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유명한 '원조 국밥집'. 그 체인점이 서울에 생겼다. 직접 부산을 찾아가 국밥을 먹기 어려운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고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뤘다. 몇 년 후, 가게는 서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국밥집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국밥집 본점이 부산 국밥집의 음식 맛에 집중하기 위해 '원조 국밥집'의 이름을 쓰지 말란다.

그럼 이제 서울의 국밥집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전 세계 게임 개발자들이 모여 노하우를 공유하고 개발 과정을 함께 이야기하는 GDC(Game Developers Conference)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매년 개최되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다. 특히 2014년까지 독일 쾰른, 중국 상해, 그리고 미국 로스 앤젤레스 등 다양한 장소에서 EU, China, Next라는 부제를 달고 열렸다.

하지만 주최사인 UBM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메인 GDC에 집중하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 열리는 이벤트를 해마다 줄여나가기로 했다. 2017년에는 유럽의 최대 게임 컨퍼런스로 자리 잡은 GDC EU마저 없애며 GDC라는 이름을 쓰는 종합 컨퍼런스는 단 하나만 남게 되었다.

사실 게임 업계에서 GDC가 가지는 이름값을 생각했을 때 명칭을 바꿔야 하는 GDC EU의 손해는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올해는 존 로메로나 위쳐3의 메인 프로듀서 등 업적만 들어도 무릎이 '탁' 쳐지는, 소위 A급 개발자들의 강연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자칫 부실해진 강연 탓에 국제적인 개발자 컨퍼런스의 위상을 잃을 수도 있고 이를 함께 개최하며 여타 게임쇼와 차별화를 둔 ‘게임스컴’의 입장도 난처해질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게임 업계의 우려 담긴 시선 속에서 GDC EU를 대체하며 올해 처음 시작된 '데브컴(devcom)'이 내놓은 답은 유명 개발자나 대작 게임이 아닌, ‘다양성’이었다.

데브컴의 주최사는 독일에서 게임 컨퍼런스 '리스폰'을 개최하는 아루바 이벤트다. 그리고 이들은 GDC를 대신하는 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비즈니스 및 게임 전문가를 대상으로 하는 '데브컴', 그리고 학생부터 개발자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게임에 대한 아이디어를 비교적 자유롭게 교환하는 '리스폰'을 통합하며 양적 향상을 꾀했다.

실제로 두 개의 컨퍼런스가 통합되며 강연 수는 눈에 띄게 늘었다. 단순히 일정만 봐도 지난해 2일 동안 진행된 GDC EU의 2배 규모인 나흘 동안 행사가 진행된다. 30분 정도의 짧은 강연의 수도 많아져 실제 강연 수는 늘어난 일정 이상이 됐다.

▲ 작년까지의 GDC와 거의 같은 형태의 발표 강연인 '데브컴'.

'데브컴'이 보여준 체질 개선은 양적인 성장 이상으로 눈에 띈다. '데브컴'은 기존의 GDC 이상으로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며 실제 현업에 종사하는 개발자들에게는 깊이 있는 강연 내용을 제공하려고 했다. 한편 '리스폰'을 통해서는 예년에는 중점적으로 다루지 못했던 다양한 주제와 인사들로 이루어진 강연을 선보였다.

올해 '데브컴'과 자리를 함께한 '리스폰'이 열린 쾰른메세 4층 강연장은 작년까지만 해도 대형 강연이 열리는 거대한 두 개의 홀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이를 통합해 하나의 행사장으로 만들고 이곳에서 총 5개의 세션과 인디 게임 엑스포를 함께 개최했다. 참석자에게는 저마다 헤드폰을 하나씩 주어졌는데 헤드폰으로 자신이 듣는 강연 채널을 맞춰 강연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식이었다.

'리스폰'의 세션 하나는 많게는 40명, 적게는 열댓 명이 참여한다. 규모가 작다 보니 예년의 GDC에서는 한 강연장을 모두 채울 수 없는 소규모 인디 게임 인사나 참신한 내용의 주제들이 다수의 세션을 차지했다. 또 작은 모니터를 손으로 직접 가리키거나 서로 대화를 나누며 세션을 진행하는 등 강연 방식도 자유로웠다. 그리고 이런 여러 개의 세션이 서로 같은 시간에 진행되어 다수의 사람이 함께 강연을 듣는 현장감도 전달해주었다.

▲ 여러 세션이 한 장소, 같은 시간에 진행되는 리스폰.

▲ 내가 듣는 세션의 내용만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헤드폰.

▲ 작은 발표회 같은 규모로 강연 주제와 방식 모두 자유로운 편이다.

출국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데브컴'을 GDC라는 이름을 잃고 부랴부랴 대체된 행사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준 변화는 그저 유럽에서 열리는 최대 게임 컨퍼런스라는 타이틀을 넘어 '데브컴'만의 새로운 맛을 선보인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 맛은 '어디어디의 GDC'라는 타이틀을 걸고 우후죽순 생겨나는 세계의 게임 컨퍼런스들에게 원조의 맛을 배웠던 '데브컴'이 보여주는 진짜배기 국밥 맛이었다.



▶ 독일 쾰른에서 보내는 생생한 현장 이야기 - 게임스컴2017 취재 일지 '쾰른24시' 함께 보기
[쾰른24시①] 게임스컴에 전해! 올해는 당하지 않는다고!
[쾰른24시②] '데브컴', GDC 이름 뗀 체인점이 보여준 가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