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2'는 10밴으로 일어난 변화를 단적으로 나타내준다. 6밴으로 진행된 마지막 LCK, 2016 롤챔스 섬머 시즌에 출전했던 챔피언은 '74'개. 그와 비교해서, 이번 2017 스프링 시즌에 출전한 챔피언은 '76'개로 딱 두 개가 더 나왔다. 비교한 두 시즌 모두 전 챔피언 중 절반가량만이 대회에 등장했다. 챔피언의 다양화는 여전히 없었다.

하지만, 아무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변화는 전략성. 스포츠를 즐기는 데 가장 재미있는 요소 중 하나인 코치진의 두뇌 싸움이 심화됐다. 상대의 조합을 보고 두 번째 밴 페이즈에서 핵심 챔피언을 잘라내거나, 한 라인에 밴을 집중 투자하는 등 여러 가지 모습들이 등장했다.


특히, 단기전에서는 더욱 과감하고 치열한 머리싸움이 진행됐다. 플레이오프 2라운드 대결이었던, kt 롤스터와 삼성 갤럭시의 대결로 돌아가 보자. 이날 경기 밴픽의 백미는 원거리 딜러를 놓고 벌어지는 수 싸움이었다. 10밴 시스템이 있기에, 가능했던 수 싸움들이었다.

kt는 1세트에서 바루스와 이즈리얼을 자르며, 원거리 딜러 견제를 강하게 했다. kt가 블루 진영이었기 때문에, 삼성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면 애쉬는 kt에게 돌아가는 형국이었다. 삼성은 애쉬를 밴 하며 2티어 원거리 딜러 싸움으로 밴픽을 강제했다. 그러나 kt의 생각은 달랐다. 바루스, 애쉬, 이즈리얼이 없으면 케이틀린이 최고의 픽이라는 생각이었다. kt의 생각은 보란 듯이 적중했다. kt의 봇 듀오는 루시안을 선택한 삼성을 라인전에서 박살 냈다.

여기까지는 6밴이었더라도 가능했을 전략이다. 주시해야 할 경기는 이어진 2세트였다. 다시 한번 블루 진영을 잡은 kt는 이번에도 바루스와 이즈리얼을 잘랐다. 하지만, 삼성은 1세트와는 다르게 애쉬를 열어줬다. 애쉬를 주고, 케이틀린 혹은 진 같은 챔피언을 가져올 심산이었다. 사거리가 짧은 루시안으로는 kt를 상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루시안은 '룰러'가 전혀 애용하던 픽이 아니었다. 포스트 시즌 전까지, 커리어 내내 딱 한 번 사용했을 뿐이었다.

삼성이 원하는 방향으로 밴픽이 흘러가는 듯했다. kt가 1픽으로 애쉬를 가져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후에 발생했다. 삼성은 1, 2, 3픽을 원거리 딜러가 아닌 다른 포지션으로 채웠다. 이는 치명적인 실수였다. kt가 4, 5밴으로 케이틀린과 진을 잘라버리며 삼성의 의도를 완전히 봉쇄했다. 이렇게 되자, 삼성이 뽑을 만한 픽은 루시안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kt가 케이틀린을 애쉬로 업그레이드시킨 셈이었고, 삼성은 1세트와 똑같이 루시안을 뽑게 됐다. 10밴 시스템을 이용한 kt의 기막힌 밴픽이었다.


11일 있었던 kt와 MVP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 3세트 대결에서도 머리싸움은 격렬했다. kt는 이날 내내 챔피언 폭에 약점이 있던 '이안' 안준형과 '마하' 오현식을 견제했다. 신드라와 바루스가 아니라면, MVP의 미드와 원거리 딜러는 힘을 못 쓴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1, 2세트 모두 승리를 거둔 kt는 3세트에서도 자신들의 생각을 이어나갔다.

MVP는 kt의 노림수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라인전이 강력한 카르마와 자이라를 밴하면서 상대의 봇 라인전 힘을 덜어내고자 했다. 이어서 MVP는 1픽으로 말자하를 선택했고, 2픽으로는 메타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마하'가 애용하는 진까지 뽑았다. 이 정도만 갖추면 kt에게 애쉬를 줘도 괜찮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MVP가 서포터에 밴 카드를 두 장이나 사용하자, 카밀이 풀리게 됐다. kt는 2픽으로 망설임 없이 카밀을 뽑았다. 봇 조합을 빠르게 완성시킨 MVP가 당연히 카밀을 먼저 뽑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카밀은 라인전에서는 버티는 데 중점을 둬야 하는 챔피언이기에, 미드-봇 라인전이 약한 MVP가 뽑기에는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MVP는 정규 시즌에 카밀을 카운터 치는 전략을 선호했었다.


첫 번째 픽 페이즈가 끝나니, 양 팀 조합의 윤곽이 드러났다. 자연스럽게 두 번째 밴 페이즈부터는, 자신의 조합은 살리고, 상대의 조합은 무너트리기 위한 머리싸움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10밴이 만들어낸 중점적인 변화였다.

kt는 라인전 약점을 가지고 있는 카밀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레넥톤을 잘랐다. 레넥톤은 이번 시즌 내내 카밀의 카운터로 등장했었다. 이어서 성가신 쉔을 잘랐다. 쉔은 카밀을 상대로 라인전, 한타, 궁극기사용 등 여러모로 괜찮은 픽이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MVP는 남은 서포터 중 가장 티어가 높은 룰루를 자르며 상대 봇을 더욱 억제했다. 또한, 카밀과 함께 1-3-1 운영을 할 수 있는 탈론을 밴 하면서 상대의 날개 운영을 최소화했다.

그러나 두 팀 모두 상대의 견제를 받아칠 무기를 생각하고 있었다. kt는 한동안 나오지 않았던 미스 포츈 서포터를 선택하며 라인전에 더 힘을 실었다. MVP의 무기는 뽀삐였다. MVP는 카밀을 상대할 때 뽀삐를 선호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뽀삐가 여러 상황에서 카밀을 마크하기 좋아서였다. 승리를 거두며 결과로 증명한 경기도 있었다.

무기가 더 날카로웠던 쪽은 kt였다. kt가 봇 라인전을 압살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자, 뽀삐가 카밀을 마크한다는 게 큰 이점이 있지 않았다. kt의 미드-봇이 편하게 초반 주도권을 잡았기 때문에, 중반부터는 카밀이 날뛸 일만 남아있었다. 뽀삐는 말 그대로 카밀을 어느 정도 마크할 수 있을 뿐이지 주도권으로 움직이기는 어려웠다.


소개한 경기들처럼, 10밴은 6밴보다 더욱 많은 상황과 변수를 만들어내 코치진의 머리를 아프게 했다. 하지만, 10밴은 코치진을 더욱 코치진답게 만든 시스템이었다. 코치가 수행해야 할 핵심 과제인 전략이라는 부분을 심화시켰으니. 게다가 그들의 머리는 아팠어도, 팬들의 즐길 거리가 한층 더 늘어났다. 긍정적인 변화다.

꽤 오랜 준비 기간이 주어지는 단기전은 코치진의 밴픽 싸움이 더 재미있게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한판 한판이 중요하기 때문에, 밴픽에서 순간적인 대처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예를 들어, 10밴을 이용해 당일 날 컨디션 난조를 겪는 선수를 집중 공략할 수도 있다.

이제 이번 시즌 남은 단기전은 결승전뿐이다. 최고의 코치로 평가받는 SKT T1의 김정균 코치와 지도력을 인정받고 있는 이지훈 감독 이하 코치진의 머리싸움이 어떻게 진행될지 관심이 쏠린다. 누가 승리할지는 모르지만, 결승전에도 10밴을 활용한 재미있는 전략과 두뇌 싸움이 펼쳐지길 바란다.