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팀을 이야기할 때 매번 드는 의구심이 있다. 바로 커뮤니케이션, 소통의 문제다. 생각해보자. 게임을 하다 보면 같은 국적의 사람끼리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 쓰는 언어가 다른 선수들이 뭉쳐 한 팀을 이루었다면 당연히 문제가 생기지 않겠나?

프로들의 경기에선 이 문제가 더욱 두드러진다. 단 1~2초 차이로 벌어진 합류 속도가 전투 결과를 다르게 만든다. 상대 소환사 스펠, 궁극기 유무를 알고 싸우느냐, 모르고 싸우느냐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LoL 전문가 중 중국 선수들의 피지컬이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매번 지적하는 것은 그들이 소환사의 협곡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모두 공유하고, 승리에 가까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겠느냐는 의심이다.

실제 이 문제는 국제대회서 매번 중국팀의 발목을 잡았다. 2014년 로얄클럽과 삼성 화이트의 롤드컵 결승전, 로얄클럽은 '우지' 지안즈하오의 피지컬과 '인섹' 최인석이 꺼내든 람머스, 판테온이라는 변수에 기댔을 뿐, '시야 장악'을 통해 스노우볼을 굴리는 삼성 화이트팀 앞에 패배했다. 2015년 롤드컵에는 EDG가 8강에 올라 체면치레를 했지만, LGD와 iG는 '임프' 구승빈, '루키' 송의진의 원맨팀이었다.

2016년 롤드컵, 중국이 다시 한 번 도전을 앞두고 있다. 이번에는 소통의 문제를 해결했을까? 파워랭킹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EDG만큼은 팀원들끼리 서로 통(通)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들은 이번 롤드컵에서 다시 한 번 파란을 일으킬만한 팀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 주장에 대한 근거를 중국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리그 2016 EDG와 RNG의 결승전 1세트에서 찾아보자.


▲ LPL EDG vs RNG 1세트, EDG는 글로벌 조합을 꺼내들었다.

다전제에서 첫 세트 승리는 매우 중요하다.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고, 준비한 밴픽전략을 꼬아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EDG는 첫 세트에 갱플랭크, 트위스티드 페이트, 탐 켄치로 이어지는 글로벌 궁극기 조합을 꺼냈다. 경우에 따라 애쉬까지도 맵 전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반면, RNG는 난전과 한타에 특화된 조합이다. 에코, 그라가스, 리산드라, 브라움 모두 싸움을 좋아하고 소규모 교전에 강력한 모습을 보인다. 중국 LPL 특색이 잘 드러난다.

글로벌 조합은 소규모 난전에 강하다는 장점이 있고, 상대 끊어먹기 전략에 특화되어 있다. 하지만 상대와 정면으로 붙는 한타에서는 다소 약한 모습을 보인다. EDG가 이 조합의 특색을 살리기 위해선 탑, 미드, 봇 각 라인의 상황을 정확히 알고 상호 간의 유기적인 콜(Call) 플레이가 필수다. 과연, EDG는 제대로 소통하면서 이 조합의 강점을 살려냈을까?



첫 번째 상황이다. 미드 라인에서는 '스카웃' 이예찬의 트위스티드 페이트가 리산드라를 상대로 라인 주도권을 쥐었다. 이때, 탑 라인은 '마우스'의 갱플랭크가 '루퍼' 장형석의 에코에게 다소 밀리고 있다. 이예찬은 라인을 밀어낸 후, 탑 라인에 로밍을 가겠다고 핑을 찍었다. 그런데 RNG 미드 라이너 '샤오후'는 장형석에게 어떤 위험신호도 주지 않는다.

EDG 탑 라이너 '마우스'는 이예찬의 신호를 받고 조금 위험하다 싶을 정도까지 상대와 전투를 벌인다. 장형석은 상대와 전투에 집중하다가 상대 트위스티드 페이트가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면서 선취점을 내주게 된다. EDG의 선취점이 중국인 탑 라이너와 한국인 미드 라이너 간의 콜 플레이에서 나왔다.

첫 번째 상황은 라인전에서 이뤄진 소규모 국지전이었다. 때문에 팀원 전체의 호흡을 엿볼 수 있다고 보기엔 다소 미흡하다. 그렇다면 다음 상황을 보자.



두 번째 전투 상황. EDG가 봇 라인에 갱킹을 시도한다. '매날리기'로 상대 정글러가 없는 것을 확인한 '데프트' 김혁규는 '마법의 수정화살'을 날린다. 연달아 정글러-서포터-미드 라이너가 궁극기를 이용해 전장에 합류한다. 탑 라인에 있던 '마우스' 갱플랭크 역시 상대 퇴로에 궁극기를 깔아놓고 순간이동으로 합류한다. 순식간에 EDG 팀원 5명이 모두 봇 라인에 모였다. 이 전투로 EDG는 두 번째 킬을 올리며 앞서 나간다.

글로벌 궁극기 조합을 선택한 팀이라면 으레 나와야 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중국팀들은 이런 유기적인 플레이를 하지 못해서 소통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 전투 속, EDG는 다섯 명이 모두 전투준비를 하고 있었고 일시에 돌입했다. EDG가 적어도 기존의 중국팀의 문제점은 개선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EDG는 정확히 3분 뒤에 일어난 봇 라인 한타 교전에서 같은 방법으로 '마타' 조세형의 브라움을 잡아낸다. EDG가 원거리 딜러가 아닌 서포터를 잡은 이유는 이전 상황에서 브라움은 점멸 스펠을 사용한 반면, 원거리 딜러는 이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환사 스펠을 확실히 체크하고 있고, 이 정보가 팀원들과 공유되었음을 알 수 있다.



상황이 불리해지자 RNG가 칼을 뽑는다. 탑 라인에 5인이 기습적으로 뭉쳐 타워 파괴를 시도한다. EDG도 빠르게 대응하며 탑에서 5:5 대치상황이 벌어진다. RNG는 이 전투에서 중국팀이 보여줬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RNG는 다이브를 할 듯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그러다 순간적으로 브라움이 애쉬의 화력에 의해 전사하는데, 동시에 미드 라이너인 '샤오후'의 리산드라는 그대로 적진으로 돌진한다. 4:5 상황, 전투는 당연히 EDG가 승리하게 된다. 정규리그 2위 팀인 RNG의 파워 랭킹을 높게 쳐줄 수 없는 이유다. 언제 전투에 돌입할 것인지 확실히 소통하지 못했다. EDG가 위기를 잘 넘겼다.

양 측이 몇 차례 전투를 통해 이득을 주고 받았다. 글로벌 골드는 3,000 가량 차이가 유지되고 있었다. EDG는 좀 더 승기를 잡고 싶은 상황. RNG에서 실수가 나오면서 전황이 다시 급박해진다.



'샤오후'의 리산드라가 이예찬의 트위스티드 페이트를 상대로 일기토를 건 것은 명백한 실수다. EDG는 글로벌 궁극기를 잔뜩 보유하고 있기에 사실상 1:1 상황이 아니다. 약간의 피해만 주고 빠지려고 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샤오후'는 도주에 실패했고 EDG는 아군의 합류로 리산드라를 잡아내고 봇 2차 타워와 바다의 드래곤을 챙긴다.

이 전투에서 RNG도 분명 손해를 만회할 수 있었다. 미드 라이너를 내준 상황이었지만, 아군 네 명은 뭉쳐있었다. 상대가 봇 라인에 힘을 준 상황이었기에 탑 혹은 미드 타워 공략이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EDG의 적절한 수비에 막혀버렸다. EDG는 미드 1차 타워는 갱플랭크의 궁극기로, 탑 2차 타워는 팀원들의 합류로 막아낸다. 글로벌 골드 격차가 더 크게 벌어졌다.

다음 장면도 EDG 소통의 정도를 잘 보여준다.



리산드라의 위치가 위험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소환사 협곡 절반을 약간 넘어가 있었다. 하지만 EDG는 이마저도 놓치지 않았다. 낌새가 이상함을 후퇴하는 리산드라 도주로에 탐 켄치-트위스티드 페이트의 궁극기가 동시에 떨어진다. EDG는 탐 켄치가 점멸까지 사용하며 추격해 잡아낸다.

탐 켄치와 트위스티드 페이트의 궁극기 타이밍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트위스티드 페이트를 플레이한 이예찬은 한국인, 탐 켄치를 플레이한 메이코는 중국인이다. 그럼에도 둘은 타이밍을 맞춰 동시에 리산드라 도주로에 나타났다. 둘 중 한 명이라도 궁극기를 먼저 썼다면 이를 눈치챈 리산드라가 빠져나갈 수도 있었다. 이들이 타이밍을 함께 세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EDG는 이 전투의 전리품으로 바론을 챙겼다. 이후, EDG는 바론 버프를 이용한 부드러운 운영으로 경기 마무리 준비를 마친다. RNG는 전황 타개를 위해 30분경 한타 싸움을 시도하지만, 이미 체급 차이가 벌어질 대로 벌어져 있었다. EDG가 31분 만에 결승전 1세트에 승리했다.


EDG와 RNG의 결승전 1세트는, EDG의 팀 플레이가 어느 정도까지 무르익었는지 잘 보여준다. 전투의 개시와 소환사 스펠의 유무 체크, 전장을 나눠서 운영하는 멀티 태스킹 능력까지 모두 한국팀들과 견줘도 손색이 없다. EDG가 정규리그 16전 전승을 기록하고 결승전마저도 3:0 완승을 한 이유는 중국팀이 가진 '소통의 부재'라는 고질적 한계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지난 월드 챔피언십 2015에서는 프나틱이 일명 탈(脫)유럽 급 팀이라는 평가를 들으며 각종 파워랭킹의 상위권을 차지했다. 실제 경기결과에서도 프나틱은 4강에 오르며 유럽의 자존심이 되어줬다. 이번 롤드컵에서는 EDG에게 탈(脫)중국 급이라는 평가를 하고 싶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롤드컵, EDG가 어느 정도의 활약을 보여줄지 지켜보는 것도 매우 재미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