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이' 김종인의 프로게이머 데뷔는 인상적이었다. 2012년 서머 시즌 혜성과 같이 나타난 그는 데뷔와 동시에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원거리 딜러라 평가받았다. 2012년 서머 시즌에서 3위, 그해 롤드컵 진출, 2012-13 윈터 시즌 우승, 올스타전 진출. 베테랑 프로게이머 중에서도 아직 위의 타이틀 중 하나를 못 딴 이들이 많은데, 김종인은 데뷔 6개월 만에 위의 업적을 모두 달성했다. '페이커' 이상혁이 데뷔하기 전까지만 해도 깨질 수 없는 기록이라 생각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LCK는 세계 최고의 리그다. 시작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나, 오늘날에서는 부정하려야 할 수 없는 사실이다. LCK에 속한 선수들의 수준이 뛰어난 만큼 최정상의 자리를 지키는 건 더욱 어렵다. 하지만 '프레이' 김종인은 항상 그 자리를 지켰다. 롤챔스에서 가장 잘하는 원거리 딜러가 누구냐는 주제로 대화를 나누면 그의 당시 성적이 좋고 나쁨을 떠나, 김종인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프로게이머 생활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꽃길만 걸을 줄 알았던 그의 추락은 한순간이었다. 떨어진 성적과 함께 김종인에게도 슬럼프가 찾아왔다. 슬럼프를 벗어나는 방식은 선수마다 차이를 보인다. 그래도 대개 비슷하다. 더 많은 노력과 피드백이 정석이다. 김종인의 방법은 정말 특이했다. 인제 와서는 그때의 선택이 후회된다고 말하는 김종인이지만 결과론적으로 그는 자신이 선택한 길로 슬럼프를 벗어났다. 사담이지만 그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란 노래의 한 소절이 생각이 났다.


김종인과의 인터뷰가 잡히고, 정말 오랜만에 설레는 기분으로 잠이 들었다. 많은 선수와 인터뷰를 나눴지만, 이토록 인터뷰하고 싶었던 적은 몇 번 없었다. 그는 나의 예상대로, 방송에서 보여주는 모습 그대로 쾌활했다. 한 시간정도 인터뷰를 했는데,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분위기가 침체 될 수도 있는 무거운 질문에서도 그는 밝게 답했다. 데뷔 6년 차를 앞둔 프로게이머 '프레이' 김종인의 데뷔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자.

처음 보는 게이머들의 경계심을 푸는 방법은 게임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그가 좀 전까지 했었던 솔로 랭크의 결과를 물었다. 이 방법이 먹혀들었는지 그는 웃으며 아쉽게 패배했다는 답과 함께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얼마 남지 않은 내년부터 6년 차 프로게이머에 접어드는 롱주 게이밍의 원거리 딜러 '프레이' 김종인입니다. 반갑습니다. 사실, 중간에 6개월 정도 쉬어서 실제로는 5년 정도 이 생활을 한 것 같아요."

경계심은 원래부터 없었던 거 같다. 베테랑 선수답게 인터뷰 자리가 편안하다는 듯, 여유 있는 미소를 띠었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유명했던 '프레이' 김종인. 그가 어떻게 롤을 시작하게 됐었는지 궁금했다.

"제가 처음 롤을 시작하게 된 시기는 수능 100일 전 친형의 추천을 받아서였어요. 당시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본분을 다하려던 학생이었거든요. 롤을 시작했다지만, 학원을 갔다 와서 엄마 몰래 노트북을 켜서 몇 판 하는 게 다였죠. 북미에서는 30레벨을 달성하고, 배치고사로 실버를 받았어요. 이후 10연승을 하고 접었어요. 수험생이었으니까요. 수능시험이 끝나고 얼마 뒤, 한국 서버가 열렸어요. 원래 북미 계정을 한국으로 이전시킬 수 있었는데, 그걸 안 하고 1레벨부터 다시 키웠어요. 친구들이랑 하는데, 제가 애들보다 잘한다는 걸 느꼈어요."

"저는 롤 이전에 워크래프트3 유즈맵 카오스를 했었거든요. 친구들이랑 CCB라는 대회에도 나가려고 했어요. 제 플레이에 대한 해설을 한번 들어보고 싶었어요. 평가를 받고 싶었다랄까. 오프라인 대회를 통과하면, 온라인 대회로 중계가 되고, 그때부터 해설을 들으면서 하는 건데 친구가 사정이 생겨서 기권할 수 없겠느냐고 했어요. 친구들끼리 만든 팀이라서 아쉽게 대회에 참가할 수 없게 됐죠.."


벌써 6년 전 일인데, 그는 아직도 그때가 생생하다는 듯. 막힘 없이 대답을 이어나갔다. 음... 역시 AOS를 즐기던 이들이 롤에서도 적응을 잘하는 것 같다. 물론, 김종인이라면 이전에 FPS를 했던, RPG를 했던 상관 없이 롤을 잘했을 거다.


실력이 뛰어나다고 프로게이머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시절만 하더라도 프로게이머에 대한 이미지는 부정적이었다. '황제' 임요환의 노력에도 고정 관념은 쉽게 깨지지 않았다. 김종인조차도 그런 고정 관념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럼 김종인은 어떤 계기로 프로게이머가 된 것일까.

"솔직히 말해서 제가 프로게이머가 된 것은 정말 운이 좋아서에요. 제가 '트롤킴' 아이디를 쓸 때,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렇지만... 독보적이었다고 생각해요(웃음). 프로게이머를 너무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게임을 하진 않았어요. 롤에 프로게이머가 있는지도 몰랐어요. 자취방에서 엄마 눈을 피해서 게임에 열중했어요. 부모님이 대학은 어디든 가야 한다고 해서, 대학에 진학했어요. 부모님은 거기서 열심히 해라. 학점은 잘 따놓으라고 조언을 해주셨어요."

"그런데 게으른 놈이 어디 가겠어요(웃음). 매일 자취방에서 롤을 했어요. 엄마에게 '엄마 오늘 휴강이래~'라고 말하고 게임을 했어요.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엄마는 제가 학교를 잘 안 나가는 걸 알고 계셨을 거에요. 엄마들이 알고도 속아주는 거 있잖아요. 그렇게 게임을 하다 보니 랭킹 2위를 찍고, 나진 e엠파이어와 스타테일에서 제의를 받게 됐어요."

"제가 중학교 때 스타크래프트의 인기가 엄청났어요. 제 친구들 모두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를 한다고 했어요. 준프로도 있었는데 결국, 프로게이머가 된 친구는 없었어요. 스타크래프트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때도 저는 스타크래프트를 한 판도 안 했어요. 프로게이머 제의를 받았는데, 저조차도 고정 관념이 있었어요. '프로게이머는 수명이 짧고, 미래가 없는 직업이다'라는 고정 관념이요. 그러다 보니 덥석 수락하진 않았어요. 부모님에게 말하기도 조심스러웠어요."

"그럼에도 프로게이머를 시작하게 된 건... 제가 하고 싶기도 했지만, 도피의 느낌도 있었죠. 학교를 거의 안 나갔으니, 학점도 하나를 빼고 다 F를 받았어요. 그 성적표를 부모님에게 보여 드릴 수가 없는 거에요. 대학 등록금이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부모님에게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어요. 부모님께서 일단 서울 집 올라와서 이야기를 하자고 했고, 집으로 올라갔어요. 엄마에게 말하니까 자기는 잘 모르겠는데, 아버지랑 한 번 이야기해봐라. 그래서 아버지에게 갔더니 엄마에게 가서 이야기 해보라고 했어요(웃음). 제가 빠른 년생이라 당시 19살이었거든요. 나이도 어린데 프로게이머 한 번은 해봐도 되지 않겠느냐고 설득했어요. 그렇게 프로게이머 생활이 시작됐어요. 부모님도 당시에는 1~2년 하다가 잘 안 되면 군대에 가라는 식으로 허락해주셨던 거 같아요."



성실하지 못했던 대학 생활. 처참한 성적표. 그것에 대한 도피로 시작된 프로게이머 생활의 첫해는 순탄했다. 6개월 만에 이룬 성취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고취와 불성실한 대학교 생활의 죄책감을 어느 정도 씻어낼 수 있었을 것 같다.

"제가 좋은 성적을 거둬서 3위에 올라서 어떤 결과가 나왔다기보다는 솔직히 가족 중 한 명이 TV에 나오는 거잖아요. 가족들이 제가 TV에 나오는 그 시간마다 즐거웠다고 했어요. 다 모여서 제가 대회에 나오는 모습을 보는 거죠. 가족이 모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부모님이 좋아하셨어요. 거기다 성적도 나쁘지 않게 나오고, 바로 롤드컵까지 갔잖아요. 제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시고, 되게 만족하셨어요. 즐기면서 할 수 있어서 그때 정말 행복했어요. 게임은 잘해야 재밌거든요. 정말 게임이 재밌었어요. 물론, 지금 재미없다는 건 아니고요(웃음)."

마냥 행복했었던 반년. 가족과 프로게이머 생활 초창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김종인의 얼굴에서 웃음꽃이 피었다. 지금도 정말 행복하지만,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즐길 수 있던 순수했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나진 블랙 소드는 롤드컵에서 고배를 들었다.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던 나진 블랙 소드를 무너뜨린 것은 복병 TPA였다.

"저희는 뭐 만들어지자마자 롤드컵에 나간 케이스잖아요. 돌이켜보면 선수들도 많이 미숙했던 거 같아요. 상대가 '배틀 로얄'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못하는 팀으로 알려진 TPA였어요. 많이 방심하고, 이겼다 우리 4강 갔다는 생각으로 늘어져 있었는데, 막상 붙어보니까 정말 잘하더라고요. 상대가 잘해서 속수무책으로 당했어요. 방심은 금물인데, 프로게이머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실수를 했었던 거 같아요."

하지만 나진 블랙 소드는 주춤하지 않았다. 롤드컵에서 패배는 진짜 방심이었다는 듯, 윈터 시즌에서 트로피를 들었다. 그것도 롤드컵 시즌2의 준우승팀인 아주부 프로스트를 상대로... 그해 말에는 올스타전에도 나갔다. 프로게이머가 딸 수 있는 타이틀 대부분을 데뷔한 해에 따냈다.


"가족들은 당연히 좋아했어요. 저 자신이 느낀 건... 이기면 이길수록 프로게이머는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때 당시에는 무슨 생각이 들었느냐면 '너는 무조건 이긴다'였어요. 지금은 '너한테는 안 진다'란 느낌인데, 예전엔 무조건 내가 이겨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자신감에 차있던 시기였어요."

지금에서야 많은 상향 평준화가 이뤄졌다지만 이 시절 '프레이' 김종인의 존재감은 독보적이었다. 강력한 라인전, 완벽한 한타 포지션. 넓은 챔피언 풀. 비교 대상이 없었다. 프로게이머로서 가장 자신감에 차있던 반년. 그 기쁨은 계속 이어질 수 없었다. 부진의 시작은 SKT T1 K가 데뷔했던 2013 스프링 시즌이다.

"그 시즌은 자세히 기억이 안 나요. 원래 시즌을 시작하기 전에 우승 후보팀을 뽑아요. 강팀, 중팀, 약팀을 뽑는데 모두가 우리를 우승팀으로 뽑았어요. 우리도 잘할 줄 알았는데, 생각만큼 연습도 잘 안됐고 게임도 안 풀렸어요. 연습량이 부족했고, 호흡도 안 맞았던 거 같아요. 지금은 생각도 잘 안 나지만,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아쉬웠던 시즌이었어요."

화려하게 데뷔했던 것의 반작용일까. 불행히도 그의 부진은 긴 시간 계속됐다. 처음으로 맛본 실패. 고속도로를 신 나게 달리던 스포츠카에 펑크가 났다. 2013-14 윈터, 2014 스프링에서 나진 블랙 소드는 16강에서 탈락했다. 무결점이었던 '프레이' 김종인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당시 그의 경기를 보면 플레이에서 조급함이 느껴진다.

"한 번 정점을 찍고, 확 떨어지니까... 내가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그 압박감 때문에 졌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냥 제가 부족했던 거죠. 연습 때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실수가 대회만 가면 나왔어요. 그때는 정말 슬펐어요. 제 마음대로 안 풀리니까요. 어쨌든 저희는 결과로 증명하는 직업이잖아요. '프레이'가 슬럼프에 빠졌다고 말해도 반박할 말이 없었던 시즌인 거 같아요. 이게 슬럼프의 시작이었어요."

"저도 솔직히 왜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그... 솔직히 내부적인 이야기를 하면 남 탓을 하는 거라 말하고 싶지 않아요. 모두 다 못했으니까 성적이 좋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누구 하나가 못해서 진 게 아니라. 하지만 이때도 항상 자신감은 있었어요. 내가 하면 너보다 잘한다는 생각은 있었죠. 대회 때 잘 안 풀리고, 성적도 저조하니까. 힘이 조금씩 빠지던 시기였어요."


성공한 프로게이머들을 만나보면 공통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남을 탓하기보다는 자신의 실수에 집중한다. 남에게서 패배의 원인을 찾지 않는 선수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공한 선수들 모두는 팀원을 탓 하지 않는다. '프레이' 김종인도 그랬다.

2014 스프링 시즌 이후, 팀을 나갔다. 이때 프로게이머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본인 스스로 만족하고, 즐기던 프로게이머 생활을 그만두고 싶었던 이유가 궁금했다.


"제가 마지막 스프링 시즌까지 하고 그만뒀잖아요. 사실 그 시즌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당시 코치님이 '싱코치'로 알려진 심상수 코치님이셨는데, 나중에 만나서 그때 왜 저를 방출하지 않았냐고 물어봤어요. 코치님이 적팀으로 만나기 싫었대요(웃음). 당시 봇 듀오를 제외하고 거의 새로운 선수들이 팀에 들어왔어요. 저희가 팀의 기둥이 되어야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냥 알겠다고 말하고 시즌을 뛰었죠. 나중에는 방출이 안 되면 연습생으로라도 좀 돌려달라고 요청까지 했어요. 너무 쉬고 싶었어요. 그래 한 시즌 더 해보자, 이번엔 다르겠지란 생각으로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죠."

"모든 프로게이머가 좋은 성적을 내고 싶을 거에요. 계속 경기에서 지다보니까... 힘들다,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 같아요. 잠깐 쉬었다가 해보고 싶었어요, 자신감도 조금 떨어졌어요. 우리 팀이 얘네 팀을 이길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들더라고요. 스스로 휴식과 함께 자기 정비를 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어요. 뭐 다른 게 하고 싶어서 휴식을 취하려던 건 아니에요. 너무 게임만 하다 보니까 휴식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해 그런 선택을 했어요."


많은 프로게이머를 만나면서 자연스레 하나의 고민을 했다. 프로게이머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엇일까. 긴 고민 끝에 나온 답은 바로 '자신감'이었다. 프로의 세계에서 자신감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상대를 이길 수 있다는 확신. 그 확신은 연습과 자신의 경기력에서 나온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자신감이 없으면 한 수 낮은 상대에게 휘둘리다 패배할 수 있다. 심리전에서 지고 들어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자신의 플레이에 대한 확신이 없는 선수는 수동적일 수밖에 없고, 판을 만들 수 없다. 이는 곧 최상위권 선수가 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벵기' 배성웅도 슬럼프의 원인으로 자신감 부족을 꼽았다. '프레이' 김종인도 비슷했다.


슬럼프에 빠져 휴식기에 돌입한 김종인은 무엇을 했을까. 그 공백의 6개월이 궁금했다.

"솔직히 말해서 세 달간 롤을 한 번도 안 했어요. 그때 나진에 '오뀨' 오규민 선수가 들어왔어요. '카인-오뀨' 듀오였는데, 롤을 한 판도 안 하다가 어머니가 하도 군대에 가라고 하셨어요. 이대로는 어머니 말대로 군대에 가겠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군대에 가기도 싫고, 팬들의 환호도 그리워서 롤을 다시 켰어요. 첫 판을 시작했는데, 제가 이전까지 해놨던 MMR이 있어서 첫 판부터 프로게이머를 만났어요."

"석 달 만의 첫 게임이었는데, '카인-오뀨' 조합을 만났어요. 제가 찢어졌어요(웃음). 정말 없어졌다 싶을 정도로 처참하게 패배했어요. 그게 너무 재밌는 거에요. 지고 있는데도 웃으면서 게임을 즐겼어요. 갑자기 이기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 들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다시 롤을 열심히 했어요. '나는 고래다' 아이디로는 많이 못 올라갔어요. 상위권에 가면 나를 찾아주는 팀이 있지 않을까 해서 20위 정도? 찍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도 제의가 오지 않았어요. 이때 불현듯 이런 생각이 났어요. 내가 '프레이'라서 제의가 오지 않는 걸까?라고."

"그래서 새로운 아이디를 1부터 키웠어요. '노을빛 언덕'이라는 아이디로 2~3등을 했어요. 1등에는 오르지 못했던 거 같아요. 그렇게 랭크 등수를 한창 올릴 때, 사람들이 모르는 아이디잖아요. '프레이'라는 이름이 잊혔나 봐요. 다들 친구 추가를 하고 누구냐고 물어봤어요. 프로게이머가 아니라면 꼭 프로게이머를 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내심 뿌듯했어요. 아무도 모르는 아이디로 하다 보면 제의도 많이 받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했어요."


자신감 하락과 휴식에 대한 갈증으로 시작된 김종인의 휴식기는 예상 외로 길어졌다. 그가 다시 롤을 시작하게 된 계기 중 하나는 공교롭게도 군대에 대한 도피였다. 내가 '프레이'라서 제의가 오지 않는 걸까라는 고민. 자신감이 떨어졌던 그때의 깊은 좌절감이 느껴지는 무거운 답변이었다. 분위기가 숙연해질 법도 했지만, 그의 유쾌함은 빛을 잃지 않았다. 나도 분위기 환기를 위해 다음 질문을 곧바로 던졌다.

'고릴라' 강범현의 연락으로 프로 무대에 복귀하게 된 그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솔직히, GE 타이거즈의 선전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네임벨류가 떨어지는 선수가 대부분이었고, '프레이' 김종인의 기량에 대한 의심도 있었다. 김종인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어떻게 회복했을까.


"솔로 랭크라는 게 프로게이머들의 자신감을 채워주는 좋은 수단인 거 같아요. GE 타이거즈가 만들어지던 당시 저는 자신감에 차있었어요. 누구라도 내가 이길 수 있단 생각이 오랜만에 들었어요. 당시 저도 나락까지 떨어졌었고, '스멥'이란 아이디는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어요. '쿠로'도 딱히... 유일하게 '고릴라'만 네임벨류가 있었어요. '호진'이 형은 아예 몰랐어요. 누구냐고 물어봤는데, 그냥... 잘한데요(웃음). 원래 못하다가 마지막에 잘해서 데려왔다고 했어요. 연습을 시작했는데, 초반부터 되게 삐걱거렸어요. 오프라인 대회를 하고, 방송 경기인 본선을 뚫었어야 했는데 아무도 우리 팀과 연습을 안 해줬어요."

"우리가 잘하기만 하면 연습 상대가 구해질 거라 생각에 정말 열심히 했었어요. 그때 중국에 IEF라는 대회에 출전했었는데, 그 대회를 계기로 선수들끼리 친해지고 게임적으로도 많이 발전했어요. 이후로 잘하다 보니까 예선도 통과하고, 1라운드에서 전승까지 해냈어요. 그러니까 많은 팀에게 연습 제의가 오더라고요. 즐거웠던 기간인 거 같아요. 우리 손으로 뭔가를 이뤄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적었던 팬들도 많이 생겼어요. 저희 팬들이 나진 골수 팬들. 그중에서도 (이)서행이 범현이 팬들이 대다수였어요. 저 같은 경우에도 팬이 어느 정도 있었는데, 여러 루머와 슬럼프가 겹쳐지면서 없어졌어요. 제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팬은 둘째 치고, 지면 비판의 화살 대부분이 저한테 날아왔던 거 같아요. 저희도 비판을 많이 받았는데, 회사도 욕을 많이 먹었어요. 회사가 좋은 이미지가 아니어서 그거랑 겹쳐지면서 저희 팀을 싫어하는 분들이 많았던 거 같아요. 그래도 잘하는 팀에게는 알아서 팬이 따라온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만 거두면, 모든 상황이 해결될 거라는 생각으로 정말 노력했어요."


맨주먹으로 시작한 GE 타이거즈. 그들은 돌풍의 주역이 됐다. 그 중심에서 활약한 '프레이' 김종인은 자신의 기량이 여전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연습 상대를 구하지 못하던 GE 타이거즈는 석 달 만에 다른 팀의 스크림 요청을 받는 강팀이 됐다. 김종인의 생각대로 이뤄졌다. 그래도 시작은 왠지 불안했을 것 같다. 명성이 없던 선수들이 과반수 이상이었다.


"저는 팀원들을 보고, 불안하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당시엔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은 아예 들지 않았어요. 그냥 프로게이머가 다시 하고 싶었거든요. 제가 프로게이머를 잠시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잖아요? 그런데 그게 말이 안 되는 거에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생각인 거 같아요(웃음). 제가 길게 쉬어봤던 입장으로서... '클템' 이현우 해설께서도 항상 프로게이머를 오래 하라고 하시거든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쉬어보니까 알겠더라고요. 너무 하고 싶은데, 불러주는 팀은 없고... (강)범현이가 찾아줘서 아주 고마웠어요. 한국에서 뛸 수 있겠구나, 솔직히 멤버는 걱정 안 했어요. 성격이 좋은 친구들이면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무대에서 퇴장하고 나서야 무대가 그리워진 '프레이' 김종인. 그는 프로게이머가 휴식기를 갖는다는 게 얼마나 미련한 짓이었는지 대해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반년의 휴식이 '프레이' 김종인이 무대에 간절함을 갖게 만들어준 계기가 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휴식기를 가지지 않았더라면 무대의 소중함을 지금처럼 절실히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우리가 공기의 소중함을 잊고 지내듯이.

하지만 GE 타이거즈에서도 시련이 찾아왔다. 나진 블랙 소드가 월드컵에서 TPA에게 패배했을 때보다 더욱 예상 밖의 일이 발생했다. IEM 월드 챔피언십의 대패. 팬들보다 GE 타이거즈가 더욱 충격을 받았을 터다.

"저희가 IEM에 가기 직전까지 연습에서 거의 안 졌어요. 우리끼리 이대로 롤드컵 우승까지 가자고 웃으면서 이야기도 많이 했어요. IEM에서도 당연히 이길 줄 알았는데, 졌어요. 진 거는 저희가 준비를 잘 못 해서 졌다고 생각하는데, 그 패배가 GE 타이거즈의 공식전 첫 패배였어요. 그래서 분위기 수습이 잘 안 됐던 거 같아요. 2라운드에도 영향을 줬고, 1라운드만큼 좋은 성적을 못 냈죠."

그의 말 그대로 IEM 월드 챔피언십의 패배는 승승장구하던 GE 타이거즈의 공식전 첫 패배였다. 실패를 겪은 GE 타이거즈는 삐걱대기 시작했다. 시련은 계속됐다. IEM 월드 챔피언십 이후, 치러진 SKT T1과의 결승전. 3:0으로 참패를 맛봤다.


"3:0으로 질 줄 알고 있었어요. 그냥 느낌이 들었어요. 저희가 연습이 잘 안 돼 있었거든요. 누구 한 명을 탓하는 게 아니라, 호진이 형이 갑자기 바뀐 정글 메타에 적응을 잘 못 했어요. 공격적인 챔피언만 하다가 갑자기 잿불 거인이 튀어나오며 탱커 메타로 바뀌자 호진이 형이 주춤했어요. 우리 팀 모두의 잘못이라 생각해요. (송)경호의 삼 연속 이렐리아 이런 것도 있었잖아요(웃음)."

"저희 숙소 바로 아래에 김밥 천국이 있었는데, 결승 전날에 경호와 함께 내려가서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했어요. 우리가 내일 이길 수 있을까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는데, 대답이 똑같았어요. 호진이형만 잘하면 이길 수 있다(웃음). 함께 웃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지긴 했지만 우리 모두 부족해서 졌다. 그래도 준우승을 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했어요."


결승전을 앞두고, 갑작스레 바뀐 메타의 변화. 패치가 이뤄진 시기를 원망할 수도 있다. 그들이 정규 시즌 육식 정글 메타에서 쌓아 놨던 금자탑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물론, 적응력도 실력이지만 패치 시기가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여러 악재에도 첫 준우승을 따냈다고 '프레이' 김종인은 밝게 웃었다.

쿠 타이거즈로 이름이 바뀐 서머 시즌에서는 스프링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진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롤드컵에 진출했고, 창단한 해에 준우승을 따냈다.

"롤드컵 준우승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솔직히 말해서 저희 멤버가 각자 놓고 봤을 때 구렸어요(웃음). 어떻게 이 멤버로 롤드컵 준우승까지 갔는지에 대한 생각과 이야기를 나눴죠. 롤드컵 준우승은 기적이죠. kt 롤스터한테 졌어도 이상하지 않은 경기력이었어요. 다 졌던 경기를 역전해서 결승에 갔잖아요. 롤드컵에서 운이 정말 좋았어요. 8강 대진에서 kt 롤스터를 뽑았을 때, 다들 좋아했어요. 이길 자신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나고 나서 이야기하는 거지만 져도 이상하지 않는 경기 내용이었어요. 게임이 너무 불리했거든요. 우리가 승리한 3경기 모두 역전승을 했어요. 그걸 어떻게 다 역전했는지 신기해요."

김종인은 kt 롤스터에게 승리를 따낸 것이 기적이라 칭했다. 그건 아니다. 쿠 타이거즈의 역전은 기적이 아니라, 노력의 결정이었다. 장기전에서 판단력이 흐려져 아쉽게 패배했다던 서머 플레이오프에서 드러난 약점을 노력으로 보완했다. 후원사가 해체돼 외부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음에도 쿠 타이거즈는 결실을 보았다. 열악하던 환경에서 쿠 타이거즈는 어떻게 쾌거를 달성할 수 있었을까.


"처음에는 성적이 이렇게 잘 나오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길까?란 생각을 되게 많이 했어요. 갑자기 휘청거리는 느낌이 들었죠. 그래서 더 그 시즌이 기억에 남는 거 같아요. 말도 안 되게 PC방에서 연습하면서 롤드컵에 진출했어요. 정말 한 명이라도 성격이 모났다면 롤드컵 진출은 불가능했을 거로 생각해요. 힘든 점이 정말 많았어요. 여름엔 에어컨이 안 나오고, 추울 때는 히터도 안 됐어요. 넓기는 정말 넓었는데, 되는 게 없었어요. 낮에 연습실에 가면 빛이 너무 들어와서 연습을 못했어요. 암막 커튼을 달아달라고 요청했는데, 안돼서 저희끼리 종이를 가져다 붙였어요.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에 씻어 봤어요. 지나고 나면 추억이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인터뷰 시작하고 처음으로 김종인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을 봤다. 무더웠던 여름,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연습실에서 여러 대의 컴퓨터가 쏟아내는 열기를 열정으로 이기고, 추운 겨울을 끈끈한 팀워크로 버티던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듯했다. 그와 이야기를 하면서 김종인은 굉장히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게 물씬 느껴졌다.

하지만 게임 외적으로 흔들렸던 일은 또 발생했다. 본인이 즐거워서 시작했다던 개인 방송. BJ '프레이'와 프로게이머 '프레이'의 경계에서 많은 고민을 했을 거 같다. 아직도 생각이 많을 것 같은데. 속으로 어떤 결정을 내린 것일까.

"아직도 많이 힘든 것 같아요. 저한테 개인 메시지가 많이 오거든요. 정말 팬이었는데, 제가 비속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내가 생각하던 사람이 아니라서 너무 실망하게 됐다'는 내용의 메시지들이요. 그런 걸 보면 내가 방송을 해도 되나? 회의감이 들기도 해요. 제가 재밌어서 시작하게 된 방송이고, 지금처럼 하는 방송이 즐거워요. 이게 좋은 현상은 아니잖아요. 비속어를 쓰면서 방송을 한다는게..."

"누군가가 하지 말라고 크게 제재를 가하면 안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어느 정도 선을 넘을 때마다 정노철 감독님이 그 선을 지키도록 피드백을 주셨던 거 같아요. 많은 분이 즐거워 해주셔서 이런저런 일들로 힘들지만, 방송을 계속했어요. 정말 제가 좋아하는 일이고, 여러분의 도움으로 계속 방송을 하는 거 같아요(웃음)."


김종인은 개인 방송을 정말 좋아하지만, 언제라도 방송을 그만두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2016년 쿠 타이거즈는 선수들의 힘을 함께 뭉친다는 뜻에서 바위(Rocks)를 팀 명에 붙였다. 팀 색깔이 잘 묻어 나오는 이름이었다. 그들은 스프링 시즌 다시 SKT T1을 만나 준우승에 그쳤다. 세 번의 준우승 끝에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과정이 험난했기에 더욱 성취감이 들었을 거 같다.


"우승을 하던 순간에는 큰 감흥이 없었어요. 그런데 조금 있으니까 울컥하더라고요. 와... 드디어 우리끼리 우승을 했다. 이런 성취감을 느꼈어요. 경기 내용도 극적이었잖아요. 참 웃긴 게 아주 잠깐 신이 났던 거 같아요. 한 시간 정도? 왜냐면 서머 시즌이 끝이 아니라, 곧 롤드컵이 있어서 롤드컵도 잘하자고 들뜬 분위기를 빠르게 가라앉혔어요."

곧바로 있을 롤드컵을 위해 ROX 타이거즈는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칼을 갈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SKT T1이 ROX 타이거즈의 앞을 가로막았다. 경기 내용이 너무 좋았고, 이길 수도 있었겠다는 미련이 들 법도 했을 거 같다. 트라우마가 생길 법도 하다.

"왜 또 SKT T1이지...라는 말은 16강 끝나고 같은 조로 편성 됐을 때 나왔어요. 우승하려면 SKT T1을 만나야겠구나, 생각했죠. 그런데 저희가 자주 하던 말인데, 어쨌든 우승하려면 SKT T1을 꺾어야 되요. 다른 팀이 SKT T1을 잡아줄 거란 생각은 항상 했지만, 그랬던 팀이 한 팀도 없어요. kt 롤스터가 극적인 역스윕을 했지만요. 우승을 하려면 잡아야하는 상대다. 그런 생각을 했지만 못잡아서 아쉽죠. 잡을만 했는데... 그 경기는 항상 생각나는데, 지난 일이니까 치워둬야 하죠."

"물론 1세트에서 승리했다면 3:0으로 이겼을 수도 있었겠다. 생각은 한 번 해봤죠. 그렇게 이야기하면 끝이 안나요. 작년에 SKT T1을 만났을 때, 유리했던 경기가 있거든요. 우리가 무조건 이겼어야 하는 판인데 졌던 경기가 있어요. 거기서 조금만 천천히 했으면... 어차피 결과론적인 이야기 같아서요. 상대가 더 잘했으니까 진 거죠. 우리가 2경기를 따냈을 때, 와 이거 SKT T1 잡나? 한 걸음만 더 가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한 걸음이 너무 힘들더라고요(웃음)."


그의 말은 너무나도 정론이었다. 지나간 일에 얽매여봤자 소용없다. 어차피 넘어야 할 산이다. 말은 쉽다. 이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운 거다. 김종인은 성숙한 인간이었다. 롤드컵 이후 충격적인 일이 계속됐다. 기존의 ROX 타이거즈 멤버들이 흩어졌다. 분위기도 정말 좋았고, 팀원만 유지된다면 다음 롤드컵에 높은 확률로 진출할 가능성이 있는 팀이었다. 새로운 팀으로 들어가서 새 출발을 하는 것에 있어 막막함이 들 법도 하다.


"팀원들이 다 같이 갔으면 좋았겠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경호와 왕호가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았잖아요. 말로는 다들 같이 가자고 했지만, 저희도 찢어질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서로 계약이 끝나고 어떻게 하자는 이야기는 전혀 안 나눠봤지만, 모두 어렴풋이 알고 있었죠. 정말 같이 가고 싶긴 했지만, 어쩔 수 없죠. 저는 좀 아쉬운 게 지금의 ROX 타이거즈가 어떻게 할진 모르겠지만, 저희가 만든 ROX 타이거즈의 유쾌한 이미지를 버려두고 온 것 같아서... 팬분들에게 죄송하지만, 수명이 길지 않은 프로게이머란 직업의 특성상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는 ROX 타이거즈가 롤드컵 진출 확률이 높은 팀이라서가 아니라, 진짜 의지하고 좋아하던 팀원들과 함께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만 답했다. 사람은 자신의 관심사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물어봤던 롤드컵 진출 확률에 대한 답변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가 얼마만큼 ROX 타이거즈를 사랑했는지 알 수 있었다. 팀이 뿔뿔이 흩어지게 된 것이 확정됐고, 김종인은 좋은 제의를 많이 받았을 터다. 그럼에도 그는 롱주 게이밍을 택했다.

"롱주 게이밍에 들어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조금 그렇지만, 저는 정노철 감독님과 계속 함께하고 싶었어요. 정노철 감독님의 선수에게 자유를 주고, 스스로 선을 지키는 게 매우 좋았어요. 정노철 감독님이 저를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웃음)... 보통 감독이 지휘하니까 정노철 감독님이 가는 팀은 아마도 기존의 ROX 타이거즈처럼 운영이 될거 아니에요? 그 분위기 속에서 하는 게 정말 좋았거든요."

"영입 제의는 은근히 많이 왔어요. 저희 부모님은 중국으로 가라고 하셨어요. 다른 팀은 이미 어느 정도 퍼즐이 짜인 느낌이라 '그냥 중국으로 가라'고 아버지가 강하게 말씀하셨어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제가 한국에서 하고 싶다고 말해서 부모님도 제 의사를 존중해주셨어요. 설득 아닌 설득을 했죠."

"한국에서 못해도 잊힐 수 있지만 해외로 가서 못하면 진짜 잊혀질 거라고 생각을 해요. 제가 해외에 한 번도 안 나가봐서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거 같아요. 이것도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GE 타이거즈가 처음 모였을 때도 되게 보잘것없는 팀이었어요. 지금은 슈퍼 팀이라 불리는 팀이 여러 개가 있잖아요. 그렇지만 우리가 잘한다면 그런 팀들을 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할 수 있다'는 마인드로 남게 됐어요. 원래 범현이랑은 찢어지려고 했어요. 해외에서는 같이 찾아주는 팀이 거의 없었거든요. 한국에서 같이 하면 좋고, 해외로 가면 따로 떨어지는 거였는데, 롱주에서 불러줘서 같이 할 수 있게 됐어요."


중국의 좋은 오퍼를 거절했다. 김종인은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한국에 남게 된 이유 중 하나라고 했으나, 그는 아마 자신이 있었을 거다. GE 타이거즈의 성공 신화. 그 주역이 세 명이나 롱주 게이밍에 속해있다. 대부분의 팬은 롱주 게이밍을 슈퍼 팀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아프리카 프릭스, kt 롤스터만큼 임팩트를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레이' 김종인의 '할 수 있다'에는 확신이 가득 차있었다. 롱주 게이밍의 봄이 벌써 기대된다.


도피로 선택했던 프로게이머의 길은 김종인에게 알맞은 길이었다. 그렇지만, 자신이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은 있을 수도 있다. 사람이란 게 원래 그렇다.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저는 잃은 만큼 얻는 게 있다고 생각해요. 일반인으로 살아갔다면 받아보지 못했을 관심들도 너무 감사해요. 롤드컵, 올스타전, 롤챔스 같은 큰 무대에 몇 번이나 서보겠어요. 이런 특별한 경험들이 저는 정말 재밌어요. 저는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다고 생각해요. 이 삶이 매우 만족스러워서 하는 말이에요. 다른 선수들은 저와 다를 수도 있겠죠. 또래 애들처럼 지낼 수는 없지만, 프로게이머의 삶도 재밌어서 아쉬운 게 없는 거 같아요. 어디 나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요. 취미가 원래부터 게임이라서 게임 하는 게 좋아요."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그건 신이나 가능한 일이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김종인은 잘 알고 있었다. 괜한 욕심을 부리면 속만 쓰리다. 그는 현재에 충실하고, 만족할 줄 아는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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