를 써서 컴퓨터 할 때마다 손도 씻고, 책상을 닦을 때 키보드도 쓱 한번 훑는데?"라고 반문할 수 있겠다. 아직 키보드의 속사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해 일처리 또한 재택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잦아졌기 때문에 PC는 우리 일상과 더 가까워졌다. 컴퓨터 사용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연스레 그 앞에서 티타임을 즐기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러다 보면 과자 묻은 손으로 타자를 칠 때도 있고 음료를 엎어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물티슈 등으로 슥 닦거나, 키보드 안으로 액체가 스며든 것 같으면 그냥 휴지를 뾰족하게 말아서 대충 처리하는 경우가 잦다.

어느 순간 예민하지 않은 유저라도 키보드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타건감이 끈적인다고 해야 하나. 작게는 키 입력 오류 등의 단순한 문제부터 크게는 키캡이 들어가서 안 나오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인터넷을 검색해서 키캡을 분리해보는 순간, 쥐가 살다가 도망갔나 싶은 키보드의 속사정과 마주하게 된다.

1년도 안 쓴 것 같은데 쌓여있는 먼지, 언제 먹은 지 기억도 안나는 과자 부스러기, 난 탈모가 아닌데 수북이 꽂혀있는 머리카락에 화룡점정으로 그 불쾌한 것들을 하나로 응집시켜주는 내가 흘렸던 커피. 내 손이랑 가장 가까운 제품이 이렇게 더러워질 수 있는가 싶다. 난 원래 그렇게 지저분한 사람이 아닌데..

각종 커뮤니티나 블로그에 적힌 대로 키보드 청소를 하려 하면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 그들은 '하는 김에' 키보드 커스텀을 해버리는 존재다 보니. 하지만 키보드 청소에만 목적을 두면 정말 단순하고 간단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키캡은 뽑아서 씻긴 후 말려서 꽂으면 되고, 키캡을 말리는 동안 키보드 바닥을 쓸어내면 끝이니까. 다만 상황에 따라 알코올 솜으로 묵은 때를 지워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는 있겠다.

최근 반년 정도, 키보드를 하도 많이 사서 청소를 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생각난 김에 2시간 정도 시간을 내서 집에 있는 키보드를 청소하기로 했다.




■ 기계식 스위치? 광축 스위치?

▲ 방수 기능이 있는 광축 키보드는 이런 것도 가능하다

시작하기 앞서, 내 키보드가 어떤 종류의 스위치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몇 년 전부터 광축 스위치를 탑재한 키보드의 가성비가 좋아서 PC방에서도 자주 사용하고 일반 가정집에서도 실속형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잦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과 내구성, 특히 기계식 키보드에서는 탑재할 수 없는 방수 기능을 제공하기 때문에 키보드 욕심이 없는 게이머들에게 자주 언급되는 제품이다.

광축 키보드를 사용하는 게이머라면 키보드를 더욱 손쉽고 말끔하게 청소할 수 있다. "굳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방수 기능을 진정으로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키캡을 빼고 케이블만 조심해서 그냥 물로 씻어낸 후 잘 말려주기만 하면 된다. 과장 아니냐고? 난 실제로 그렇게 청소하고 있다. 다만 모든 광축 키보드들이 방수 기능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제품 상세 정보를 반드시 확인하도록 하자.




■ ※ 혐오주의

▲ 키캡을 하나씩 제거하다 보면

▲ ㅏ........... 100% 그저께 흘린 바닐라 라떼다

▲ 이 키보드는 정말 깨끗하게 썼는데도 개판이구나





■ 키캡을 분리하여 세척하자

▲ 자판을 전부 외웠더라도 반드시 키보드 사진을 찍어두고 작업하자

키캡을 뽑기 전, 키보드 사진을 찍어두는 것을 잊지 말자. 청소를 끝내고 키캡을 끼울 때 생각보다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또한 요즘은 키보드마다 플라스틱 키캡 리무버가 동봉되어 있는 제품도 쉽게 만나볼 수 있는데, 키캡에 손상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선택은 아니다. 되도록이면 와이어 키캡 리무버를 따로 구입하도록 하자.

키캡의 재질에 따라 세척 방법이 다를 수도 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유저마다 독특한 조합법이 있는데, 깨끗한 세척을 위해 락스나 기타 고농축 혼합물을 넣을 경우 재질이나 인쇄 기법에 따라 키캡 손상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사전에 잘 알아보고 사용하도록 하자. 나 같은 경우엔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 베이킹 소다만 사용하는 편이다.

베이킹 소다를 푼 물에 쌀을 씻는 합장 자세로 키캡끼리 마찰을 시켜주면 되겠다. 키캡 손상을 막기 위해 살살 문질러야 한다. 전체적으로 키캡 씻기가 끝났으면 흐르는 물에 한 번 더 깨끗하게 씻어낸다. 그 이후 마른 수건에 키캡의 물기를 털어 준 후 잘 말리면 된다.

▲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기준에서 베이킹 소다로 충분하다

▲ 키캡을 쏟아 넣고 쌀 씻는 것처럼 합장 자세로 키캡끼리 살살 문질러 주면 된다

▲ 흐르는 물에 한 번 더 씻어내면 세척 완료!

▲ 마른 수건에 뒤집어서 자연건조로 잘 말려주기만 하면 된다





■ 키보드 본체를 청소하자

▲ 특정 구역만 하려했으나, 사용한 면봉을 보고 찝찝해서 그냥 전체적으로 다 닦아냈다

키캡이 마르는 동안, 커피 한잔하며 한숨을 돌린 후, 키보드 본체를 청소하도록 하자. 청소의 순서는 중력 털기→먼지떨이 사용→알코올 청소 순이다.

사실 키보드를 뒤집어들고 몇 번만 흔들어도 큰 고체들은 떨어져 나간다. 본체를 쳐서 먼지를 제거하는 방법은 추천하지 않는다. '기계는 때려야 말을 듣는다'라는 주의라면 말리기 힘들겠지만. 그 후 먼지떨이로 잘 털어주면 되겠다. 털이 너무 얇은 경우, 나처럼 스위치나 스태빌라이저에 모(毛)가 끼는 경우도 있으니 주의하도록 하자. 만약 부득이하다면 핀셋 등의 도구로 제거해 주도록 하자.

먼지떨이로는 뭔가 만족스럽지 않다거나 특히, 액체가 굳은 흔적이 있다면 알코올 청소를 해야한다. 그렇다고 알코올을 뿌리면 안되고. 면봉 등의 도구를 활용하여 구석구석 닦아내주도록 하자. 닦아낸 후 자연스레 말려주면 되겠다.

▲ 먼지떨이로 살살 털지 않으면

▲ 기자처럼 스태빌에 잔털이 꽂힌다. 핀셋으로 한 가닥씩 제거했다

▲ 정체 모를 액체가 굳어있다면 알코올을 이용하자

▲ 먼지 제거 완료! 이물질이 남아 보이는 것은 개인적으로 윤활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 청소 전엔 그레이 감성이었다. 이게 화이트 감성이지





■ 키보드 청소 주기? 정답은 없다!

▲ 아... 살 것 같다

키보드 청소에 대해 진입장벽이 높다고 하는 유저가 생각보다 많다. 한두 시간 투자하기엔 내가 그 시간 동안 컴퓨터를 못한다는 핑계로. 하지만 한번 청소해보면, 아니 키캡 몇 개만 빼서 내 키보드의 상태를 목격하는 순간 청소해야겠다는 마음이 솟구친다.

사실 키보드 청소 주기는 따로 정해진 것이 없다. 사용자의 습관과 환경에 따라 제각각이며 어떤 게이머는 소형 청소기로 달에 한 번, 어떤 게이머는 그냥 고장 날 때까지 쓰다가 새 제품을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

내 기준에서 키보드 청소는 '치실'과 같다고 생각한다. 내 생활 패턴에 존재하지 않고 있다가 특정한 계기로 겪어봤을 때, 눈으로 보이는 쾌적함과 안 했을 때의 찝찝함 때문에 서서히 자리 잡혀가는 요소. 사실 사용에 문제가 없다면 굳이 할 필요가 없지만 이게 한번 해보니까 쉽기도 하고 기분도 좋아진다.

마지막으로 키보드 청소를 한번 했으면 키보드 덮개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 취향에 맞게 별도로 구입을 생각하는 게이머도 있겠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별거 없다. 그냥 수건 한 장 올려놔도 상관없으니. 키보드를 사용하지 않을 때 덮개로 덮는 습관만 들어도 키보드 내에 먼지가 쌓이는 것을 80% 정도 줄여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